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잠 | 가노 료이치 | 난개발의 종착역 폐허, 그리고 그 속에 버려진 시체
공항만이 아니었다. 도로 정비부터 시작해 지방 자치 단체나 관공서 등에서 만든 뒤 금방 폐쇄한 유원지 같은 시설도 그랬다. 항상 제일 우선시되는 건 관계자들에게 얼마만큼의 돈이 떨어질 것인가 하는 문제였고, 이용자의 존재 여부는 마지막에 가서야 고려되는 법이었다. (p46)
사진으로나마 그 희미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폐허
여타 추리소설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비장함으로 홀딱 반하게 만든 『환상의 여자(幻の女)』,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이 일반인과 다를 수밖에 없는 살인청부업자의 냉정한 시선으로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도출해 내려는 의지를 보여줬던 『제물의 야회(贄の夜会)』, 그리고 세 번째로 읽은 가노 료이치(香納諒一)의 소설 『창백한 잠(蒼ざめた眠り)』은 이루어질 듯 이루어질 듯하다가 허망하게 끝나버린 사랑의 씁쓸한 뒷맛과 사진 촬영 중 우연히 발견한 시체로부터 샘 솟듯 솟아나는 미스터리로 독자를 굴비 엮듯 엮어버린다. 앞의 두 소설보다는 크게 한 방 터트리는 강렬한 맛은 부족해 보이지만, 하드보일드 스타일 특유의 침착하고 냉정한 텍스트는 한 남자가 여인의 찰랑거리는 긴 머리에서 은은하게 일어나는 샴푸 향기에 취하듯 독자를 조금씩 조금씩 책 속으로 유혹하고,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미궁에 빠졌던 한 여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미스터리를 조심조심 실타래를 풀 듯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끈끈한 추리는 역시 가노 료이치다웠다.
특히 거품 경제의 상징이자 난개발의 상징이기도 한 폐허만을 찾아다니며 사진에 담는 주인공 다쓰미 쇼이치의 카메라 철학은 사람의 손길과 관심이 뚝 끊긴 채 남겨진 폐허에서 사람의 탐욕과 이기심, 사치와 낭비, 그리고 그것들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정도로 가차 없는 매정함을 발견한다. 사람의 필요로 산을 깎고 숲을 밀어 지어진 건물들이 언제까지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는 없을 터, 그렇지만 필요가 없어진 건물을 허물고 환경을 원래대로 복구했다는 소식은 아직 한국에서는 들어본 적도, 목격한 적도 없다(혹시 당신은 그런 흐뭇한 광경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우리 동네처럼 아직도 산허리를 미친 듯이 깎아내리고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처럼) 여전히 난개발을 감행할 수 있을 정도로 깎일 숲과 산이 남아있어서 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과거 일본처럼 부동산 거품이 완전히 꺼지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때가 온다면 한국에서도 유례가 없는 폐허 속에서 다쓰미 쇼이치 같은 폐허 전문 사진작가들의 활동이 왕성해지리라.
폐허, 문명의 쓰레기에서 예술로...
동이 틀 무렵의 창백하고 푸른 여린 햇살을 창백한 실루엣으로 소화해내는 폐허가 남긴 음울하고 쓸쓸한 인상은 문명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은 폐허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우리 중 누군가가 저지른 것이 분명한 무분별한 탐욕과 낭비와 과잉의 죽음과도 같은 결과인 폐허를 보고 깨우침의 시간을 가질까? 아니면 우리를 불쾌하고 불편하게 하는 여럿 ‘불편한 진실’들을 대하는 것처럼 철저하게 무시하고 외면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폐허를 만든 사람들은 죽으면 그만이지만, 그들이 남긴 폐허는 오래도록 남아 그 누구도 알고 싶지 않은 그들이 일으킨 보잘것없는 흥망성쇠의 역사를 끝끝내 대변하리라는 것이다.
자신의 철학을 드러낼 수 있는 사진 한 장을 위해 죽음도 불사를 수 있다는 다쓰미 쇼이치의 비장한 각오처럼 사람 역시 재물을 위해 기꺼이 온몸을 불사르지만, 그 뒷감당은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언제나 우리의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무분별한 탐욕의 상징이자 문명의 쓰레기이기도 한 폐허가 사람의 손길에서 해방됨으로써 예술의 대상으로 승화될 수 있음은 기가 막힌 아이러니다.
<이런 곳에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 것일지도...> |
역시 사랑은 씁쓸해야 제맛
가족과 좋은 인연을 가지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남긴 트라우마 때문에 좀처럼 진짜 사랑을 이루기 어려웠던 다쓰미 쇼이치가 걸어온 쓸쓸한 인생의 행로가 그를 폐허로 이끈 것일까? 아무튼, 이제 막 트라우마를 극복할 듯했던 그는 폐허를 촬영하다 뜻밖에 마주친 살인 사건에 말려들게 되면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여자와 가족적인 미래를 설계하려는 꿈도 산산이 조각나게 된다. 앞서 읽은 두 소설에서도 그랬지만, 역시 남녀 문제에서만큼은 확실하게 선을 긋는 가노 료이치 다운 비정한 결말이다. 다쓰미 쇼이치와 후지코의 외줄 타기 같은 아슬아슬한 관계는 ─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 사랑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독자라면 ‘사랑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해피엔딩이라는 기대를 하게 하지만, 가노 료이치는 그런 기대감을 독자의 가슴 속으로 밀물처럼 은근슬쩍 밀어 넣다가 보란 듯이 썰물처럼 쓸어가 버리는 냉정한 필력의 소유자다. 누군간 안타깝고 무정한 결말이라고 힐난할 수도 있지만, 이런 비감한 여운은 그만의 작품이 가진 멋이라면 멋이리라.
창백한 잠, 창백한 필치, 창백한 결말...
끝으로 『창백한 잠』은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와 그 텍스트가 발산하는 냉정하다 못해 때론 몰인정하게 느껴지기지 하는 창백한 필치는 (지난 두 작품에 비하면 다소 부드러워진 면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쓸쓸하게 퇴색해 가는 나의 회색 뇌세포에게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정수는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다시금 일깨워주는 것 같다. 유쾌하고 생기가 넘치는, 그래서 읽는 독자의 기분을 마냥 즐겁게 해주는 텍스트는 아니지만, 마치 인생을 달관한 것처럼 관조하는 듯한 담담함에 약간의 염세적인 기운이 더해져 기승전결에 상관없이 독자의 마음을 시종일관 차분하다 가라앉혀주는 멋이 은근히 매력적이다.
추리소설의 본분이라 할 수 있는 미스터리 또한 과히 나쁘지 않으며, 그 미스터리를 한올 한올씩 풀어가면서 드러나는 난개발의 현주소, 즉 개발이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각종 이권 단체들의 이전투구와 그것의 처참한 말로라 할 수 있는 폐허가 불편하게 공존하는 마을을 소설의 배경으로 내세운 것은 사회적 미스터리의 명맥을 유지하려는 가노 료이치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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