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 멋지다, 부럽다, 질투 난다
‘과학’은 있는데 ‘수학’이 없는 나의 독서 편력
대학에 막 진학했을 때 그 지끈지끈했던 수학을 또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암담한 현실에 억장이 무너질 정도로 경악했던 아련한 기억이 있다. 내세울 것 없는 고만고만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했다는 사실은 내가 어느 정도의 수학 성적을 성취했다는 것을 증명하지만, 그것이 수학 공부가 즐거웠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수학을 포함해 고등학교 때 매달렸던 모든 과목이 서로 작당이라도 한 듯 모두 한결같이 재미없었다. 그것은 잿빛 돌멩이처럼 딱딱하고 늙수그레한 목사의 연설처럼 지루한 교과서와 매일 매년 똑같은 내용의 수업을 기계처럼 반복해야 하는 선생들의 지친 열성을 탓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당시 공부는 자발적으로 일어난 호기심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강제노동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것이 묘하게 까다로워서 똑같은 일을 해도 자발적으로 할 때와 강제적으로 할 때의 효율성 면에서 꽤 많은 차이가 난다.
내가 볼 때 학교 성적은 천성적으로 공부에 높은 흥미를 느끼는 사람, 타고 난 지능이 높은 사람이 성적이 좋을 것이지만, 이것은 유전적인 성향이므로 부모도 어찌할 수가 없다. 고로 자식이 좋은 성적을 받게 하고 싶다면 부모는 공부에 흥미를 붙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최선인데, 이게 쉽지 않다. 왜냐하면, 부모가 어느 정도의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주야장천 ─ 예능이나 먹방 같은 안 보는 것이 더 뇌 건강에 더 좋은 ─ TV만 보는 부모가 자식에게 책을 읽으라고 반복해서 말하면 그것은 잔소리로밖에 안 들린다. 학자 집안에서 학자가 탄생하는 것은 무심한 돌연변이의 기특한 성과가 아니라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는데, 어찌 되었든 독서라는 의외로 헤어나기 어려운 진흙탕에 빠지고 난 후 퍼뜩 깨달은 것은 배우는 것이 이렇게 즐겁고 짜릿하고 재밌을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굳어가는 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에너지였고, 뇌에 주어진 두 번째 인생이었다. 이때만큼 앎은 뇌에 있어 생명력을 불태우는 젖줄이었고 앎에 대한 비럭질은 뇌의 존재 이유였다.
그런데도 무의식적으로 외면해 온 과목이 있다. 내 블로그를 보면 알겠지만, 과학, 역사, 문학, 문화, 경제, 정치 등 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책 리뷰가 올라와 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사람은 알 것이다. ‘과학’이 있는데 정작 ‘수학’은 없다는 것.
<다른 녀석들은 모두 알아서 자취를 감쳤는데 넌 왜 남아 있는 거니?> |
왜 수학은 어려울까?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를 통해 수학은 나만 꺼리는 과목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소 안심하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이 수학을 어려워하는 현실에 대해 괜한 변명을 가판대에 흩어진 잡동사니처럼 늘어놓는 대신에 인지과학자 데이비드 기어리의 말을 언급하고 싶다.
교육의 내용은 대개 인지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부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주문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정복하는 과정은 종종 어렵고 따분하다.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고, 지위를 획득하고, 운동 기능을 습득하고, 물리적 세계를 탐구하는 일에는 선천적인 동기를 발휘하지만, 수학 공부 같은 비자연적인 과제에는 자신의 인지적 기능을 적용하겠다는 동기를 반드시 발휘하지는 않는다. (『빈 서판』, 스티븐 핑커, 김한영 옮김, p394)
한마디로 공부는, 특히 그중에서도 수학 공부는 본성에 반한다.
이 사실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우리의 즐거워야 할 학창 시절을 공식과 기호라는 그 예리함의 끝을 알 수 없는 무형의 비수로 우리의 막 부풀어 오를 야망을 무한급수적으로 난도질한 끝에 산산조각 내버렸던 감당하기 어려운 피로와 절망감도 덜 했을 것이다.
졸업과 함께 졸지에 일상에서도 졸업 당한 수학은 나 같은 일반인에겐 더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런 괴물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수학을, 그것도 대학원 과정에서나 배운다는 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깨우쳐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으니 처음엔 이것을 용기라고 봐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객기를 부리는 거로 봐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배움에는 나이, 성별, 학력, 직업 등 어떤 장벽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철석같이 믿어온 나이지만, 이때만큼은 그 믿음에 머리털 같은 금이 갈 뻔했다.
학창 시절엔 ─ 어렵든 쉽든 ─ ‘수학을 공부하면 훗날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라도 있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더 적은 사람들이 인제 와서 수학을 배워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바보 멍청이 같은 조소가 입가에 채 번지기 전에 겸연쩍게도 감탄과 함께 질투, 부러움, 시기 등의 복잡한 감정이 나를 압도했다.
그들이 수학에 간 까닭은?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는 학문적 능력만큼이나 작문 능력도 우수한 영미권 과학자들과 비교하면 한국 과학자의 문학적 빈약함을 방증하는 (작문과 독서를 등한시한 한국 교육 시스템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안타까운 현실에 또다시 눈을 돌리게 하지만, 이보다는 이제 막 작대기를 단 이등병이 대대장을 마주 보는 것 같은 당최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지닌 수학이 동기와 호기심이 충분한 사람들에겐 하나의 ‘과학문화’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더 관심을 끌게 하는 책이다. ‘수학’이 독서 같은 취미생활이 될 뿐만 아니라 동호회 같은 일반인 모임의 주체로 성장하는 문화가 될 수 있다니, 수학에 좋은 추억보다는 악몽에 가까운 추억이 많았던 나로서는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다.
졸업 후 20여 년 동안 수학 공식을 처음으로 실생활에 적용해 본 경우는 「샤오미 무선 공유기」를 소개하는 글에서 아파트 후문과 내가 사는 4층과의 직선거리를 재보기 위해 피타고라스 정리를 사용한 것이 전부였던 나로 비추어보면 수학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사람도 얼추 비슷할 것이다. 수학자들이 자연을 수학만큼 명쾌하고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은 없다고 아무리 신나게 떠들어대도 일반인들에겐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엿장수가 외치는 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알아도 써먹을 때도 딱히 없다. 수학 강사가 될 팔자가 아닌 이상 남들 앞에 자랑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A4 용지에 우아한 수학 공식을 아무리 우아하게 늘어놓는다고 해도 미팅에서 우아한 여자를 꾈 수 있는 것도 아니다(남자의 작업이 평범한 시도가 아님을 인지할 수 있는 교양 충만한 여자라면 퇴짜를 놓더라도 다소 우아하게 놓을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느닷없이 수학을, 그것도 직관에 반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달려들었을까? 얼마나 지식에 대한 굶주림이 지독했으면 과학을 단지 문장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직접 그 최전선에 뛰어들고자 했을까?
수배 중인 용의자가 경찰을 꺼리는 것만큼이나 수학을 꺼렸던 사람들은 도무지 궁금해서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렇더라면 지금까지 마신 그 어떤 커피보다 진한 블랙커피를 머그잔 가득 한잔 준비하고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을 펼쳐보라.
별거 아닐 수도 있고, 혹은 별거 이상일 수도 있는 그들의 배움을 향한 갈망과도 같은 열정과 그 열정을 과학자로서의 양심상 도저히 묵과하지 못한 물리학자 이종필의 제 살을 깎는 듯한 진지한 가르침이 수학에 대한 편견을 한두 꺼풀 정도는 충분히 벗겨내고는 남으리라.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미적분을 다시 공부했다!> |
멋지다, 부럽다, 질투 난다, 한마디로 경이롭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을 선뜻 추천하기는 망설여진다. 칼춤 같은 현란함과 아찔함으로 독자의 뇌를 무방비 상태로 만든 외계어 같은 기호들이 어느 순간 일격으로 독자의 뇌를 기절시켜버리는 무시무시한 책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의도를 진지하게 이행하려면 무엇보다 복습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여기서 복습이란 다른 말이 아니다. 학창 시절의 지긋지긋했던 그 짓거리를 되풀이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 두고 싶다. 학창 시절에 수학 공부가 그토록 재미없었던 수많은 이유 중엔 성적과 대학 때문에 조바심을 한시도 내려놓을 수 없었던 성마른 현실이 한 우물만 마음 놓고 팔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인 것도 있다. 그런 면에서 안정적인 삶에 어느 정도 접어든 사회인이라면 학창 시절 때보다 수학에 매진하는 일은 좀 더 수월할 수 있다.
실제로 경험해 본 결과 이종필 박사의 수업은 내가 「수학의 정석」이라는 수학과의 혼란스러운 성전에서 십자가나 다름없던 책을 20여 년 만에 꺼내게 했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경탄할 만한 결과다. 다른 교과서 • 참고서들은 모두 종적을 감추었지만, 이 책이 왜 지금까지 남아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는 끝끝내 알 수 없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어쩌면 오늘을 위한 숙명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최면에 걸린 듯 미적분을 파헤치는 놀라운 열정이 잠시 번개탄처럼 활활 타오르면서 수학을 하는 것이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지금까진 인정하지 못했던 사실도 깨닫기는 했지만, 땔감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당최 그럴만한 화력이 안 되었는지 미적분이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 이후로는 진도 나가기가 영 어려웠다. 미적분 이후의 과정은 만리장성을 돌아가듯, 아니면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듯 길고 힘든 과정이었고, 덕분에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는 방치와 읽기를 반복한 끝에 완독하는 데 거의 한 달이나 걸린 불명예스러운 책이 되었다.
그래서 섣불리 추천할 수가 없다. 과학을 텍스트로 이해하는 것과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는 예전에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과학자들이 경전처럼 떠벌리던 말을 이제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와 함께 수학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영역이라는 것도 다시금 깨닫는 악몽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일반인에게 아인슈타인 공식은 똥자루 만큼보다 소용이 없고, 능글맞은 직장 상사의 ‘인제 그만 퇴근해야지’라는 속 들여다보이는 말 만큼이나 의미가 없지만, 그것은 의미를 찾지 못한 지적으로 게으른 자의 변명일 수도 있다. 그 의미를 스스로 찾고자 하는 백북스 사람들의 도전은 누군가에겐 탄사를 자아내는 용기로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비웃음을 짓게 하는 객기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중도 하차한 내가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똥 맛은 똥을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것처럼 그들의 도전이 왜 아름다운지는 그들 자신만이 알 것이다.
그들의 찬란한 도전이 남긴 한 줌의 파편과도 같은 이 책. 멋지다, 부럽다, 질투 난다, 한마디로 경이롭다, 좀 더 길게 표현하면 수학에 미친다는 것이 이런 경우구나, 하는 말로 수학 공식만큼이나 지루하고 따분한 긴 글을 선잠이 든 다롱이의 빼꼼히 삐져나온 포동포동한 뱃살을 기분 좋게 투덕거리며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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