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란(Mulan, 2020) | 귀한 배우들로 보기 드문 졸작을
<입만 무공 고수에서 진정한 무공 고수로> |
이 영화를 감상하려는 뭇 남성이 배를 타고 떠나는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새색시처럼 오열하며 만류하는 저조한 평가를 외면하고 이 영화를 봤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월트디즈니라는 상업적 명성에 이끌렸다기보다는 드라마 「천룡팔부(2003)」에서 왕어언을 연기한 유역비(劉亦菲)의 청초한 외모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자가 타려는 배에 유역비 같은 낭자가 기다리고 있다면, 새색시가 한 다스 있어도 기필코 배에 타려는 남자의 음흉한 심보와 같다.
<‘뮬란’ 이야기에 마녀는 왜 등장하는 것일까?> |
어디 유역비만 등장하는가?
‘황비홍’의 이연걸과 ‘엽문’의 견자단, ‘패왕별희’와 ‘귀주 이야기’의 공리라는 중국 현대 영화사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 또한 멀티캐스팅의 덕을 보고자 하는 현대 영화 제작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도 이처럼 귀한 배우들을 모셔다 놓고 보기 드문 졸작을 만들었으니 이 또한 보기 드문 일이렷다. 참으로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
<애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견자단 사부> |
배우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도 그렇지만, 분명 중국 역사와 중국인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것들의 무대가 될 영화 배경은 영 낯설다. 서로 매치가 안 된다. 내가 요즘 중국 역사 드라마를 많이 감상해서 그런 것일까?
몇몇 배경은 중국이 맞는 것 같은데, 또 몇몇 배경은 중국이 아니다. 알고 보니 뉴질랜드란다. 뉴질랜드라면 ‘반지의 제왕’ 촬영 장소로 유명하고, 그 하나만 놓고 보면 빼어난 자연경관임은 분명하지만, 내 눈에는 ‘뮬란’과는 어울리지 못한다. 이야기 배경은 중국에 고정된 것이 맞는데, 자연적 배경이 중국과 뉴질랜드를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눈도 어질하고 머리도 혼란스럽다. 중국엔 헝디엔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 촬영소가 있을뿐더러 기존 촬영소가 마땅치 않으면 ‘뮬란’이니만큼 중국이 충분히 협조적으로 나왔을 것 같은데, 왜 굳이 뉴질랜드를 고집했을까? 감독의 고향이라서? '반지의 제왕' 마니아라서?
<자객과 일대일 결투에 나서는 역대급 무모한 황제> |
이것이 끝이 아니다. 예능 프로의 ‘일주일 만에 영화 제작하기’라는 임무라도 받았을까? 아니면, 영화를 촬영할 때마다 감독을 포함한 전 스텝들의 오줌보가 가득 차 막 터질 것 같은 기이한 저주라도 걸렸던 것일까?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 진행과 고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어색한 세트 • 의상 • 메이크업 등 서둘러 영화를 제작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촬영 장소도 되는대로 선택한 것일지도.
이 모든 부조화가 일으키는 불협화음을 고스란히 감상하는 일은 일본어로 번역된 애국가를 듣는 것만큼이나 이질적이고 고역이다.
「뮬란(Mulan)」은 월트디즈니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명성에 먹칠하기 딱 좋은 영화다. 도대체 무슨 우여곡절이 있었길래 대배우들을 가지고 이따위 졸작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중국에서 역사상 최악의 뮬란으로 평가받았으니 감독이 나름 큰일을 저지른 셈이긴 하다. 애초에 유역비 아니면 찾지 않을 영화였으니 인제 와서 감독 탓을 해봤자 내 선택에 먹칠하는 것밖에 안 되겠지만 (앞에서 비판한 내용과 마녀를 등장시킨 점, 미국식 1인 영웅 놀이를 혐오한다는 점 등) 서양인들이 이다지도 중국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아, 감독이 뉴질랜드 사람이니 아시아인으로 봐야 하나?
아무튼,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몰이해가 감독의 능력 부재를 부채질해 이런 졸작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바짓가랑이가 벗겨져 망신살이 뻗치는 한이 있더라도 유역비 때문에 봐야겠다면, 말리지는 않는다. 왕어언을 못 잊는 당심의 청담한 연정을 어찌 탓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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