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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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팬스 | 삭막한 우주, 삭막한 이야기

드라마 리뷰 | 익스팬스(The Expanse) | 삭막한 우주, 삭막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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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팬스(The Expanse) | 삭막한 우주, 삭막한 이야기

드라마 리뷰 | 익스팬스(The Expanse) | 삭막한 우주, 삭막한 이야기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시키는 음산한 미래 도시>

시즌 5까지 감상한 나로선 ‘지금으로부터 그렇게 머지않은 미래에, 태양계를 점령한 인류의 반복되는 역사 이야기입니다.’라고 달랑 한 마디 던져 놓고 리뷰를 끝마치고 싶은 귀차니즘이 약간은 발동할 정도로 내용 면에선 기대 이하다. 드라마 「익스팬스(The Expanse)」에 열광하는 마니아들의 귀에는 거슬리겠지만, 공상과학적인 상상력과 과학적인 세밀함 면에선 류츠신의 『삼체』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특히 태양계를 식민지화할 정도로 기술적으로 발전한 인류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현대인과 별로 다르지 않음이 무척이나 실망스럽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혹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조선 시대 • 중세 사람들과 현대인의 사고방식 • 가치관이 다른 것처럼 현대인과 미래인도 뭔가는 다를 것이다.

배경은 미래지만, 머리는 현재에 머무른다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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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전투력과 충성심을 자랑하는 화성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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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도 러브 호텔이...>

드라마 「익스팬스」가 반복되는 인류 역사의 한 토막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지루한 사실은 시종일관 유지되는 정치적 암투와 음모를 통해 드러난다. 여기에 식민지 시대를 답습하고 한편으론 현재의 인류를 만들어 낸 확장 • 정복 욕구와 그로 인한 ‘분열, 갈등, 대립, 전쟁, 화해’의 순환이라는 진저리라는 도식은 ‘휴식과 기분 전환’이라는 청량한 목적으로 좀 더 단순 명확한 드라마를 선호하는 나에겐 다소 과분하다. 소화가 잘 안 된다.

반면에 편식하는 아이가 당근을 골라내듯 서부 개척 시대에서 ‘학살’만 쏙 빼놓고는 ‘낭만’이라고 기억하는 미국인들이나 정치적 음모와 전쟁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좋아할 만한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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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화성인, 벨터를 대표하는 4명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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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의 함선 로시난테, 장난감처럼 보인다>

고로 나처럼 오직 머리를 식히는 용도로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 중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다면 굳이 시즌 5까지 무리해서 감상할 필요는 없다. 첫 번째 공공의 적인 줄스 피에르 마오가 일으킨 사달이 해결되는 시즌 3(?) 정도까지만 감상해도 될 듯싶다. 그 이후는 분열과 이간질을 조장하는 헤살꾼이 실컷 분탕질할 때 영웅(제임스 홀든 일당)이 나서서 화해를 끌어내는 비슷한 이야기의 반복이다.

또한, 시즌 5로 이야기가 개운하게 마무리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어떤 드라마 리뷰에서 말했듯, 미국 드라마는 돈벌이가 되면 무리해서까지 시즌을 이어나가는 경향이 있는데, 「익스팬스」도 왠지 그럴 것 같다) 시즌 6조차 끝이 아니라는 소문이 있다. 중간에 지쳐 감상을 포기한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처럼 얼마나 우려먹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드라마 리뷰 | 익스팬스(The Expanse) | 삭막한 우주, 삭막한 이야기
<중국 자본의 영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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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스 피에르 마오, '마오(쩌둥)', '가오(강)' 등 유명인을 떠올리게 하는 姓들이다>

그래도 시즌 5까지 봤을 정도면 나름 재밌게 감상한 것 아니냐고 빈정거려도 딱히 변명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재밌는 감상’은 전쟁을 조장하여 이득을 보려는 줄스 피에르 마오의 운명이 끝장날 때까지다. 마오 이야기 이후로는 새로운 외계문명에 대한 기대감으로 보게 되었는데, 그 기대감은 가차 없이 외면당했다. 외계문명에 관한 것은 (나중에 보여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보여줄 것이 없어서인지) 눈곱만큼만 보여주고는 또다시 분탕질의 연속이었으니 마오 이야기 이후부터는 ‘재미’로 감상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애착’으로 감상한 것이다. 이 애착은 이것저것 안 가리는 내 식성처럼 SF 장르만큼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편애에서 기인한다.

드라마 리뷰 | 익스팬스(The Expanse) | 삭막한 우주, 삭막한 이야기
<집요한 정치력을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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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앞에 펼쳐진 다중 우주, 기회일까? 재앙일까?>

아무리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게임이라도 내용이 부실하면 금방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우리 눈은 시각적인 것에 금방 현혹되어 시간과 돈을 탕진하는 주범이기도 하지만, 우리 뇌는 그보다는 진지하다는 이야기다. 한편으론 특수 효과가 주는 시각적인 호기심의 한계도 있다. 많은 SF 소설이 어둡고 삭막하고 텅 빈 우주에서 사람이 장기간 생존할 때 겪게 되는 향수병을 넘어선 정신적 황폐함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내가 수려한 자연경관과 목가적인 세트장이 볼만한 중국 시대극을 선호하는 이유도 자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본성과 깊게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인류는 우주가 아니라 지구에서 살아가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중국 시대극이 수려한 경관과 단순한 캐릭터와 직선적인 이야기로 편안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면(이런 점들이 내가 중국 사극을 선호하는 이유!), 미국 드라마의 강점은 뭐니 뭐니 해도 등장인물들 성격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캐릭터가 입체적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여기에 각 성격에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캐스팅까지 더해지면 시청자는 자연스러운 성격 연기에 압도되고 만다(외모를 우선하는 중국이나 한국 드라마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광경).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 나로서도 이런 매력적인 배우들의 도깨비불처럼 보는 이의 혼을 빼놓는 연기는 마다하기 어렵다.

아무튼, 내행성 인류로 분류되는 지구와 화성, 그리고 외행성 인류로 분류되는 벨트를 대표하는 네 명의 주인공이 한 팀이 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는 명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바로 ‘화합’이다. ‘정복 > 식민지 > 독립 > 새 국가 > 갈등 > 전쟁’이라는 인류사의 탐욕스러운 정복사가 인류의 발길이 우주 너머로까지 확장되는 우주 시대에도 멈추지 않는다면, 인류에게 다중 우주의 존재는 위대한 발견이기 전에 재앙일 수 있다고, 그렇다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시즌 5까지 그러한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화합’은 ‘평화’이고 ‘평화’는 드라마의 종결을 의미하고 드라마가 종결되면 돈줄이 끊어진다.

끝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앞으로 새로 나오는 시즌을 볼 것이냐고, 원작 소설을 읽을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미련 없이 ‘아니요’라고 대답하기는 뭐하고 '글쎄요'가 지금은 가장 적당한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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