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레플리카 | 모리 히로시 | 이번만은 이유 불문하고 이야기에만 빠져들어라!
‘미스터리’가 아니라 ‘이야기’를 즐겨라?
작품해설에서 작사가 모리 히로미라는 사람은 일본 독자들은 이야기를 즐기려는 자세로 미스터리와 마주하는 게 아니라 정답을 알아맞혀 주겠노라는 자세로 임한다고 지적한다. 유독 추리소설을 펼쳐 들 때만 신들린 것처럼 발휘되는 집요한 승부 근성은 비단 일본 독자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지난날의 리뷰에서 추리소설의 묘미는 수수께끼에 있고, 수수께끼는 막힌 코 풀 듯이 개운하게 풀어내야 제맛이며 아무도 풀려고 하지 않는 수수께끼는 아무 의미 없다는 뜻의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추리소설일지라도 이 세상 모든 소설처럼 ‘이야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제아무리 세상을 뒤집어엎는 ‘미스터리’일지라도 ─ 소설을 이루는 골격이자 근간이라 할 수 있는 ─ ‘이야기’를 통하지 않고는 포부를 펼칠 수 없다는 점에서 모리 히로미의 일침은 일리가 있다.
독자에게 ‘제대로 된 밀실 트릭’이라는 임팩트를 강하게 심어준 모리 히로시(森博嗣)의 『모든 것이 F가 된다(すべてがFになる)』는 그 강렬한 임팩트 때문에 한 가지 고정관념을 심어놓았다. 그것은 S & M(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를 읽는 재미를 작가가 준비한 트릭을 간파하는, 즉 작가와의 두뇌 대결로 못 박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지금까지 그런 기대감으로 모리 히로시의 S & M 시리즈를 읽어왔고, 그런 식의 읽기를 거듭 추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름의 레플리카(夏のレプリカ)』는 모리 히로미의 지적을 일부러 언급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지금까지의 S & M 시리즈와는 조금은 다르다. 이번에도 어떤 번득이는 트릭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오른 채 작가와의 멋진 승부에 올인(all in)할 생각이라면 어떻게든 말리고 싶다.
<이번만은 이유 불문하고 이야기에만 빠져들어라!> |
전편보다 뛰어난 속편은 없다?
사실 『모든 것이 F가 된다』 이후의 S & M 시리즈들이 트릭 구성이나 트릭의 기발함에서만큼은 약간은 내리막길을 걸어왔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았다. 그만큼 『모든 것이 F가 된다』가 엄청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작가로서는 첫 편의 예상 밖의 인기가 썩 달갑지만은 않다. 나는 이 작품 하나로 내 일생의 모든 창작 활동의 마침표를 찍겠다는 ‘올인형’ 작가가 아니라면 첫 편의 인기가 높을수록 다음 작품 구상에 대한 부담도 크다. 독자가 봤을 때 속 편이 첫 편에 미치지 못한다면 전문 비평가들이 평작 이상이라고 작품성을 인정했다고 해도 그런 것은 변명거리조차 안 되는 것이 가혹한 현실이다.
독자 처지에서는 처음 만난 모리 히로시의 작품에서 엄청난 임팩트를 받았으니,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에서 최소한 첫 작품(여기서는 『모든 것이 F가 된다』) 수준 정도의 기대를 당연히 품게 된다. 참고로 영화 부문에서는 ‘전편보다 뛰어난 속편’이라는 목록이 따로 작성될 정도로 속편은 첫 편만 한 인기를 끌지 못한다는 것이 하나의 징크스로 자리 잡았다. 그 정도로 인기를 얻은 작품의 속편은 지나친 관심의 집중포화 속에서 살아남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무수한 영화들이 관객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검열관 앞에 속절없는 심판을 받아왔지만, ‘전편보다 뛰어난 속편’이라는 뭔가 억지스러운 명예를 부여받은 영화는 ‘스타워즈’, ‘터미네이터’, ‘반지의 제왕’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
소리 없는 환호와 짜릿한 전율이 일으키는 벅찬 감격을 미처 가라앉히지 못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마지막 책장을 덮은 나 역시 이후 읽은 S & M 시리즈들의 평가 기준선은 당연히 『모든 것이 F가 된다』가 될 수밖에 없는 옹졸하고 편협한 독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 읽은 S & M 시리즈는 전편보다 뛰어난 속편이었을까?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S & M 시리즈를 개별적으로만 따져보면 나 같은 놈에게 트릭 구성이 내리막길을 걸어왔다는 등의 같잖은 비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을 정도로 각각의 작품들은 평작 이상의 수준은 된다. 그것은 속편들도 아주 즐겁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추리소설이라는 말이다.
『여름의 레플리카』, S & M 시리즈의 외전?
이런 점, 다시 말해 이전 시리즈들보다 트릭의 기발함이나 완성도 면에서 확실히 부족해 보이는 『여름의 레플리카』를 약간은 두둔하고, 또 약간은 (나처럼) 너무 편협한 읽기만을 고수하는 추리소설 애독자들에게 충고의 뜻으로서 작품 해설자는 ‘일본 독자들은 이야기 자체를 즐기려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뉘앙스의 말을 언급했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의 레플리카』는 서술 트릭으로 구성된 만큼 독자가 이야기에 빠지면 빠질수록 작가는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즉, 독자가 맹목적으로 이야기에 홀리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애써 서술 트릭을 준비한 의도이자 서술 트릭의 가장 큰 함정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건 숲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처럼 전체를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서술 트릭은 정답을 알아맞혀 주겠노라는 자세로 임한 독자보다 이야기를 즐기려는 자세로 임한 독자에게 더 큰 반전의 매력과 감흥을 줄 수 있다. 반면에 오로지 사무라이 같은 승부 근성으로 뛰어든 독자는 뭔가 속았다는 낭패감 때문에 할복하고 싶은 착잡한 심정에 휩싸일 수 있다.
어쩌면 『여름의 레플리카』는 그동안 작가와의 힘에 겨운 두뇌 싸움으로 조금은 지친, 혹은 풀이 죽을 대로 죽은 독자의 뇌와 또 그런 두뇌 싸움이 벌어지는 무대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연출해 온 작가가 기분전환 같은 시간을 갖는 S & M 시리즈의 외전 격인지도 모르겠다. 『여름의 레플리카』에서 일어난 사건은 바로 전편인 『환혹의 죽음과 용도(幻惑の死と使途)』의 마술사 사건과 거의 동시에 진행될 뿐만 아니라 사건이 풍기는 수수께끼의 향기나 색깔도 마술사 사건과 비교하면 은은하고 흐릿하다. 당연히 사이카와와 모에의 관심은 이상야릇한 수수께끼로 가득한 마술사 사건에 집중되어 있고, 『여름의 레플리카』에서는 이 두 사람을 대신하여 모에의 절친인 도모에가 주연 격으로 급부상하고 모에도 실력을 인정한 니시하타 형사가 조연으로 등장하여 뭔가 아쉬운 활약을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밥을 태연하게 먹는 그녀는??> |
도모에, 당신은 누구입니까?
체스판 없이 체스를, 그것도 모에를 한 번도 이기지는 못했지만, 모에와 당당하게 실력을 겨룰 정도로 그 누구 못지않은 뛰어난 두뇌를 가진 도모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건은 설명되고, 이에 조미료처럼 등장한 니시하타 형사가 사건의 의문점을 캐고 든다. 도모에가 마님이라면, 니시하타 형사는 마당쇠인 셈이다. 모에가 마술사 사건에 실컷 한눈을 팔다가 이야기 막바지에나 등장하는 만큼 차라리 니시하타 형사의 활약상을 좀 더 부각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로 니시하타는 ─ 조연이라고 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 나름 예리한 안목을 갖춘 괜찮은 형사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만의 예리함은 혼잣말 속에 묻히기 일쑤다(그래서 조연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에처럼 불행의 상처를 안고 사는 도모에는 평소엔 망각과 심연의 경계 지역에서 머무는 정신적인 방어에 치중하면서 일상을 평범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녀는 사건에 휘말리는 평범하지 않은 경험이 뜻하지 않은 각성을 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하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생사가 걸린 인질극에 휘말리면서 내면 깊숙한 곳 어딘가에 침잠해있던 도발적인 모습이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도모에는 총알을 뿜는 총구 앞에서도 태연스럽게 밥을 먹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죽여도 좋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갑작스럽게 돌변한 자신이 무섭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변했다기보다는 평소에는 그런 상황(자신의 머리에 총구가 겨눠지는 상황은 결코 흔한 상황은 아니다!)과 마주할 일이 없었기에 그런 모습이 드러날 기회가 없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위기 앞에 (요즘 같은 현실에선 돈 앞에)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직장에서만 유난히 친절한 우리 모습은 가면으로 한 꺼풀 이상 덧씌운 가식이라 칭해도 딱히 불만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한 방에 머리를 수박 쪼개듯 날려버릴 수 있는 총구 앞에서도 초연한 모습을 보인 도모에는 누구인가? 그녀의 진짜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또한, 도모에의 그런 초연함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번만은 도모에가 이야기의 중심이니만큼 이러한 그녀의 심리 기제나 내면의 목소리를 좀 더 잘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독자가 결국엔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왜 형제나 자매는 다를까?
이러나저러나 따분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잠깐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 주변의 누군가를 참고할 수는 있어도 작가의 지성과 감성의 통제력을 받는 창작 활동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 순전히 작가의 창조물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소설 속 등장인물의 성격이 패턴을 따르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 패턴이란 다름 아닌 프랭크 설로웨이(Frank J. Sulloway)의 ‘형제 전략 이론’이다. 형제 전략 이론은 다윈주의 관점에서 볼 때 성격은 개인이 유년기를 보내면서 형제간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개발하는 전략 같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막내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첫째와 차별화로써 생존을 도모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형제간은 그 누구보다 성격이나 지향하는 가치관에서 차이가 난다. 지인 중에 두 사람만으로 구성된 형제가 있다면 형제 전력 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것이 순전히 허구의 결과물인 소설 속 등장인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여름의 레플리카』 같은 경우는 언니 사나에와 동생 도모에가 형제 전략 이론의 아주 모범적인 예시라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의 성격 차이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런 성격 구성은 사람의 보편적인 기질을 꿰뚫는 작가의 본능일까, 아니면 진화심리학적인 통찰에서 나온 의도된 연출일까? 그곳도 아니면 그저 우연의 산물일까? 정말이지 모리 히로시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에게 묻고 싶다.
함정은 빠지라고 있는 것
범인을 유추해낼 수 있는 물증은 희박하며 모에 역시 과학적인 추리보다는 육감에 의존하여 실마리를 풀어낸다. 사건을 설명하는 가설은 여러 가지가 존재할 수 있다. 가설들이 사건을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래왔듯이 정답은 수학 문제처럼 하나이고, 그 나머지 가설들은 어김없이 함정이다. 크게 다치지만 않는다면 함정에 빠지는 재미도 나름 나쁘지 않다. 다만, 그것은 함정에 빠졌던 것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해법이 기발하고 참신했을 때의 이야기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독자는 함정에 빠진 몫까지 합쳐 크나큰 실망을 느껴야 하기에 낭패가 따로 없다.
추리소설을 읽어가면서 미스터리보다는 이야기에 집중하라고 요구하라는 것은 어찌 보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야 할 만큼 추리소설로서의 『여름의 레플리카』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작품일까? 이미 한 번 읽어본 나로서도 그것은 쉽게 결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좀 더 세밀하게 설명하면 범인의 정체가 드러날 때까진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작가의 의도에 완벽하게 속아 넘어간 나로서는 그 사람이 범인인지는 짐작조차 못 했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오랜만에 맛본 대단한 ‘서술 트릭’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만큼 이야기 속으로 흠뻑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끝으로 앞에서 이미 ‘서술 트릭’이라고 말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이미 결정적인 힌트를 준 나로서는 참으로 망설여진다. ‘스포일러’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나의 원칙을 깨고 이 리뷰를 게시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름의 레플리카』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소설이라고 여기고 읽어나가도 훌륭한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이야기다. 오히려 이번만은 추리소설이라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읽는 것이 작가가 준비한 잭폿을 최대한으로 만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될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이런 부연 설명이 나의 완전한 패배와 이번 작품에 대한 다소간의 실망감을 애써 덮어보려는 괜한 수작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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