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반항아 | 프랭크 설로웨이 | 사회는 형제 투쟁의 역사
출생 순서는 세계를 이해하는 상이한 전략을 조장한다. 다윈의 진화가 다채롭고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대다수의 종에서 폭넓은 다양성을 장려하는 것처럼 인간 가족 내부의 관계도 개체 발생적으로 이 과정을 되풀이한다. (p461)
사회는 계급 투쟁의 역사가 아니라 형제 투쟁의 역사다!
누군가는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진보적인 후보자에게 표를 던지면서 기성 체제에 반항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혁명에 반동하는 데 목숨을 바치고, 보수적인 후보자에게 표를 던지면서 기성 체제에 순종적인 삶을 살아간다. 굳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보통은 진보와 보수, 혁명과 반동, 반항과 순종을 가르는 근본적인 이유를 사회 • 경제 계급에서 찾으려고 한다. 공산당 선언은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도 지금까지 여러 책을 읽어오면서 사회 • 경제 계급의 대립과 갈등이 역사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별다른 의혹을 품지는 않았다. 내가 가진 약간의 반사회적인 경향이나 염세적이고 이단적인 면도 사회 • 경제적인 내 위치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은연중에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회적 문제의 잠재적 원인으로 여겨져 왔던 계급 의식이 혁명과 반동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혁명적인 삶을 선택하거나 반동적인 삶을 선택하는 것은 계급 의식이 싹트기 훨씬 전인 유년기에 발달된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 성격은 바로 출생 순서에 따른 형제간의 갈등과 대립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프랭크 설로웨이(Frank J. Sulloway)의 『타고난 반항아: 출생 순서, 가족 관계 그리고 창조성(Born to Rebel: Birth Order, Family Dynamics, and Creative Lives)』은 개인들이 보이는 사회적 태도의 차이 대부분은 가족 내부에서 발생하며, 그중에서도 출생 순서야말로 개인들의 개념적 선호와 성격을 알려 주는 훌륭한 예보라고 말한다. 형제들의 출생 순서에 따른 생존 경쟁과 이에 뒤따르는 생존 전략이 진보와 보수, 혁명과 반동, 반항과 순종을 가르는 개인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진화심리학적인 면에서 볼 때는 지금까지의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가 아니라 형제 투쟁의 역사라는 말이 된다.
즉, 다윈주의 관점에서 볼 때 성격은 개인이 유년기를 보내면서 형제간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개발하는 전략이며, 이것이 바로 형제 전략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역사의 원동력은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계급 갈등이 아니라 형제 갈등이다. 형제들은 한 부모를 독차지하고자 다른 부모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 자식을 향한 ─ 한정된 투자와 ─ 형제가 사용할 수 있는 ─ 자원을 놓고 형제와 대립하고 투쟁하는 것이기에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도 당연히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형제 투쟁이 ‘타고난 반항아’를 만든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반항적이고 이단적인 성향의 근본 원인은 막내라는 가족 내 지위에서 찾아야 하는 셈이다. ─ 형제 중에서 장자가 아니라면 대부분이 공감할법한 ─ 부모의 불공한 자원 분배가 자신도 모르게 권위에 대한 존경심을 훼손하고, 나아가 혁명적 성격의 토대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경 최초의 살인이 형제 살인이었던 이유도 진화심리학적인 면에서 충분히 이해할만한 이야기다. 또한, 군주나 왕, 그리고 귀족들이 보수적인 면이 많은 이유도 장자 계승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부모의 관심과 자원을 거의 독차지할 가능성이 큰 첫째들은 부모를 원망할 일이 없다. 부모의 총애를 받는 이들은 부모를 모방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권위, 법, 질서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 형제 중에서 가장 많은 자원과 투자를 얻어낸 이들은 응당 지켜야 할 것도 많게 된다. 새로운 것이나 급진적인 변화에 과감히 도전하기에는 잃을 것이 많다. 고로 이들의 성격은 보수적이고 권위적으로 발전할 확률이 높다. 반면에 뒷순위(후순위) 출생자들은 이미 자신들보다 지위도 확고하고, 덩치도 큰 첫째들을 이기려면 그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며 다양성을 극대화하는 길이 최선이다. 그래서 뒷순위 출생자들은 경험과 지식에 대한 개방성과 융통성이 높다. 경험과 지식에 대한 개방성과 융통성이 높기에 여행도 자주 하고 새로운 사상이나 학문도 적극적으로, 그리고 첫째들보다 매우 빠르게 받아들인다. 고로 이런 뒷순위 출생자들에게서 ‘타고난 반항아’가 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
참고로 『타고난 반항아』 제시한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급진적 이데올로기 혁명에서 뒷순위 출생자들이 이단적 대안을 지지할 확률은 첫째들보다 4.8배 더 높았다. 기술적 혁명에서는 뒷순위 출생자들이 첫째들보다 2.2배 더 높았다. 급진적 혁명의 초기 단계에서 뒷순위 출생자들이 이단적 관점을 채택할 확률은 첫째들보다 5~15배 더 높았다. 기술적 혁명 과정에서 뒷순위 출생자들의 지지 가능성은 첫째들보다 2~3배 더 높았다. 확실히 첫째들은 반동적 혁신에 이끌렸다. 지난 2세기 동안 미국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은 뒷순위 출생자들을 대법관으로 지명하는 시종일관한 경향을 보여주었으며, 반면에 닉슨, 포드, 레이건, 부시 이 네 명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은 10번의 지명 기회를 통해 전부 여섯 명의 첫째를 연방 대법원에 투입했다. 정말이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 이론에 비추어보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막내라는 사실은 참으로 미스터리다. 만약 나머지 형제들이(특히 부모나 첫째가) 진보적이라면 말이 되지만 말이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통계가 시사하는 바를 그냥 간과한다는 것은 지식과 학문에 대한 무지막지한 불경이다. 생각하고 고뇌하는 사람이기를 포기한 좀비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프랭크 설로웨이의 발견은 사람의 행동 발달과 성격의 기원을 연구하는 여러 학문에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회적 • 정치적 • 경제적 대립과 갈등의 원인을 근원적으로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다분히 남발된 경향이 있었던 ‘사회 계급’이라는 단어는 이제 그 역량이 한껏 퇴색된 느낌이다. 조만간 사회과학 분야에 ‘형제 계급’, ‘형제 대립’이라는 말이 유행할 날도 올지 모르겠다.
<인생 최초의 경쟁 상대, 그 이름은 다름 아닌 ‘형제’> |
사람의 성격을 결정 짓는 형제 투쟁
한마디로 자라는 아이들은 가정에서 각자의 지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면서 일종의 ‘적응 방산’을 경험하는 셈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닥트리는 생존 경쟁의 상대가 다름 아닌 형제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생존 경쟁의 최종 결과로써 성격이 형성된다고 하니 참말로 충격적이면서도 뭔가 확 깨는 기분이다. 이런 양상은 계급, 국적, 성별, 시대를 초월해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하니 당신이나 당신이 아는 사람들의 출생 순서를 고려하여 그들의 진보 • 보수 성향을 판단해보면 웬만한 점쟁이는 얼굴도 들이밀지 못할 만큼 잘 들어맞을 것이다.
당신이 나처럼 하나 이상의 형제를 가진 사람이라면, 『타고난 반항아』에서 역설하는 ‘형제 전략 이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형제 전략 이론에 따르면, 얼핏 봐선 좀스럽고 치졸해 보이는 형제간의 먹는 것, 입는 것, 배우는 것, 가지고 노는 것 등을 두고 싸우는 것이 단순히 아이들의 치기 어린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다투는 엄연한 생존 경쟁의 한 장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경쟁에서 어떠한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성격이 좌지우지되고 더 나아가 진보와 보수, 혁명과 반동, 반항과 순종이라는 사회적 성향까지 결정된다.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앞으로 사람의 행동과 성격을 깊이 이해하고 그 뿌리를 밝히는 데 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이론이다. 갓난아기들 사이의 보잘것없는 다툼과 눈치 싸움이 적응 방산이라는 진화론적인 발달을 위한 출발점이라니 놀랍기 짝이 없다.
물론 한 사람의 성격이나 사회적 성향이 완성되기까지는 출생 순서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이 갈등과 대립, 형제의 수, 성별, 형제들의 나이 격차, 부모 사망 시의 나이, 사회 계급, 기질 등이 상호 복잡하게 작용하는 창발적인 특성을 수반하기에 출생 순서만 가지고 한 사람의 성향을 예보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20여 년간의 연구 업적이 축적된 『타고난 반항아』는 출생 순서만 가지고도 한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음을 수많은 역사적 인물을 통해서 충분히 예증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두 권의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고 난 영향이 컸다. 스티브 잡스 같은 반항아는 어떻게 해서 탄생했을까?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성장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런데 하필 프랭크 설로웨이조차 잡스처럼 외아들이나 입양아 같은 경우는 출생 순서만으로는 성격이나 성향을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하니, 나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출생 순서로만 보면 스티브 잡스는 기능적 첫째이니 보수적이고 지배적이고 고집스러운 경향이 강해야 했다. 그는 고집스럽고 다분히 지배적이었지만, 보수적인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스티브 잡스의 반항아 기질은 어디서 온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 자신이 인정했듯, 입양 사실을 어렸을 때 알게 되면서 얻은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프랭크 설로웨이는 비록 첫째일지라도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반항적인 성격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형제니까 그렇게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성격뿐만 아니라 습관까지도 진화론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이 무궁무진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는 식습관이 있다. 본성과 양육에서 식습관은 양육으로 결정되는 대표적인 요소 중 하나다. 부모의 총애를 받고 자라는 첫째는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을 수 있기에 편식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그 밑의 형제는 첫째와 똑같이 편식하게 되면 부모로부터 눈총을 받거나 자칫 잘못하다간 제대로 먹지 못할 수가 있다. 생존 경쟁에서, 그것도 한창 자라나는 유년기에 먹는 것이 소홀하다면 성장하기도 전에 도태할 수도 있는 아주 심각한 문제다. 고로 이들은 아무거나 잘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내 형이 편식이 아주 심하지만 나는 사람이 먹는 것이라면 아무거나 다 먹을 수 있다는 호기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다식한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많이 먹고 다 소화할 수 있다면 오죽 좋으냐.
또한, 형제 전략 이론은 그동안 혁명 시기의 비극적인 가족사 정도로만 치부됐던, 같은 울타리에서 자랐음에도 누구는 혁명을 지지하고, 누구는 혁명에 반동하는 등의 형제들 간에 보이는 유별난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말하지 않던가? 형제인데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가 있냐고? 사실은 형제니까 그렇게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다르기 때문에 서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임을 우리는 ‘형제’로 살아오면서도 몰랐던 것이다!
한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조차 결국 진화의 결과라니,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책이 예증하는 수많은 사례와 엄밀한 과학적 통계 자료를 보면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경험과 대립하는 새로운 이론이나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타고난 반항아』는 말한다. 만약 형제 중 첫째라면 지지하지 않을 공산이 크고, 뒷순위 출생자라면 지지할 공산이 크다고. 나는 당연히 지지한다. 왜냐하면, 나는 막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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