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咒, Incantation, 2022) | 감히 관객을 XX하는 이런 무례한 영화는 처음!
<위탁 가정에서 딸을 데려오는 리뤄난> |
자기 배 아파 낳은 딸 둬둬(배우 黄歆庭)와 6년 동안이나 헤어져 있던 리뤄난(배우 蔡亘晏)은 오늘부터 모든 일상을 새로 산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기로 다짐한다. 왜냐하면, 위탁 가정에 맡겨진 둬둬를 엄마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법원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기뻐하기는 일렀다. 법원에서 지정한 평가 기간을 무사히 통과하지 못하면 둬둬의 양육권을 또다시 국가에 빼앗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딸의 양육권을 잃어버린 이유는 6년 전에 있었던 그 일 때문이었다. 그녀는 6년 전 ‘미신 타파 특공대’의 한 일원으로써 강행했던 끔찍한 경험이 남긴 후유증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것이었다.
‘미신 타파 특공대’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녀는 저주에서 벗어나 예쁜 딸 둬둬와 함께하는 새로운 삶 새로운 미래를 꿈꾸지만, 가혹한 운명의 여신이 그녀의 꿈을 박살이라도 내려는 듯 어느 날 갑자기 둬둬는 ‘괴물’을 보기 시작한다. 둬둬가 보는 ‘괴물’은 그저 지나칠 정도로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가 공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생기는 그런 통과의례적인 경험일까? 아니면 리뤄난에게 내려진 저주는 아직 풀리지 않은 것일까?
<'미신 타파 특공대', 시작은 훈훈, 결말은 처참> |
<동굴 안에서 뭘 봤길래 저 지경이 된 것일까?> |
대만 영화 「주(咒, Incantation)」는 핸드헬드 촬영 기법을 사용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공포영화로 이야기는 크게 두 개 줄기로 나뉜다. 6년 전 둬둬를 임신했을 때 있었던 일과 둬둬와 같이 살게 된 현재의 이야기가 번갈아들며 진행되는데, 6년 전 일이란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듯) 바로 ‘저주’와 관련된 일이다.
서문에서 언급한 ‘미신 타파 특공대’라는 도전적인 그룹명을 가진 (리뤄난을 포함한) 특공대원들은 지역 공동체의 종교적인 금기를 건드림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저주에 걸려든다.
‘저주’를 획득하게 되는 과정으로선 다소 평범한 설정이지만, 이 특공대원들의 무모한 모험이 펼쳐지는 무대인 황폐한 마을, 괴상한 주민들, 제물로 바쳐진 동물, 온몸을 뱀처럼 휘감은 주문 등은 마치 레지던트 이블 게임을 하는 듯한 어둡고 음산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이후 펼쳐질 일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
<과연 둬둬는 무사할 수 있을까?> |
그런 유쾌한 으스스함도 잠시뿐,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줄거리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을 정도로 이야기 전반부는 다소 산만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렇다 보니 흩어진 이야기를 주어 맞추는데 약간의 지력이 소모된다.
이런 단점만 잘 극복한다면, ‘현재’에서 진행 중인 이야기가 점차 본 궤도로 진입하는 후반부로 가면 어수선했던 이야기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넉넉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아귀가 맞아떨어지게 되면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특히 막판 반전은 전반부의 지루함을 이겨낸 보상으로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왜냐하면, 그 어떤 공포영화도 시도하지 않았던 (볼거리로서가 아닌 심리적이고 정신적으로 면에서) 소름 끼친 「주(咒, Incantation)」의 이 막판 반전은 최근 대만 공포영화가 주목받는 추세에 어울리는 참신함 그 자체였다.
<리뤄난이 언급한 기호 모양대로 엎질러진 학용품, 우연일까? 저주일까?> |
<둬둬를 살리고 싶다면, 그녀와 함께 주문을 외워라!> |
다른 누구도 아닌 리뤄난의 배신과도 같은 마지막 반전은 역대급이다. 관객은 귀여운 둬둬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저주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리뤄난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데, 그녀는 이런 약한 마음을 역이용해 대반격을 꾀하니 ‘엄마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무엇인들 못 할까‘하는 속사정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의 파렴치함에 혀를 내두른다. 한마디로 믿는 도끼에 발등이 콱 찍혔다고 할까나? 그녀의 마지막 배신을 용서하기 어려운 것은 절대로 내 속이 좁아서가 아니라 그 뒤끝이 너무나도 께름칙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대뜸 시청자에게 이상한 기호를 기억하라고 요구하고, 그다음엔 다짜고짜 ‘화불수일, 심살무모(火弗修一 心薩無牟)’라는 구글도 모르고 파파고도 모르는 주문을 자신과 같이 외워달라고 부탁한다. ‘저주’와 관련된 영화이니만큼 크게 이상한 것도 없는 장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리뤄난이 짜놓은 큰 그림의 밑천과도 같은 떡밥이었다. 그것을 깨닫게 된 순간은 이미 모든 것이 저질러진 후였으니 후회해도 늦는다. 그런 고로 미신이나 저주 같은 것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은 절대로 영화를 감상하지 마라. 엄청난 트라우마를 얻게 될 수도 있으니까.
끝으로 영화는 미신 • 저주(그리고 종교)를 믿는 사람이 세상을 보는 모습과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친 사람’이 세상을 보는 모습은 비록 다를지라도 그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정신 작용은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여전히 수학능력시험 당일 부처님 앞에 향을 피우고, 십자가 아래 기도하는 부모님들을 쉽게 목격한다.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올리고, 공양을 드린다. 이들은 눈을 뜨고 현실 세계를 보는 것보다 주문과 기도를 믿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영화보다 훨씬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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