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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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강철 권력 | 사악함 뒤에 숨은 스탈린의 진짜 모습

Stalin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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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강철 권력 | 로버트 서비스 | 사악함 뒤에 숨은 스탈린의 진짜 모습

이 책에서는 스탈린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다면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스탈린은 관료이며 살인자였지 만 지도자, 작가, 편집자이기도 했고, 이론에도 일가견을 보였을 뿐 아니라 젊었을 때 시를 쓰고 예술도 추구했으며,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고 한편으로는 매력도 있었다. (『스탈린 강철 권력(Stalin: A Biography)』, p11)

공포 정치의 대가 스탈린(Stalin)이 사악한 사람이었다는 말에는 감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가 역사의 오명을 남길 만큼 사악하지 않았더라면 레닌 사후 펼쳐진 권력 쟁탈전에서 트로츠키(Trotsky), 지노비예프,카메네프,부하린 등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자신만의 독재 체제를 정립하고 죽을 때까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공포 정치’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폭도나 반란을 잔인하게 진압한 트로츠키도 스탈린 못지않게 사악했다. 하지만, 트로츠키의 사악함이 귀족적인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스탈린은 어렸을 때부터 단련된 폭력에서 비롯된 사악함이었다. 그래서 레닌 사후 펼쳐진 권력 쟁탈전에서 (자만심에서 비롯된 우유부단함도 있었지만) 트로츠키는 체면상 사악하게 밀어붙일 수가 없었지만, 스탈린은 안면몰수에서 비롯된 사악함이었기에 거칠 것이 없었다.

스탈린을 사악했다고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분명히 스탈린은 사악했지만, 그에게는 사악함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더군다나 스탈린 통치 시절 (믿어지지 않지만) 생각보다 많은 소련 인민들이 보여준 스탈린을 향한 열렬한 환호와 지지, 그리고 그가 죽었을 때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슬퍼한 수많은 소련 인민들을 설명하려면 스탈린에게 거북이 등딱지처럼 달라붙은 ‘사악함’이라는 이미지는 어떻게든 극복해야 한다. 그것은 스탈린이 비록 의심만으로 정적들을 살해하고 몰염치로 기아를 버려둬 인민을 아사시키고, 강제노동수용소인 ‘굴라크’를 운영하면서 인민의 삶을 짓밟은 진짜로 사악한 사람이었을지라도 야망을 향해 꾸준히 전진할 수 있는 굳건한 의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실하게 목적을 달성하는 영악함, 그리고 권력을 휘어잡고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추종자들을 거느릴 수 있는 사교성과 매력이 있었음을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은 스탈린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악하기만 했던 인물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나름 매력적인 인물이었음을 시사한다.

러시아 혁명사 연구에서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은 영국의 역사학자 로버트 서비스(Robert Service)의 『스탈린 강철 권력(Stalin: A Biography)』은 역사가 스탈린에게 씌운 ‘사악함’이라는 굴레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에겐 ‘사악함’ 이상의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다면적인 뭔가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스탈린이 권력을 잡기 전에 보여준 여성 편력은 그가 천연두와 마차 사고로 얻은 외모적인 콤플렉스와는 상관없이 남성적인 매력이 충분했음을 말해준다. 젊은 스탈린은 낭만적인 시를 짓는 예술가이자 자신의 혁명에 대한 신념과 이상을 글로써 표현하려는 작가이기도 했다. 스탈린에 대한 알릴루예바 가족의 변함없는 애정은 그가 가족과 친지에게 친절을 베푸는 가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음을 대변한다. 스탈린은 권력 근처를 배회하는 사람에겐 냉정한 도살자였을지라도, 스탈린에게 암소 한 마리를 선물하려는 일흔 살 된 농부의 간곡한 편지, 거리에서 스탈린과 우연히 마주친 것만으로도 감격에 겨워 울음을 터트린 어느 한 할머니, 그리고 스탈린이 죽었을 때 보여준 인민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듯한 오열은 스탈린에 대한 인민들의 찬양이 순전히 공산당 선전 속에서나 있을법한 허구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마지막으로 스탈린은 평생 자신이 마주친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자 끊임없이 공부하고 책을 읽은 지식인이었다. 성격적으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인간 폭탄이었고, 거짓말쟁이의 음흉한 음모꾼인 데다가 기회주의적이고 변덕스럽고 자존심 강하고 의심 많고 명예심과 복수심에 불타고 지극히 자기중심점인, 한마디로 인격에 심히 상처를 입은 사람이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많은 반대자를 억압하면서 소련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달성하고 제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라는 것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Stalin: A Biography by Robert Service
<스탈린, 루즈벨트, 처칠, 1943년 테헤란에서
Oulds, D C (Lt), Royal Navy official photographer / Public domain>

2000년에 시행된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찬사를 보낼 만한 시기를 묻는 여론 조사에서 스탈린의 독재 시대가 무려 26%의 지지를 얻었다고 한다. 물론 스탈린 독재에 반대하는 의견은 이보다 더 훨씬 높은 48%였지만, 외부에서 보기엔 공포 그 자체로 보였던 스탈린 시대가 실제로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에겐 나름의 향수와 추억을 남겼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소치는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던 사람들의 분노, 자유주의가 확산하고 서구 문명이 들어서면서 만연해진 물질주의와 방종에 대한 불만, 2차 세계대전의 승리에서 얻은 자부심, 그리고 스탈린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청춘 시절에 대한 동경과 추억 등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의 쇠퇴가 일으킨 억압과 질서에 대한 혼동이다.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이를 위해 기억을 만들기도 하고 심각하게는 날조해내기까지 한다. 이것은 스탈린 시대에 인민들이 극장표를 사려고 가지런히 줄을 선 모습만 기억하고, 한쪽 손엔 총과 또 다른 한쪽 손엔 굴라크행 기차표를 들고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억압적인 체계를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지워버렸다는 뜻이다(아마도 이런 이유로 여전히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한국 사람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이 책은 위대하게 사악한 독재자 스탈린의 ‘사악함’ 뒤에 숨은 능력과 매력의 재발견이라는 다소 심란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악함’이야말로 최고 권력의 자리로 신속하게 올라서고, 그 권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악덕 중 가장 큰 효과를 보여주는 재능 중 하나임을 말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사실 장기 집권한 독재자 중에 사악한 이면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악함은 인류가 경계해야 할 악덕이지만, 그 사악함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목적을 달성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가슴 아픈 현실은 사악함의 대가로 흘린 인류의 피와 눈물의 강이 헛되이 망각이 바닷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 같아 통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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