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7

호텔 레이크(Lingering) | 이모는 말썽꾸러기!

영화 리뷰 | 호텔 레이크(Lingering, 2020) | 이모는 말썽꾸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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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레이크(Lingering, 2020) | 이모는 말썽꾸러기!

영화 리뷰 | 호텔 레이크(Lingering, 2020) | 이모는 말썽꾸러기!
<무림 고수들이 갇혀있던 만안사 보탑도 저래 생겼을까?>

#살아있다」가 98분짜리 라면 광고였다면, 「호텔 레이크」는 101분짜리 숙박업체 광고였다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한 점의 부끄럼 없이 감히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반론 따위는 제기할 여지가 바늘구멍만큼도 없을 정도로 너무나 명백했다.

「#살아있다」를 감상하고 나서 한 제일 첫 번째 행동은 굶주린 가족의 배를 채워주는 동안 기름때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던 꾀죄죄한 부엌 찬장을 굶주린 야수가 냉장고를 뒤지듯 허겁지겁 뒤지며 무슨 라면이 있나 살펴보는 것이었다면, 「호텔 레이크」는 인터넷 검색으로 영화의 주 무대가 된 호텔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왕 검색한 김에 숙박 요금까지 냅다...

영화 리뷰 | 호텔 레이크(Lingering, 2020) | 이모는 말썽꾸러기!
<저 산으로 직행하는 것이 더 으스스할 것 같다>

영화 속 호텔을 처음 보는 순간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의 만안사(萬安寺)가 떠올랐다. 만안사 뒤편엔 십 삼층이나 되는 보탑이 있는데, 십각형으로 탑처럼 쌓아 놓은 호텔 모습이 보탑을 떠올리게 했다. 다만 만안사 보탑엔 무림 각 정파의 주요 인물들이 단정하게 갇혀있었다면, 호텔 레이크엔 XX가 보기 흉하게 갇혀있었다는 점이 달랐다. 그것들은 생화를 염색하는 이모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잔혹하게 느껴지는 별스러운 취미의 결과이자,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보물이다.

영화 리뷰 | 호텔 레이크(Lingering, 2020) | 이모는 말썽꾸러기!
<누가 뭐래도 저 이모와는 친하게 지내고 싶다>

공포영화라면 그냥 무서운 장면만 연출해도 충분하고, 그것 하나만도 쉬운 일이 아닌데 여기에 케케묵은 사연을 들쑤셔내며까지 감동을 끌어내려는 한국형 공포영화의 장단점을 잘 보여주는 영화 중 하나가 「호텔 레이크(Lingering)」이지 않을까 싶다.

감독이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일까? 그래서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홍수처럼 넘쳐나지만, 상영 시간은 제한되어 있으니 장면마다 파일을 압축하듯 이야기를 압축한 것일까? 그렇다면 내 머릿속에 압축 해제 도구가 없다는 것이 천추의 한일 수도 있겠다. 장면과 줄거리가 서로 따로 노는 것 같아 도통 집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이 돌아버리겠다. USB 꽂듯 뇌와 PC를 연결해서 반디집이라도 설치하고 싶다.

이야기를 복잡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한국 공포영화의 단점이라면, 교훈적인 뭔가를 남기려고 애쓰면서 감동을 자아내려는 가상한 노력은 장점이다. 이 영화의 교훈은 간단하다. 있을 때 잘해.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은 잘해줘야 할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이 교훈을 결코 깨닫지 못한다. 그러하길래 이 진부한 경구는 여러 매체에 걸쳐 재생산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영화 리뷰 | 호텔 레이크(Lingering, 2020) | 이모는 말썽꾸러기!
<카메오로 출연한 애꾸눈 잭>

애꾸눈 아마추어 영매가 갑자기 등장하게 된 연유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듯, ─ 그런 좋은 장소에 호텔을 소유한 친지라면 단지 무료 숙박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 친하게 하고 싶은 이모가 왜 그런 부질없는 짓을 저질렀는지 그 이유는 끝내 알 수 없다. 물론 그 복잡하면서도 단순할 수도 있는 사연엔 아들에 대한 ─ 일선에선 ‘사랑’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 뒤틀린 애착과 독기 서린 집착이 있다는 것 정도는 지나가는 개라도 알 수 있지만, 그녀가 인륜을 배반하는 행위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악마 의식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부활이라고 해볼 요량이었을까? 아들을 좀비로 만들어 영생을 주고 싶었을까? 아니면 심심해서? 내 덜 떨어진 머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오묘할대로 오묘한 영화다.

2020년 한국 공포영화는 영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보다는 한 편의 영화를 간접광고로 활용하는 것이 유행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된 것이 최근 감상한 두 편의 한국 공포영화 모두 재미와 감동보다는 간접광고의 효과가 더 강렬했다

내가 지난번 「#살아있다」 리뷰에서도 말하지 않았나? 공포영화라고 해서 생각나는 대로 마구잡이로 싸지르는 시대는 지났다고. 새로운 뭔가를 구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남들에게 어필하고 싶다면, 그 떠오른 상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능력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끝으로 고풍스러운 호텔 분위기와 고즈넉할 것 같은 주변 경치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었던 영화이고, 그랬기 때문에 진심으로 저런 이모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 밤마다 어깨를 주무르고 술잔을 채워주며 양아들이라고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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