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6

혁명후기(革命後記) | 한사오궁(韓少功)

혁명후기 | 한사오궁 | 문화대혁명, 그 광풍의 동력원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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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알 만큼 알고 있지 않았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공식 평가라 할 수 있는 『문화대혁명사(文化大革命間史)』, 우여곡절 끝에 문화대혁명(이하 문혁) 탈출에 성공한 한 개인의 자서전인 『홍위병(紅衛兵)』, 문혁 초반 폭풍의 중심에 있던 어느 조반파 노동자의 고백을 담은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 서구 학자들의 ‘문혁학’이 이룬 성과인 프랑크 디쾨터(Frank Dikoter)의 ‘인민 3부작’,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저지른 참혹한 영혼의 학살을 기록한 『백 사람의 십년(一百个人的十年)』 등등. 이 정도면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중국 현대사 문맹자들이 수두룩한 한국에서 문혁에 대해서만큼은 (일반인치고는) 읽을 만큼 읽은 셈이다. 그런데도 무엇이 부족하여 또다시 문혁을 집어 들었을까?

염병할 놈의 거지가 위장이 아니라 머리에 죽치고 앉아서 지식이 들어오는 족족 먹어 치우니 읽어도 읽어도 제자리걸음이라는, 이런 볼썽사나운 자질의 문제도 있지만, (아무리 멍청이라도) 그만큼 읽었으면 세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할망정 전체적인 윤곽이나 개념 정도는 슬슬 잡힐 만도 한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문혁의 다면성과 복잡성과 혼잡함은 학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니 나 같은 일개 독서인이 엄두를 낸다는 것 자체가 과한 욕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혁의 난해함은 전두엽에 촉촉하게 서린 호기심을 건조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반동분자처럼 맹렬히 자극하여 눈과 귀와 코와 입에서 호기심으로 응축된 야릇한 액체들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게 만드니 참말로 묘한 일이다. 모르면 모를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지적 욕구의 반항이라고 볼 수 있을까나? 억울한 것은 이렇게 사는 데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일에만 객기가 발동된다는 것. 그뿐만 아니라 『혁명후기(革命後記) - 인간의 역사로서의 문화대혁명』의 저자는 내가 그토록 예찬하고 예찬했던 일생일대의 수작, 『산남수북(山南水北)』의 저자 한사오궁(韓少功)이다.

처음엔 (이미 알 만큼 알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문혁’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저자의 익숙한 명성 때문에 ‘중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뛰어난 작가가 직접 체험한 문혁은 과연 어떤 문장으로 소화되어서 어떻게 묘사될 것인가?’ 하는 다소 엉뚱한 궁금증으로 대출한 책이지만, (결코 알 만큼 알고 있지 않았다는 뉘우침과 함께) 의외로 문혁에 대한 명쾌한 이해를 선물한 책이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백내장 환자의 시야처럼 뿌옜던 문혁에 대한 사유가 기적처럼 청명해졌다고나 할까나?

아무튼, “그저 혼란 속에 질서가 있고 복잡한 것 속에 간단한 게 있으며 모호한 가운데 명료함이 있다”라는 한사오궁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출처: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출처: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이익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 정치, 문화, 외교 등 무엇이 되었든 간에 세상을 돌리는 근원적인 원동력은 이익이다. 이익이 없으면 일찍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발전도 진보도 없다. 물질적 보상이건 정신적 보상이건 이익이 없는 일에 사람은 관여하지 않는다. 한사오궁은 갓난아기도 알 것 같은 이런 간단한 이치로 문혁의 중요 동력원 중 하나이자 서구 학자들로부터 그저 ‘광기’일 뿐이라고 지목된 인민의 적극적 참여를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혁에 뛰어든 사람들에겐 어떤 이익이 있었나? 그것은 바로 ‘정치적 영예’와 ‘정치적 안보’, ‘정치권력’이라는 정치적 이익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어디선가 들어본 해석이다. 중요한 것은 왜 중국인들이 그토록 정치적 이익에 서구 학자들로부터 비이성적 변태 행위라는, 혹은 미치광이들의 난동이라는 가혹한 평을 들어야 할 정도로 미치도록 열광했느냐이다. 이에 대해 한사오궁은 그것은 바로 공산 혁명이 잉태한 중국의 사회주의적인 특수한 경제 상황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사유의 “중심은 물질에서 정신으로, 실체에서 기호로, 생리적 요구에서 심리적 요구로, 사용 가치에서 의미 가치로” 이동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대표적 사치재인 명품이 신분, 능력, 지위를 대변하는 ‘기호’로 자리 잡고 있던 시기다. 경제력을 과시하고 싶다면, 코트에 현금다발을 비늘처럼 붙이고 다니면서 미친놈 소리 듣는 것보단 (우리의 사랑스럽고 멋지고 우아한 김건희 여사처럼) 몇천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 효과적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런 것이 가능해진 이유는 자본주의가 나은 경제적 풍족함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고 밥상을 뒤집어엎고 곡괭이, 삽, 낫 따위를 들고 일어나야 할 정도로 굶주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도 남들 앞에 과시할 수 있는 뭔가를 생산할 여력이나 의지는 없었다. 한마디로 물질적 이익이 동결된 시절이었기 때문에 마오쩌둥의 천금 같은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정치적 이익을 위해 너도나도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이익을 추구하는 동물이고, 경쟁심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이다. 물질을 가지고 경쟁할 수 없다면, 그리고 서구처럼 로큰롤, 종교, 여행 등의 문화생활로도 경쟁할 수 없다면, 탁자 위에 남은 도구란 권력과 정치뿐이다.

당시 홍위병에겐 붉은 스카프 한 장이 아이폰 이상으로 중요한 기호이자 인생의 중요한 가치였다. ‘붉은 스카프’를 놓치면 정치적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인생 최대의 두려움은 이웃뿐만 아니라 가족조차 헌신짝 버리듯 팽개치게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은 조건이었다. 왜냐하면, 옌거링(严歌苓)의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陆犯焉识)』에서 보듯, 중국에서 정치적 낙오자는 살인자보다도 못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문혁 와중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자살한 이유 중 하나는 당장 눈앞의 고통도 있었겠지만,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정치적 낙오자’라는 꼬리표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Universal History Archive/UIG via Getty Images
<출처: Universal History Archive/UIG via Getty Images>

역사를 결정하는 것은 인물이 아니라 체제

한사오궁의 예리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문혁이 중반으로 돌입한 70년대 초반에 중국 인민은 암시장 같은 뒷골목 시장을 통해 이미 시장 경제를 서서히 키우고 있었다는 분석은 프랑크 디쾨터의 책에서도 볼 수 있었다. 덩샤오핑이 한 일은 이미 타오르기 시작한 불씨에 석유를 들이부었을 뿐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사오궁은 그동안 읽은 문혁 책에서는 (내 기억으로는)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을 언급한다. 왜 문혁 시기 국내 정책에서는 그렇게 오류가 많았으면서 외교 문제에서는 큰 오류가 없었느냐 하는 점이다.

누구의 비난대로 문혁이 마오쩌둥 노망기의 시작을 알리는 불행의 장송곡이었다면, 그래서 문혁이 초래한 혼란 때문에 공산당 지도부의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다면 어떻게 중국의 미래를 좌우할 중 · 미(뒤이은 중 · 영, 중 · 일)수교 같은 외교적 업적을 순조롭게 완성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문혁’이라는 파괴적이고 혼란스러운 사건을 분석할 때 마오쩌둥 같은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들 위주로 바라본다. 그편이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쉽지만, 이렇게 사람만 보고 상황을 보지 않는다면, “혼란 속에 질서가 있고 복잡한 것 속에 간단한 게 있으며 모호한 가운데 명료함이 있음”을 깨달을 도리가 없다. 외교 문제도 설명할 수 없고, 문혁은 영영 이해할 수 없는 난제로 남는다. 한사오궁이 강조하는 것은 권력, 인물 뒤에 숨은 체제다. 역사를 결정하는 것은 체제이지 인물 개개인이 아니다.

사실 한국인처럼 ‘진짜 혁명’과는 큰 인연이 없는 나라로서는 문혁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난뱅이가 '구찌'나 '람보기니‘ 같은 것에 대해 TV나 인터넷을 통해 듣거나 본 것을 두고 그것들을 안다고 말해도 진짜로 아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식은 경험 • 감각에 의한 앎과 상호작용하는 관계 속에서 진정한 앎을 향해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는 밑천을 제공한다. 한사오궁의 『혁명후기』는 역사의 복잡성 속에 가려지기 쉬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미시적 안목을 키우는 데 기름진 밑천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분석을 통해서만 ‘한 사람의 역사’가 아닌 ‘인간의 역사’, ‘체제의 역사’라는 큰 흐름을 그릴 수 있다는 통찰을 주기도 한다.

끝으로 읽을거리가 ‘문혁’만 있는 책이 아니다. 도덕을 “인류의 거대한 고통이자 슬픔, 연민이 있은 뒤에 생겨나는 정신의 반응”으로 정의하는 염세와 낙관이 오묘하게 조화된 한사오궁의 사상은 그의 문학 작품만큼이나 깊고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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