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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28.

[책 리뷰] 어쨌든 이 책을 끝까지 읽는 내가... ~ 나의 투쟁(히틀러)

어쨌든 이 책을 끝까지 읽는 내가 승리자다!

원제: Mein Kampf by Adolf Hitler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자는 최고 제약 없는 권위를 가지면서 궁극적인 가장 중대한 책임도 짊어진다. 그러한 것을 못하거나, 또는 비겁하여 자기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자는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영웅만이 지도자에 알맞다. (『나의 투쟁』, 478쪽)

변에 나란히 진열된 책들을 완전히 압도하는 어마어마한 두께 때문에 눈에 잘 띄지만, 같은 이유로 선뜻 손을 뻗지는 못한다. 망설인 끝에 용기를 내어 아령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묵직한 책을 펼쳐보는 순간 히틀러(Hitler)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장광설과 난삽한 문장에 다시 한번 압도당한다. 그리고 히틀러의 질식할 것 같은 광신적 인종주의에 완전히 녹다운된다.

어떻게든 독파하겠다는 첫 페이지를 막 넘겼을 때의 야심 찬 의지는 38선의 녹슨 기차처럼 부식되고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가?’, ‘끝까지 다 읽을 가치가 있는가?’ 하는 나약한 의구심이 틈만 나면 뱀꼬리처럼 치켜든다. 기어코 의구심은 이미 녹슬어 너덜너덜해진 의지를 난타해 여기저기 구멍을 뚫어버리고 양초처럼 희미하게나마 글자를 밝히던 집중력은 흐트러트린다. 『나의 투쟁(Mein Kampf, My Struggle)』을 읽고자 힘겨운 ‘나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각다귀처럼 달라붙어 의지를 파먹는 의구심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하는 와중에 젖먹던 힘까지 쏟아낸 끝에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자로 하여금 필사의 인내심을 발휘하게 하여 전쟁 범죄자의 저작을 독파하게 하였는가? 그것은 히틀러의 진짜 생각을 알고 싶어서이다. 왜 그의 진짜 생각을 알고 싶은가? 한 인간이 전 세계를 파국으로 이끈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대한 역사의 그림자와 승리자의 오만한 편견 속에 가려진 진짜 그의 모습을 알고 싶었다. 그것도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투쟁』을 다 읽고 난 지금 그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내린다면 바로 ‘파렴치함’일 것이다.

연히 독일어 원본이 아닌 정성스레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읽었음에도 그의 난해한 장광설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책 여기저기에 흩뿌려진 사상의 조각들을 짜맞추면 그 나름의 일관성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세계 점령의 음모를 꾸미는 유대인을 멸종시켜야 한다는 지독한 집념과 독일 민족의 생존 투쟁을 위한 동방정책에 대한 끝없는 의지다. 그는 당시 독일의 위기는 비열하고 나약한 정치가들의 무책임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그 자신은 얼마나 책임감 있게 권력을 행사했는가? 어떤 책임감에 전쟁을 일으켰으며 그 자신도 자각한 국민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어떻게 책임졌는가? 무엇보다 그가 비열한 인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앞서 『나의 투쟁』에서 공공연하게 전쟁을 주장했던 당당한 태도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자신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으며 전쟁은 오직 국제적 정치가들, 즉 자기 자신이 유대계이거나 또는 유대인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하던 국제적 정치가들에 의해 야기된 것이라고 정치적 유언에서 전쟁의 책임을 비겁하게 회피했다. 이 마지막 유언 하나로 그는 스스로 소인배가 된 것이다.

으로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역겨운 그의 인종주의가 다시 고개를 쳐들 때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지 나 스스로 끊임없이 되물었다. 히틀러의 편협한 사상 때문이든 지루하고 조야한 내용 때문에든 감히 누군가에게 권하기 어려운 책이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인류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나의 투쟁』이 처음 출판되었을 당시 2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곳곳의 사람들도 읽었다. 이처럼 히틀러의 의도는 감추어지지 않고 전 세계에 드러냈지만, 그 누구도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의심 많던 스탈린조차 독소불가침조약을 믿었던 것을 보면 『나의 투쟁』은 그저 히틀러 개인적 이상을 담은 자서전 정도로 치부된 것일지도 모른다. 정치가들의 잦은 말 바꾸기와 뜬구름 같은 공약처럼 『나의 투쟁』 역시 민심이나 표를 얻기 위한 일상적이며 무의미한 선거전 전략으로 격하되었고, 유럽 정치가들은 히틀러 역시 실제 정치와 외교에서는 태도를 바꿔 실리를 추구하리라 믿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또다시 전쟁을 한다는 것은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진저리나는 일이었으니까.

인간의 모든 생각이 말이나 글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고, 또 세상에 내뱉어진 말과 글이 모두 실행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의지를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또한 그 사람이 권력에 도를 넘는 집착을 보인다면, 그가 내뱉은 말과 글이 웃음이 나올 정도로 황당하거나 때론 미친 사람의 의견으로 비칠 정도로 상식을 벗어나는 것일지라도 그냥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히틀러를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히틀러는 정직했고 그가 너무 정직했기 때문에 세상은 속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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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8.

[책 리뷰]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 ‘걷기’ ~ 플래닛 워커(존 프란시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 ‘걷기’

원제: Planetwalker - 22 Years of Walking. 17 Years of Silence by John Francis Ph.D.
토머스 머튼은 이렇게 말한다. “공간을 이동하는 순례는 내면의 여행을 겉으로 드러내는 상징적인 행위이며, 내면의 여행은 외적인 순례에서 발견하는 의미와 신호를 토대로 내면을 알아 가는 과정이다. 두 여행 중 하나만 해도 되지만 둘 다하는 것이 제일 좋다.” (『플래닛 워커』, 292쪽)

책 『플래닛 워커』는 존 프란시스라는 한 순례자의 자서전이다. 또한, 존 프란시스라는 한 여행자의 여행기이며 스스로 ‘환경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이라 부르는 한 환경주의자의 이력이기도 하다. 존 프란시스는 1971년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일어난 기름유출 사고가 일으킨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현장을 목격한 이후 개인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다. 사람이 생태계를 지배한다는 인간 중심주의적인 관점에서 탈피하여 사람 역시 다른 생명처럼 생태계의 일부임을 깨달은 그는 ‘나를 위한 환경’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동력운송수단을 거부하였고, 7년 동안의 도보 여행으로 미국 땅을 가로질렀으며, 17년 동안 침묵 서약을 지켰다.

한 개인이 동력운송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그저 걷고 침묵한다고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었고, 시큰둥한 말투로 마지못해 그의 행동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의 노력과 의도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의 굳센 실천 의지에 놀라움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그의 행동에 동참할 수 없어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의 부모처럼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런 사람들에겐 미국은 워낙 다양한 인종,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그런 별종 하나 더 있다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은 사람의 예상과 기대와는 달리 그의 실천은 세상을 바꾸려는 원대한 포부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꾸려는 작은 소망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나 자신을 바꾸면 내 주변 사람도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바뀔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에서 시작한 그의 순례와 침묵 서약은 정말로 많은 사람을 변화시켰다. 변화의 힘 덕분에 존 프란시스는 침묵과 도보 서약을 지키는 와중에서도 각종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고, 심지어 정부 기관에서 1년 넘게 직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말도 하지 않고 걷거나 자전거로만 이동하는 사람이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혹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학우나 동료라고 상상해보면 그가 얼마나 괴짜처럼 보였을 것인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남긴 발자취와 이룩한 업적은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

침묵과 도보 순례 중에 만난 사람 중에는 다짜고짜 존 프란시스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과격한 사람도 있었고, 목을 축일 물 좀 얻고자 내민 수통에 물 대신 1달러 지폐를 넣어주는 친절한 할머니도 있었다. 그가 유명해지기 전에도 기꺼이 그에게 하룻밤 숙식을 제공한 사람들도 있었고, 진지하게 그의 손짓과 발짓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가 침묵과 도보 순례를 떠난 이유에 공감하면서 그가 겪는 시련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마음 아파했다. 자신을 바꾸려는 부단한 노력과 굳센 의지는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로 전염병처럼 조금씩 전염되었으며,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회고와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세상은 분명히 변화하지만, 그 변화의 씨앗은 뜻밖에도 이처럼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아 왔다. 지구를 지키려는 그의 간절한 바람이 태평양을 건너는 따뜻한 계절풍을 타고 민들레 씨앗처럼 사뿐히 날아와 이 작은 한반도에 골고루 퍼져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날을 기대해 본다.

지막으로 존 프란시스는 걷기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공원 같은 한적한 곳을 차분히 산책하다 보면 주변의 리듬과 생체 리듬 등 모든 삶의 흐름이 걷기 속도에 맞추어 느려짐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와중에 내면에서는 평소 바쁜 일상에 쫓겨 감히 끄집어내지 못했던 갖가지 생각들이 샘솟듯 솟아오르며, 어느새 나 자신과의 진지하고 일탈적이기도 한 침묵의 대화는 시작된다. 이로써 내면이 좀 더 영글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28년간 미 대륙을 6번이나 걸어서 횡단하며 도보여행을 한 피스 필그림은 내면의 평화가 없이는 다른 어떤 평화도 얻을 수 없다고 역설했듯, 나 자신과의 대화는 격동하는 사회의 파장에 어떻게든 끼워 맞추느냐 힘없이 요동치다 지친 우리의 내면을 다스리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다. 또한, 존 프란시스가 『플래닛 워커』를 통해 남긴 침묵과 도보 여행의 생생한 체험에서 알 수 있듯, 그런 나 자신과의 대화는 차분하고 순수한 목적의 걷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진지한 독백으로 구할 수 있을 것이다(이 책은 일부 전자도서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리뷰는 2017년 01월 18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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