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성 질병의 진화 | 폴 W. 이월드 | 바이러스 병독성, 자연선택에 예외는 없다
코로나 19 국가별 치사율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현재(2020년 4월 10일 기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으로 인한 치사율은 국가마다 제각각이다. 코로나 19가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중국은 4.1%, 한국 2%, 미국 3.6%, 프랑스 10.4%, 그리고 ─ 이러다 국가가 붕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바이러스 피해가 극심한 ─ 이탈리아는 12.7%나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러시아 등 치사율이 1% 미만인 국가들도 있다. 1918년과 1919년 사이에 2,500만 ~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알려진 인플루엔자 대유행(일명 스페인 독감)의 세계 평균 사망률이 3~5%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전 세계 평균 치사율 6%(2020년 4월 10일 기준)라는 코로나 19의 병독성은 경이로운 수준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이대로 놔두다간 일부 국가가 붕괴하는 것은 물론 전 세계 누적 사망자 수가 14세기 전후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 사망자 수를 뛰어넘는 것도 문제없을 듯싶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코로나 19 같은 바이러스가 항상 높은 병독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을 웃고 울게 하는 주식 그래프처럼 바이러스 병독성은 한껏 올라가다가도 정점을 찍었다 싶으면 내려오기도 한다. 스페인 독감 같은 경우는 제1차 세계대전 끝 무렵에 나타났다가 종전 후 1년 동안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이러스의 병독성을 약하게 만드는 것일까? 여기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될 수 있는 진화론으로 병독성에 가해지는 선택압(selection pressure)과 그에 따른 병독성 진화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바로 진화의학(Evolutionary Medicine)이며, 그 노력의 결과가 폴 W. 이월드(Paul W. Ewald)의 『전염성 질병의 진화(Evolution of Infectious Disease)』이다.
<언제쯤 마스크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
병원체의 병독성을 강하게 하는 선택 압력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세균 역시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과 여전히 진화 중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면, 이들의 병독성 역시 환경과 자연선택에 따라 강해질 수도 있고, 약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강한 병독성을 선호하는 선택 압력은 무엇이고, 약한 병독성을 선호하는 선택 압력은 무엇일까?
누구라도 알고 있듯 자연선택은 유전자 전달을 증가시키는 특성을 선호한다. 즉, 바이러스의 최우선 목표는 유전자 증식이고, 바이러스가 빠르게 성장하면 그에 따라 병독성도 증가한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강한 병독성은 감염자를 이동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아프게 만들어 자칫 잘못하면 전파력을 상실케 할 수도 있다. 이런 식이면 증식된 바이러스가 미처 다른 감염자로 옮겨가기도 전에 숙주의 죽음과 함께 생의 주기를 마치게 된다. 어떤 병원체가 빠르게 증식하며 병독성을 강화해 나간다는 것은 감염자가 죽어 나가는 만큼 예비 감염자들이 지속해서 보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과 열악한 병실 환경이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다. 이런 혼잡하고 비위생적인 조건에서 공기를 매개로 한 호흡기 바이러스의 전파 잠재력은 엄청나다. 이와 같은 곳에선 감염자가 조기 사망하더라도 주변에 예비 감염자들이 대기하고 있으므로 바이러스가 병독성을 증가하는 쪽으로 진화했을 때 소비된 자원과 감염자 사망에 따른 손실은 신속한 감염자 확보로 상쇄되고도 남는다 (이래서 닭 사육장 같은 밀집되고 비위생적인 곳에서 발생하는 가축 전염병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감염자가 고립되어 있거나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선 빠른 증식(그리고 강한 병독성)을 선호하는 바이러스는 감염자의 죽음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이래서 격리가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의 자연선택은 천천히 증식하거나(그리고 약한 병독성) 잠복기를 가지면서 예비 감염자들을 기다리는 쪽으로 진화하는 바이러스를 선호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다면,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류 면역 결핍 바이러스)가 왜 그토록 오랜 잠복기를 가지도록 진화했는지도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HIV의 주요 전파 경로는 성접촉인데 사람에게 있어서 성접촉은 매우 기회주의적이다. 사람의 성행위 파트너 비율은 문화, 국가, 지역, 성별, 성격, 나이, 종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언제 예비 감염자와 만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날뛰는 HIV는 제풀에 시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HIV의 병독성은 성접촉 비율 높고, 또한 성행위 파트너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증가해야 한다. 『전염성 질병의 진화(Evolution of Infectious Disease)』이 제시한 증거들이 이 주장들을 지지한다.
매개체로 전파되는 전염병의 치사율이 높은 이유
그렇다면 말라리아처럼 모기 등의 매개체로 전파되는 병원체의 병독성은 어떨까? 매개체(모기)는 아픈 사람과 접촉할 수 있을 때만 병원체를 움직이지 못하는 감염자에서 민감한 예비 감염자들에게 운반할 수 있다. 만약 말라리아에 걸렸는데도 모기를 쫓고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팔팔하다면 모기는 병원체를 운반하기 어려워진다. 그뿐만 아니라 말라리아 감염자의 신체에서 병원체가 많이 증식할수록 (고로 심하게 앓을수록) 모기들이 병원체를 감염자에서 예비 감염자로 옮길 확률도 증가한다. 또한, 말라리아 같은 경우 모기라는 안정적인 숙주가 존재하는 한 설령 감염자(여기선 사람)가 사망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이들에겐 사람은 임시 창고에 불과할 뿐이다. 고로 매개체로 전파되는 병원체는 병독성이 강화되는 쪽으로 진화한다( ‘이(louse)’와 연관된 발진티푸스와 ‘벼룩’으로 전파된 흑사병의 높은 병독성을 떠올려 봐라).
콜레라처럼 물을 매개체로 하는 수인성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콜레라에 걸린 사람은 이동할 수 없더라도 이들에게서 나온 오염된 물(설사)은 현대적인 상하수도 급수 시설을 갖추지 못한 지역에선 엄청난 전파력을 일으킨다. 병원체에 오염된 물이 사회에 계속 순환되고 이로 말미암아 감염자들이 계속 발생한다면 콜레라 병독성은 약해질 이유가 없다. 여기서 폴 W. 이월드는 현재는 삼림 벌채, 기후 변화 등으로 멸망한 것으로 알려진 인더스 계곡 문명(하라파 문화라고도 알려진)이 콜레라 때문에 멸망했다고 주장한다. 당시로써 하라파의 하수 시스템은 첨단 기술이었지만, 지금처럼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기능까지는 갖추지 못했다. 고로 도시 사람들은 콜레라에 오염된 물로 인해 집단 사망했고, 그 때문에 도시를 버려야 했었다고 이월드는 설명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파가 사람 대 사람의 접촉으로 일어난다면, 환자의 거동 불능은 감염시킬 수 있는 사람들의 수를 크게 줄일 것이다. 이땐 HIV처럼 잠복 기간을 늘려 기회를 노리거나 감기를 일으키는 리노 바이러스처럼 병독성이 약화하는 쪽으로 진화한다.
마찬가지로 외부에서는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황색포도상구균 같은 병원체가 유독 병원에서 감염되면 사망까지 이르게 할 정도로 병독성이 강해지는 이유는 ─ 그들은 극구 부인하겠지만 ─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매개체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이월드는 설명한다. 참고로 이월드는 병원체 전파 경로에 하수도, 메스, 수술, 사람 대 사람 등 적어도 하나가 인간 문화를 포함할 때 이를 두고 문화적 매개체(cultural vectors)라 칭한다.
<COVID-19 pandemic> |
병원체의 병독성을 약하게 하는 선택 압력
병원체의 병독성이 강화되는 선택 압력과 환경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그 반대도 존재한다. 진화의학의 사명 역시 여기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진화의학은 질병의 생화학적 메커니즘들을 진화학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병독성의 진화 경로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백신과 항생제가 있지만, 이것들은 개발 기간이 길고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내성과 부작용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다. 병독성이 강한 병원체의 진화 경로를 인위적으로 병독성이 약해지는 쪽으로 바꿀 수 있거나, 애초에 병독성이 강한 병원체가 진화할 수 없도록 주변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면 팬데믹(pandemic)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 감염자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프면 병원체는 예비 감염자 확보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여기에 움직이지 못하는 감염자가 혼자 살거나 집단과 떨어져 있다면, 병원체의 유일한 희망은 감염자의 가족뿐이다. 이때 지나친 병독성으로 자식마저 죽어버리면 그 병원체는 그야말로 끝장이기 때문에 엄마에게서 자식으로 전파되는 수직 전파(암컷 모기에게서 새끼 모기에게로 전파되는 말라리아처럼)는 병독성이 약해지거나 무해한 쪽으로 진화한다. 그래서 모유 수유는 수직 전파(약한 병독성이 백신 역할을 한다)를 이용해 아기의 면역력을 키워줄 수 있는 것이다.
병원체의 진화 경로를 병독성이 약해지는 쪽으로 변경하는 것은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보건 상식과도 일치한다. 콜레라 같은 수인성 전염병은 깨끗한 상하수도 시스템을 갖추면 사라지거나 감염되더라도 병독성은 약화한다. 말라리아는 방충망 등으로 모기에게 안 물리도록 하면 된다. 병원 감염은 병원 관계자들이 손 씻기, 소독 등의 위생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면 자연스럽게 줄어들 뿐만 아니라 병독성도 약해진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는 콘돔을 사용하도록 장려하고, ─ 마약 중독자들이 ─ 일회용 주사기를 이용하도록 유도하면 마찬가지로 병독성이 약화하는 쪽으로 진화한다(내가 언급한 것 외에도 병원체의 병독성을 강화하거나 약화하는 진화적 경로와 요인은 다양할 것이다).
이러한 진화론적 논리에 부합하는 역사적 증거와 통계 자료들이 『전염성 질병의 진화(Evolution of Infectious Disease)』에서 독자의 이해를 기다리고 있다.
방역과 병독성의 진화
쉽게 말해,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증식, 전파, 감염에 유리한 환경일수록 병독성이 강해지는 쪽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높은 치사율 때문에 예비 감염자들이 줄어든다면, 즉 높은 증식률과 그에 따른 높은 전염률로 인한 이득이 감염자가 죽었을 때 발생하는 손실보다 적어지게 될 때, 병독성은 약해지는 쪽으로 진화한다. 제1차 세계대전 끝 무렵에 나타나 수천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가 종전 후 1년 동안 서서히 사라져 간 스페인 독감의 경우가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전쟁이 끝나고 먹잇감(예비 감염자)을 잃어버린 바이러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병독성이 약해지다가 지금은 잠시 사라진 상태다.
그렇다면 왜 애초부터 약한 병독성(혹은 무독성)으로 공생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자연선택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이 때문에 사람은 노화, 암, 치매 등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자연선택은 그저 지금 일어나는 상황에서 유전자 증식에 유리한 최선의 길을 선택하도록 압력을 가할 뿐이다.
바이러스 병독성에 숨은 진화론적인 사고를 이해한다면, 코로나 19의 치사율이 국가마다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여러 이유 중 방역 시스템의 중요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이외에도 각 국가의 의료 시스템, 치료의 질적 차이, 각 개인의 건강 상태 등도 치사율에 영향을 줄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처럼 전파 • 감염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역 시스템을 철저하게 가동해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대폭 줄인 국가의 치사율은 ─ 많은 감염자가 발생했음에도 ─ 평균 이하다. 하지만, 초기 방역에 실패하거나 손 놓고 있던 국가의 치사율은 10%를 상회한다.
이것은 사회적 거리 두기, 손 씻기, 마스크 착용, 자가 격리 등의 개인위생과 국가적인 방역 활동이 전염병이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가 탁월했음을 증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병원체의 병독성이 약해지는 쪽으로 진화하도록 선택 압력을 가했다는 방증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진화의학은 방역에 실패하고, 그럼으로써 바이러스가 자유롭게 증식하고 전파될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면 바이러스의 병독성은 강화되는 쪽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앞으로 코로나 19 때문에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만약 각 국가의 방역 실패가 코로나 19의 병독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택 압력을 가하게 된다면, 전 세계적인 사망자 수는 제3차 세계대전을 상상했을 때나 언급될 법한 엄청난 수를 기록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이다. 아무리 못해도 위생 • 방역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던 중세보다는 전염병에 대처하는 것에 있어서는 기술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작금이 훨씬 유리하기에 그 정도로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1346년부터 1351년까지의 흑사병 확산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Timemaps / CC BY-SA> |
이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다?
천연두 등 일부 전염병을 정복하면서 한껏 오만해진 인류는 바이러스 같은 기생체와 사람 같은 숙주 사이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공존 상태가 확립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터지는 대유행은 그것이 바이러스 같은 것에 굴복하고 싶지 않은 인류의 희망과도 같은 환상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과연 인류가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심을 들게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이러스의 병독성과 전염력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생의 주기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숙주를 절멸시킬 정도로까지는 병독성이 무한정으로 강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무시무시했던 흑사병도 결국엔 유럽 인구의 절반 정도는 남겨놓지 않았는가!
물론 이런 자의적인 해석은 위안은커녕 오히려 공포심만 조장해 놓는 하등 쓸데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의 코로나 19 사태가 왜 일어났는가를 되짚어 보면 역시 모든 원인은 인류에게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계속되는 생태계 파괴로 박쥐처럼 전염병을 옮길 가능성이 큰 야생동물의 생활 반경과 인간의 생활 반경이 급속도로 가까워지거나 일부 지역에선 겹치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높은 인구와 높은 인구 밀도, 그리고 신속한 이동 수단의 발달과 세계화는 전염병이 빠르게 확산하는데 최적의 경로를 제공한다. 약에 대한 지나친 신뢰와 의존도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 바이러스(super virus)라는 ─ 인류가 없었더라면 절대 탄생하지 않았을 ─ 진화의 괴물을 낳았으며,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에 대한 진화학적인 접근을 외면함으로써 병독성의 성질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놓친 셈이다.
누군가 세계는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예언과도 같은 말을 했다. 그 말 그대로 이후 인류의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생활과 행동 방식까지 확실하게, 그리고 착실하게 변화한다면, 그래서 자연을 착취하는 현재 지향적인 파괴적 삶에서 미래 지향적인 친환경 삶으로 바뀐다면 그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후세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고, 앞으로도 크고 작은 전쟁, 기아, 기후 변화 그리고 이번 같은 팬데믹이 인류를 종종 위협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전염병이 우리를 위협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병독성의 진화 경로를 인위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는 이월드의 주장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다.
아무튼, 이번 코로나 19 때문에 약간의 공황을 겪은 나로서는 인류의 미래를 더더욱 낙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덕분에 나의 음울하고 염세적인 성격은 더욱 비뚤어질 것이고, 그에 따라 나의 글도 더더욱 딱딱해지고 건조해질 것이 아닐까 걱정이다. 가뜩이나 재미없는 것이 나의 글이 이제는 완전히 개똥 같은 글이 되고 말 것이다.
병원체의 병독성도 자연선택 예외는 아니다
『전염성 질병의 진화(Evolution of Infectious Disease)』는 지금으로선 매우 시기적절한 책이다. 모두 병을 치료하고, 전염을 막고, 방역하는 현재의 일에만 관심이 있지 병원체의 병독성이 환경과 자연선택에 따라 진화한다는 진화론적 사고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팬데믹 같은 상황은 하루아침에 끌 날 일이 아닌 이상 백신 개발과 더불어 코로나 19의 병독성이 강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못하게 막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조심스럽게 추천한다.
고전과도 같은 책임에도 질병 • 병원체뿐만 아니라 작금의 사태에도 많은 통찰을 제공하는 책이다. 그뿐만 아니라 원서 출판 시기(1996년)와 한국어 출판 시기(2014년) 사이의 20년이라는 틈새를 매끄럽게 메운 역자 해제도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이론이 과거의 이론을 뒤집어엎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과학사에선 출판된 지 10년이 지난 책은 유물도 아닌 그저 종이 쪼가리로 전락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전염성 질병의 진화』는 20년이 넘었음에도 그 핵심 논리는 오늘날의 코로나 19 상황을 이해하고,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개념과 정보를 제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병원체를 이해하는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 인지 잊고 있었던 것. 바로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도 우리처럼 진화하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지식과 이해력이 턱없이 부족한 나머지 저자의 논리뿐만 아니라 대략적인 개념조차 글로 제대로 옮기지 못한 듯싶어 애석하다. 오히려 독자의 오해를 부추긴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가뜩이나 이런저런 일로 어둠으로 침몰해 가는 나의 착잡한 마음은 더더욱 금할 길이 없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의 병독성은 자연선택에 따라 강해지거나, 또는 약해지도록 진화한다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인류와 전염병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승리했던 기록들은 ─ 그땐 미처 몰랐지만 ─ 인류가 병원체의 병독성이 약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도록 인위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제약 회사는 자선 단체가 아니다. 고로 코로나 19 백신이 나온다고 해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혹은 국가는)은 한정돼 있다. 백신이 나올 때까지 넋 놓고 기다리기보단 바이러스의 병독성이 약해지도록 국가적인 방역과 개인 방역을 철저히 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방역을 포기한 국가들은 코로나 19의 병독성이 강해지도록 고삐를 풀었다는 점에서 훗날 생각보다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 있음을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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