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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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의 비극을 넘어 | 디자인 원리의 꿈

Governing the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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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의 비극을 넘어 | 엘리너 오스트롬 | 디자인 원리가 꿈꾸는 또 다른 미래

필자 주장의 핵심은 공유재의 딜레마라는 함정에 갇혀 자신들의 자원을 파괴해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함정에서 성공적으로 빠져나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p53)

인간의 문제 해결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공유재의 비극’

인간의 문제 해결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공유재의 비극’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공유지(공유재)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란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 개념을 1968년 사이언스지 논문에 발표해 주목을 받았던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은 ‘공유지의 비극’을 쉽게 설명하고자 ‘모두에게 열려 있는’ 목초지를 예로 들었다. 이 예에서는 목동들의 과잉 방목이 목초지의 황폐화를 불러와 결국 그들 모두가 파국적인 결말로 치닫게 된다고 예측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과잉 방목할까? 목동 각자는 목초지에 풀어놓은 자신의 가축들로부터 직접적인 이익을 얻지만, 과잉 방목으로 말미암은 손실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그 손실에 대한 부담도 그 일부만 짊어진다. 한 사람의 목동에게는 최선의 수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개인적 선택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비합리적인 결말에 이르게 된다는 역설을 개념화한 것이 바로 ‘공유지의 비극’이다 . 하딘의 모델은 흔히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불리는 게임 이론으로 정형화되었고, 여러 사람에게 개별적 복지 추구 대신 집단적 복지를 추구하게 하는 일이 어렵다는 관점은 맨슈어 올슨(Mancur Olson)의 책 『집합 행동의 논리(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1965)에도 개진되어 있다.

이러한 개념을 기반으로 세워진 모델은 복잡한 것을 인위적으로 단순화시킴으로써 특정한 상황에 대해서만 분석과 예측할 수 있고, 불확실하고 복잡한 현실은 반영하지도 예측하지도 못해 실제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자들이 공유 자원 문제의 분석에 이용하고자 했던 개념들에는 인류의 문제 해결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선입관이 작용하고 있다. 하딘의 개념은 인간을 오로지 이기적이고,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학습하지 못하고, 오직 눈앞의 이익만 좇는 정형화된 틀에 묶어 두고 있다. 여기서 인간은 스스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할 능력이 없고, 자발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토착 환경에 적실한 제도를 디자인할 능력도 없다 . 오로지 정부라는 외부의 강력한 개입에 의해서면 공유 자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공유재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어촌, 농촌, 산촌 등에 산재해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학자들이 교육이나 문화 수준이 도시보다 낮다는 이유로 지방 사람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엘리트 의식도 다분히 느껴진다. 자신들의 게임 이론에서 전제한 인간처럼 고지식한 사회과학자들이 공유 자원 문제에서 선호하는 중앙집권적인 해결책은 명료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전지전능한 정부와 인격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완벽한 관리라는,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조건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공유 자원 관리를 위한 ‘디자인 원리’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자신의 책 『공유의 비극을 넘어: 공유 자원 관리를 위한 제도의 진화(Governing the commons)』을 통해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방증한다. 즉, 사회과학자들이 간과한 것처럼 인류의 문제 해결 능력은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 책은 공유 자원을 장기간에 걸쳐 성공적으로 관리한 집단을 제시하고 분석함으로써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제도의 디자인 원리(design principle)를 찾아 나선다 . 어떻게 디자인 원리가 자원 공유자의 행위 동기에 영향을 미쳐 공유 자원 체계 자체와 그 체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제도 모두가 오래 존속될 수 있었는지, 또한 그러한 제도 디자인 원리들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유인을 제공하여 공유 자원의 관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이도록 했는지를 밝힌다. 또한, 실패한 사례들에서 사용된 제도들과 성공한 사례들에서 사용된 제도들을 비교하고 분석함으로써 공유 자원을 활용 • 관리해 나갈 수 있는 개인들의 능력을 신장시키거나 가로막는 내외적 요인들도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오스트롬이 실제 상황에서 작동하는 제도로부터 산출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공유 자원 제도의 디자인 원리 8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명확하게 정의된 경계

2. 사용 및 제공 규칙의 현지 조건과의 부합성

3. 집합적 선택 장치

4. 감시 활동

5. 점증적 제재 조치

6. 갈등 해결 장치

7. 최소한의 자치 조직권 보장

8. 중층의 정합적 사업 단위(nested enterprises)

(『공유의 비극을 넘어』, p175)

공유 자원 사용자들이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례들에서는 앞에 제시된 8가지 디자인 원리 가운데 세 가지 이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오스트롬이 밝혀낸 디자인 원리는 현실적이고 경험적이며, 실제적인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데 매우 적실한 개념이다.

Governing the Commons: The Evolution of Institutions for Collective Action
<빈 땅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

공유 자원 관리의 성공 여부와 외부 개입

보통 사람들은 연안 어장, 지역 산림, 지하수, 목초지, 관개 시설 등의 공유재는 정부 같은 중앙집권적인 기구가 총괄해서 관리해야 자원의 낭비를 막고, 사익이 충돌하여 생기는 분쟁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도 그런 선입관을 가진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오스트롬이 제시한 사례에서 정부의 권위적인 개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캐나다의 뉴펀들랜드에서는 소규모의 현지 어부 집단이 그들 고유의 규칙을 디자인하고 유지해 올 수 있었지만, 중앙 정부 당국이 이들의 공유 자원 제도를 승인하지 않고 거부하는 바람에 ‘공유지의 비극’을 불러오는 결과를 만들었다. 대신 캐나다 정부는 지역 특성을 무시하고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획일적 규제 방안을 강요함으로써 (이전에는 없었던) 문제들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정부나 공공 기관의 개입이 언제나 문제 해결에 방해되는 것만은 아니다. 캘리포니아 남부 지하수 생산자들의 성공적인 사례는 지방 정부나 중앙 정부가 현지 사용자들의 효과적인 제도적 디자인 능력 제고를 돕는 여러 형태의 편의 장치를 마련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한편, 실패 사례에서 성공 사례로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낸 곳도 있었는데 바로 스리랑카의 갈오야(Gal Oya) 프로젝트다. 본래의 사업 계획안은 외부 규칙을 강제로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방침을 변경해 교육을 받은 ‘제도 조직자’를 투입해 농민들 스스로 기술과 문제 해결 능력을 계속 발전시켜 갈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키고, 농민들에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자치 조직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농민들 스스로 이러한 제도가 지속하는 것에 대한 동기를 깨닫게 함으로써 성공적인 사례로 거듭날 수 있었다. 갈오야 프로젝트는 상호 불신과 적개심의 전통이 수세대에 걸쳐 재생산되어 온 경우라 할지라도, 외부 대행자의 도움으로 사용자들이 최적 이하의 결과를 가져오는 완고한 동기 유인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예시하는 소규모의 공공 자원 관리에 있어서 현지 역사나 문화, 기타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정부나 공공 기관 등 외부의 지배적이고 일률적인 개입은 상황을 악화시키지만, 공유 자원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자치 제도를 지원하는 방식의 다층적인 개입은 거꾸로 상황을 개선해나가는 데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

마무리: 공유 자원을 바라보는 두 시선

아리스토텔레스는 최대 다수가 공유하는 것에는 최소한의 배려만이 주어질 뿐이며, 모두 공익을 생각하기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생각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찌감치 인류의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성정에 일침을 가했던 것이다. 사회과학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을 때, 오스트롬은 자신만의 세밀하고 경험적인 연구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공유 자원 관리의 가능성을 열었다 . 그녀는 성공적인 사례들에서 지속가능한 공유 자원 제도의 디자인 원리를 추려내었고, 그럼으로써 인류에게 불확실하고 복잡한 환경에서도 지속가능한 공유 자원 관리가 가능함을 일깨워주었다. 그것은 곧 그동안 공유 자원 관리에 회의적이었던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물한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그녀가 개괄한 디자인 원리가 공유 자원 관리에 있어서 더욱더 많은 성공적인 사례들을 끌어낼 수 있다면 인류의 크나큰 짐 하나를 던 꼴이 될 것이다.

긴 책은 아니지만, 길게 느껴지는 책이 있는데, 바로 이런 학술적인 책들이 그러하다. ‘공유재의 비극’, ‘게임 이론’ 등 말로만 들어왔던 사회과학 용어들이 열심히도 나의 빈약한 뇌세포들을 교란하며 혼란을 부추겼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실제 사례를 이론에 접목시킨 그녀의 연구 방법론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나 같은 무지한 독자에겐 구체적인 실례만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그런 이유로 꽤 긴 리뷰였지만, 대부분 앵무새처럼 저자가 했던 말들의 반복이나 그것들의 짜 맞추기나 다름없다. 오스트롬에게 미안하고, 나의 무지와 몰이해도 부끄럽다.

공유 자원을 대할 때 왜 사람들은 그렇게도 몰상식하고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으로만 사익을 취하려고만 할까? 그것은 서로 간의, 그리고 세대 간의 깊은 단절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공유 자원을 사용하는, 그곳에서 대대손손 살아온 현지인들은 독자적인 제도를 고안해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유재의 비극’을 피하려고 나름의 노력을 다한다. 그들은 과거를 함께했고 미래도 함께할 것으로 기대하기에 사려 깊게 장기적 이익을 고려하는 것이 그들에겐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곧 현지인들에겐 공유 자원이 삶이고 인생 전부이다. 하지만, 외지인은 그 반대다. 그들은 현지인들과 과거를 공유하지도 않고 미래도 공유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불확실하다. 그래서 그들에겐 ‘공유재의 비극’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목동처럼 단기적으로 이익을 최대한 뽑아내는 ‘지배 전략(dominant strategy)’이 합리적이다. 만약 공유 자원이 바닥을 드러내면 처음에 어딘가에서 그곳으로 왔던 것처럼 그렇게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하면 그만이다. 공유 자원을 둘러싼 반목과 갈등이 주로 현지인과 외지인 사이의 다툼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내 생각이 그렇게 부질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지인들의 정착을 방해하는 텃세를 해결하려는 현지인들의 노력과 오랫동안 한곳에 정착해온 현지인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려는 외지인의 노력이 동반된다면, 그들이 공유 자원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일치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끝으로 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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