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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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기담 2, 오지 않는 아이 | 교생은 용감했다?

학교기담 2편 | 오지 않는 아이 | 교생은 용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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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는 아이(A Child Who Would Not Come, 2020) | 교생은 용감했다?

학교기담 2편 | 오지 않는 아이 | 교생은 용감했다?

학생들을 바른길로 지도해야 한다는 의욕으로 충만한 교생 수아의 자비로운 레이더망에 걸린 첫 목표는 부영석이었다. 출석 점검할 때조차 이름을 건너뛸 정도로 오랜 시간 학교에 오지 않았던 영석에게 연락은커녕 가시 돋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담임의 쌀쌀맞은 태도가 못마땅하게 여겨졌던 수아는 혼자 영석의 집을 방문한다.

방문한 시간은 대낮이었지만, 귀신 두세 명이 마중 나와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 절간인지 무당집인지 종잡을 수 없는 흉가 같은 집에 영석은 혼자 갇혀 있었다. 외롭게 지내는 영석에게서 자신의 쓰라렸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된 수아는 울컥하는 동정심에서인지, 아니면 스승의 도리를 다하려는 책임감에서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심경으로 영석이 학교에 나오기를 진심으로 설득하기에 이른다. 수아의 진심이 영석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일까? 아무튼, 영석은 담임과 반 아이들의 탐탁지 않은 시선 속에서 다시금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학교기담 2편 | 오지 않는 아이 | 교생은 용감했다?

영석이 등교함으로써 한시름 놓을 줄 알았던 수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임을 깨닫는다. 학생들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일은 둘째치고 영석은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스토킹하듯 집요하게 수아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느끼한 노총각 담임 선생의 집요한 작업 공세에도 끄떡없어서 동료 교생으로부터 보살이란 별명을 얻은 수아였지만,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영석의 무서운 관심만큼은 견딜 수가 없었나 보다. 그녀는 강아지처럼 자신을 따라오는 영석에게 발끈 화를 내면서 선을 긋고자 하지만, 이미 영석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오지 않는 아이는 오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수아는 자신이 불러들인 화를 어떻게든 감당하기로 마음먹는다.

학교기담 2편 | 오지 않는 아이 | 교생은 용감했다?

「오지 않는 아이」는 TV 조선의 「학교기담」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로서 1편인 「8년(8 Years)」을 보고 실망한 나머지 2 • 3편은 안 봐도 되겠다고 지레 포기한 사람들에겐 약간은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 면에서 1편보다 낫다.

한때 국민 동생이라 불리었던 영화배우 문근영을 떠올리게 하는 푸근한 외모의 배우 김소혜(교생 역)의 빨려 들어갈 듯한 진득한 연기는 당연코 훌륭했고, 담임의 ─ 얼추 영화배우 김수로를 떠올리게 하는 ─ 능글능글한 연기는 심심한 영화에 단맛을 더해주는 감초나 다름없다. 또한, ─ 1편이 그랬던 것처럼 ─ 임팩트 있는 무서운 영상으로 사람을 놀래주기보다는 한 맺힌 사연으로 시청자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려는 노력이 분명하게 보이는 영화다. 이번에도 그 사연이란 죽은 사람들과 관계된 것이었고, 1편에선 ‘원한’이 귀신과의 인연을 맺어주었다면, 2편에선 ‘외로움’이 귀신을 불러들인다.

학교기담 2편 | 오지 않는 아이 | 교생은 용감했다?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아닌 주변 사람들의 악의적인 냉대와 홀대로 고립된 나머지 외로움이 극에 달해 죽음을 맞이했다면, 이 역시 1편처럼 복수의 칼날을 갈게 만드는 사무치는 원한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들은 누구처럼 누긋하게 8년을 기다리기보다는 동병상련의 교감 때문인지 같은 고통을 겪는 외로운 동지를 찾아 나선다. 이것은 『김영우와 함께하는 전생여행』이란 책에 그 사람을 괴롭히기보다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집착과 애증들이 우주 가운데 있는 그런 기운(귀신)들을 불러모으는 것이라고 설명된 빙의의 개념과 어느 정도 상통한다. 서양의 악마처럼 사람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렷다.

그러고 보니 「학교기담」 시리즈는 빙의를 주제로 삼는 듯하다(3편에서도 원혼은 빙의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려나?). 1편도, 2편도 원혼이 직접 등장하지 않고 빙의를 이용해 대역을 내세운다. 이미 한 번 죽어봄으로써 볼 장 다 본 사람들이 부끄럼이라도 타는 것일까? 귀신을 만나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서양 공포영화에서도 엑소시즘과 단짝으로 등장하는 빙의는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다. 서양 공포영화에서 빙의는 종종 악마가 세상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럴 때 빙의된 사람은 퇴치해야 할 악령 같은 취급을 받는다. 한국 공포영화에서의 빙의는 이승에 미련을 못 버린 영혼들이 이승과의 연결고리를 다시 맺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무당이 굿을 하는 이유도 귀신을 퇴치한다기보다는 (물론 이런 굿도 있지만) 귀신이 이승에 미련을 두게 만든 한을 풀거나 그 억울함을 달래서 가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려는 목적이 강하다. 이것은 죽은 혼백마저 위로할 줄 아는 동정심이 풍부한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학교기담」 시리즈하고는 별 관계가 없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나고 나면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인데? 하는 기시감이 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웬일로 영화를 몰입해 봐서 그런지 영화는 보는 동안만큼은 그런 김 빠지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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