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입문서, 그리고 그 응용과 파장을 다룬 책
블록체인이 도대체 뭐길래!
블록체인 • 비트코인 • 암호화폐 등의 신기술 따위는 뭔가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호사가들에겐 찰떡처럼 궁합이 맞을망정 그저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도 버거운 나에겐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은행에 저축할 기회는커녕 근심을 시원하게 부쳐줄 지폐 부채 한두 개 정도 만드는데도 간당간당한 내가 디지털 화폐 따위에 눈을 돌릴 여유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돈’과 관련된 이야기만 꺼내면 울적해지는 것은 둘째치고 ‘암호화폐 = 비트코인 = 블록체인’이란 단순무식한 등식을 가진 내가 첫눈에 반하기라도 한 것처럼 독서 방향타를 ‘블록체인’으로 급선회한 이유는 순전히 조지 길더(George Gilder)의 『구글의 종말(Life After Google)』이란 책 때문이다. 조지 길더는 자신의 책에서 블록체인이 가져올 혁명과도 같은 변화 때문에 구글 시대가 곧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문제는 블록체인을 모르고서는 조지 길더가 구구절절 펼치는 논지에서 문맥 사이마다 기름처럼 좔좔 흐르는 박학다식함에 주눅이 들기는 어렵지 않지만, ‘블록체인이 왜, 어떻게, 그리고 무엇으로 구글의 독주체제를 위협하는가?’ 하는 책의 정수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기껏해야 기분상으로 어렴풋하게, 그리고 막연하게 감이 잡히는 정도?
고로 ‘블록체인이 도대체 뭐길래 구글을 위협하는 것도 모자라 감히 끝장낼 것이라고 큰소리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에 ‘블록체인’에 대한 책 두 권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블록체인, 새 번영의 시대를 이끌 견인차?> |
블록체인 입문서 | 블록체인 무엇인가?
다니엘 드레셔(Daniel Drescher)의 『블록체인 무엇인가(Blockchain Basics)』는 블록체인에 대한 기술적이고 기본적인 이론을 다룬 개념서다. 블록체인과 연상된 그 무엇 하나도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이라도, 울렁거리게 하는 어려운 공식 같은 것 하나 없다, 난데없이 수면을 몰고 오는 난해한 기술적 용어도 최대한 억제했다, 그렇게 일상적 언어로 풀어쓰려고 노력한 이 책 한 권이면, 그리고 읽는 사람이 완전한 백치가 아니라면 ‘블록체인’에 대한 개념이 뇌 주름 사이사이에 송골송골 맺힐 것이다. 고로 블록체인의 기술적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설명만 있는 이 책은 블록체인 입문서로 추천할 만하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 드레셔는 블록체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블록체인이란 무결성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순서에 따라 연결된 블록들의 정보 내용을 암호화 기법과 보안기술을 이용해 협상하는 알고리즘으로 구성된 소프트웨어 요소를 활용하는 원장의 순수 분산 P2P 시스템을 의미한다.
세상을 뒤집어엎을 수도 있는 혁신적인 기술로 거론되는 블록체인에 목마른 당신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읽고 넘어가야 할 책이다. 한편으론, 과장되고 현혹적인 투자 유치 광고에 휩쓸려 목돈을 탕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사로잡혀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블록체인에 대한 개념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의 응용과 여파 | 블록체인 혁명
반면에 탭스콧(Tapscott) 형제가 저술한 『블록체인 혁명(Blockchain Revolution)』은 블록체인의 다양한 응용과 그런 것들이 인류 세계에 끼칠 파급력을 다루고 있다. 재밌게도 이 책은 ─ 냉소적으로 본다면 ─ 바로 앞에서 말한 ‘과장되고 현혹적인’, 그리고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마치 공산당의 선전 책자 같은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그래서 요란하고 알맹이는 없는 허황한 이야기로 가득 찬 그런 책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은 블록체인이 인류 문명의 경제 • 사회 • 문화뿐만 아니라 정치에까지 미칠 혁명적인 영향력으로 현재 인류가 겪는 많은 고질적인 병폐를 구원할 구세주나 만병통치약처럼 칭송하고 있다는 점이 더더욱 그러한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블록체인이 인류를 새로운 번영의 시대로 인도하고 새로운 정치 프로세스를 촉진하는 제2세대 인터넷으로 기능할 것이라니,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공산당의 뜬구름 잡는 선전 문구처럼 들리겠지만, 다니엘 드레셔 덕분에 블록체인에 대한 개념을 어느 정도 확립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절제된 상상력으로 탭스콧 형제의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한 조미료 같은 과장을 적절하게 걸러낼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라면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맥락에서 살짝 소름을 돋게 하는 예지를 깨우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할 수 있는, 공상과학소설 같은 흥미로운 책이다.
아무튼, 위에서 언급한 세 권 모두 어떻게든 블록체인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책들이라는 점만은 알아두자. 이런 점 때문에 괜한 반항심을 자극받은 내가 또다시 블록체인에 관한 책을 본다면 그땐 블록체인을 비판하는 책을 보게 될 것 같다.
세부적인 것은 몰라도 사용할 수 있다지만...
구글 설립자 래리 페이지, 이더리움 창안자 비탈리크 부테린 같은 극소수의 천재가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비전을 인류에게 제시한다면, 소수의 엘리트가 그것을 활용해 기업을 창업하고 부를 획득한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할까? 평범한 대다수는 돈과 시간을 소비하면서 새 기술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인터넷이 작동하는 기술적이고 세부적인 원리를 알지 못해도 인터넷을 사용하고 또한 인터넷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블록체인 시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드레셔의 충고대로 기본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블록체인의 전반적인 가치나 잠재적인 영향력을 가늠할 수 없을뿐더러 블록체인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또한 (블록체인을 포함해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부족하면 자극적이고 과장된 광고에 휩쓸려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사로잡히기 쉬워 나중에 실망할 수도 있다.
고로 오늘 소개한 두 책은 곧 도래할 새 시대가 ‘사물 인터넷 시대’가 되었든 ‘4차 • 5차 산업 혁명’의 시대가 되었든, 하여간 뭐가 되었든 간에 ─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 새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근간이 될 확률이 높은 블록체인에 대한 개념, 블록체인 응용 분야, 블록체인의 허와 실(물론 한쪽으로 쏠린),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 경제적 • 정치적 여파를 이해하고자 하는 데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책들이다.
만약 오늘 글에서 언급한 책 세 권의 독서 순서를 추천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블록체인 무엇인가』 >> 『블록체인 혁명』 >> 『구글의 종말』
<블록체인 성공의 핵심엔 스마트폰이 있다!> |
내가 생각하는 블록체인 대중화의 걸림돌
현재의 사후적인 재분배를 넘어선 사전적인 재분배, 기회의 재분배, 더욱더 효율적이고 국민에게 밀착된 정부, 은행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새 형태의 금융 시스템 등등 무엇이 되었든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다줄 혜택의 열쇠는 스마트폰이다. 왜냐하면, PC가 없는 저소득층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며 중국이 신용카드 과정을 건너뛰고 모바일 결제로 이행한 것처럼 일부 국가는 PC 시대를 건너뛰고 스마트폰 시대로 바로 진입하는 추세다. 하지만, 내 의견으로 보자면 여기엔 큰 걸림돌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는 스마트폰이 가지는 저장 공간의 한계다.
블록체인이 무결성과 보안성과 탈중앙화라는 장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원장(ledger)의 순수 분산 P2P 시스템이라는 데 있으며 네트워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데이터 교환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원장이다. 하지만, 이것이 스마트폰 저장 공간만으로 가능할 것인가? 2021년 8월 16일 기준 비트코인 원장(블록체인) 크기는 359GB다.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는 모든 노드가 원장을 보유해야 한다. 이것은 블록체인의 핵심 기술이므로 철폐할 수 없다. 하지만, 원장 크기는 무한하게 증가하는 반면 스마트폰의 저장 공간은 유한하다. 그리고 블록체인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마다 원장을 구분해서 보관한다면 스마트폰이 저장해야 할 원장 크기는 더더욱 증가하게 된다. 특히 저소득층이 사용하는 저가형 스마트폰의 저장 공간을 고려하면, 원장 크기 문제는 블록체인이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 중 단연코 첫째이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는 트래픽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앱이 스마트폰에서 소비할 모바일 트래픽은 모든 이에게 부담이다.
세 번째는 자원 점유다. 블록체인은 원장을 유지하기 위해 노드 자원의 10%를 지속해 사용한다. 이러한 앱을 여러 개 사용한다면? 종량제를 사용 중이라면 이 트래픽은 매우 부담스럽다. 또한, 이로 인한 배터리 소모도 무시할 수 없다. 블록체인 기술이 대중화되려면 스마트폰 트래픽 요금이 획기적으로 저렴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배터리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내 무지에서 비롯된 쓸데없는 기우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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