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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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클락 | 오직 밀실트릭만의 논리적으로 우아한 미끼

책 리뷰 | 미스터리 클락 | 기시 유스케 | 오직 밀실트릭만의 논리적으로 우아한 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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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클락 | 기시 유스케 | 오직 밀실트릭만의 논리적으로 우아한 미끼

단박에 트릭을 간파하다!

첫 번째 장 「완만한 자살」 같은 경우는 몇 페이지 읽자마자 대뜸 모든 것을 간파했다.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범인이 꾸민 밀실트릭까지 완벽하게 말이다. 그렇게 쉬웠다고? 다른 사람에겐 어떨지 몰라도 내겐 그렇게 쉬웠다. 모의고사에서 한 번 풀어봤던 문제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채 수능에 출제되었다고나 할까나. 어쩌자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내가 단박에 알아차릴 만큼 작가 기시 유스케(貴志 祐介)의 트릭이 허술했던 것일까? 아니면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그동안 여러 추리 소설을 독파해 온 성과가 이제야 빛을 발하는 것일까? 혹은 최근에 감상한 영국 추리 드라마 「아가사 크리스티: 명탐정 포와로」에 등장하는 새침한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의 활기 넘치는 회색 뇌세포의 공교함이 나에게로 전염이라도 된 것일까?

무척이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 모두를 부정한다. 내가 「완만한 자살」의 모든 트릭을 셜록 홈스처럼 명쾌하게 바로 알아맞힐 수 있었던 것은 「열쇠가 잠긴 방(鍵のかかった部屋, 2012)」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1년 전쯤에 시청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 추리 소설을 꽤 읽어보긴 했지만, 아직 기시 유스케의 소설은 읽어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 『미스터리 클락(ミステリークロック)』을 선택한 것에는 우연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도서관 책장에 닭장처럼 층층이 쌓인 책 중에서 내 눈에 잘 띄는 높이에 비치되어 있었다. 여기에 이런저런 번뇌로 뻐근해진 정신을 오래간만에 찾은 밀실트릭으로 좀 풀어볼까 하는, 그래서 머리 좀 식힐 겸 하는 기대도 한몫했다.

당연히 첫 장을 읽기 전까지는 기시 유스케와 드라마 「열쇠가 잠긴 방(오늘까지 원작이 있는 드라마라는 것조차 몰랐다)을 연결 지을 생각은 맹세코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단 소설과 드라마의 연결 고리가 확실하게 매듭지어지니 에노모토 케이와 아오토 준코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 드라마에서 해당 배역을 맡은 ─ 배우들의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소설 속 두 주인공을 높은 시각적인 완성도로 쉽게 이미지화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읽는 내내 두 배우의 코믹한 콤비 플레이를 어렵지 않게 내 상상의 화폭에 투영시킬 수 있어서 매우 유쾌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어쨌든 놀랍지 않은가? 무려 1년이나 지난 드라마의 내용을 겨우 소설 몇 장을 읽고 떠올렸다는 사실 말이다.

책 리뷰 | 미스터리 클락 | 기시 유스케 | 오직 밀실트릭만의 논리적으로 우아한 미끼
<좋은 추리소설은 잠든 뇌세포를 깨워준다>

논리적으로 우아한 미끼에 낚여라!

밀실트릭의 매력은 소설이 전개되는 배경을 매우 좁은 공간으로 한정 지음으로써 이야기의 불필요한 우수리를 없애고 독자의 에누리 없는 추리력을 온통 한곳에 집중시키고, 그럼으로써 트릭의 효과와 트릭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흥미진진함과 긴장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밀실트릭은 다른 곳으로 한눈팔 곳 없는 독자의 시선과 재치 있는 기지에 집중포화를 받으며 독자와 1대1 대결을 펼치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칫하다간 쉽게 간파당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추리 소설이 등장한 이후 밀실트릭은 그만의 톡톡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묘미로 많은 애독자를 양산해냈지만, 한 치의 허도 허용하지 않는 논리적 완벽성을 추구하는 밀실트릭의 막대한 임무 때문에 도전하는 작가도 많지 않다. 더군다나 이미 나올법한 밀실트릭은 다 나온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미 많은 트릭들이 선을 보였고, 또한 요즘처럼 웬만한 트릭들은 달달 외우고 사는 추리 소설 마니아들이 바글거리는 세상에서 대단한 준비성과 자신감은 물론이거니와 여기에 기발함까지 갖추지 않고서는 밀실트릭 소설을 써보겠다고 마음먹기조차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기시 유스케의 『미스터리 클락』은 매우 반가웠다.

바로 앞에서도 얘기했듯 밀실트릭의 묘미는 단단하게 삐친 애인의 속마음처럼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수수께끼를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풀어가는 지적인 쾌감에 있는 것이지 여타 추리 소설처럼 범인이 누구인가를 맞추는 재미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미스터리 클락』에 담긴 네 편의 중편은 초보적인 독자라도 머리만 약간 굴릴 줄 안다면 이야기 초반에 범인이 누구인지 정도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범인이 어떻게 그 일을 감쪽같이 해낼 수 있었는가 하는 트릭에 있다. 만약 독자가 이 수수께끼가 던진 논리적으로 우아한 미끼를 덥석 물 수 있다면, 그 독자는 잠시나마 속세에서 해탈해버림과 동시에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막 편육처럼 굳으려고 하는 찰나에 있던 가련한 회색 뇌세포를 완전 가동해버림으로써 지적 충만감에 휩싸인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무성의 비명을 내지르게 될 것이다.

아무튼, 케이가 드라마에서 툭하면 자신만만하게 내뱉는 ‘이 세상에 풀리지 않는 열쇠는 없다(케이만큼이나 매사에 무뚝뚝하고 자신만만한 교고쿠도가 툭하면 내뱉는 ‘이 세상에는 이상한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이 연상되지 않는가?)’라는 말처럼 결국엔 모든 것이 풀린다. 어쩌면 트릭은 깨어지라고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트릭에 논리의 정을 대고 추리의 망치로 조심스럽게 내려치며 미스터리 껍질을 하나하나씩 벗겨가는 그 명쾌하면서도 논리정연한 과정만이 선사할 수 있는 지적 쾌감이야말로 우리가 밀실트릭을 찾는 이유 중의 이유다.

책 리뷰 | 미스터리 클락 | 기시 유스케 | 오직 밀실트릭만의 논리적으로 우아한 미끼
<우리 집에만 없는 것일까?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하이츠의 팀 에반슨,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아는 것만큼 보고, 아는 것만큼 이해한다

개인적으로 「거울나라의 살인」, 「미스터리 클락」처럼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트릭을 풀 수 있는 구성은 별로다. 이런 구성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기회를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추리 소설 본연의 재미라 할 수 있는 수수께끼 뭉치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면서 얻게 되는 이해와 향유의 재미가 반감된다. 옷 벗기 게임에서 여자 친구가 반드시 질 것을 예상하고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게임에 임한 남자 친구가 어이없게 역전패당한 것처럼 멋쩍은 기분마저 든다. 세상 어느 독자가 전성기 제품은 단순한 모델이라도 50만 달러는 줘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미스터리 클락’에 관심이 있을까? 하물며 예술적인 찬사가 소나기처럼 퍼붓는 그 정교한 세부적인 구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독자가 몇 사람이나 될까? 아니면 나만 모르는 걸까? 다들 집에 ‘메티에 다르 아르카’ 같은 경이로운 명품 시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나의 지식과 앎, 그리고 그것을 원천으로 삼아 한껏 고속도로처럼 뻗어나가는 상상과 공상의 한계를 명백히 벗어나는 세계에서의 미스터리는 그 반대보다 감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는 것만큼 볼 수 있고 아는 것만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리 소설이 처음 등장한 이후 이미 많은 밀실트릭이 선을 보였기에 어중간한 트릭은 예리한 독자들에게 간파당하기 쉬울뿐더러 어설픈 트릭을 내세웠다간 비웃음마저 사기 쉽다. 그런 점에서 『미스터리 클락』은 시대에 맞게 첨단 기기를 활용하고 여기에 전문적 지식을 보탬으로써 예전에는 구현할 수가 없었던 밀실트릭을 창조해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이게 도가 지나치면 독자의 감탄사를 자아내는 대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해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고전적이고 일반적인 소재로 완성한 밀실트릭과 현대적이고 전문적 지식을 활용한 밀실트릭이라는 큰 범주로 나눌 수 있고, 그래서 각각에 따른 호불호가 나뉘는 것으로 결론을 지어도 괜찮을 것 같다.

재미난 것은 「미스터리 클락」에서 범인이 설명하는 트릭의 마술화다. 작가는 등장인물 입을 통해 정교한 기계 트릭에 교묘한 심리 트릭이 어울려야만 비로소 사람들 마음에 환영을 만들어내는 트릭의 마술화가 완성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준비한 심리 트릭은 독자의 정신을 흩트려 놓을 정도로 교묘하고 정교한가? 작가의 박학다식함?, 혹은 철저한 준비성을 충분히 드러내 주는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트릭은 높은 점수를 받을만하지만, 심리 트릭도 그러한가? 단순한 착각이나 잠깐 혼동한 것을 두고 심리 트릭이라고까지 거창하게 주장할 수 있을까? 심리 트릭은 사카구치 안고(坂口 安吾)의 『불연속 살인사건(不連続殺人事件)』 정도는 되어야 ‘심리 트릭’이란 말을 꺼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점들이 『미스터리 클락』을 읽으며 다소 아쉬웠던 점들이지만, 이러한 것들은 추리 소설을 앞에 두고 갖는 기대감의 개인적 차이, 그리고 그런 기대감을 품은 상태에서 책을 읽고 난 후의 만족감에 따라 얼마든지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에 한 귀로 흘려들어도 그만이다. 뭐니 뭐니 해도 추리 소설의 매력은 한번 두 손으로 책을 움켜쥐면, 마치 세 살배기 아기가 엄마 찌찌를 필사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처럼 절대로 손에서 놓기가 싫어지는 그런 흡입력인데, 『미스터리 클락』은 그런 점에서만큼은 굳이 인색하게 굴 필요가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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