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산대형(剑花烟雨江南, 1977) | 아니, 왕릉 위에서 뭔 짓들이야!
<아버지 환갑잔치에 온 손님들을 내쫓는 소봉> |
지금까지 발견한 성룡 영화 중 가장 오래된 영화라서 안 볼 수가 없었으나 풋고추처럼 앳되고 싱싱한 성룡의 모습을 무덤에 들어가기 전에, 혹은 불에 태워지기 전에 꼭 한 번쯤 봐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사람이 아니라면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떨떠름한 추천사와는 달리 마음을 비우고 보면 의외로 볼거리와 재미가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참고로 영화는 김용에 좀 못 미치는 무협소설 작가 고룡(古龙)의 소설 중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듯한 검화연우강남(剑花烟雨江南)을 각색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생뚱맞은 한국어 제목이나 괜스레 심오하기만 한 원제나 영화 분위기나 이야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못한다. 혹시 원작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임신한 애인을 무정하게 버리는 소봉> |
<소봉이 후레자식이 된 이유는 바로 이 꽃님들 때문> |
자신의 아이를 밴 여자를 ‘노리갯감에 지나지 않아’라는 되먹지 못한 말로 무정하게 차버리고, 아버지의 환갑잔치에 온 손님을 거지 취급하며 내쫓는 등 성룡(소봉 역)은 영화 초반부터 후안무치한 후레자식으로 등장하면서 장난기는 좀 심할망정 심성은 괜찮은 사람 역할을 맡아왔던 성룡에 익숙한 시청자의 눈을 휘둥그레 만든다.
순간 악당 역을 맡은 성룡을 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부모를 죽인 원수를 놓아주는 소봉> |
<소봉에게 몸도 맘도 줬지만 끝내 버림받은 그녀는 당연히 울상이다> |
하지만, 그것은 성마른 시청자의 섣부른 판단이지 불손한 기대였다. 왜냐하면, 소봉이 누가 봐도 손가락질할 만한 비열한 짓을 한 것엔 누구나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그렇다 치고,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정말 묘하다 못해 수수께끼 같이 느껴진다. 소봉은 부모가 죽임을 당했음에도 장례도 안 치르고 복수하기도 싫을 뿐만 아니라 부모를 죽인 원수와 동침한다(원수 역을 맡은 쉬펑徐枫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면 소봉과 같은 남자로서 이 ‘동침’ 자체를 나무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도대체 이 후레자식 아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돈 그 자체며 마지막엔 약간의 반전도 준비되어 있다.
<소봉은 무엇을 위해 수련하는가?> |
<왕릉 위에서 쌈질하려고? |
1970년대엔 한국-홍콩 간 합작영화가 꽤 유행을 끌었던 시기였고, 「신당산대형(剑花烟雨江南)」도 그렇게 제작된 영화다. 처음엔 몰랐지만,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나무, 잔디, 가옥 등 눈에 익숙한 자연 경치 속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무술 장면을 보게 되면 일종의 깨달음처럼 떠오를 것이다. 이곳이 어느 왕릉 중 한 곳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그들은 무례하게도 세계문화유산(물론 영화를 촬영할 당시에는 아니었겠지만)으로 지정된 장소에서, 그리고 보는 이로 하여금 조선의 왕이 자다가 벌떡 일어나 층간소음을 하소연하는 망측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심란한 걱정이 들게 할 정도로 왕릉 위를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며 쌈질을 한 것이다. 그것도 한 여자를 두고 벌어지는 시시껄렁한 치정 싸움을 말이다. 그런 천벌을 받을 짓을 했음에도 그들은 천수를 누리고 있으니 ‘왕릉의 저주’ 같은 것은 없는 것으로 증명된 셈이다. 아니면, 조선의 왕이 그토록 관대했던가?
내 리뷰는 시시껄렁하다지만, 이 리뷰의 대상이 된 「신당산대형(剑花烟雨江南)」마저도 그렇게 처참할 정도로 시시껄렁한 영화는 아니다. 요즘의 똥폼과 CG로 떡칠한 화려한 액션에 적응한 안구로서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될 고전 액션에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줄거리는 그 벌어진 입에 파리가 무단침입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혼잡스럽다. 하지만, 요즘 액션 영화에선 보기 드문 브레이크 댄스 같기도 하고 군기 잡힌 이병들의 제식훈련 같기도 한 무술, 성룡의 청순한 외모, 이제 더는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왕릉을 짓밟으면서 벌어지는 불경한 싸움 등은 나름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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