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에로티스트 사드 | 장 폴 브리겔리 | 인간 정신의 해방자? 그냥 미친 자?
… 내 무덤의 흔적은 그렇게 해서 대지의 표면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질 것이요, 나로서는 사람들의 뇌리로부터 나에 대한 기억이 깨끗이 사라지는 게 더없이 기쁠 따름이다.
1806년 1월 30일, 온전한 정신과 몸 상태로 생 모리스 샤랑통에서 작성함.
D.A.F. 사드(p271)
당신은 ‘사드’를 읽었는가?
아직 ‘사드(Sade)’는 읽지 않았다. 영화, 문학, 정신의학 등 꽤 많은 분야에서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 ‘사디즘(sadism)’, ‘사디스트(sadist)’라는 ─ 그의 이름에서 파생한 ─ 단어는 익히 들어온 바이지만, 사실 나는 그를 시대가 허용할 수 있는 경계를 훌쩍 넘어서는 쾌락을 추구한 방탕아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소설을 쓴 작가였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디즘, 사디스트라는 어딘지 모르게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럽고, 얼굴을 붉힐만한 괴상망측한 뭔가를 떠오르게 하는 단어들이 밀어붙이는 과도한 상상력에 압도된 나머지 어원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사드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력이 없었다. 그렇지만, 도서관의 프랑스 소설들이 몰려 있는 서가를 들쑤시며 다닐 때마다 작게 일어나는 먼지 속에서 종종 내 눈에 띄곤 하던 책 한 권이 있었다. 바로 장 폴 브리겔리(Jean-Paul Brighelli)이 지은 『불멸의 에로티스트 사드(Sade)』이다. 책표지에 빨간 글씨로 새겨진 ‘SADE’라는 글자는 사드의 거북살스러운 명성만큼이나 음침하다. 그것은 마치 나약한 중생을 유혹하려는 악마의 활활 타오르는 음탕한 불꽃처럼 나를 노려본다. 지금까지 왜 이 책을 선택하지 못했을까? 아니 애써 외면해야 했을까? 그것은 내가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려는 의지가 유독 강했다기보다는, 이 책을 대출하려는 행위가 왠지 금단의 열매를 따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섞인 망설임 때문이었다. 나를 파멸로 이끌 것 같은 망상적인 두려움이 악마의 음침한 유혹을 눌러버린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만은….
‘사드’를 읽고 싶게 만드는 잔인한 책
그러나 이 리뷰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렇다고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다기보다는, 조금씩 차오르다가 결국 흘러넘치고만 어둡고 음울한 내 호기심에 결국 굴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사드’에 관한 책을 선택했다는 말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렇다고 구차하게 믿어달라고 호소하고 싶지도 않다. ‘사드’에 관한 책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비록 그 ‘모든 것’이 무엇인지 나열할 수는 없더라도 말이다.
아무튼, 『불멸의 에로티스트 사드(Sade)』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지금,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말하라고 강요한다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드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수사적 표현을 즐겨 쓰는 프랑스 작가 특유의 읽기 수월치 않은 문장들이 보란 듯이 눈앞에서 어지러이 광무를 추는 가운데, 세상에 유례없는 논리적인 광기로 세상에 유례없는 소설을 집필했다는 사드의 전설적인 글쓰기와 신화적인 삶, 그리고 지극히 파괴적이고 불경한 사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적어도 나의 능력으로서는 너무나도 벅차다. 더군다나 사드의 소설을 단 한 권도 읽지 못한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한 가지 확실해지는 것은 하나 있다. 그것은 더는 망설이지 말고, 누군가가 간곡하게 말리더라도, 혹은 애인이 절교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아내가 이혼장을 들이밀더라도, 반드시 사드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의지의 용솟음이다. 19세기에 활동한 비평가이자 작가인 쥘 자냉(Jules Janin)이 사드가 감옥에서 미친 듯이 쓴 『쥐스틴(Justine)』을 읽고 나서 심한 발작을 일으켰다는 실화나, 사드의 작품을 읽었다는 이유로 모든 걸 팽개치고 수녀원에 들어간 한 젊은 처녀의 이야기는 어떻게든 사드의 책을 읽어보겠다는 의지와 호기심을 ‘사드적으로’ 부채질한다. 하지만, 사드의 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대출하려면 용기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동네 도서관에 사드의 책이 총 네 권 있는데, 그중 두 권이 서고에 안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고에 안치된 책은 대출자가 도서관 직원에게 ‘직접’ 문의해야 빌릴 수가 있는 것이며, 그 직원 대부분은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기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바로 안면몰수와 철면피다!
아쉽게도 동네 도서관에는 국내에 번역된 사드의 소설 중 가장 엽기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소돔 120일』은 (아주 오래전에 영화를 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비루먹을 불쾌감을 끝까지 견뎌낸 나 자신이 정말 대단하다) 없다. 그러나 글 읽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조차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악덕 쪽으로) 믿기 어려운 파괴력을 발산하는 책인 『쥐스틴』(미덕의 불운)은 있다! 오호라. 반드시 이 책을 읽고야 말 것이다. 전문연구가가 아니면서 사드를 읽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로부터 무사히 헤어나올 수가 없다는 아니 드 브륑(Annie Le Brun)의 경고도 무시한 채 말이다.
부디 사드의 독으로부터 약간의 상처만을 받기를. 그 약간의 독으로부터 역사와 문학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환상제조기 사드가 선사하는 시정(詩倩) 어린 상상력을 흡수할 수 있기를. 부디 신의 가호가 있기를.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알라후 아크바르….
‘사드’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사드’는 없다?
이 책은 방탕과 감금이라는 이분법으로 쉽게 구분되는 사드의 일생뿐만 아니라 지난 2세기에 걸쳐 악덕의 화신에서 자유의 화신으로 부침에 부침을 거듭한 사드의 철학, 사상, 작품에 대한 비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종교적, 사회적, 윤리적 관습과 더불어 선과 악을 초월하여 신과 자연에 저항하는 고독한 외골수로 신격화된 자유인이자 순교자로서의 사드, 그리고 그저 방탕하고 변태적이면서 사악하고 신성모독적이지만 절대 미치지는 않은 광인으로서의 사드가 한 권의 책 안에서 서로 팽팽하게 대척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 일말의 관용도 없었던 과거에 비교하면 ─ 긍정적으로 재평가되는 최근의 분위기를 반영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균형을 잃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사드에 대해서는 말하면서도 정작 사드는 없다. 전기(傳記)에 할당된 분량이 빈약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사드가 죽은 지 벌써 200여 년이나 지났다는 것과 당대 끔찍스러운 악명으로 말미암아 그에 대한 자료가 별로 보존되지 못했던 소치이다. 그러하니 사드의 삶이 도대체 어떠했기에 불미스러운 모든 수식어를 석권할 수 있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던 나로서는 깊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몇 가지 소득이 있다면, 사드가 저지른 방탕이 흉흉한 명성만큼은 대단치 않다는 것(그렇다고 평범하다는 것은 아니다!)과 사드가 걷잡을 수 없는 열정에 휩쓸린 나머지 극단적인 쾌락과 방탕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논리적이고 일관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누군가는 그것을 단순히 ‘광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을 뒤엎는 악덕의 자유의지를 (물론 이 대부분은 거칠 것 없는 글쓰기를 통해) 실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드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수사적인 문장을 무지막지하게 구사하는 프랑스 작가들의 글이 형언하고자 하는 사드의 그 사드적인 무언가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마치 미증유의 혼란 속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가 느낄법한 방향을 잃었다는 두려움과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곳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호기심이 자석의 척력처럼 서로 밀어내는 가운데, 그 어쩔 수 없는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나는 당황하는 것이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광기 비슷한 그 무언가를 자유의지로 발산한 자이자 미덕을 강간한 자이자 악덕의 지존인 그 앞에서 나는 오줌 싼 어린애처럼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이다. 신 앞에 선 한 인간이 그 전지전능한 권위에 압도되어 옴짝달싹 못 하는 것처럼 신과 자연을 거부한 사드의 사악한 힘에 짓눌려 나는 녹다운당한 것이다.
<Marquis de Sade prisoner, 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한 줌의 기적처럼...
그렇게 방바닥에 널브러진 나는 어느새 사드가 조촐한 난교파티를 벌이던 라코스트 성의 음침한 구석에 내팽개쳐 있다. 방종과 방탕, 통음난무의 질퍽한 흔적이 역력한 그곳을 꽉 채운 사드의 얼굴은 블랙홀처럼 짙은 음영으로 가려져 있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드의 한쪽 손에는 과거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을 전율에 떨게 했던 채찍이 들려 있다. 채찍이 차가운 돌바닥을 매몰차게 내리치는 소리는 엉덩이를 채찍질 당한 말처럼 나를 엉금엉금 기어가게 했고, 채찍이 서늘한 공기를 가르는 음흉한 소리는 내 항문을 뚫고 들어와 고막을 울린다. 정확히 그곳, 채찍이 내리친 폭력의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그곳에는 제단 위로 올라탄 성상처럼 한 권의 책이 광휘를 발하고 있다. 그때까지도 사정없이 내 고막을 때리던 채찍 소리는 빛으로 휩싸인 책에 나의 손이 닿는 순간 기적처럼 사라진다. 사드도 기적처럼 사라졌다. 나도 기적처럼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손에는 기적처럼 한 권의 책이 놓여 있다. 이 모두가 기적이었고, 그래서 나는 자연조차 철저하게 거부한 사드가 탄생한 것도 기적이라고 부르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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