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시반금련( I Am Not Madame Bovary, 2016) | 피안(彼岸)을 찾은 그녀는 승자!!
"원래 난 올해는 고소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당신네가 이렇게 날 괴롭히니 마음을 바꿔 올해도 고소하겠어요!" - 리설련
「아부시반금련(I Am Not Madame Bovary 2016)」은 류전윈(刘震云)의 소설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我不是潘金莲)』을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소설을 읽어도 그렇고, 영화를 봐도 그렇지만, 왜 소설 제목을 이따위로 지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중국어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했으면 되었을 텐데, 왜 내용과는 별 상관없는 제목을 굳이 올려놨는지, 아마 ‘반금련’이란 단어가 연상되는 선정적 이미지가 오히려 판매에 악영향을 끼칠까 봐 그랬을까?
아무튼, 영화 「아부시반금련」은 원작에 충실한 편이라, 류전원의 소설을 읽어본 독자라면 좀 더 쉽고 깊이 있는 감상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법정 영화처럼 대사가 상당히 많은 편이라 (내가 대충 계산해본 바로는 일반 영화에 거진 두 배, 그래서 한글 자막 제작하는데도 무진 애를 먹었다) 이야기 따라가기에 벅차 영상은 놓치는 경우가 많을 수도 있다. 다만, 자상하게도 영상은 마치 망원경으로 세상을 훔쳐보는 것처럼 (조금은 답답해 보이지만 집중도는 높이는) 원형과 사각형 프레임 안에 고정되어 있어 놓칠 영이미지가 다른 영화에 비하면 적기는 하다.
「아부시반금련」에서 주인공 ‘리설련’을 열연한 판빙빙(范冰冰)은 2016년 산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와 2017년 아시안 필림 어워드에서, 그리고 금마장(Golden Horse Film Festival and Awards)과 금계상(Golden Rooster Awards)에서 최고 여배우상을 받았다. 이런 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어느덧 배우로서의 연륜이 물씬 묻어나오는 판빙빙의 진득한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이 영화에서 ‘리설련’을 연기하는 판빙빙을 보노라면 「귀주 이야기(秋菊打官司, 1992)」에서 ‘귀주’ 역을 열연했던 공리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귀주’나 ‘리설련’이나 시골 아낙네라는 신분, 그리고 남편의 일로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며 풍파를 일으킨다는 것도 비슷하다. 특히 리설련이 베이징에 막 도착했을 때 보여준, 시골에서 막 상경한 시골 아낙네가 도시의 번잡함에 압도되어 어찌할지 모르는 그 순간의 표정은 귀주가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와 너무나 흡사하다. 물론 ‘리설련’ 일으킨 풍파에 비하면 ‘귀주’는 방귀만큼도 못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두 영화는 중국 특유의 관료주의의 실상을 풍자적으로 폭로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영화 「아부시반금련」은 쓸쓸하게 비가 오는 날 비닐로 급조한 우의를 입고 판사의 집을 방문하는 리설련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양손에는 판사에게 바칠 것으로 보이는 음식들이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뭔가를 부탁할 요량인가 보다. 아닌게아니라 그녀는 자신의 이혼 문제를 왕 판사에게 공정하게 처리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녀의 말인즉슨, 남편 진옥하와 자신은 집을 한 채 더 얻고자 가짜로 이혼하기로 사전에 약속하고 이혼을 했는데, 막상 이혼하기 나니 남편이 다른 여자와 재혼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발급한 이혼증명서가 가짜가 아닌 이상, 법원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왕 판사는 약소한 재판을 거쳐 리설련과 진옥하의 이혼을 기정사실로 못 박는다.
억울하다고 느낀 리설련은 법원장, 현장을 찾아가 하소연해보지만, 누가 시골 아낙네의 이혼 문제를 귀찮아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개똥 피하듯 그녀를 외면하고 리설련은 찬밥 대접을 받은 것도 모자라 잠시 철창신세까지 지게 된다. 이 모든 것이 힘겹게 느껴진 그녀는 소송을 포기하기로 마음먹는다. 단, 진옥하가 진실을 말해주면 말이다.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진옥하를 찾아갔지만, 그는 그녀의 질문은 회피하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리설련과의 첫날밤 일을 들춰낸 다음 그녀를 ‘반금련’이라고 비난한다. 이제 그녀에게 이혼이 거짓인지 진짜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반금련’이라는 오명을 얻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분노와 억울함이 복받쳐 올랐다. 그 길로 리설련은 평소 가깝게 지내는 사촌 동생과 자신을 흠모하는 푸줏간 우 씨를 찾아가 살인을 계획하지만, 평범하고 겁약한 그들과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별 볼이 없는 두 남자에게 실망한 리설련은 대담한 계획을 실행으로 옮긴다. 바로 베이징으로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각종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판빙빙의 완숙한 연기가 일품이다. 배경에 따라, 즉 베이징이 아닌 곳에서는 원형 프레임, 베이징에서는 사각형 프레임으로 영상을 잡아내는 연출도 독특하다. 다만, 이러한 영상 기법이 무엇을 부각시키고자 하는지는 시청자의 안목에 따라 다르게 와 닿을 것 같다는 말로 마침표를 찍어야 할 것 같다. (나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굳이 내 의견을 개진하자면, 어떠한 틀에 (그것은 원형일 수도, 혹은 사각형일 수도) 얽매인 관료들의 고지식함을 에둘러 영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원형, 사각형 프레임에 갇힌 영상이 주는 답답함은 관료들의 융통성 없는 답답함 그 자체가 된다.
원작이 강조하는 것과 영화 「아부시반금련」이 강조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두 작품은 중국 관료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병폐를 드러내는 데는 전혀 인색하지 않다. 누가 리설련과 귀주의 발걸음을 베이징으로 옮기게 하였을까? 원인은 간단하지만, 되씹고 되씹어봐도 그 해결책은 전혀 간단치가 않다.
하지만, 우리라고 그렇지 않은가? SBS 방송의 「궁금한 이야기 Y 397회」에서는 한 남자가 결혼도 했고, 자녀가 있음에도 호적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된 믿기지 않는 상황을 추적했다. 원인은 40여 년 전에 한 공무원이 남자의 주민등록번호를 호적으로 옮겨적던 중 실수한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결책은 많은 서류를 완성하여 (그중에는 어이없게도 한평생 남자와 같이 살아왔던 친어머니와의 친자 관계를 확인하는 유전자 검사 결과까지 포함) 법원에 올리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해결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한 공무원의 의도치 않은 실수로 생긴 문제를 수습하는 것이 법원까지 가져가야 할 정도로 어렵다는 것도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는 그 남자가 받아왔던 피해는 정작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무정한 현실은 분노를 일으키고도 남는다.
각설하고, 리설련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문명화됐다고 자부하는 우리의 삶이 때때로 어처구니없는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은유하고 있다. 그러나 삶이 아무리 적대적이라고 할지라도,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승자라는 점에서, 리설련은 자신의 피안(彼岸)을 찾았다는 점에서 승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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