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클럽 | 매튜 펄 | 보스턴 문인들과 악마와의 한판 대결!
우연 + 인연 + 직감 = 책 선택 공식(?)
사무실을 칙칙하게 가득 채운 중년 남자들 가운데 혼자 뚱하게 앉아 있는 고운 소녀처럼 단조로운 색감으로 일렁이는 도서관 책장 속에서 화려한 디자인이 눈에 띄어 마커스 주삭(Markus Zusak)의 『책도둑(The Book Thief)』을 선택했다면, 매튜 펄(Matthew Pearl)의 『단테 클럽(The Dante Club)』은 몇 세대를 견뎌온 듯한 시체 같은 죽은 색감에 홀려 선택했다.
15년 정도밖에 안 된 책인데도 불구하고 블루라이트 필터를 과하게 먹인 것 같은 누렇게 노쇠한 종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고서를 보는 듯한 고아한 멋이 있는 표지가 인파 가득한 광장에 버려져 있는 주검처럼 묘하게 시선을 잡아챈다. 여기에 ‘역사 추리소설’이라는 단순 • 명확한 소개는 장의사가 송장 곁을, 그리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듯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내가 기어코 간택하게 만든다.
우연이겠지만 재밌게도 『책 도둑』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80여 년 전의 이야기이고, 『단테 클럽』은 이 『책 도둑』으로부터 대략 80여 년 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위에 언급한 두 작가의 이름, 두 작품의 이름 모두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존재임에도 단지 책 디자인 때문에 선택되었으니, 책처럼 ‘내용’을 중요시하는 상품에서조차 ‘디자인’의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는가 보다.
아무튼, 이 두 선택은 매우 훌륭했는데, 이번 경우처럼 때때론 한두 시간을 두고 고심한 끝에 선택한 이성적인 결과물보다 직감에 따른 감정적인 결과물이 더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직감에 따른 선택은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우연과 인연에 직감이 더해지면 그때 기분에 맞는 가장 좋은 책을 선택할 수 있다. 직감이 진화한 것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리라.
문학가 탐정들의 대활약
장르소설은 협곡처럼 협소하다. 독자가 ‘재미’와 ‘스릴’에 전념할 수 있도록, 그렇게 협곡처럼 깊게 파인 재미에 푹 빠질 수 있도록 인류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주제, 아름다움과 본성에 대한 천착, 미려한 문체에 대한 탐닉 등의 문학적인 기교는 과감히 포기한다. 문학적 폭은 마오샹(毛項) 협곡처럼 협소하면서도 그 독특한 멋에 빠져드는 맛이 있는 것이 장르소설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단테 클럽』 역시 장르소설이라는 큰 범주에 속하지만, (장르소설에선 일부러 혹은 능력 미달로) 소홀히 취급하는 아름답고 정교한 묘사, 귀찮은 업무라 할 수 있는 고증, 그리고 종종 작가의 능력이 미치지 못해 구현하지 못한 캐릭터들의 생생한 인격까지 갖춰 놓은 보기 드문 장르소설이다.
만약 19세기 미국 문학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주인공들을 포함해 등장인물 대부분이 실존 인물이라는 점은 꽤 흥미로울 것이다. 작품과 작가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작가가 어떤 인물일지를 상상하는 데 (그 작가가 쓴) 작품이 넉넉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단테 클럽 회원들의 작품들을 두루 탐독한 사람이라면, 김용 독자가 김용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한 드라마를 볼 때 느낄법한 인물 품평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미국 문학에 정통한 한국인이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나 같은 문외한에겐 등장인물들이 실존 인물이건 가상 인물이건 큰 차이는 없다. 다만, 그들의 곡절 깊은 개인사와 (미국 문학사의 황금기라 불리는) 남북전쟁 직후의 보스턴 문학계의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흡수하고 자연스럽고 융합했다는 점, 그럼으로써 그들의 실제 인품이 어떠한가에 상관없이 독창적인 성격 • 사상을 가진 독특한 캐릭터들을 창조해 낸 것은 작위적인 명탐정보다 매력적이다. 여기에 1865년 보스턴 풍경과 사교계 분위기에 관한 정교한 묘사까지 보태지면,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학가들의 덥수룩한 턱수염을 관광하듯 마냥 신기하게 쳐다본 일이 엊그제 기억처럼 생생할 정도로 착각과 공상이 뒤섞인 현실감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고로 독자는 『단테 클럽』이라는 소설을 통해 악마 같은 연쇄살인마를 추격하는 스릴감 이상의 또 다른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근래에 『단테 클럽』과 매우 흡사한 추리소설(실존했던 유명 작가를 탐정으로 내세운)인 김재희의 『경성 탐정 이상』을 읽었었는데, 두 작품 모두 시대 • 역사 • 추리소설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 격의 높고 낮음은 추락사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하다.
보스턴 문인들과 악마와의 한판 대결!
소설 속 ‘단테 클럽’은 현재 미국 단테 협회(the Dante Society of America)의 전신이자 미국의 국민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가 주도해서 결성된 실존했던 단테 연구 모임이다. 롱펠로를 중심으로 제임스 러셀 로웰, 제임스 토머스 필즈, 조지 워싱턴 그린, 올리버 웬들 홈스 등(모두 실존 인물)이 주축이 된 1865 단테 클럽의 최우선 사명은 미국에서 『신곡』을 최초로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이었고, 이들의 번역 작업은 사상을 통제하려는 하버드 대학교와 갈등을 빚게 된다. 그리고 마침 이때다 하고 단테의 지옥 편을 모방한 끔찍한 연쇄살인이 발생한다. 단테를 롱펠로가 잉크로 번역되는 게 빠른지, 아니면 단테를 숭배하는 악마가 피로 번역하는 게 빠른지를 두고 일어나는 미국 문단 전성기를 주도한 보스턴 문인들과 악마와의 한판 대결! 놓치기는 아깝다.
단테의 파란만장하면서도 비극적인 개인사가 빈번하게 언급되고, 연쇄살인이 단테의 지옥 편을 모방해서 일어나는 만큼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을 정독해야 소설 『단테 클럽』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지 않을지 하는 걱정이 들 수도 있지만, 소설 속 클럽 회원들 간에 벌어지는 활발한 단테 토론만 이해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물론 단테의 일생과 신곡을 잘 알고 있는 독자라면, 남다른 감회와 함께 좀 더 깊은 읽기가 가능할 것도 같다.
여담이지만, 진심으로 독서의 길로 접어든 사람이라면, 단테(Dante Alighieri)의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은 한 번쯤은 넘어야 할 산이다. 그 여정이 신병훈련소의 행군처럼 험난하고 지루할지라도 『신곡』은 고전 중의 고전이지 않겠는가. 나 역시 군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홍신문화사 책으로 『신곡』을 읽은 적이 있었고, 그 우연한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맥 빠지게도 ‘지루했다’라는 것 정도다.
하지만, 그것은 단테의 우여곡절 가득한 삶을 몰랐을 때, 그리고 인생의 풍랑을 덜 겪었을 때의 얼치기 같은 감상이었다. 보스턴 문인들과 함께 단테를 연구했던 지난 시간을 되새김질해 보면 지금이야말로 『신곡』을 읽는 적기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신곡』이 자신을 추방하고 학대한 사람들과 도시에 대한 복수인지, 아니면 죄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류에 대한 간절한 구원인지 직접 판단해 보고 싶다.
구더기에 의해 죽는다는 것
『단테 클럽』 연쇄살인마의 첫 번째 살인 무기는 징그럽지만 흥미롭게도 파리의 유충인 구더기이다. ‘구더기’라고 하니까, 리들리 스콧이 감독하고, 러셀 크로가 주연한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 2000)」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느 노예의 칼에 베여 벌어진 어깨 상처를 치료하는 구더기 말이다.
보통 구더기는 죽은 살을 먹으므로 살아있는 사람에겐 해가 없다. 하지만, 『단테 클럽』의 살인마가 사용한 구더기는 코클리오미아 호미니보락스(Cochliomyia hominivorax)라는 살상력 있는 살인 곤충이다. 한국에선 ‘사람피부파리’로 불리는 듯한데, 아무튼 이 파리들은 끔찍하게도 살아있는 생체조직에 유충을 깐다. 그러니까 이 녀석의 구더기는 소설처럼 실제로도 살아있는 사람 살 속에서 알을 깨고 나와 그 생살을 파먹으며 자라난다.
이 가공할 만한 살인 무기의 첫 번째 희생자는 힐리 법원장(다행히도 그는 가상 인물)인데, 그는 이 구더기들의 혐오스럽고 징글징글하면서도 공무원들 일 처리처럼 매우 느린 섭식 작업에 의해 아주 서서히 죽어간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영화와 책을 감상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살인 장면을 봐왔지만, 이처럼 지옥에나 등장할 법한 잔혹하게 지연된 죽음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힐리 법원장은 그렇게 나흘 동안 서서히, 지옥으로 가기 전에 이미 지옥을 충분히 맛보면서 죽어간다.
이 무시무시한 살인 파리는 인류의 해충 박멸 프로젝트를 비웃듯이 1989년 미국의 한 소년을 죽인다(실화!). 이 파리는 1865년경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 원래 거주하던 지역을 벗어나 진화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단테 클럽』의 첫 번째 살인 무기로 기용됨으로써 얻은 그들의 악명은 순전히 작가의 허풍만은 아닐 것이다(아마 그들을 주인공으로 공포 영화를 제작한다면 역대급으로 지루하면서도 역대급으로 잔인한 죽음이 펼쳐질 것 같다).
매일매일 넘쳐나는 자극적인 가십거리 더미 아래에 꼭꼭 생매장당하거나 무심한 세월과 인류의 망각 속에서 완벽하게 말살되어 가는 좁쌀만 한 사건 한 조각을 들추어내 이런 역대급 무서운 살인 무대를 완성하다니, 사람들이 하도 남발하는 바람에 그 가치가 대중의 무지 속으로 휩쓸려 간 듯한 ‘심오한 독창성’이란 표현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해야 하는 말일 것이다.
끝으로 클럽 회원들의 토론의 주무대인 크레이기 하우스(롱펠로의 저택)의 서재 같은, 즉 벽난로 속에서 타닥타닥 타오르는 장작불에 취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격렬하면서도 평화로운 웅성거림에 향미를 더하는 백포도주에 취하고, 불콰하게 취한 몸을 구김살 없이 안아주는 소파에 취하는 문인들만의 아취가 넘치는 서재는 나 같은 독서가에겐 꿈의 구장 같은 공간이다. 그런 나만의 공간에서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고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다면, 나 같은 범인도 (장르나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얼떨결에라도 책 한 권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을지 하는 객기를 꿈꾸며, 단테가 글을 쓰면서 평화를 찾았듯 나 역시 글을 쓰며 안식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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