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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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투 킬 | 사이코패스, 그들은 정말 타고난 살인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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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투 킬(Born To Kill, 2017) | 사이코패스, 그들은 정말 타고난 살인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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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범죄 드라마 「본 투 킬(Born To Kill, 2017)」은 16살의 사이코패스 소년 샘의 이야기다. 그래서 캐나다 범죄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Robert D. Hare) 박사가 제시한 사이코패스 판정 도구(Psychopathy Checklist-Revised, 일명 PCL-R)로 샘의 행동 성향을 분석해봤다(한국경제 「사이코패스 판정 도구(PCL-R)」 기사 참고).

분량이 적은 드라마라서 샘의 성향을 분석할 정보가 적기도 하지만, 비전문가의 분석이니만큼 그냥 재미로만 받아들이자. 만약 이 드라마를 보게 된다면 감상하고 나서 스스로 샘의 행동을 PCL-R로 분석해보는 것도 이 드라마가 줄 수 있는 독특한 재미일 것이다.

PCL-R 분석한 샘의 사이코패스 성향

질문 01. 말 잘하는 것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 샘은 혼자 있을 때 거울 앞에서 말하는 연습을 자주 한다. 2점

질문 02. 자기의 가치에 대해 자랑하고 다닌다. ─ 샘이 다이빙을 하는 이유로 높은 곳에서 남들을 내려다볼 수 있고, 그럼으로써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봐야 하기 때문이다. 심리 상담에서도 나타나듯 타인이 자신을 우습게 보거나 깔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2점

질문 03.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 ─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여러 말을 지어낸다. 엄마 앞에서 거짓말을 번복하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특히 첫 살인 후 얻은 전리품인 시계를 엄마가 어디서 얻었느냐고 물었을 때. 2점

질문 04. 속임수를 경멸하거나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2점 ─ 샘은 엄마가 의도적으로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었다고 숨긴 사실에 분노한다.

질문 05. 범죄를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 그랬더라면 이 드라마는 만들어질 수가 없다. 2점

질문 06. 감동적인 것을 봐도 감동인지 모른다. ─ 파티처럼 타인들이 기쁨을 누리는 상황, 그리고 장례식처럼 슬픔을 느껴야 하는 상황 등 감정적인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한다. 2점

질문 07. 매사에 냉담하고 남이 말하는 것에 공감하지 않는다. 2점 ─ 식탁 위에 있는 달팽이를 아무 일도 아닌 듯 손바닥으로 눌러 죽이고, 타인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말한다.

질문 08. 책임감이 없거나 부족하다. ─ 동생 같은 오스카를 보살펴 주지 않는 일을 언급할 수 있지만, 애초에 보통사람이 가진 정도의 책임감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쉽게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2점.

질문 09. 일상생활에서 많은 정신적 자극이 필요하고 지루함이 많다. ─ 친구 아버지의 생일 파티에서 보여준 샘의 지루한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외에는 딱히. 그래서 1점.

질문 10. 기생충처럼 남에게 빌붙어 산다. ─ 아직 16살의 학생이다. 지금 판단하기는 이르다. 0점

질문 11. 나쁜 행동을 자제할 능력이 부족하다. ─ 살인만큼 나쁜 행동도 없다. 2점

질문 12. 소년비행을 경험하거나 영유아기 때 잔인한 짓을 많이 하였다. ─ 샘은 16살이다. 2점

질문 13. 현실성이 부족한 목표를 길게 끌며,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자신을 매정하게 버린 아버지와 잘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1점

질문 14. 매사에 충동적이다. 2점 ─ 책을 읽어주던 병상의 할아버지를 죽이게 된 상황, 크리시의 할머니가 낙상으로 상처를 입었을 때 도와주는 척하면서 죽이게 된 일, 샤워실에서 오스카를 갑자기 공격한 일 등 2점.

질문 15. 무책임하다. ─ 8번 문항과 같은 이유로 2점.

질문 16. 소년비행. ─ 살인보다 더한 비행이 더 있을까? 2점.

질문 17. 약속을 잘 깬다. ─ 오스카에게 수영 강습을 해주기로 한 일을 잊는다. 엄마의 동료 간호사인 캐시가 엄마에게 전달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 등 2점.

질문 18. 아무 데서나 성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 크리시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샘은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크리시와 과감한 스킨십을 벌인다. 2점.

질문 19. 많고 짧은 연애를 한다. ─ 그는 아직 어리다. 드라마에 나온 샘의 연애 행각은 크리스가 전부다. 0점.

질문 20. 범죄적인 재능이 타고났거나, 재능을 범죄에 이용하려고 한다. ─ 샘이 간호사를 죽인 것은 명백한 계획 살인이다.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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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합 36점이 나온다(참고로 연쇄살인마 유영철의 점수가 38점이라고 한다).

비록 비전문가의 감식안이지만 샘은 마치 PCL-R 테스트의 표본으로 창조된 인물인 것처럼 사이코패스 성향에 매우 잘 들어맞는다(아마도 드라마 작가가 이 테스트의 질문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당신의 사이코패스 성향이 어떤지 궁금하다면 스스로 PCL-R 테스트를 해보기 바란다. 참고로 난 생각보다 낮은 점수인 6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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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소년인 샘 역할을 맡은 Jack Rowan(잭 로완)의 섬뜩한 표정 연기는 그 연기 하나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그의 훌륭한 연기력 덕분일까? 그가 체포되는 마지막 장면은 보통의 범죄 드라마에서 느낄법한, 즉 악당이 드디어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복수의 쾌감보다는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비극적인 운명에 희생된 한 소년의 씁쓸한 뒤안길을 보는 것 같아 영 개운치가 못하다.

샘의 행동을 보면 모든 사이코패스를 특별 관리 대상으로서 감시하는 것이 다수를 위한 일 같지만, 세상 모든 사이코패스(정신의학자들은 일반인 중 사이코패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1% 미만으로 보고 있다)가 범죄자로 삶을 마감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부당한 다수의 횡포다. 또한, 12만 명을 해고하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 해고전문가이자 억만장자인 ─ 앨 던랩(Al Dunlap) 같은 거물급 사이코패스들이 정치계나 재계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로버트 헤어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기업인 중에서 사이코패스 테스트에서 적어도 30점 이상을 받은 비율이 3.9%에 달한다고 한다. 일반인 중에서의 비율보다 3배 이상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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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마 중에 사이코패스가 다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사이코패스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그들은 지금의 기술로선 치료할 수 없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와 뇌 구조가 다른 것처럼 세상을 보는 시점도 다르다. 샘이 어렸을 때 아빠로부터 샘을 보호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엄마의 말에 샘은 엄마의 힘이 약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샘은 엄마가 자식을 어떻게든 보호하려는 사랑과 감정을 읽지 못하고, 그 물리적 상황만 이해한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사회를 약육강식의 논리로 이해한다. 그래서 필요하면 살인도 서슴지 않을 수가 있다.

시달림을 받는 오스카를 구하고, 요양하는 노인들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등 샘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다. 보통의 학생들과 다른 마음과 다른 가치관을 지닌, 그래서 외롭고 쓸쓸한 선량한 학생으로 보일 수도 있다. 드라마는 샘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통해 사이코패스는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겉모습에 속지 말라고 경고하려는 것일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한, 샘이 사람을 죽이게 되는 일은 상황이 연출한 우연일까? 아니면 그의 운명에 낙인된 필연일까? 설령 그에 대한 해답이 드라마에 있다고 해도 그 답은 보는 사람의 경험과 가치관에 속박 당하는 편견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 안 봐도 뻔하다. 세상의 이치가 어디 그렇게 쉽게 드러나는가? 모든 일이 쉽지 않다.

사실 사이코패스들의 유창한 말발, 특출난 매력,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정함, 그리고 남을 교묘히 조종하는 능력과 자기 확신을 떠올리면 그들이 성공한 기업인 중에 높은 비율로 섞여 있다는 점이 그리 이상할 것 없다. 그들이 ─ 강간처럼 ─ 자연 선택에서 도태되지 않은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된다면, 그들에게 적합한 사회적 위치나 삶의 목적과 동기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이코패스가 사람을 죽이는 이유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사람을 죽이지 않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보면, 그들과 우리의 뇌 구조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조금은 줄일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다르게 판단하는 일종의 아종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러한 특별한 능력이 우리에게 주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점 때문에 자연 선택에서 도태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사이코패스 범죄자야말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격언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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