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의 마중(归来, 2014) | 평범한 소재를 평범하지 않은 경지로
<아빠의 탈옥 소식에 서로 다른 감정을 드러내는 엄마와 딸> |
얼마 전 블로그에 게시한 옌거링(严歌苓)의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陆犯焉识)』가 아니었더라면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을 영화지만(왜냐하면 장르가 우주만큼이나 공허한 나의 옆구리를 뼛속 사무치도록 상기시키는 로맨스니까), 리뷰를 쓰면서 우연히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드라마 초한지(2012)에서 유방 역을 맡았던 천다오밍(陈道明)과 세계적인 배우 공리(巩俐), 그리고 공리와 함께 「귀주 이야기」를 만든 장이머우(张艺谋) 감독이 만들었다길래 원작을 어떻게 개작했는지 궁금증이 간질 발작처럼 도지는 바람에, 그리고 비록 오래전에 개봉한 영화지만 픽팍(PikPak)의 오프라인 다운로드로 바로 구할 수 있는 영상에 마침 한국어 자막도 있어서 감상하게 되었다.
<기차역에 숨어 아내를 기다리는 루옌스> |
<딸의 배신으로 끝끝내 남편을 만나지 못한 펑완위> |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영화 제목만 봐도 어디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될지는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归来’, 구글 번역은 ‘반품’, 빙과 파파고 번역은 ‘돌아오다’라는 뜻의 영화 제목은 루옌스 가족의 잔혹사에서 루옌스가 영원할 것 같았던 노동 교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급변하니까 나 몰라라 하듯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점에서 ‘반품’엔 정치적 의미가 있고, 한 부부가 긴 이별 끝에 재회한다는 점에서 ‘돌아오다’에는 낭만적 의미가 있으니 참으로 공교롭고도 재밌는 번역이다.
<인민의 피로 물들인 마오쩌둥 어록을 흔드는 군중> |
<살인자보다 못한 취급받는 정치범을 둔 가족은 그를 말살해야 생존할 수 있었다> |
원작의 어느 부분을 발췌하여, 혹은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어 영화로 연출할지는 전적으로 감독의 자유이고 재량이지만, 원작을 읽은 사람으로서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그저 재수가 없었다’라는 말 외에는 딱히 설명할 도리가 없는 루옌스가 정치범으로 조작되는 과정, 혹한과 기아와 중노동과 방치로 죽음이 일상화된 도살장이나 다름없는 교도소 등 중국 공산당에 불리한 인권에 관한 이야기는 쏙 빼놓고 ‘감성팔이’ 소재로 딱 좋은 끝부분만 오려냈기 때문이다.
당최 장이머우 감독이 고발 • 비판 정신이 투철한 감독은 아니었지만(그랬기에 지금의 그가 있었기도 하겠지만), 왠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영화를 본 것 같아 찜찜하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가진 것도 많아져 보수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는데, 감독으로서는 말년의 안식을 깨는 모험을 굳이 할 이유도, 명분도, 패기도 없었을 것이다. 그를 탓할 수가 없다. 중국인으로서 정부가 듣기 싫어하고 대중도 외면하는 옳은 소리를 한다는 것은 바로 루예스의 비극을 이참에 나도 한 번 겪어보겠다는 객기가 아니고 뭐겠는가!
<아빠표 국수를 먹는 단단, 장후이웬(张慧雯)의 무용은 가짜가 아니라는 사실> |
<리뷰를 쓰면서 다시 보고 또다시 봐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
원래 그는 감성적인 영화를 만드는데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니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영화 「5일의 마중(归来)」은 가슴을 싸늘하게 저미는 우아하고도 아름다운 슬픔을 천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는 점에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いま、会いにゆきます)」만큼은 아니더라도 「하치 이야기(ハチ公物語)」(펑완위는 5일만 되면 하치가 그랬던 것처럼 기차역으로 남편을 마중 나간다) 정도로 마음 편하게 울 수 있는 영화다.
사실 격조했던 부부나 연인이 재회했을 때 기억상실증(혹은 치매) 등의 병으로 남편(혹은 아내)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비극적 소재는 RPG 게임의 에피소드에도 등장할 정도로 익숙한 소재지만, 재료가 같다고 해서 같은 맛이 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집 강아지도 안다. 집마다 김치맛이 다른 것처럼 소재보다 중요한 것이 요리법이라는 사실을 「5일의 마중」은 절절하게 보여준다.
시선을 자연스럽게 집중시키는 천다오밍과 공리의 차분한 연기, 시대 분위기를 은은하게 은유하는 살짝 바랜 색감, 몸은 함께 있지만 마음은 영영 만나지 못하는 가슴 아픈 사연 등 평범한 소재를 평범하지 않은 극상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감독의 역량이 이다지도 보기 좋은 작품을 빚어내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 오늘은 평소 리뷰와는 달리 스포일러가 포함되고 말았다. 하지만, 원작을 읽은 나조차 영화 감상을 마쳤을 땐 방금 물에서 건져낸 것처럼 안경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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