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제도 | 월리스 | 문명과 원시의 숙명적인 충돌이 소리 없이 진행된 전장
우리 잉글랜드인이 서로의 멱을 따거나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이웃에게 저지르지 않도록 수많은 법률이 해마다 제정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또한 수많은 법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수천 명의 법률가와 변호사를 생각해 보라. 도보에 법률이 너무 적다면 잉글랜드에는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p551)
선택해야 한다는 호기심과 망설임 사이를 방황하다
사실 도서관의 낡은 나무 책장 사이에 숙연히 서 있던 이 책과 처음 마주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도시에 콕 박혀 사는 나에겐 ‘오지’와 동격이 되기에 충분한 지역인 ‘말레이제도(The Malay Archipelago)’라는 단어가 풍기는 신비로움과 낯섦, 그리고 ‘진화’의 또 다른 발견자이자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그늘에 가려 살아생전에 빛다운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자연사학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의 대표작이라는 문구는 죽은 듯 자고 있던 나의 지적 호기심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책에서는 고전 특유의 퀴퀴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자극적인 냄새가 연기처럼 몽실몽실 피어올라 독가스처럼 주변을 압도한다. 하지만, 오지게 두꺼운 책의 두께가 발산하는 무지막지한 부담감은 빈번히 나의 호기심을 압살하는 데 성공했으며, 결국 한 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는 위대한 고전임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패잔병처럼, 아니 도둑질에 실패한 어쭙잖은 좀도둑처럼 빈털터리로 책장 앞을 쓸쓸하게 떠나야 했다.
그러하길 꽤 반복했다. 책을 반납하고 새 책을 대출하러 도서관에 갈 때마다 난 병원에 입원한 직장 상사를 마지못해 병문안 온 가련한 부하직원처럼 『말레이 제도』 앞을 서성거렸고, 그때마다 이 책은 마치 나를 조롱하듯 보이지 않는 비웃음을 머금었다. 보디빌더 같은 그 육중한 몸매에 압도당한 나는 불량배 앞을 지나가는 주눅 든 가련한 양처럼 눈치를 살금살금 보며 뒷걸음치기 일쑤였다.
어찌 되었든, 자연 과학 분야의 고전으로서는 매우 드문 발견이라 할 수 있는 『말레이 제도』를 선택해야 한다는 호기심과 망설임 사이를 시소처럼 저울질하고 있을 때, 묵직한 직격탄을 쏟아부으며 이 균형을 한방에 깨트린 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과학 분야의 또 다른 고전인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의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이다.
<Great Shielded Grasshopper. (from Mr. A. Wallace's "Malay Archipelago")> |
말레이제도만큼이나 오지의 책을 선택한 이유?
얼핏 보면 두 책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지만,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탄생할 수 있게 한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면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조류를 연구하는 생태학자로서 탐험하고 있었던 1972년의 뉴기니가 나온다. 그때 그는 그 지역의 명망 있는 카리스마적인 정치가 얄리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때 얄리가 다이아몬드에게 던진 질문, 즉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라는 이 한마디가 역작 『총, 균, 쇠』가 탄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얄리의 한 줄짜리 텍스트 광고만큼이나 짧은 질문에 대한 대답치곤 만리장성만큼이나 엄청나게 긴 대답이 된 『총, 균, 쇠』를 통해 다이아몬드는 환경의 차이가 문명의 차이를 만들었음을, 역사학. 생태학, 진화 생물학, 유전학, 분자생물학, 언어학, 고고학, 생태지리학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학문을 총동원하여 검증의 검증을 거듭한다. 과학적으로 엄밀하고 논리적으로도 질서와 균형이 잡힌 명확한 설명이 독자를 블랙홀처럼 끌어들인다. 그중에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환경이 역사를 형성했던 수많은 자연 발생적인 사례를 통해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역사적 사실을 예증한 부분이고, 그런 사례 중 가장 극적인 사례가 바로 뉴기니섬이다.
다이아몬드가 방문했던 1972년의 뉴기니와 2020년이 된 오늘날의 뉴기니도 다르겠지만, 이보다는 월리스가 말레이제도에 첫발을 들여놓았던 지금으로부터 무려 166년 전인 1854년의 뉴기니는 더더욱 다를 것이다. 1854년 뉴기니는 뉴기니가 유럽인에게 처음 발견된 16세기 이후로 이미 300년이나 지난시기였지만, 아직 서구 문명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기 전이었으므로 지구상에서 원시적인 생태와 인류의 원시적인 삶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 중 하나였다. 즉, 다이아몬드가 방문했던 1972년보다 역사학적으로, 민족학적으로, 생태학적으로, 언어학적으로 더 과거에 해당하므로 월리스의 책은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환경적 차이가 문명의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그의 핵심 이론과 그 검증 과정을 반추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록이다.
한편으로는 지구의 모든 곳이 도굴꾼 무리가 쓸고 지나간 것처럼 낱낱이 파헤쳐진 작금에 비록 식민지 상태이지만, 문명의 이기와 저주에 완전히 잠식당하지 않은 채 아직 원시의 모습이 더 짙게 남아 있던 1854년의 말레이제도는 미지의 세계를 마음껏 누리고 싶은 탐험가 정신이 충만한 독자에게도 더없이 좋은 책이다.
환경이 역사를 형성했던 가장 극적인 자연 발생적 사례, 뉴기니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문명의 차이를 만들어 낸 환경의 차이 중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한 것이 바로 작물화와 가축화에 유리한 지역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서구 문명이 최종적으로 힘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원인은 ‘총, 균, 쇠’지만, 서구 문명이 다른 문명보다 ‘총, 균, 쇠’를 먼저 획득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유라시아 대륙이 다른 지역보다 작물화와 가축화, 그리고 그것의 전파가 유리했기 때문이다. 뉴기니 역시 독립적으로 작물화를 시작한 곳으로 추정되지만, 16세기 유럽인에게 발견될 때까지 여전히 석기 문명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환경이 역사를 형성했던 수많은 자연 발생적인 사례 중 가장 극적인 사례라고 언급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중부 및 서부와 필리핀에서만 374개 언어가 사용되고 있고, 20㎞마다 언어가 다르다는 뉴기니는 오늘날 세계에서 사용되는 약 5,000개의 언어 중 1,000개가 집약된 곳이다. 뉴기니섬 자체가 외딴곳이기도 하지만, 언어가 그렇게 많이 분기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곳에 사는 부족민들 사이사이를 지리적 장벽이 철저하게 가로막고 있었음을 뜻한다. 고지대와 저지대,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중간 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와 언어가 제각각이라는 것은 이들을 가로막는 지형이 얼마나 험준하고 가파르고 깊은지를 대변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고도의 높고 낮음과 바다와 얼마나 가깝고 머느냐에 따라 기후도 제각각이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지역은 고지대 일부였겠지만, 가파른 절벽과 협곡이 즐비한 고지대 특성이 제약하고 있어 그마저도 넓은 면적에서 재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즉 생산량의 한계가 분명하고 확장이 어렵다는 말인데, 이 두 가지가 어려우면 농업 혁명이 인류에게 안겨준 저주 같은 축복인 ‘잉여’가 불가능했음을 뜻한다.
고로 뉴기니에 제국이나 왕국이 들어설 수 없었던 것은 뉴기니의 작물화 능력과 그 생산력이 수십 명의 무리 사회에서 벗어나 수백 명의 부족 사회 정도까지는 먹여 살릴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수천 명의 추장 사회나 수만 명의 국가까지 책임지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잉여’를 생산하고 그 ‘잉여’가 인구 증가를 가속하고 그렇게 증가한 인구가 농사 지역을 확대하여 또다시 ‘잉여’를 생산하고, 이것이 반복되고 축적되어 어느 순간 ‘잉여’가 비노동 계층인 기술자들과 예술가들을 먹여 살릴 만큼 충분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기술이 발전하고 문명이 싹틀 수 있다.
한편으론 뉴기니에 농사가 정착되지 못한 것은 농사로 얻는 이점이 기존의 수렵 • 채집보다 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존이 잘 되는 생사고를 얻을 수 있는 사고야자나무는 열흘의 노동만 투자하면 남자 한 명의 1년 치 식량을 생산할 수 있다. 사고야자나무가 자라는 지역의 주민들은 벼를 재배하는 주민들만큼 잘사는 경우가 결코 없다는 월리스의 목격담을 보면 농사가 가져다줄 이점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을 바로 코앞에 두고 농사를 짓는 바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끝으로 뉴기니가 다른 문명들과 교류하기에는 너무나 변방이었다는 점도 뉴기니가 석기 문명으로 남아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학문적이기보다는 탐험 그 자체에 매료된 월리스
월리스 얘기로 돌아가 보면,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월리스는 비운의 과학자다. 월리스 역시 동시대에 살았던 다윈처럼 ‘진화’를 발견한 사람 중 하나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진화’ 이야기만 나오면 천리마 꼬리에 쉬파리 따라가듯 다윈은 반드시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꼽사리로나마 월리스가 등장하는 일도 드물다. ‘진화’를 발견한 업적을 다윈이 독차지한 것에 대해 월리스가 다윈에게 양보했다는 말도 있고, 다윈에게 강탈당했다고 하는 음모론도 있다. 훗날 다윈이 월리스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을 보면 업적을 빼앗은 죄책감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말레이 제도』를 읽다 보면 애초에 월리스는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학문적 성과를 이루어 크게 성공해 보겠다는 욕심 자체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엄청난 거리를 ‘대항해 시대’에나 어울릴법한 재래식 프라우선으로 항해하면서 불운하게도 수없이 마주쳤던 ‘스콜, 무풍지대, 맞바람’이라는 악천후 삼위일체가 선사한 재앙 같았던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묘사한 장면은 마치 뿌듯하게 익스트림 스포츠를 완수한 듯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살짝 느껴지기도 한다. 매우 이국적인 풍경에 대한 매우 감상적인 묘사에서는 마치 해외로 첫 배낭여행을 떠난 어느 젊은이의 기쁨과 설렘이 살짝 고동쳐온다. 원주민이나 야만인의 풍습을 이야기꾼처럼 바람 잡아 전하는 모습은 천생 소설가다. 이뿐만 아니라 말레이제도의 네덜란드 식민지가 영국의 식민지와는 달리 평화롭게 번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국의 식민 정책을 매섭게 꼬집는 모습은 저널리스트나 다름없다. 자연과 그 자연이 낳은 피조물의 아름다움에 거듭 감탄하면서 인류 문명의 진보가 이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뼈아픈 충고를 한탄하듯 뱉어내는 그때만큼은 자연 애호가라고 불러도 좋다. 영국 같은 문명국에서 시행되는 무수한 법 같은 제도 없이도 서로 멱을 따는 일 없이 잘 사는 야만인들의 조화로운 모습에서 서구 문명의 도덕적 타락을 반추하고, 토지 국유화와 공기업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그리고 지식 • 기술을 오직 상업과 부를 확장하는 데에만 정열적으로 쏟아붓는, 즉 ‘성장지상주의’가 잉태할 수밖에 없는 악덕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은 혁명 성향이 다분한 사회주의자다.
즉, 월리스는 말레이제도를 탐사하면서 보고 느끼고 머릿속에 떠올렸던 모든 것과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가치관이나 신념을 학문적인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기술했다. 이것은 마치 내가 리뷰를 쓰면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얘기를 여기저기에 온통 토해내는 것과 같다.
이런 점을 보면 월리스가 말레이제도를 탐사하고 있을 시점에 다윈이 ‘진화’에 대해 어느 정도 구상하고 있었던 것에 반해 월리스는 말레이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진화’를 구체적으로 떠올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신 말레이제도를 직접 경험하고 관찰하고 나서야 ‘표본 채집 과정에서 언뜻 관찰한 (더 흥미로운) 변이와 지리적 분포의 몇 가지 문제를’ 통해 진화에 대한 대략적인 개념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학구적인 욕심을 뛰어넘은 순수한 호기심
월리스는 다윈처럼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한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을 정도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가 초판 머리말에서 밝혔듯 말레이제도 탐사의 주목적은 개인적인 채집과 더불어 박물관과 아마추어 자연사학자에게 공급할 표본을 얻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표본들을 판 돈으로 생계를 꾸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지적 호기심이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심이 남들보다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가 대학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책을 읽었다는 점과 『말레이 제도』를 출판하기 전에 이미 남아메리카 아마존에서 채집 탐사했던 경험을 보면, 그의 탐구열과 모험심은 그 누구 못지않게 충만했다. 독서는 그의 이러한 기질들을 더욱 자극했을 것이다. 다만, 순순히 다윈의 업적을 인정한 것을 보면 그것이 학계에 명성을 떨쳐보겠다는 학구적인 욕심으로까지는 번지지 않은 것 같다.
유럽인이 가보지 못한 오지의 세계를 탐사하면서 얻은 진귀한 표본들을 팔아 돈도 벌고, 현장 연구만이 가져다주는 생생함과 신선함에 매혹되는 소수 중의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도 누리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학구적인 열정과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그렇게 해서 세상에 발표할만한 학문적 성과도 얻었으니 말레이제도 탐사는 월리스에겐 하늘이 내린 축복 같은 여행이었다.
월리스가 ‘진화론’이라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은 다윈을 너무 믿었거나 그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월리스의 순진함 때문일 수도 있고, 혁신의 경쟁에서 종종 일어나는 마지막 마무리에서의 한 끗 차이가 불러온 실패일 수도 있지만, 순수한 지적 호기심과 자연의 변이가 일구어낸 경이로움에 매혹된 영혼의 울림, 그리고 남다른 모험심과 탐구심을 충족시켜주는 데 필요한 경제적 이익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던 불안한 재정 상황 등이 학문적 연구에만 몰두할 여유를 빼앗아 갔는지도 모른다.
오직 관찰만을 통해 ‘진화’를 유추하다
결국, 월리스를 말레이제도라는 오지 중의 오지로 가게 만든 경제적 상황과 그런 상황을 일거양득 이상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불타는 탐구심, 그리고 탐사 여행이 단순한 표본 채집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 본의 아니게 발동한 ─ 날카로운 관찰력과 그 관찰력에서 얻어진 세부적인 사실들을 종합하여 전체적인 차이를 논리적으로 유추해낸 명민한 통찰력은 흥미로운 오지 탐사 정도로만 끝날 수 있었던 여행을 ‘진화’를 (비록 책에서는 ‘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말로 분리해서 설명했지만) 발견하는 위대한 여정으로 거듭나게 했던 흐름이었던 것 같다.
눈여겨볼 것은 동물의 습성과 본능을 불변하는 고정된 점으로 여기거나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기존의 관념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는 ‘변이’와 ‘자연선택’ 이론을 누구의 훈수나 가르침 없이 오직 자신의 두 눈만으로 관찰한 사실들을 탐구함으로써 터득했다는 것이다. 다윈이 비글호 탐험이 끝나고 나서 20여 년이나 지난 후에야 ‘진화론’을 완성한 것을 보면, 월리스의 영민함은 가히 눈부시다. 하지만, 그 발견이 매우 우발적이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이러한 특이함 때문에 월리스는 자신의 발견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만한 대발견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그때는 깨닫지 못한 것 같다. 또한, 다윈에게 보낸 논문을 보면 우발적인 발견에서 얻은 ‘진화’에 관한 대략적인 개념이 명확한 확신으로까지는 이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 논문은 사이언스에 투고하여 세상에 자신의 업적과 능력을 알리려는 의도였다기보다는 자신이 평소에 존경하던 학자에게 인정받기 위한 당찬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러했기에 다윈이 진화론의 업적을 독차지하며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 월리스는 태연하게, 그리고 그 누구보다 열렬히 다윈을 지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말레이제도, 오랑우탄의 땅과 극락조, Wallace, Alfred Russel / Public domain> |
식민지라고 다 같은 식민지가 아니다?
사실 어떠한 동식물이 사는 것은 별로 궁금치 않은 입장에서 말레이제도에 어떤 새가 어떻고, 어떤 곤충이 어떻고, 어떤 식물이 어떻다고 교과서처럼 나열하는 대목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언어 수만큼이나 다양한 민족이 사는 말레이제도에서 사람 사는 풍경이나 그들의 문화를 묘사한 부분은 이루말 할 수 없이 흥미롭다(역시 나도 동물보단 사람에게 더 관심이 많은 인간중심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운가 보다). 지금의 말레이제도는 월리스가 방문했을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으로 문명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인도네시아 같은 지역은 환경 파괴가 심해 예전의 풍요로운 모습을 상당수 잃었다는 점에서 『말레이 제도』는 과도한 문명화가 가져온 상실의 아픔을 회고하고 치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다.
싱가포르섬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던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한 『말레이 제도』는 백인의 시선으로 식민주의의 긍정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혹함을 넘어 악랄했던 일제강점기를 피눈물로 경험했던 우리에겐 좀 거리감을 줄 수도 있는 책이다. 일제강점기가 조선의 근대화를 가져왔다는 말도 안 되는 일본의 억지 주장처럼 월리스는 네덜란드의 합리적인 식민 정책이 말레이제도에 안정과 평화, 그리고 번영을 가져왔다고 확신한다. 우리에게 ‘식민지’라는 단어는 수탈과 핍박으로 일관했던 일제강점기를 떠올리기 때문에 굉장히 부정적으로 들리는데, 월리스가 묘사한 말레이제도에 사는 사람들이 네덜란드 정부의 노력으로 원시적인 삶에서 벗어나 문명의 혜택을 얻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로 믿는다면 ‘식민지’라고 다 같은 식민지가 아님을 볼 수 있다.
주인의 명령을 여기고 두 시간이나 늦게 약속 장소에 나타났음에도 호통치고 때리기는커녕 다정한 말투로 노예를 나무라는 선에서 그치는가 하면 노예가 가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면 주인들도 노예의 요청에 따를 수밖에 없는 모습은 식민시대 조선과는 판이하다. 아마도 이러한 차이는 네덜란드와 일본이 식민지를 건설한 목적과 관리상의 이점에 따른 차이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네덜란드가 순전히 경제적인 목적만으로 말레이제도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또한 본국과의 거리가 워낙 멀어 일본처럼 많은 수의 경찰과 군대를 파견하여 강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에 일본은 경제적 목적뿐만 아니라 대륙 진출이라는 영토적인 욕심까지 더해졌고, 또한 본국과의 거리도 워낙 가까워 문제가 생기면 빠르게 군사를 파견할 수 있었다. 2차대전 때 영토 확장을 목표로 한 독일 역시 잔학하기 그지없었는데, 일본과 독일이 그랬던 것은 자국민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일종의 ‘청소’와 ‘정리’ 차원에서 학살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식민 정책의 ─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 영향이 말레이제도 모든 곳에 스며든 것은 아니다. 월리스가 말레이제도를 탐사한 1854~1862년의 그곳은 문명과 원시가 공존하는 만화경 같은 세상이었다. 그럼에도 무역 중심지와의 거리에 따라, 해안가와 가깝고 머느냐에 따라, 저지대냐 고지대냐에 따라, 그리고 기후에 따라 문명과 원시의 경계는 확실하게 그어졌다. 월리스에게 유럽식의 완벽한 만찬을 제공한 마을도 있었고, 주민들이 빈약한 식사로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마을도 있었다. 내 집 같은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한 마을이 있다면, 월리스의 잠자리 친구로 훈제한 해골을 제공한 마을도 있었다. 적절한 법치로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는 마을이 있었고, 범죄를 심드렁하게 여기거나 심지어 그 행위를 범죄로 여기지 않는 마을도 있었다. 반면에 이들을 다스리는 법도 없고, 감시하는 경찰도 없지만, 무리 지어 살면서 서로의 멱을 따거나 밤낮으로 서로 약탈하는 등 무정부 상태에 빠지지 않는 이례적인 마을도 있었다.
부와 가난, 법치와 야만, 발전과 쇠락 등 문명과 원시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19세기 말레이제도는 그야말로 문명과 원시의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충돌이 소리 없이 진행된 전장이나 다름없었었다. 그리고 그 소리 없는 처절한 전쟁은 말레이제도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물론 대부분 문명의 승리로 끝나겠지만 말이다.
잊힌 것들을 탐사하는 책
월리스는 탐구와 표본 채집이라는 이유로 오랑우탄만 무려 20여 마리나 사냥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가 채집한 표본이 전부 사냥으로 얻었다는 점에서 동물애호가에겐 그지없이 가혹한 사냥꾼이다. 하긴, 2015년 기준으로 연평균 2256마리가 사냥 또는 사람과의 충돌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 우리의 챔팬지보다는 멀지만 원숭이보다는 가까운 친척 ─ 오랑우탄의 비참한 현실을 보면 월리스가 사냥한 20마리는 새 발의 피다. 물론 그가 발라낸 20여 점의 오랑우탄 가죽과 골격, 그리고 그가 벗겨낸 새의 가죽 3,000점은 고상한 취미를 가진 유럽 신사에게 비싼 값에 팔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이 사라지고 없는 그 모든 것에 대한 낭만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섬세한 관찰 기록과 연극의 막간처럼 때때로 등장하는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그 시대의 연장선에 있는 우리에게 영영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우울한 동경과 현대 문명 위에 깊게 드리워진 어둠을 직시하게 한다.
월리스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것들을 찾고자 말레이제도를 탐사했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잊혀버린 수많은 것들을 되찾고자 『말레이 제도』를 탐사한다. 미개척 분야의 책을 섭렵했다는 만족감이 내 호기심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서고, 벽돌처럼 묵직하고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책을 완독했다는 우쭐함이 책을 밟고 서서 시위할지라도 내 장담하건대 이번 탐사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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