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플랫폼(The Platform) 1 그리고 2
「더 플랫폼 1(2019)」, 수직 감옥을 통해 본 식량 분배의 불평등
IMDB에서 ‘공포 + SF’ 장르의 영화를 찾다가 발견한 보기 드문 스페인산 ‘공포 + SF’ 영화다. 영어, 중국어, 그리고 간혹 일본어로 된 드라마 • 영화만 보다가 스페인어를 들으니 무슨 따발총 쏘아대는 것처럼 정신이 살짝 사나워지곤 했는데, 익숙하지 않은 억양과 발음에 뇌가 다 놀란 모양이다.
아무튼 잠자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길 영화를 기대했는데, 이런 내 기대를 조롱하듯 「더 플랫폼(The Platform, El Hoyo」)은 수직 감옥 구조물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국가 내에서, 그리고 국가 간의 식량 분배에 관한 불평등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영화였다. 감옥의 각 층은 하나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도넛처럼 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을 통해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진) 플랫폼이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이동하는데, 당연히 높은 층에 갇힌 사람일수록 더 많은 음식을 먹을 기회가 주어지고, 아래층으로 갈수록 음식은 부족해진다.
이런 구조에서 어떠한 상황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는가?
이론적으론 수감자들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만 섭취하는 자제심을 발휘한다면 200층이 넘는 바닥층 사람까지 생존할 수 있는 음식이 플랫폼에 담겨 있지만, 실제론 50층도 못 가서 음식은 바닥난다.
「더 플랫폼 2(2024)」, 이상과 현실의 충돌, 그리고 연대의 붕괴
1편에선 자발적으로 감옥에 들어온 고렝(Goreng)이 ‘구덩이’의 불평등하고 무분별한 탐식을 조장하는 시스템을 변화시키려는 혁명가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구덩이’에 가지고 들어온 소설 ‘돈키호테’에서 알 수 있듯(참고로 ‘구덩이’에 들어올 때 총, 칼, 악기, 강아지 등 물건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이야기는 이상주의와 현실의 갈등(명예롭게 굶어 죽을 것인가? 아니면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을 것인가?), 희망과 무모함(사람의 식탐을 자발적으로 자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여정으로 이어진다.
2편의 시작은 고렝의 노력이 어느 정도 결실을 본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왜냐하면, 50층도 못 가서 바닥났던 음식이 무려 175층까지 도달했으니까! 하지만 공교롭게도 2편의 주인공 페렘푸안(Perempuán)의 ‘자유’ 운운하는 반동적인 선동으로 인해 수감자들의 연대는 와르르 무너진다. 애초 그들의 연대 의식은 인간의 2대 본성 중 하나이자 죽을 때까지 유지되는 ‘식탐’을 자제한다는 것을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풍요 속의 기아
영화의 메시지는 명확해 보인다. 타인의 생존을 위협하면서까지 돈과 힘으로 식량을 독차지하는 것을 인간의 자유로 인정해야 하는가? 다시 말하면, 내 돈으로 마트에 있는 식품을 깡그리 구매해 다른 사람을 굶주리게 만들어도 그 과정이 합법적이었으므로 그 행위를 온전히 인간의 자유로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구덩이’ 1층에 미국, 2층엔 중국, 그리고 100층 이하엔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같은 나라를 대입하면 현재의 인류와 딱 들어맞는다. 지구에서 생산하는 식량 총량은 전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지금도 10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대형마트에 가다 보면 간혹 놀라고 무서울 때가 있다. 열병처럼 가지런히 늘어선 진열장에 불꽃놀이 축제 인파처럼 빽빽하게 채워진 엄청나게 많은 음식에 놀라고, 결국 저 많은 음식을 우리가 다 먹는다는 사실에 놀라고, 저 많은 음식이 있는데도 굶주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란다. 그리고 이런 것에 무신경하고 무관심한 우리들이 무섭다.
먹방 진행자들의 ‘구덩이’ 생존 체험
영화를 보면서 머릿속을 맴도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다. 바로 전 세계 유명한 먹방 진행자들을 한가득 모아서 ‘구덩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트루먼 쇼」처럼 생방송으로 진행해 보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무작위로 층에 배치되고, 영화에서처럼 한 달은 너무 기니 매일 층이 바뀌는 시스템으로 수정한다. 참가자들은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구덩이’에서 얻는 음식만 먹을 수 있다. ‘구덩이’ 감옥 같은 현실적으로 구현이 어려운 계층 건물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참가자들은 서로 연락할 수 없도록 완전히 격리된 상태에 있고, 하루 한 번 순서에 따라 플랫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식사할 수 있다. 누가 무엇을 얼마만큼 먹었는지 서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참가자들은 과연 절제의 미덕을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생존과 도덕의 경계
「더 플랫폼」은 사람이 분노와 원한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서’ 사람을 죽인다는, 그리고 짐승이 아닌 사람에게 ‘잡아먹힌다는’ 설정 때문에 소름 끼치고 누군가에겐 역겹기도 할만한 영화다. 하지만, 공포 영화답지 않게 ‘인류의 식량 문제’라는 영원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조금 진지하게 몇 자 적어보았다.
참고로 평소에 보아온 영화 • 드라마와는 달리 매우 현실적인 외모를 지닌 배우들이 등장해 열연을 펼쳐서인지 영화의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배우들은 할리우드나 중국 • 한국 드라마의 화려한 외모보다는 일상에서 마주칠 법한 평범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강렬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 그들의 고뇌와 감정이 더욱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그들의 처절한 생존 투쟁과 도덕적 딜레마를 더욱 진실하게 전달하는 절묘한 캐스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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