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런 독: 죽음의 밤(Dylan Dog: Dead Of Night) | 모여라, 괴물 사총사!
뉴올리언스, 사람이 죽고 싶어도 죽기 어려운 곳, 죽음이라는 깊고 아득한 최후의 안식을 방해하는 곳. 믿기 어렵겠지만 이곳 뉴올리언스엔 공포 영화나 판타지 게임에 지겹도록 등장하는 괴물들이 당당히 존재한다고 한다. 그들의 송곳처럼 뾰족한 이빨은 당신의 황금 크라운을 씌운 어금니보단 덜 번쩍이지만, 어른의 엄지손가락만 한 굵기와 중지만 한 길이는 보는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기엔 부족함이 없다. 인간과 공생할지라도 그들은 엄연히 괴물인 것이다.
한때 그들의 날카로운 이빨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인간의 신선한 살점이 묻어나지 않는 날이 없었겠지만, 최근의 뉴올리언스는 인간과 괴물의 구분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래서 겉보기엔 보통 사람들이 사는 보통 도시 같다. 그것은 괴물들이 일으킨 골칫거리를 감시하는 감독관이자 괴물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중재자 딜런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가 뱀파이어에게 살해된 이후 딜런은 복수의 향연을 즐긴 후 감독관 자리에서 은퇴해버렸고, 이때다 싶었는지 뉴올리언스의 괴물들은 5천 년 묵은 전설의 아이템을 두고 피비린내 나는 음모를 일으킨다.
이야기는 아주 뻔하게 흘러간다.
세상에 떳떳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뭔가 중요해 보이는 일에서 은퇴한 딜런 같은 주인공은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일어난 사건 때문에 복귀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곧 꺾일 허풍 같은 고집을 부리다가 자신과 친한 사람이 불행을 당하고서야 마지못해 나선다. 마치 이런 일은 나 아니면 세상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당연히 딜런은 모든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아주 약간의 상처만 입고서 말이다.
영화 「슈퍼맨」에서 슈퍼맨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리브(Christopher Reeve)의 세상 모든 여자를 품에 안고도 남을 것 같은 넓고 든든한 가슴을 떠올리게 하는 브랜든 루스(Brandon Routh: 딜런 역)의 듬직한 덩치라면 그 약간의 상처도 입지 말아야 할 것이지만, 그랬더라면 5천 년 묵은 전설급 괴수의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다(그러고 보니 각진 얼굴, 엉덩이턱 등 둘은 얼굴도 조금 닮았다).
자그마치 5천 년이나 잠자다 일어났는데,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고 퇴치당할 거라면 뭐하러 영화에 등장하겠는가?
그런데 그게 전부다. 벨리알의 심장이라는, RPG 게임으로 따지면 전설급 정도는 될 아이템으로 부활한, 그래서 적어도 레이드 보스 정도는 될 것 같은 괴수는 이렇다 할 액션은 보여주지 못한 채 딜런을 몇 번 내동댕이치는 것을 끝으로 퇴장당한다.
별로 얘기할 건더기도 없는 영화 가지고 떠들려니 머리는 지끈지끈, 손가락은 시큰거린다. 앞에서 주절주절 늘어놓은 것 외에도 영화 「딜런 독: 죽음의 밤(Dylan Dog: Dead Of Night, 2010)」의 묘미를 토해내라고 몽둥이라도 휘두르며 윽박지른다면, 다양한 괴물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야성적인 포효로 사람을 얼어붙게 하는 늑대인간, 야밤의 흉흉한 신사 뱀파이어, 냄새나고 불결해 보이지만, 땅굴 하나쯤은 거뜬히 파는 묘한 재주를 가진 좀비, 뱀파이어 피에 환장한 구울이 세트 메뉴처럼 모두 다 등장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도 별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서구 세계의 대표적인 괴물들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이 보통은 따로따로 활동하던 모습들만 봐오다가 이처럼 한곳에 모여 왁자지껄하고 시시껄렁하게 노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충만해지는 행복감에 죽어 미칠 것 같지는 않더라도 나름 소소한 재미가 느껴지기는 하다.
주인공 딜런이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똥폼만 실컷 잡으려다가 제대로 잡아보지도 못하고 그냥 싱겁게 끝나는 영화라 웬만큼 시간이 여유롭지 않은 이상 추천하기는 어렵다. 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 자체가 바로 죽음의 밤 같은 시련이다. 그래도 딜런의 동료이자 이제 막 좀비 지원 단체의 회원이 된 초보 좀비 마커스의 녹록한 익살이 영화의 칙칙한 분위기를 조금은 녹여준 덕분에 끝까지 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딜런은 왜 미스터 빈도 안 탈 것 같은 똥차를 기꺼이 타고 다니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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