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도수: RESET(致命倒數, 2017) | 세 명의 ‘나’, 그중 누가 살아남아야 하는가?
“너희들은 곧 파멸하게 될 거야.” - 최이후
"그의 말이 옳아. 이 세계에선 우리 중 하나만 존재할 수밖에 없어.” - 시아티엔
때는 ‘평행이론’이 증명된 가까운 미래.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평행이론을 접목한 시공간 연구에 대한 실제적인 성과를 눈앞에 둔 두 연구소가 있었다. 하나는 미국에 있는 영도 IPT 연구소였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 있는 푸른 섬 넥서스 연구소였다. 하지만, 영도 IPT 연구소가 무리한 인체 실험을 강행하던 중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사태가 벌어지면서 연구원이 살해되고 연구자료도 소실된다. 주주들이 들고 일어설 것이 두려웠던 IPT는 진상을 은폐하면서 재기할 기회를 노린다. 그들은 연구원 중 하나였던 최이후를 중국에 보내 넥서스의 연구 자료를 탈취할 음모를 세운다.
영장류에 대한 모의실험까지 무사히 마친 넥서스는 이제 곧 인체실험을 앞두고 있었고, 넥서스의 시공간 연구를 주도하고 있던 핵심 연구원 시아티엔은 관련 부서원들이 모두 모인 회의에서 두 달 안에 인체 실험을 끝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회의를 마치고 나온 시아티엔은 동료 연구원인 샹동을 통해 지난번 영장류 실험에서 처음에는 100% 일치했던 DNA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대로라면 인체 실험은 미뤄야 할 정도로 위험성이 높았다.
한편, 시아티엔의 하나뿐인 아들 도우도우를 납치한 최이후는 시아티엔을 협박하는 데 성공하고, 시아티엔은 최이후가 안배한 동료 연구원의 죽음을 이용해 모든 연구 자료를 최이후에게 가져다주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최이후는 약속과는 달리 도우도우를 순순히 돌려주지 않는다. 곧 넥서스 건물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고 엄마 품에 안긴 작은 소년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다. 어떻게든 아들을 되살리고 싶었던 시아티엔은 폭발로 아수라장으로 변한 연구소로 돌아가 자신이 직접 실험 대상이 되어 아들이 죽기 전 과거로 돌아가기로 하는데 ….
중국의 혁명 시대였다면 마땅히 아들을 희생시켜야 했지만(실제로도 그러한 혁명 열사가 많았었고), 중국이 많이 좋아지긴 했나 보다. 예전 같으면 감상적인 부르주아의 반동적인 작품이라고 비난을 받을만한 영화가 요즘은 버젓이 극장 간판에 내걸리는 것을 보니 말이다.
아무튼, 평행이론을 응용한 시간 이동을 소재로 한 영화로 시아티엔이 죽은 아들을 살리고자 과거로 여러 번 이동하는 설정은 「서유기 – 월광보합(西遊記 第壹伯零壹回 之 月光寶盒), 1994」에서 지존보(주성치)가 죽은 백정정(막문위)를 되살리고자 수시로 과거로 이동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뭐 그렇다고 그렇게 웃기는 장면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증인이다(我是证人, the witness, 2015)」에서 간드러진 코맹맹이 목소리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 양미(Yang Mi, 杨幂)가 강렬한 모성애를 발휘하는 시아티엔으로 열연한다.
보통 시간여행을 소재한 영화에서는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가 마주치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평행이론의 영향 때문인지 세 명의 ‘나’가 한자리에 모이는 기이한 광경을 연출한다. 이 중에서 시간여행을 가장 많이 한 ‘나’가 유난히 난폭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영도 IPT 연구소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와 넥서스의 영장류 실험 결과 중 DNA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나름 이야기의 연결 고리를 짜맞추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영화 속 두 연구소의 대립은 앞으로 과학계에서도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듯하다.
공상 과학 장르를 좋아하는 일인으로서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는 언제나 환영이지만, 이 영화만큼은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보다는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양미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더 큰 견인력을 발휘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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