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31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 협력과 이타주의 진화의 견인차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 프란스 드 발 | 감정, 협력과 이타주의 진화의 견인차

책 리뷰 |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 프란스 드 발 | 감정, 협력과 이타주의 진화의 견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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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맞닥트린 방게 대학살

어머니가 당신만큼이나 늙수그레한 부엌 싱크대에서 한 바구니의 방게들을 조몰락조몰락 씻는다. 아마 오늘이 장날이라 동네 재래시장에서 사 온 듯하다. 난 (남대문 시장의 명물인 갈치 조림을 제외하곤) 생선을 조려 먹는 것을 안 좋아하니, 아마도 당신이 좋아하는 방게 조림을 요리하려나 보다.

간장을 듬뿍 들이붓고 다소간의 양념과 파, 무를 건더기로 넣어 진득하게 조려 만드는 방게 조림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살아있는 방게들을 곧 팔팔 끓는 물에 투척할 것이라는 뻔한 예상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것도 하필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의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Mama's Last Hug)』이란 책을 한창 열나게 읽고 있을 때, 사람의 비루먹을 식탐으로 추동되고 사람의 냉혹한 조리 기술로 완성되는 참사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를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창 방게를 신나게 씻는 어머니 옆에서 방게 같은 작은 동물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낀다고 은근슬쩍 운을 띄우니, ‘그럼, 세상에 고통을 못 느끼는 동물이 어디 있겠냐?’라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어머니는 방게를 바라보는 심상치 않은 나의 눈빛을 보고 내가 어떤 질문을 할지 예상이라도 한 듯하다. 아들의 마음을 어머니만큼 아는 사람이 세상 어디 또 있겠는가? 한편으론, 곧 끓는 물 속에 꿈틀거리는 방게를 무지막지하게 투척할 사람치곤 의외로 떳떳하게 인정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자식 세대만큼 많이 배우지 못한 어머니가 작은 미물도 고통을 느낀다고 인정한 건 생물학에 정통해서는 아니다. 혹은 나처럼 책을 많이 읽어서도 아니다. 다만, 생존과 번식에 대한 의지와 욕구, 그리고 죽음을 꺼리는 본능이 있는 생명체라면 제아무리 작은 미물이라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낄 것이라는 직관적인 통찰에서 비롯한 공감 능력 때문이다. 이런 공감 능력은 유인원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남성(수컷)보다 여성(암컷)이 더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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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등장하는 얀 반 후프 교수와 마마의 마지막 포옹
(출처: an van Hooff visits chimpanzee Mama, 59 yrs old and very sick Emotiona…)>

꽃게의 행동으로부터 얻은 교훈

살아있는 낙지나 문어가 탐욕스러운 동물에 의해 끓는 물 속에 던져지면 평소보다 더욱 심하게 꿈틀대다가 잠시 후면 잠잠해진다. 동물이 고통을 느끼고 몸부림치는 것은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존 욕구다. 이것은 본능이라기보다는 낙지와 문어의 몸부림은 통각으로부터 점화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일으킨 최선의 행동이다. 이것은 우리가 손가락을 따끔한 것에 찔리거나 뜨거운 것에 데었을 때 재빨리 팔을 움츠리는 행동과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앞의 낙지나 문어의 경우는 그들의 힘으로썬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었을 뿐이다.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에는 등장하는 수많은 흥미로운 실험과 관찰 중 꽃게에 관한 것이 있다.

연구실에서는 밝은 빛을 피할 수 있도록 유럽꽃게에게 어두운 장소들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 은신처 중 몇 곳은 들어가자마자 짜릿한 전기 충격을 받았고, 게들은 금방 이 장소들을 피하는 법을 터득했다.

꽃게의 반응은 얼핏 보면 동물의 본성에서 기인한 단순 학습 정도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것은 그것을 넘어서는 실험 결과다. 꽃게가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전기 충격을 회피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또한, 그 고통을 받았던 맥락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면 왜 행동을 바꾸겠는가? 그리고 고통을 회피하고자 행동을 바꿨다면, 그 행동 이면에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동기로써 작용했음이 틀림없다.

우리도 꽃게처럼 위험이나 고통을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동물이 사람과 아주 비슷하게 행동하고, 생리학적 반응을 사람과 공유한다면, 그들이 경험하는 것도 우리와 같으리라 추측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는가?

이성은 허상이고, 감정은 현실이다

생존에 대한 욕구는 우리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본성이지만, 그것을 삶에서 실제로 구현하는 방식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상황에 반응해 펼치는 선택과 행동 이면에는 감각, 고통, 기억, 인지, 의지, 감정, 동기, 행동 등 일련의 과정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을 뿐만 아니라 연쇄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하나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하여 ‘이성’이라고 일컫는다.

하나 감정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성’은 인류의 무분별한 언어와 유럽인들의 오만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감정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가 감정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라는 일에 어깨를 으쓱하게 한다. 감정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적응력이 뛰어나고 상황에 맞는 빠른 선택을 유도하기 위해 진화한 감정이 없다면, 우리는 아주 간단한 선택을 내리는데도 무진장 애를 먹고 있을 것이다. 일례로 감정과 관련된 뇌 부위에 손상을 입은 환자가 완전히 정상적인 추론 능력에도 불구하고 최종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증상은 감정은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최고의 선택을 하게 만드는 방법임을 말해준다.

좀 더 현실적인 예를 들자면, 만약 어떤 식으로든 감정과 관련된 기능이 망가진 사람이라면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사이에 두고 면은 불어 터지다 못해 썩어 문드러지고 국물은 모두 증발할 때까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감정은 지적 본능처럼 작용하는 적응력이 뛰어난 행동 유발자다. 동물은 그저 자신의 충동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하면서 살아갈 수 없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감정적 반응은 항상 상황에 대한 평가와 다양한 선택들을 놓고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때문에 모든 동물은 자기 통제 능력이 있다. 게다가 처벌과 갈등을 피하기 위해 무리 중의 개개 구성원은 주변 구성원들의 의지에 맞춰 자신의 욕구를, 혹은 최소한 행동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 게임의 이름은 타협이다.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Mama's Last Hug)』,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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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두 당나귀가 왠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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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감정에 관한 책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은 제목만 보면 동물의 감정을 다룬 책처럼 보이지만, 동물과 사람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감정의 세부적인 작동 방식, 감정이 유도하려는 행동과 동기, 그리고 진화론적 의미도 같다는 점에서 이 책은 사람의 감정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상황과 맞부닥쳤을 때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감정을 다스리는데도 참으로 도움이 되는 책이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었다.

(다른 사람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난 인도를 걷다가 망측하게 사람의 발길을 가로막고 불법 주차한 자동차와 마주칠 때마다 분노에 휩싸인다. 보통은 ‘재수 없는 놈 만났네’ 정도로 넘어가지만, 기분이 언짢은 날은 자동차를 때려 부수고, 급기야 자동차 주인도 때려죽이고 싶은 파괴적인 충동에 휩싸일 때도 있다(이럴 때마다 오락실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보너스 스테이지가 매번 떠오른다). 이런 날은 불법 주차한 자동차 한 대 때문에 산책을 망치기 일쑤다. 왜냐하면, 산책하는 내내 불법 주차한 자동차에 대한 분노를 애써 억누르냐 기분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예전과 마찬가지였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예전처럼 분노가 계속 이어져 나를 괴롭히는 대신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일어나는 분노가 진화적으로 어떤 이득이 있을까?’, 혹은 ‘그냥 조금만 옆으로 피해 가면 되는 것을 가지고 왜 나는 분노를 느끼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소방수 역할을 해주므로 이전보다 분노를 다스리기가 조금은 수월해졌다. 여담으로, 이렇게 다른 개체가 규칙을 위반한 상황을 보고 분노나 혐오감을 품는 것은 우리가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규칙이나 관습 등을 준수하게 만드는 도덕성과 타협 • 협력을 끌어내는 감정적 기반이다(무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법치주의가 없던 시절에 분노와 분노가 유도하는 폭력적 행동은 일종의 자경단 같은 역할을 해준 셈이다. 반면에 시샘은 공정성 감각을 발달시킨 주요 장본인이다. 그 원리와 과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자.

물론 이런 해괴한 의구심이 없더라도 사람은 여타 동물처럼 감정을 자제할 줄 알고, 그러하므로 대부분 큰 사고 없이 일생을 마치게 된다. 하지만, 프란스 드 발의 책은 내면에서 일어난 감정을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살펴보게 함으로써 감정에 휘둘릴 수 있는 충동적인 상황의 앞뒤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람이라 말할 수 있지만,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은 동물보다 못한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프란스 드 발의 책은 감정을 가진 모든 동물에게 추천하고 싶다.

끝으로 딱 한 마디만 더하자면, 진화와 관련된 최근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적자생존과 살벌한 경쟁에 입각한 ‘이기적 유전자’의 시대는 실로 지나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새로운 과학적 업적들은 자연사의 70% 정도가 우리가 생각해왔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놀랍고도 반가운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것이 인류가 마음만 먹으면 한껏 잔인해질 수 있다는 소름 끼치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인류사를 다른 시선으로 되새겨보게 한다. 우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처럼 전쟁에 미쳐 날뛰는 광기뿐만 아니라 그 광기에 맞서는 협력도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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