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Rambo) | 미얀마에 다시 람보를 보내버려?
<람보의 지친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
미국식 천하무적 1인 영웅 놀이 영화의 대표 아이콘 ‘람보(Rambo)’를 다시 보면 (고전 액션 영화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유치하고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시험 전날 벼락치기 공부하듯 4편까지 몰아보게 되었다. 작금에 봐도 유감없는 액션과 적을 소탕하는 통쾌함은 옛 명성 그대로 흠잡을 데가 없으며, 집값처럼 치솟는 람보의 킬 수를 보고 있노라면 넋이 도망치는 것도 모를 정도다.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이방인을 고문하는 나쁜 보안관들> |
<진흙 인간으로 위장한 람보가 적을 기습하는 장면은 다시 봐도 압권> |
‘람보’ 하면 왠지 모르게 ‘베트남전’을 연상하게 된다(아마 진흙 인간으로 위장한 람보가 적군을 기습하는 2편의 장면이 ‘람보 = 베트남전’이란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리라). 그가 베트남 참전 용사인 것은 맞지만, 람보 1편의 활극이 벌어지는 무대는 베트남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에서 다소 생뚱스러웠다. 그것도 베트콩이 아닌 미국 경찰을 상대로 말이다.
람보 1편의 사달은 단지 옛 전우를 만나고자 시골 작은 마을을 몸소 찾은 람보를 미처 못 알아본 지역 보안관들의 만행에 가까운 집단 괴롭힘에서 시작한다. 마치 독재자처럼 군림하려는 지역 보안관의 텃세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정의감에 불타는 관객의 짜증을 우려내기에 충분하다. 경찰관을 죽이지 않는 한도 내에서 방어에만 몰두하는 람보의 씁쓸한 심정과는 달리 인정사정없는 관객은 마음속으로 연신 보안관 학살을 외치고 있다. IMDB에서 람보 시리즈 중 1편이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이유는 람보의 적들이 우매하고 고집스러운 지역 보안관, 즉 미국 시민이 마주칠법한 현실적인 공공의 적이기 때문이리라.
<불끈 솟은 근육, 지치지 않는 액션, 쏘팔코사놀 먹으면 나도 저렇게?> |
<소련 무장 헬기와 맞싸우는 람보, 누가 다치려나> |
람보 2편에서야 무대는 베트남으로 옮겨진다. 람보는 아직도 베트남에 억류된 미군 포로들을 구출하는 람보다운 임무를 람보답게 해치운다. 하지만, ‘빨갱이’, ‘반공’ 등 냉전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퇴물이 되었고, 미국에 베트남전은 떠올리기도 싫은 악몽이며, 이미 미국인들은 베트남전 자체가 명분이 없는 전쟁이었음을 허세 속에 시인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미군 포로를 구출한다는 신명 나는 설정임에도 IMDB의 평점이 생각보다 낮은 것이지 않은가 싶다.
람보 3편의 무대는 축축한 베트남에서 건조한 아프가니스탄으로 급선회한다. 소련의 천인공노할 민간인 학살을, 그리고 영화 개봉 시기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시기임을 고려하면 3편은 아프간 투사를 도와 소련군을 쳐부순다는 설정만으로도 많은 평점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땐 IMDB 같은 사이트가 대중화되기 훨씬 전이었다. 지금의 러시아는 미국에 매우 껄끄러운 상대다. 특히 군사적으로 러시아는 여전히 위협적이다. 그런 러시아를 자극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지금의 러시아는 독일처럼 과거의 잘못은 덮어둔 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할 그런 국가로 여겨서인지 3편은 람보 시리즈 중 평점이 가장 낮다. 그런데 러시아가 독일처럼 과거의 만행을 사죄하고 뉘우친 적이 있던가?
<훈장이 먹여 살려주지는 않는다. 불법 격투기로 밥벌이하는 람보> |
<격투기 벌이가 시원치 않았는데, 이번엔 땅꾼으로 나선 람보> |
3편 이후로 20년의 공백 기간을 두고 4편이 나왔다. 고로 실베스터 스탤론의 짱짱한 젊은 시절만 보고 싶다면, 3편까지만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4편의 비극적인 소재가 소름 끼치게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으니 안 볼 수가 없다. 한마디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데 바로 미얀마(버마) 사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사실적인 전투 장면이 보편화되어서 그런지 미얀마 군대에 의해 자행되는 민간인 학살 장면은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만인의 공분을 일으키고도 남을 정도며 이 때문에 4편은 1편에 이어 두 번째로 평점이 높다.
베트콩 같은 미국이 억지로 설정한 미국만의 적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범 같은 공공의 적을 소탕하는 것이야말로 만인의 공감을 사는 확실한 재료다. 하루속히 미얀마에 평화와 자유가 찾아들길 바랄 뿐이다.
<람보는 단지 옛 전우를 잊지 못해 집을 나섰을 뿐인데> |
<25년이 넘어서야 귀향하는 람보,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듯 시대와 상황이 변하면 증오해야 할 적도 변한다. 람보 시리즈는 돈을 벌기 위해 만든 고만고만한 ‘액션 영화’일지 모르지만,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한 적절한 미끼 선택이 흥행을 좌우하듯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보면 (최소한 미국인의 시점에서) 그 시기의 증오 대상이 어떤 부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권력 남용을 일삼는 꼴통 보안관,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융통성 없는 장교, 민간인을 학살하는 군인 등 다양한 부류가 람보의 먹이가 되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1편에서 집을 떠난 람보는 길고도 험난한 방황 끝에 4편을 완성하고서야 귀향한다. 카키색 야전 상의와 물 빠진 청바지를 입고 더플백을 짊어진 람보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못해 씁쓸할 지경이다. ‘차라리 월남에 돌아가겠어요’라는 람보의 넋두리 아닌 넋두리에는 너무나 간단하게 토사구팽당한 참전 군인의 비애가 미국이 베트남에 들이붓다시피 뿌린 고엽제만큼이나 흠뻑 묻어있다. 보는 내 마음이 다 말라비틀어질 지경이다.
살인 기계로 훈련받은 그들이 적군을 죽일 땐 미친 듯이 열광하다가 전쟁이 끝나자 보란 듯이 살인자 취급하는 국가와 사회가 몰인정한 것인가? 전쟁터가 아닌 평화로운 일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그들이 못난 것인가? 람보의 등에 걸친 더플백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처럼 도통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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