지구가 끝장 나는 날(The World's End, 2013) | 병맛 코디미를 보는 것도 우리 권리야!
"이봐! 병신이 되는 것도 인간의 기본 권리야! 이 문명은 병신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그리고 그거 알아? 그 점이 난 자랑스러워" - 게리
"나도 그래!" - 앤디
게리와 그의 친구 올리버, 피터, 스티븐, 앤디는 고등학교 생활을 마감하는 날 영웅적인 거사의 일환으로 ‘골든 마일(Golden Mile)’을 시도했었다. 고향인 뉴턴 헤이븐을 둘러싼 12개의 술집을 돌며 맥주 한 잔씩을 마시는 아주 간단한 일처럼 보였지만, 막상 시도해 보니 왕성한 혈기에도 그들은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게리와 친구들은 각자 짊어진 인생을 일궈나가기 위해 세상 속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게리가 40대에 접어든 어느 날. 게리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골든 마일’을 다시 시도하려고 흩어진 친구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닌다. 게리 특유의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집요한 설득에 넘어간 친구들은 게리가 고등학교 때부터 몰던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고물 자동차 ‘야수’를 타고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다.
지긋지긋했던 곳이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성장한 고향인지라 뭔가 기대를 품고 찾아온 ‘5총사’ 앞에 뉴턴 헤이븐은 그들을 기억하지도 못할뿐더러 거리와 술집은 낯선 마을 사람들로 가득했음에도 마을 분위기는 마치 영화 속 배경에 자리 잡은 한낱 소품 같은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묘한 차분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별생각 없이 세월 탓으로 가볍게 돌린 그들은 예정대로 1호 술집 ‘우체통 주점’부터 시작하여 언제 끝날지 모를 ‘골든 마일’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렇게 그들이 네 번째 술집에 이르렀을 때, 인류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꿀 엄청난 일을 겪게 되는데….
술주정뱅이 말발에 지구의 운명을 맡긴, 덕분에 깔끔하게 인류 문명이 풍비박산한다는, 왠지 모르게 통쾌하고 가슴 속이 후련하면서도 황당한 영화 「지구가 끝장 나는 날(The World's End, 2013)」. 「새벽의 황당한 저주(Shaun Of The Dead, 2004)」을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어떤 병맛 같은 코미디를 연출하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병맛’이라 모두가 다 같은 ‘병맛’은 아니다. 영화 「지구가 끝장 나는 날」은 정갈하게 엄선된 난장판을 한 번 더 뒤집어버리는 혁신과도 같은 기발함과 번뜩이는 재치로 가득한, ‘병맛’ 중의 ‘병맛’이다.
하지만, 영화니까 인류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인류 문명이 한 줌의 흙으로 증발하는 무시무시한 장면들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지, 만약 실제로 저런 일이 생긴다면, 아마 그 술주정뱅이는 히틀러+스탈린+폴 포드 등을 합산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류사 최악의 인물로 평가받는 것과 더불어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사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겠지.
아무튼, 외계 문명이 자신들의 지적 우월함을 강조하며 인류에게 자신들에게 동화되도록 강요하는 장면은 서구가 자신들 문명의 우월함을 과시하며 제국주의적 야심을 불태웠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지금도 서구인이나 한국처럼 좀 살 만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발전 등의 문명이 주는 혜택이 인류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망상에 집착하는 걸 보면 외계인의 행동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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