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메이드(The Maid, 2020) | 귀신 놀이 + 슬래셔
아담한 분수대와 널찍한 정원이 딸린 식민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웅장한 저택. 만약 정말로 이 저택이 식민시대의 잔혹한 위엄과 탐욕스러운 권력 아래 지어졌다면, 억울한 죽임을 당한 불행한 영혼 한두 명쯤은 넓은 저택 어딘가에서 배회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그런 저택에서 일하던 한 하녀가 갑자기 일을 그만둔다. 왜냐하면, 그 집엔 귀신이 있으니까 말이다.
빈 하녀 자리는 시골에서만 살다가 오늘 처음으로 도시로 상경한 것 같은 앳되고 순진해 보이는 한 소녀가 대신한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하녀이자 주인의 어린 딸 닛을 돌보게 될 조이는 단지 직업을 얻기 위해 이 저택으로 들어온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조이는 무슨 꿍꿍이로 이 저택에 들어온 것일까? 그녀 앞에서도 정체를 드러내는 귀신을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더 메이드(The Maid, 2020)」는 초자연적인 공포와 ‘슬래셔(slasher)’라는 현실적인 공포가 관객을 사로잡는 독특한 구성의 태국 공포영화다.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키는 다른 공포영화와는 달리 「더 메이드」는 초장부터 막판까지 짬짬이 공포를 제공한다는 점과 공포영화에서만큼은 자주 듣기 어려운 감미로운 배경음악, 그리고 마치 관객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제삼자 시점으로 과거 회상 장면을 묘사한 점은 극적인 재미를 더해준다.
어디 이뿐인가?
감미로운 바이올린 선율을 복수심에 치달은 한 살인마가 벌이는 피와 살인의 향연을 축복하는 죽음의 음악으로 돌변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너무 짧았다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다. 살인마가 칼로 사람을 연달아 쑤실 때마다 나는 써걱거리는 소리가 마치 배경음악에 장단 맞추는 타악기 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영상과 난도질은 잔인하리만치 조화롭다. 이 모든 것은 복수와 광기와 살인의 무아지경에 빠진 살인마의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가 고스란히 관객에게로 전해주는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다.
복수에 쓰러지는 사람 모두 그들에게 살해된 사람처럼 왼쪽 눈에 피눈물을 흘리도록 연출한 것은 마치 타인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자는 똑같이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받게 되리라는 경전 어딘가에 있을법한 죗값에 대한 가르침을 떠올리게 하면서 현대 사회에서는 허용되지 않은 복수의 쾌감을 선물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칼로 사람을 써걱써걱 찌르는 느낌과 그때의 기분은 과연 어떨까?’
하지만, 살인마가 무지막지하게 휘두른 칼에 필름 어딘가 구멍이라도 난 것인지 이야기 진행이 그리 매끄럽지는 않다. 책을 띄엄띄엄 읽는 느낌? 전후 사정을 통해 빈틈을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산만한 느낌마저 깔끔하게 지우기는 어렵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원숭이 귀신은 그것으로 끝이다. 뭔가 중요한 의미나 사연이 숨겨진 것처럼 보였던 원숭이 귀신은 더는 시선을 끌지 않는다(이후 원숭이는 엔딩 크레디트에 주인 부부의 어린 딸 닛이 그린 그림에 등장하면서 가뜩이나 모호한 의미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감독이 원숭이에게 부여한 임무를 파헤치기는 쉽지 않다). 복수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중요한 찰나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불이 이야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귀신 영화에 슬래셔를 접목하려는 발상 자체는 훌륭했지만, '귀신'에서 '슬래셔'로의 장면 전환이 우발적이라고 느낄 만큼 부드럽지 못하다. 조이 역을 맡은 Ploy Sornarin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제외하면 등장인물들에서 이렇다 할 개성을 느끼기는 어렵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더 메이드(The Maid, 2020)」는 순간적으로 호흡을 멈추게 했던 강렬했던 슬래셔 장면과 적절하게 안배된 초자연적인 공포, 그리고 플로이 소나린(Ploy Sornarin)의 광기 서린 연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그냥 미친 듯이 사람을 마구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름 사연이 있는 공포영화라는 점에서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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