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탐정 이상 2 | 김재희 | 1권에 대한 불만에도 2권을 선택한 이유
1권에 대한 불만에도 2권을 선택한 변변치 않은 이유
「경성 탐정 이상 1」 리뷰에서 그렇게 혹평해놓고도 2권에 손을 댔다. 아직도 진통제로만 다스릴 수 있는 낙상으로 인한 다리 통증 때문에 분별력을 잃은 것일까? 약 기운이 가실 때마다 어둠처럼 날 엄습하는 통증이 맑은 냇물 같은 나의 판단력을 미꾸라지처럼 흐리게 만든 것일까? 낙상 직후 며칠 동안은 극심한 통증 때문에 자포자기에 빠진 것처럼 이제 독서도 될 대로 되라는 식이 된 것일까?
아니다. 이건 모두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책을 읽고 싶겠다는 의지가 발동될 정도의 정신 상태라면, 그리고 그동안 읽은 무수한 책을 봐서라도 아무런 맛도 아무런 멋도 없는, 그래서 일견으론 무미건조하다고 생각되는 책을 마냥 선택할 리는 없다.
1권에 대한 혹평은 때가 좋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처음으로 겪는 낙상 후유증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그때의 내 정신 상태는 온전치 않았다. 이대로 다리 병신으로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과 불안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때였다. 한마디로 우울했다. 타인이 보기엔 (특히 119구급대원이 보기엔) 여기저기서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별거 아닌 사고였겠지만, 사람은 통증의 늪에 한 번 빠지면, 평소보다 더 자기중심적이 되어 세계 제3차대전이 일어나더라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우리는 그토록 이기적인 동물이지만, 세상 무엇보다 자신의 몸뚱어리만을 아끼는 보신 본능은 생존에는 유리했을 것이다.
그런 좋지 않은 때에 ─ ‘최소한 이 정도 이상의 책을 읽어야겠다.’ 하는 내 독서 지침을 기준으로 ─ 마지노선 이하의 책을 만났으니 좋게 넘어갈 리가 없다. 1권 리뷰엔 마치 100% 나의 부주의로 일어난 낙상이 ─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리고 보는 우리의 악습처럼 ─ 100% 「경성 탐정 이상 1」 때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분풀이한 치사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2권을 선택한 것은 아직 지팡이 없인 한두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그래서 온갖 귀차니즘에 시달리던 나에게 딱히 다른 책을 찾아보고 선택할 마음의 여유가 아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1권 리뷰에서도 말했듯, 이미 대출한 책을 선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당했다.
<경성역 DDT 스프레이 (English: US military(Tenth United States Army) Photograph日本語: アメリカ陸軍第10軍の写真,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
다소 긴 여행길에 오를 때, 주머니에 넣을만한 책
1권과는 달리 2권은 제법 읽을만했다. 그새 익숙해진 것일까? 즉, 나의 독서력이 하향 평준화된 것일까? 그런 신속한 적응의 이유를 제외하고서라도 2권이 1권보다 낫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호의적인 평가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나의 다리 통증이 호전되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 정도면 장거리 여행길에 오를 사람들이 터미널 매점에서 시간 보내기용으로 선택하는 잡지나 소설로서는 나름 괜찮은 책이 될 것 같다. 超단순한 문장, 超고속 전개, 독자의 뇌세포를 자극하지 않는 超편안한 이야기 등 기대, 희망, 불안, 걱정, 흥분 등 복잡한 심경으로 오르는 장거리 여행자이니만큼 생각이 많은 책보다는 생각이 없는 책이 그들의 예민해진 신경이나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독서를 업으로 삼는 학자가 아닌 만큼 때론 가볍고 단순한 책으로 정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희한하게도 막상 「경성 탐정 이상 2」를 읽을라치면 마치 철학책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바위 같은 졸음이 우박처럼 쏟아진다는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이상한 경험이다. 아마도, 아마도 내 생각엔 철학책 같은 나의 독서력을 뛰어넘는 난해한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내 독서력 밑을 맴도는 책을 읽는 것도 고역으로 여겨진다. 평균적인 지적 수준을 갖춘 성인이 초등학생 교과서나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춘 동화책을 졸음과의 사투 없이 완독할 수 있을까?
‘경성’이란 특수한 시대 배경이 자아내는 비애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며 혹평하는 나를 발견하며 김재희의 책은 역시 내 입맛에는 안 맞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내 사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삼화 경성구락부의 크리스마스」만큼은 단 한 방울의 졸음도 내비칠 틈 없이 단번에 내리읽을 정도로 2권 중에서 단연코 최고였다. 외국인 전용 클럽에서 벌어진 오인과 우연에서 비롯된 살인 사건엔 인간사를 비통하게 꿰뚫는 우주처럼 어둡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리석음 충분히 짐작게 하는 실마리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 우리는 언제까지 질투와 이기심에 사로잡힌 비극의 연줄을 이어갈 셈인가?
사실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는 시인 이상이 독자 몰래 혼자 수사해 놓고는 막판에 여봐란듯이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간만에 머리 좀 굴려보려는 독자의 추리에 김을 빼버리는, 즉 추리가 (거의) 없는 추리소설이다. 아마 나처럼 일본 유명 추리소설 작가의 독자와의 정정당당한 대결에 기반한 치밀한 본격 추리를 기대하면서 룰루랄라 김재희의 책을 선택한 사람은 많이도 아쉬울 것이다.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는 ‘추리’보단 ‘범죄’를 중심으로, 여기에 ‘경성’이란 특수한 시대 배경을 양념으로 곁들인다면 그럭저럭 읽을만하다. 암울한 역사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힘겨운 의지를 분출해야만 했던 경성 사람들의 발악과도 같은 신산한 일상이 단속적으로나마 드러나 있다. 특히 외국인의 화려한 삶을 죽음으로 조롱하려는 듯 내보란 듯이 경성 시내에 버려져 있는 객사한 시체에는 슬픔 이상의 비애가 망나니가 휘두르는 칼날처럼 서슬 퍼렇게 서려 있다. 우마차와 자동차가 공존하는 거리 표정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전근대에서 근대로 막 넘어서려는 교차 지점에 있던 경성 시대는 단순히 과거라고 해서 낭만만 부르짖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문물을 대표하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어쭙잖은 활기 속엔 개화의 상징인 희뿌연 가스등 아래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동족의 죽음을 외면케 하는, 그리고 나라 잃은 좌절감과 주권 없는 무기력함조차 망각시키는 허영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 허영이라는 가면이야말로 외국인의 냉대와 일본인의 차별이라는 숙명 같은 굴욕을 감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처세술 이상의 생존법이었을지도 모른다.
<1920년대 청량 우편소(영화 「근로의 끝에는 가난이 없다」) 중에서> |
명탐정 콤비, 이상과 구보
솔직히 말해 문장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인물들 행동 사이에 허점이 많아 산만하게 읽힌다. 그런 만큼 집중하기 어렵고 (그래서 졸음이 오는지도) 소설을 읽는 재미도 반감된다. 모두가 ‘현대’를 이야기할 때 ‘경성’이라는 다소 엉뚱한 시대를 허구 속으로 불러들인 것은 개인적으론 무척 호감이 가는 발상이었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에도 시대’에 푹 빠져들었던 것 같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향수하게 만드는 그런 마법은 부족하다. 그렇더라도 기이한 작품에 기이한 행적으로 미스터리한 삶을 살았던 작가 이상을 미스터리한 사건을 푸는 탐정으로 둔갑시켜 앞만 보고 내달리는 우리의 관심을 멱살 잡아 업어치기 하듯 과거로 급선회시키는 신선한 맛은 있다. 소심하고 어수룩한 구보의 풋풋한 인정과 千慮一得(천려일득)처럼 문득문득 발휘되는 수줍은 기지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범상한 우리를 보는 것 같아 정겹고 구성지다.
끝으로 경성 시대를 배경으로 한 진짜 경성 사람이 쓴 추리소설을 읽고 싶다면 단연코 김내성의 『마인(魔人)』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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