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부조화 이론 | 레온 페스팅거 | 심리학의 '오컴의 면도날’
사람의 모순적인 행동을 설명하다, 인지부조화 이론
프로이트의 말처럼 사람은 관념화할 내용 없이 강한 감정을 느끼는 데 익숙하지 않다. 또한, 사람은 교고쿠도의 장황한 ‘요괴 설명서’처럼 알 수 없는 것, 이해 불가능한 것,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놔두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은 내용 없는 것에 이런저런 이유로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다른 내용을 대용물로 찾거나, 불안이나 공포나 혐오나 초조함을 유발시키는 그런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신 • 요괴 • 귀신 • 유령 등의 이름을 붙이고 형태를 지어주면서 체계화시킨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이해 능력 밖에 있다고 생각된 것을 반강제적으로 사람의 이해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기호화, 혹은 개념화에 성공하면 그동안 그것들이 초래했던 모호한 두려움 • 공포 • 불안 등은 이해할 수 있는 두려움 • 공포 • 불안 등으로 한 등급 강등되면서 그 정도도 덜해진다. 억지로나마 실체가 생기니 그 실체에 대처할 방법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애초에 비과학적인 망상에서 시작된 감정이었으니 그것을 제거하거나 예방할 방법 역시 비과학적일 수밖에 없다. 재앙이나 화를 불러오는 요괴 • 귀신을 퇴치하거나 재난을 일으키는 신을 달래주는 방법의 하나로 미신, 주술, 금기, 주문은 그렇게 싹을 틔웠다. ‘이성적인 존재’가 될 때 가장 큰 장점은 원하는 무엇에 대해서든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말처럼 사람은 그 현상이나 대상이 무엇이었든 간에 모호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두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어찌 되었든 궁금한 것이나 알 수 없는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어떻게든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왕성한 지적 열정 덕분에 인류의 지식은 축적되고 더불어 지능도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같은 이유로 인류의 모순적인 언동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수많은 이론이 등장할 수 있었으며, 그중 하나가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의 『인지부조화 이론(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이다.
<선택에 동의했다고 해서 감정과 심리적 동요가 소멸하지는 않는다> |
내면의 일관성을 위협하는 인지부조화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은 사람이 내면의 일관성을 추구한다는 전제하에 사람의 언행, 가치관, 신념, 이념, 정보, 실재 등 여러 인지 내용 사이에 서로 부합하지 않는 부조화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부조화를 감소시키게 하는 동기를 일으키는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 주위에서 발생하는 사건, 그리고 우리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기에 이와 같은 부조화가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부조화가 가장 눈에 띄게 발생하는 상황은 무언가를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갈등을 겪을 때이다. 일생을 욕망과 그것을 제한하려는 ─ 정보, 문화, 법률, 양심, 윤리, 규칙, 평판, 체면, 경험 등등의 ─ 다양한 제약 사이에서 겪게 되는 갈등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으로서는 어느 정도의 부조화는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이렇게 설명하니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이거나 가식적인 행동이 부조화를 가져올 거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예에서 부조화는 지금 내가 선택한 언동이 나의 가치관과 어긋나야 생긴다. 만약 이때 거스른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시되는지에 따라, 그리고 선택하지 않은 경우의 수의 매력이나 이점이 클수록 부조화의 크기도 커진다. 누군가의 언동이 타인에게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누군가가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사고방식(인지요소)을 가진 사람이라면, 즉 그 언동에 대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부조화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예는 담배와 금연일 것이다. 또한, 부조화는 홀로코스트나 학살 같은 극악무도한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동기를 유발하기도 한다(이에 대한 내 의견은 「인지부조화의 대표적인 실례, 흡연자들의 모순」 참고).
왜 사람은 내면의 일관성을 추구할까?
인지부조화 이론은 사람들이 자신이 이미 믿는 것과 일치하는 정보를 찾아 나서는 반면에 그에 반하는 정보를 무시하는 이유와 반대되는 명확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의견이나 신념을 유지하는 모순된 행동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왜 사람은 내면의 일관성을 추구하는가는 설명할 수 없다. 사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인데 말이다. 내면의 일관성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라면 진화심리학적으로 이득이 될만한 점이 있었다는 말이고, 아니면 문화나 교육의 영향이라면 인지부조화를 겪지 않는 지역이나 민족이 있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부조화로 말미암은 불편함 정도의 차이가 개인 간에 존재한다는 것은 진화심리학적으로 뭔가가 이득이 있었기에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혹은 이 차이가 문화나 교육 같은 자라온 환경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진화적으로 이점이 있었다면, 내면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동기가 있는 개체가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번식 성공률이 높아야 한다. 성선택 이론은 자신의 주장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언행일치 • 지행합일의 모범적인 남성이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였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성립된다면 인지부조화로 겪는 불편함 정도는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나고, 여성보다 남성이 더 부조화에 민감해야 한다.
한편으론 내면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군집이 그렇지 않은 군집보다 생존율이 더 높아야 한다. 언행일지 • 지행합일의 도덕군자 같은 삶이 수렵 • 채집 생활에 어떤 이점이 있었을까? 뭔가를 행하기로 약속하고 그것을 어기지 않는 것을 하나의 미덕처럼 여기는 부족이 그렇지 않은 부족보다 생존에 유리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누군가 한 사람이 먹고도 남을 큰 동물을 사냥하는 데 성공할 때는 먹고 남은 고기를 다른 부족원에게 나눠주는 미덕이 존재하는 부족이 있다고 치자. 내가 아주 큰 사슴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내가 이 사슴 고기를 혼자 독차지하게 되면, 남은 고기를 다른 부족원에게 나눠줬을 때 훗날 ─ 누군가의 미덕으로 ─ 얻어먹을 수 있는 고기가 주는 매력과 그런 가능성을 떨어트리는 현재의 선택과 부조화를 이룬다.
고기를 나눌지 말지를 두고 겪는 어려움은 ‘갈등’이고, 그 선택 후에 선택하지 않은 행동(여기서는 고기를 나누는 것)에 남은 미련이나 매력 때문에 겪는 불편함을 ‘부조화’라 하지만, 한편으론 선택 후의 겪을 부조화에 대한 두려움이 선택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위의 경우는 훗날 얻어먹을 고기를 잃었다는 것과 집단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혼자 독차지했다는 비난과 그로 말미암은 사람들의 냉대와 멸시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외톨이가 되어야 하는데, 선사시대에 외톨이로 남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음을 고려하면 이것은 매우 불리한 경우다. 만약 그런 식으로 부족 사회에서 추방된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면, 고기를 독차지하는 선택이 불어올 부조화는 매우 클 것이다.
부조화를 제거하고자, 혹은 예상되는 부조화를 피해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도 고기를 나눠주고 필요할 때 나눠 받는 것이다. 그리고 고기를 나누는 행동이 혼자 독차지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라고 믿고, 그 믿음을 다른 부족원들과 공유함으로써 같은 일(여기서는 사냥에 성공한 일)이 또 발생했을 때 하게 될 선택의 갈등과 그 선택의 결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조화를 최소화할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부조화에 대한 두려움은 선택 자체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부조화를 느끼지 못하거나 부조화를 느끼더라도 그것을 감소시키는 방법으로 나눔의 미덕을 무시하거나 혼자 독차지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그런 이기적인 사람들이 득세하는 종족은 기근과 굶주림이 만연한 선사시대에서 살아남기가 어렵다.
이렇게 이야기해 놓고 보니 내면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욕구는 어쩌면 문화, 그중에서도 교육이나 훈육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것은 ‘욕구’라기보다는 일종의 ‘의무’나 ‘양심’처럼 작용하는 규칙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눔을 미덕으로 여기든 의무로 여기든 이런 인지요소는 일종의 정보다. 이런 정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종족은 사냥감을 혼자 독차지했을 때 부조화를 겪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다른 예로 내가 두 개의 초콜릿 중 하나를 선택했다고 치자. 두 개는 똑같은 초콜릿이지만, 한 상품은 ‘공정무역’ 상품으로써 다른 한 상품보다 가격이 조금 비싸다. 나는 두 상품 중 가격이 싼 상품을 선택함으로써 저렴한 가격에 숨은 어린이 노동이나 노예노동이라는, 흔히 ‘불편한 진실’이라 불리는 인지요소와 평소 어린이 노동과 노예노동을 반대하며 ‘공정무역’을 옹호해왔던 인지요소(나의 신념)가 부조화를 이루게 된다. 부조화를 감소시키는 방법이야 앞에서 말한 대로 행동을 바꾸거나(이 경우에는 상품을 환급하고 ‘공정무역’ 상품을 사는 것), 이 기회에 내 신념을 바꾸거나(예를 들면 요즘 시대엔 어린이 노동과 노예노동 같은 없다!) 아예 ‘불편한 진실’을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만약 내가 ‘공정무역’ 상품이 만들어진 취지와 ‘불편한 진실’이 의미하는 정보 자체를 아예 모른다면, 이 선택에서는 부조화가 생기지 않는다. 모르는 게 약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많이 알면 알수록 선택은 신중해지고, 반대로 아는 것이 적을수록 선택은 경솔해진다.
이것은 사람의 선택에 관여하고 그 결과에도 관여하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부조화도 그만큼 자주 겪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많은 정보에는 부조화를 감소시킬 수 있는 정보도 다수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마지막으로 몇 마디 더 덧붙이자면, 정보를 습득하고 서로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사소통 체제조차 없던 시대에 과연 ‘인지요소’라고 불릴만한 것들이 인류에게 자각될 수 있었을까? 이것이 가능하다면 다른 동물에서도 인지부조화 이론이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면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의무 같은 욕구는 문명의, 그중에서도 어쩌면 앞에서 말한 대로 교육이나 훈육의 결과일 수도 있다. 예부터 성인이나 군자들은 언행일치, 지행합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했으며 그 부단한 과정은 ‘수행’이라고 칭송받아왔지 않은가? 그래서 어쩌면 현대 사회는 부조화 속에서 어떻게든 조화를 찾으려는 일련의 연속된 행동이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지부조화의 대표적인 실례, 흡연자들의 모순> |
마치면서...
연속되는 선택에서 욕망하고 희망하고 기대하는 것과는 늘 다른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람의 인생에서 인지부조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누구나가 겪어야만 하는 심리 현상이다. 부조화는 ─ 부조화를 감소시키거나 회피할 수 있는 인지요소(정보)를 얻고자 ─ 무슨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인지와 더불어 의사소통의 방향성에 대해서, 즉 누구와 이야기할 것인지에도 또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사소통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기도 하다. 왜 사람들이 너무나 뻔하게 드러나는 모순적인 언행을 일삼고, 종교 활동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려운지도 설명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인지부조화 이론은 인간 사회를 총괄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최소한의 법칙으로 통합시키려는 물리학자들이 찾고 있는 통일장 이론의 심리학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과장에는 반론의 여지가 많고, 페스팅거 역시 이러한 확대 해석은 주의하라고 하였지만, 현실의 모순적인 삶을 이것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많지 않다. 과학에서는 '경제성의 원리' 또는 '절약의 원리'라고도 부르는 '오컴의 면도날' 원리가 적용된 것처럼 인지부조화 이론은 단순명료하지만, 그 단순명료함이 사람이나 집단의 얼핏 보면 불합리하고 모순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나름의 합리적인 추론에 의한 심리적 방편의 결과물임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름답고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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