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지식, 사이코패스 테스트 | 존 론슨
한마디로 ‘김진구’ 때문에 찾게 된 책
도진기의 『가족의 탄생』에는 김진구라는 무덤덤하고 무심한 탐정이 등장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김진구 같은 사람처럼) 감정이 가뭄에 쩍 갈라진 흙바닥처럼 메마른 사람을 별 뜻 없이 ‘사이코패스’ 같은 녀석이라고 놀린다. 나도 『가족의 탄생』 리뷰를 쓰면서 진구는 사이코패스 탐정이라는 말을 무심결에 내뱉기도 했다.
사이코패스가 의학적으로 정확히 어떤 사람을 뜻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무책임한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나처럼 의학에 무지한 사람 중 비유하기를 즐기는 사람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거나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을 ‘사이코패스’에 비유하곤 한다. 그렇다고 김진구가 정말로 사이코패스라는 말은 아니다. 난 처음 만난 사람이 나한테 살갑게 굴지 않고 데면데면하게 군다거나, 혹은 나를 좀 무시한다고 해서 다짜고짜 상대방을 사이코패스라고 단정할 정도로 무례하지도 않고 경박하지도 않다. 물론 마음속으론 심히 불쾌할 것이고, 상대의 도가 지나치면 지나칠수록 내 표정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지겠지만 말이다. 다만, 우리는 동정심이나 연민 같은 뭉클한 감정이 한 방울도 없어 보이는 사람을 종종 사이코패스에 비유하는 재미를 놓치기 싫은 것뿐이다.
그렇게 김진구 덕분에 사이코패스에 대해 한바탕 생각하고 나니 정말로 사이코패스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우리 중에 사이코패스는 얼마나 있으며 그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연쇄살인마’라는 단어가 종종 ‘사이코패스’를 접두사로 거느리듯, 사이코패스는 모두 살인자 같은 중범죄자인가? 사이코패스는 조현병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의 하나로써 치료가 가능한 질병인가? 아주 가끔 피해망상에 빠지면 제3차대전이라도 일어나 세상이 확 뒤집혔으면 하는 끔찍한 상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나도 사이코패스일까?
미친 듯이 점멸하는 시냅스들 사이로 비집고 새어 나오는 이러한 호기심들을 주체할 수 없어 찾게 된 책이 존 론슨(Jon Ronson)의 『사이코패스 테스트 - 광기의 심연을 가로지르는 기상천외한 모험(The Psychopath Test: A Journey Through the Madness Industry)』라는 책이다. (책의 부제목처럼) 이 책을 읽는 것은 사람은 정신세계의 극단적이고 어두운 한 단면을 탐험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기상천외한 모험이다. 그뿐만 아니라 저널리스트다운 집요함과 대범함, 그리고 여기에 인기도서 작가다운 시원시원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까지 결합하니, 마치 김용 무협소설이라도 읽는 것처럼 두 눈은 러시아워 시간에 도로에 늘어선 자동차 행렬처럼 가지런히 늘어선 텍스트를 집어삼키느냐 뻑뻑해지기 일쑤고, 오른손은 언제쯤이나 책장을 넘길까 하는 조바심에 안절부절못한다. 내용의 깊이나 충실함, 진지함을 떠나 한 번 눈독을 들이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감칠맛 나는 책이다.
<이들 중 최소 1%는 사이코패스다. 그들은 왜 진화했을까?> |
사이코패스를 선별하는 ‘사이코패스 테스트’
그렇다면, 누가 사이코패스를 사이코패스라고 사회적으로 유효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가? 알다시피 그런 어마어마한 특권을 가진 사람은 정신의학자, 혹은 정신과 의사다. 그럼 이들은 무슨 기준, 혹은 무슨 근거를 가지고 당신이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를 진단하는가? 그것은 캐나다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Robert D. Hare) 박사가 제시한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Psychopathy Checklist-Revised), 일명 PCL-R라 불리는 사이코패스 진단 도구다. 20가지 진단 항목으로 된 PCL-R의 점수가 (40점 만점에서) 30점 이상이면 사이코패스다. 만약 자신이 사이코패스인지 궁금하다면 「사이코패스 판정 도구(PCL-R)」에서 자가 테스트를 진행해보자. 참고로 이 테스트에는 “‘내가 사이코패스였나?’ 등의 생각을 하게 되면 사이코패스가 아니다”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즉, 진짜 사이코패스는 결코 자신을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난 6점이 나왔는데 당신은?
현재 PCL-R은 사이코패스를 진단하는 검증된 유일무이한 도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는 일을 고작 20문항만으로 판단해도 괜찮은 것일까?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하지 못했다고 해서 한 사람에게 사이코패스라는 무시무시한 진단을 내려 평생을 옭아매는 것이 공정한 처사일까(범죄자가 형기를 마쳤음에도 사이코패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머지 삶을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는 곳도 있다)? 그리고 PCL-R 점수 29점과 30점의 1점 차이가 ‘그 사람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다’와 ‘그 사람은 사이코패스다’라는 극명한 차이를 만들 만큼 유의미한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그리고 사이코패스가 실제로는 깊은 감정을 못 느끼지만,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가장하거나 연기를 해 타인을 속여넘길 정도로 교활하다면, 영악한 사이코패스는 PCL-R도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떨쳐버리기 어렵다.
사이코패스를 인터뷰하다
한 번 호기심이 발동되면 편집증 환자처럼 집요하게 파고드는 론 존슨은 음모론 같은 이상한 일(전 세계 학자들에게 이상한 소포가 배달되는 일)에 우연히 말려들게 된 계기로 사이코패스에 대해 파고들게 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정신의학자에게 사이코패스(PCL-R 30점)라고 진단받은 피터, 그리고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고 의심되는 두 명의 거물을 직접 인터뷰했다. 그 두 사람은 (12만 명을 해고하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해고전문가이자 억만장자인 앨 던랩(Al Dunlap), 아이티의 학살자 엠마뉴엘 "토토" 콘스탄트(Emmanuel "Toto" Constant)이다. 론 존슨의 용기가 가상한 점은 (나 같은 겁약한 사람은 앞에만 서도 오줌을 지릴 것 같은) 그들 앞에서 당신들은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대놓고 언급했다는 것이다(피터와 토토를 만난 장소는 감옥 면회소였지만, 던랩 같은 경우는 경호원이 존 론슨을 노려보는 던랩의 저택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피터와 토토는 자신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소름 끼치게도 던랩은 여러 사이코패스 기질을 사업가에게 필요한 자질로 인식했다(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이 사이코패스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며, 로버트 헤어도 이러한 론 존슨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는 점은 세 사람은 사이코패스라는 말에 화를 내기보다는 부정하거나,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는 데 급급했다는 점이다. 아마 보통 사람은 누군가에게 ‘당신은 사이코패스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화를 먼저 내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분노할 수 있는 감정이 있으니까 말이다.
정상적인 것보다는 광기를, 평범한 것보다는 자극적인 것에 쉽게 이끌리는 우리는 보통 사이코패스 하면 테드 번디(Ted Bundy) 같은 연쇄살인범을 떠올린다. 언론도 사이코패스와 연쇄살인범의 관계를 필연적인 것처럼 떠들어댄다. 이런 과장된 기사는 사이코패스들은 후회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괴물들이고, 언제라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악마 같은 이들이라는 선입관을 심어 놓는 주원인이다. 하지만, 앨 던랩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사이코패스가 활약하는 무대가 꼭 범죄 세계로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던랩의 예는 정치계나 재계처럼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게 오히려 장점인 세계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중 상당수가 사이코패스라는 심리학자들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예전 같으면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질투나 시기심에서 비롯한 음모론 정도로 흘려들었는지도 모르는 심리학자들의 충고가 이제는 머리칼이 살짝 쭈뼛 설 정도로 두려움과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심리학자들의 주장은 정말 사실일까?
로버트 헤어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기업인 중에서 사이코패스 테스트 점수를 30점 이상을 받은 비율이 3.9%에 달한다고 한다. 그 비율은 감옥에 수용된 사이코패스 비율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고, 일반인 중에 사이코패스가 차지하는 비율과 비교하면 적어도 4배에서 5배나 높은 수치다(정신의학자들은 일반인 중 사이코패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1% 미만으로 보고 있다).
갑자기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영부인의, 특히 김 여사의 사이코패스 테스트 결과가 굉장히 궁금해진다.
사이코패스는 사회도 죽인다
생각보다 낮은 비율이라서 실망인가? 하지만, 앨 던랩이 저지른 일을 떠올려봐라. 그는 해고전문가로 활약할 때 선빔(Sunbeam에) 종업원만 12만 명을 해고했다! 잔인하게도 월스트리트, 골드만삭스는 가혹한 해고 조치를 부추기는 선봉 부대였고, 이사회와 주주들은 12만 명이 일자리를 잃음과 동시에 경제적으로 선빔에 의존하던 마을들이 줄줄이 폐허가 되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꺼이 샴페인을 터트리는 포식자들이었다.
던랩은 분명 한 사람이지만, 그가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은 수십만 명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여러 마을을 불황의 늪으로 빠트릴 정도로 엄청났다. 헤어의 말처럼 연쇄살인마는 한 가족의 삶을 망쳐놓는 정도에서 마무리되지만, 기업 • 정치 • 종교 지도자에 있는 사이코패스는 사회와 국가 전체를 망쳐놓는다. 그들은 온갖 부조리와 불평등을 세상에 퍼트리고, 사람들과 사회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조작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당신이 이러한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이 기회에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 법칙을 적자생존이라고 인식하게 된 이유에 대해 고민해봐라).
사이코패스들의 유창한 말발, 특출난 매력,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정함, 그리고 남을 교묘히 조종하는 능력과 자기 확신을 떠올리면 그들이 성공한 기업인 중에 높은 비율로 섞여 있다는 점이 그리 이상한 것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그들을 부추기는 것은 (선빔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사이코패스가 아닌 탐욕에 눈이 먼 보통 사람들일 수도 있다. 던랩이 해고전문가가 된 것은 아무도 그 일을 맡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12만 명을 해고하는 일은 감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견디기 어려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그로 인해 오지게 먹게 될 비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양심이 없는 사이코패스와는 달리 보통 사람들은 이런 비난에 매우 민감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월스트리트, 골드만삭스, 이사회, 주주는 돈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욕을 먹기가 싫었던 것일 뿐이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 싫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들은 비열하게도 자신들의 속마음을 실현해줄 청부업자를 고용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비난의 화살도 고스란히 다른 이에게로 돌리는 것도 가능했다. 이러한 모종의 이해관계가 사이코패스가 대성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지 않을까 싶다.
사이코패스의 삶은 모두 극단적일까?
과거 도덕적인 치료를 지향했던 몇몇 정신의학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현대의학은 사이코패스에게 ‘치료 불가’라는 가혹한 진단을 내렸다.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요인에서 기인한 편도체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에게 어떤 진화적 이점이 있기에 여태껏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된 것일까?”, 혹은 “감정이 진화해 온 진화사에서 감정 기능을 상실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진화심리학적인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전체 인구 중 오직 1%라는 비율은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사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높은 비율이 아니라 무시되었던 것일까? 하지만, 유난히 성공한 사람이나 극악무도한 범죄자 중에 높은 비율로 섞여 있는 사이코패스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이코패스 테스트 항목에서도 드러나는 사이코패스들만의 고유한 능력이 소수만으로 존재했을 때 가치가 있는 (가끔은 무자비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지배자를 양성하는데 어떤 유용한 이점을 제공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사이코패스의 죄책감, 양심, 도덕성, 동정, 연민, 책임감 등의 결여가 아무 여자나 성폭행함으로써 유전자를 퍼트리는 최상의 조건으로 작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도살, 처형 같은 보통 사람들은 하지 않으려는 특수한 작업을 위해 태어난 특수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시력을 잃은 사람이 청각이 예민해지듯 사이코패스들의 몇몇 뇌 기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만큼 다른 이점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혹은 애초에 호모 사피엔스는 사이코패스에서 시작한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감정’이 뇌의 다른 기능보다 늦게 진화했으며, 감정을 제대로 진화시키지 못한 채로 남은 조상이 사이코패스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이코패스’라는 뇌의 기형은 타고난 것이지만, 양육 환경에 따라 그들의 삶은 천국과 지옥을 오감과 동시에 사회에 던지는 파급의 성질도 판이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부유한 환경에서 제대로 교육받고 자란다면 앨 던랩 같은 대성한 기업가가 되기도 하고, 폭력이나 학대에 노출된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다면 연쇄살인범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는 성공한 사람 아니면 중범죄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것도 이것이다. 사이코패스이면서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보통 사람들 속에 잘 섞여 들여 지극히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에 대한 책이 있다면 반드시 읽고 싶지만, 광기산업(狂氣產業)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상 이런 따분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책은 나오지 않을 듯싶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로 유명한 테드 번디(출처: Ted Bundy in court)> |
엔터테인먼트를 지배하는 광기산업(狂氣產業)
잠시 한숨 돌리는 의미에서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예능용 리얼리티 TV쇼에서 섭외담당자로 일했던 샬롯 스코트는 존 론슨과의 대화에서 일부러 미친 출연자를 골라서 대중 앞에 세우는 게 성공의 핵심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먹는 약물로 출연 여부를 결정했는데, 그중에서 리튬을 복용하는 사람은 너무 미쳐서 안 되었고, 프로작(Prozac)을 먹는 사람이 딱 적당했다고 한다. 뭐가 적당하냐고? 시청자들이 재밌다고 할 만큼 적당히 미쳤다는 말이다. 다르게 말하면,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은 타인에 어떤 큰 피해를 줄 정도로 난폭하게는 아니지만, 보는 사람이 재밌고 우습다고 느껴질 정도로 충분히 미쳤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미치는 것은 심히 걱정할만한 일이지만, 예로부터 연극이나 영화 같은 대중적 오락거리가 부족했던 인류에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안전하게 미친 사람을 구경하는 것은 서커스 구경보다도 더 재미난 일이었다. 미친 사람을 구경하는 일은 돈 한 푼 들지 않는 (소수에 의한 다수를 위한 볼거리라는 점에서 참으로 민주적인) 오락거리다. 그뿐만 아니라 미친 사람은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보고만 있어도 불안함이 은근슬쩍 묻어있는 짜릿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다(설마 광기는 이런 오락성 때문에 진화한 것은 아니겠지?).
우리는 미친 사람을 구경하면서 겉으로는 동정할지언정 속으로는 재미있어 죽을 지경이다. 왜 그럴까? 타인의 불행을 위안으로 삼을 때 종종 고개를 쳐드는 값싼 만족감처럼 미친 사람을 보고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는 비루먹을 안도감을 얻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획일화되고 틀에 박힌 삶에 굴복한 자신들과는 달리 잡다한 규율이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자신들만의 세계 인식을 기초로 한 예측할 수 없는 그들 특유의 언행이 영웅처럼 용감무쌍하거나 예술가처럼 신선하게 비쳐서일까?
예측을 불허하는 미친 사람들의 언행은 빅브라더의 탄생으로 점점 사려져 가는 삶의 불확실성을 은유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흥미롭기는 하다.
정신질환자 증가, 누구의 책임인가?
빅브라더가 모든 사람의 삶을 예측 가능한 테두리로 묶어두려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불안은 당분간은 접어도 될 것 같다. 130페이지에 106개의 정신 장애를 나열한 것으로 시작된 DSM-Ⅰ(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1952년)은 DSM-Ⅴ(2013년)에 와서는 947페이지로 늘어났을 정도로 모든 사람을 정신질환자로 규정하기에 손색이 없는 방대한 데이터를 구축 중이다. 이제는 철자법이 틀리거나, 산수를 못 하거나, 카페인 금단증상을 겪는 것도 정신질환으로 진단할 수 있다. 남편과 다투어도, 차를 몰다 화가 나서 경적을 울려도 마찬가지다. 공황장애를 겪는 존 론슨은 DSM-Ⅳ(버전 5가 아니라 4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자신이 12개의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미국에선 20초마다 아이 한 명이 발달장애로 판명된다. 정신의학자들에겐 성경과도 같은 DSM 옹에 의하면, 우리 모두 정신질환 한두 가지 정도는 안고 산다고 볼 수 있으니, 정녕 미친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다면 멀리 갈 필요 없이 그저 서로를 잘 관찰하면 된다. 그렇게 서로를 관찰하면서 DSM에 있는 온갖 비루먹을 증상과 하나하나 대조해보는 것도 정말 재밌는 일이 될 것 같다. 빅브라더라도, 구글이라도, 알파고의 증손자라도 미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사회와 그 사람들의 삶을 쉽사리 예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수백 개의 정신질환이 갑자기 생겨버린 것은 인류의 유전자가 지난 100여 년 사이 급격하게 변환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결과일까? 아니면, 원래 역사시대부터 존재해왔던 정신질환을 이제야 진단할 수 있게 된 것일까? 그렇다면, DSM-Ⅲ에서는 정신질환으로 분류했던 동성애가 DSM-Ⅳ에서 빠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참고로 DSM-Ⅱ(1968)에서는 가출이 아동기 정신장애로 분류되기도 했다. 또한, DSM에 의해 한때 소년들의 모험심을 자극했던 톰 소여는 ‘뇌 손상이 있는 아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만약 『톰 소여의 모험』이 좀 늦게 출판되었다면 까딱하다간 불량 서적이라는 낙인이 찍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신질환 역치가 낮아지고, 환자 수가 증가할수록 이득을 보는 것은 정신의학자와 제약회사다. 프로작 출시 직후에 나온 DSM-Ⅲ가 기존 버전보다 진단할 수 있는 정신장애 목록이 대폭 증가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로버트 헤리는 만약 사이코패스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이 나온다면, 사이코패스 테스트로 판명되는 테스트 점수도 낮아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 말이 은유하는 바처럼 한쪽에선 한 사람이라도 더 정신질환자로 만들려고 현안이다. 지금까지 제약회사가 이루어낸 꽤 놀라운 성과들을 보면, 언제가 사람들은 의사로부터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을 받아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넘기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엔 이력서에 쓰는 자기소개도 지금과는 사뭇 달라질 것이다.
“사이코패스 테스트 점수 25점, 약물복용 중, 하지만 대량 해고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음.”
눈도, 머리도 시원시원하게 읽을 수 있는 책
존 론슨의 『사이코패스 테스트』는 책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재미있고 흥미롭다. 특히 문명의 그늘에 숨어 인류를 은근히 즐겁게 해주고, 한편으론 꾸준히 위협해 온 광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으스스한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책이다. 다루고 있는 소재 자체도 매우 흥미롭지만, 그런 것들이 저널리스트 특유의 집념과 용기로 파헤쳐질 때마다 마치 추격전이라도 벌이는 듯한 스릴이 느껴질 정도로 플롯은 박력이 넘치고, 텍스트는 시원시원하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경쾌하게 넘어가고 호기심도 통쾌하게 충족된다. 더불어 우리 주변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이코패스를 분별해 낼 수 있는 약간의 지식을 남겨 주는 책인 것은 확실하지만, 더불어 그런 얕은 지식이 남발될 때 불러올 수 있는 혼란과 분쟁도 빼놓지 않고 경고해 주는 책이다.
분명 나를 포함해 우리 주변에는 무책임한 사람도 많고, 매사에 충동적인 사람도 많고, 자기 자랑을 일삼는 사람도 많고, 거짓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도 많고,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많고, 공감 능력이 모자란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많고, 약속을 잘 깨는 사람도 많고, 늘 지루해하는 사람도 많고, 속임수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이 모두는 사이코패스 테스트 항목에 나오는 20가지 항목 중 보통 사람들의 성격에서 쉽게 발견해 낼 수 있는 9개 항목을 추려본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로 앞에서 언급한 9가지 항목 중에 두세 가지 정도 들어맞는 사람은 쉽게 발견할 수 있을지언정 9가지 모두 해당하는 사람은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설령 이 9가지 항목 각각에 최고점수(2점)를 부여해 합산해도 18점밖에는 안 된다(이런 사람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그냥 성격이 좀 재수 없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이 내려지려면, 여기서 12점이 더 필요하고, 그러려면 나머지 11개 항목에서 12점을 추가해야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이렇게 조금만 따지고 봐도 로버트 헤어가 얼마나 심사숙고해서 이 테스트를 만들어 냈는지 대충이나마 짐작이 간다. 간단해 보이면서도 그 이면은 매우 교묘하다.
사람이 어리석은 점은 타인의 한두 가지 결점만 보고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쉽게 단정해버리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달린 꼬리표가 선입관으로 굳어지기라도 주차위반 스티커만큼 떼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겐 사이코패스 테스트의 20항목은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 되는 금단의 열매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래서 아는 척 좀 하느냐고 누군가는 사이코패스라고 함부로 떠들지 마라. 그 사람이 사이코패스이든, 사이코패스가 아니든 언제가 당신은 그 뒷감당을 치러야 할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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