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병동(The Void, 2016) | 공허함을 불러일으키는 혼돈
"그 많은 걸 보여줬건만 아직도 이해를 못 하는군"
영화 「살인병동(The Void, 2016)」은 시작하자마자 총에 맞아 쓰러진 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한 여자를 그대로 불에 태우는 오싹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문제는 사람을 산 채로 바비큐로 만드는 잔인함이 아니라 그 이후로는 이렇다 할 공포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 아니면 내가 무감각한 것일 수도.
몸에 살짝 닿기만 해도 닭이 될 것 같은 끈적끈적하고 징글징글한 촉수를 이리저리 뻗으며 먹이를 낚아채는 괴물이 등장하여 사람을 잡아먹기도 하고, KKK단을 연상시키는 광신도들이 병동에 갇힌 사람들을 소리소문없이 압박해 오기도 하고, 갖가지 모양으로 절단된 시체의 잔해가 널브러진 모양새가 도살장이나 다름없는 음침한 지하실에서 시체들이 갑자기 부활하며 시청자를 잠시 긴장시키기도 하고, 너무나도 딸을 사랑한 나머지 죽은 딸의 부활을 위해 이 모든 잡탕을 애써 준비한 아버지의 가상한 노력이 안쓰럽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런데도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나의 감각을 깨우기에는 부족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까?’ 하는 순수한 호기심보다는 이제 막 '영화 모드'로 변경한 모니터와 의자, 쿠션 등의 자리 배치를 바로 원위치시키기가 귀찮아 끝까지 보게 된, 그렇게 영화 자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힘에 굴복해 엔딩을 본 영화다. 그런 고로 누군가에게 추천하기는 꽤 껄끄럽기는 하다. 다만, 크리쳐물이나 부활 의식을 좋아하는 마니아라면 염두에 둘만 한 영화이기는 하다.
「살인병동(The Void, 2016)」은 영상도 영상이지만, 내용도 뒤죽박죽인 게 이런저런 잡념이 많은 나로서는 도통 집중할 수가 없다. 도대체 감독 나부랭이가 뭘 보여주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뭘 말해주고자 하는 것인지 나 같은 멍청이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마지막 피라미드 장면은 감독이 상상하는 사후 세계관이 조금은 엿보이는 것 같아 의아한 감흥을 주었다.
혹은 이 모든 혼돈을 통해 삶과 죽음의 공허함(void)을 깨우쳐주고자 했던 것일까? 그걸 노린 거라면 감독은 천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살인병동'이란 한국어 제목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또 다른 멍청이가 멋대로 갖다 붙인 것이리라.
그런데 왜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은 죄다 못생긴 것일까? 괴상하게 생긴 물체라서 그런 것일까? 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괴물은 없는 것일까? 괴상한 것은 아름다울 수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아름다운 것은 괴상할 수가 없는 것일까? 괴상한 것과 아름다운 것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그런 서먹서먹한 관계일까? 그러고 보니 「살인병동(The Void, 2016)」에는 공포영화 하면 빠질 수 없는 감초인 미녀(뭐,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가 등장하지 않았다. 아마 이것에 발끈해서 이런 무지막지한 리뷰를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병원에 갇힌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할 때, 누가 살아남을 것인지 예측해 보는 재미라도 놓치면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을 것 같아 몇 마디 더 적어보자면, 난 의사 지망생 킴이 가장 먼저 죽을 것 같았는데(아니면 초반부터 밥맛없이 구는 킴이 내심 죽기를 바랬는지도), 이년이 기어코 날 한 방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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