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일상적인 생각을 쓰고. 이 모든 것을 음악을 들으며.

Recent Comments

2015. 11. 30.

[책 리뷰] 달콤 쌉싸래한 맛 속에 숨은 ‘불편한 진실’ ~ 나쁜 초콜릿(캐럴 오프)

Bitter Chocolate book cover
review rating

달콤 쌉싸래한 맛 속에 숨은 ‘불편한 진실’

Original Title: Bitter Chocolate by Carol Off

음모의 소용돌이가 푹푹 찌고 숨 막히는 열대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쌌다. 취재원들은 끊임없이 내게 말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키에페르는 이들의 당부를 무시하고 조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선을 넘었는지 어떻게 알죠?”

내가 물었다.

“코트디부아르에 왔을 때 이미 넘어버린 겁니다.”

(『나쁜 초콜릿(Bitter Chocolate)』, p359)

‘신의 음식’에서 ‘아동 노동 착취’의 아이콘으로

틴어로 ‘테오브로마 카카오(Theobroma cacao)’. 즉 ‘신의 음식’이라 불리는 카카오나무의 역사는 3,000여 년 전의 중앙아메리카부터 시작된다. 그 당시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았던 올메크족 여인들은 카카오 원두의 끈끈하고 찐득거리는 지방질 건더기에 물과 녹말을 섞은, 오늘날 카카오를 함유한 음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순도 높은 초콜릿을 만들어 고위 계급에 바쳤다. 그리고 올메크족의 뒤를 이은 마야, 아스테카 문명에서도 카카후아틀의 요리와 섭취는 전적으로 지배계급의 취향이었다. 이는 일반 민중뿐 아니라 카카오 원두를 수확하는 이들조차 결코 누릴 수 없는 사치였으며, 원두에 불과했지만 워낙 귀중한 상품이었던 카카오는 아스테카 제국의 공식 통화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카카오는 16세기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 식민지 경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커피나 사탕수수, 목화 산업처럼 노예무역을 활성화하는데 크나큰 이바지를 한다. 조직적이고 교회의 인가까지 받은 노예 제도는 법적으로는 19세기 중반에 끝났어야 했으나, ‘계약 노동자’라는, 그럴듯하게 이름만 바뀐 채 현대에까지 이어져 ‘아동 노동 착취’, ‘빈곤’ 등의 국제적 문제를 남긴다.

카카오 열매를 따는 아이들과의 약속

나다 언론인 캐럴 오프(Carol Off)의 『나쁜 초콜릿(Bitter Chocolate)』은 3,000여 년 전의 중앙아메리카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계급 시대와 착취, 탐닉과 폭력으로 얼룩진 카카오 역사와 그 현장을 추적하여 고발하는, 초콜릿을 좋아하는 소비자로서는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 담긴 책이다.

인류 문명에 카카오가 처음 등장한 시대부터 카카오가 유럽에 전파된 대항해시대를 거쳐 퀘이커교도 사업가들에 의해 달콤하면서 쌉싸래한 근대적인 판형 초콜캐럴 오프릿 제품들이 개발되기까지의 기나긴 과정과 달곰한 먹거리로 상품화된 덕분에 더욱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게 된 각양각색의 초콜릿 제품 생산을 둘러싼 극심한 경쟁 속에서 탄생한 대형 독과점 및 카르텔 형성 과정에 숨겨진 다국적기업들의 횡포와 야심, 그리고 단지 배고픔을 면하고자 하는 빈약한 소망을 품은 가난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감금 생활과 무임금 노동 등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학대를 자행한 농장주와 이를 무심히 넘겨버린 다국적기업과 각국 정부들, 또한 카카오와 관련된 코트디부아르 정부의 부정과 부패를 파헤치다 사라진 저널리스트 앙드레 키에페르,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농장으로 끌려가 총으로 위협당하며 강제노동을 해야 하는 아이들을 구출하다 실직한 외교관, 돈을 벌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카카오 농장에서 노동 착취와 학대를 경험했던 소년들의 실화 등 과거와 현재를 아우라는 입체적인 구성과 날카로운 필치로 카카오 세계에 만연한 불의를 폭로한 캐럴 오프는 제2의 키에페르가 될 수도 있다는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코트디부아르의 현지 조사를 강행하면서까지 『나쁜 초콜릿(Bitter Chocolate)』을 완성했다.

캐럴 오프는 코트디부아르의 시니코송(Sinikosson)이라 불리는 외지고 가난한 곳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그들이 카카오 열매로 뭘 하는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마을 사람들 모두 족장을 쳐다보았다. 난처해진 족장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카카오 원두를 생산하는 그들은 기업들이 카카오 원두를 사들여 뭘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캐럴 오프는 마을 사람들에게 초콜릿에 관해서 설명했고 그중 한 사람이 마을 바깥에 갔을 때 한번 먹어보았는데 맛이 좋았다고 대답했을 뿐, 그 밖에는 초콜릿이 무엇인지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또한, 그녀는 초콜릿이 뭔지 모르는 코트디부아르의 시니코송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먹는 대부분의 바깥세상 사람들은 그 초콜릿이 어디서 오는지, 누가 카카오 열매를 따는지,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해주었을 때, 시니코송 아이들은 그녀가 대신 그 사실들을 초콜릿을 먹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캐럴 오프는 『나쁜 초콜릿(Bitter Chocolate)』을 완성함으로써 시니코송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 되었다.

‘공정무역’ 상품에 내포된 또 다른 ‘불편한 진실’

카오 역사가 처음 시작되는 3,0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초콜릿은 지위가 낮은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특권층이 소비하는 사치품이다. 수천 년 동안 지배계급의 초콜릿에 대한 가없는 갈망을, 결코 바닥을 드러낼 줄 모르는 기업의 탐욕을 채워주려면 역시 가없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다. 부자가 있으면 가난한 자가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듯, 제품의 싼값에는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1차 생산자들의 노동 착취가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 노동 착취에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혹한 처지에 태어난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씁쓸하고 우울한 현실을 직시하고 나면 항상 떠오르는 회의는 왜 기업은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이윤 추구와는 공존할 수 없을까 하는, 다소 공상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상심에서 오는 낙담이다. 그렇다면 1988년 네덜란드에서 막스 하벨라르(Max Havelaar)가 시작한 공정무역 운동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유기농 분야의 선구자인 크레이그 샘스와 그의 아내 페얼리는 유기농 초콜릿 상품에 적합한 공급자를 벨리즈 남부 톨레도의 농민에게서 발견했다. 그들은 마야인의 후손으로 재래종 크리오요 카카오나무를 3,000년 전 올메크족으로부터 전수받은 방식, 즉 비료나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 재래식 방법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톨레도의 농민들은 샘스가 파트너 손을 내밀기 얼마 전에 허밍버드허시와 벨리즈 정부의 조언에 따라 농약에 절은 교배종을 심었다가 크게 실패를 본 직후여서 그의 사업 제한이 못 미더웠지만, 그렇다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결국 계약에 동의했다. 샘스가 설립한 그린&블랙스는 이를 계기로 ‘마야골드’라고 이름 붙인 명품 초콜릿을 생산했고 그것은 단지 유기농 초콜릿만이 아니라 ‘공정무역’ 상품이기도 했다.

덕분에 수입이 증가한 톨레도 농민들은 아이들을 다시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동네에 정기 운행 버스가 개설될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의 이름을 딴 초콜릿을 살 만큼 부유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원두 재배 이상의 것은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전 지구적 피라미드 경쟁에서 상위를 차지한 여러 나라와 다국적기업들이 자신들이 점령한 유리한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자 장벽을 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공정무역이 추구하는 진정한 목적이 1차 생산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도 한몫한다. 윤리적 소비가 생산자보다는 소비자의 관점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람 중 하나인 크레이그 샘스는 “소비자들은 문제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편에 자신들이 설 수 있도록 제조업자들이 도와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열대우림과 전통문화의 소멸, 지구 온난화에 대해 느끼는 절망, 비관, 무기력함 등의 감정을 덜게 해주기를 원하죠.”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공정무역 제도가 기존 체제와 비교하면 1차 생산자인 농민들에게 더 큰 이득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그럴듯한 제도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공정무역 딱지를 붙이고 경쟁상품보다 더 비싸게 파는 기업이다. 그리고 공정무역 라벨이 붙은 제품을 삼으로써 세상에,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뭔가 크게 이바지를 했다는 우월감, 또는 자부심에 빠져 자화자찬하며 만족하는 소비자도 빠질 수 없다.

공정무역이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기회는 제공해 줄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기업이 적극적으로 공정무역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자 역시 적극적으로 동참할 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런 희망적인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캐럴 오프는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한 불의가 바로 잡히는 날은 오기 어려울 거라고 비관적인 전망으로 글을 마친다.

마치면서...

리 주변의 크고 작은 슈퍼마켓, 심지어 시골의 구멍가게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먹을거리가 바로 초콜릿 제품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것을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가격 또한 저렴하다. 그러나 군침을 삼키며 그 초콜릿 제품 봉지를 벗기는 부드럽고 나약한 어느 한 소년의 흰 손과 땡볕 아래 시커멓게 그을리며 끼니도 제대로 못 때우고 카카오를 재배하는 소년의 거칠고 억센 손 사이의 격차는 어마어마하다 못해 요원하기까지 하다. 인종이나 종교, 국경과 상관없이 보편적인 상품이 된 초콜릿이지만, 초콜릿의 원료를 재배하는 소년과 농민들에겐 여전히 사치품이다. 살 만한 나라, 경제적으로 괜찮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심심풀이 간식으로 초콜릿을 소비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어렸을 때부터 노동하며 초콜릿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을 꿈꾼다.

누구나 겉으로는 공정하며 평등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거나 이에 동조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실제 행동은 그 반대다. 『나쁜 초콜릿』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12초마다 기아와 그와 관련된 질병으로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행해지는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의식적인 지속적인 테러가 부정할 수 없는 그 증거이며, 우리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지속적인 테러에 동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루소는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문명사회 이전 자연인 상태에서의 불평등은 신체적 불평등뿐이지만 그것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하다고 말하면서 현재의 불평등과 그에 따른 죄악은 사유의 개념이 생기면서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 이 얼마나 놀라운 발견이고 선견지명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이 불평등을 혁파할 수 있는 조금의 여지도 안 보이니,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 리뷰는 2015년 11월 3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2015. 11. 29.

[책 리뷰] 범상치 않은 호텔 일상으로 파고드는 추리 ~ 메스커레이드 호텔(히가시노 게이고)

masquerade hotel book cover
review rating

범상치 않은 호텔 일상으로 파고드는 추리

Original Title: マスカレ-ド ホテル by 東野圭吾
“호텔리어는 손님의 맨얼굴이 훤히 보여도 그 가면을 존중해드려야 해요. 결코 그걸 벗기려고 해서는 안 되죠. 어떤 의미에서 손님들은 가면무도회를 즐기기 위해 호텔을 찾으시는 거니까요.” (『메스커레이드 호텔(マスカレ-ド ホテル)』, p407)

쿄 여기저기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세 건의 사건 현장에는 아래와 같은 수수께끼의 메시지가 남겨 있었다.

10월 4일, 45.761871, 143.803944

10월 10일, 45.648055, 149.850829

10월 18일, 45.678738, 157.788585

경시청은 이 메시지를 근거로 하여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이라는 잠정적인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른 수사 방침을 정한다. 경시청 수사 1과의 닛타 고스케 경위가 수수께끼의 숫자 암호를 풀어냄에 따라 다음 사건의 무대는 도쿄의 초일류 호텔 코르테시아도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범인에 대한 단서도 없고 누구를 노리는지도 모르고 다음 살인은 호텔에서 일어난다는 것만 아는 경시청은 결국, 호텔직원으로 가장한 잠입 수사관과 함께 손님으로 위장한 수사관을 동시에 호텔로 파견한다.

그에 따라 호텔 측에서는 인정받는 프런트 직원 야마기시 나오미를 닛타 고스케 경위의 상대로 배정하고, 하는 수 없이 나오미는 혈기왕성한 경시청 형사를 가장 빠르게 호텔직원으로 교육하면서 함께 프런트에 선다. 당연히 닛타 등을 비롯한 형사들은 호텔 근무 경험은 전혀 없었고, 나오미가 흘끔 쳐다본 닛타의 모습은 삼십 대 중반쯤의 나이에 매섭고 다부진 얼굴이지만, 무례한 인상은 아니어서 일단은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시큰둥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닛타를 엿본 나오미는 불안하기만 했다.

아무튼, 경시청 형사를 일단 겉모양새만이라도 호텔직원답게 만들기 위한 나오미의 각오는 단호했다.

“자세가 좋지 않아요. 우선 그것부터 고치세요. 그리고 걸음걸이도.”

이것이 닛타 형사를 향한 나오미의 첫 태도였다. 그리고 인사하는 방법과 말투를 교정해야 하고 옷매무새도 단정치 않다고 지적하다가 닛타의 장발을 보고는 당장 호텔 지하에 있는 이발소로 데려가 ‘호텔직원 스타일’로 깎아 버린다. 엘리트 출신으로서 자부심이 강한 닛타는 시어머니처럼 시시콜콜 지적하고 참견하는 나오미가 귀찮게만 느껴지지만, 나오미는 최상의 호텔 서비스에 먹칠하는 닛타의 단정하고 예의 바르지 못한 태도가 마음에 걸리기만 할 뿐이다.

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최근 작품들이 초기 작품처럼 사건과 범죄, 트릭, 그리고 추리에 초점을 둔 고전적인 추리물에서 벗어나 범죄 사건을 주요 줄기로 하면서도 주변 인물들 이야기와 사회적 배경을 작품에 충분히 반영하듯, 이 작품 『메스커레이드 호텔(マスカレ-ド ホテル)』 역시 그러하다. 좌충우돌 와중에서도 범인의 치밀한 계획을 차츰 간파해가는 형사들의 힘겨운 노력은 여타의 추리소설과 다를 바 없지만, 딱딱하고 묵직한 형사의 모습에서 나오미의 완고한 가르침 덕분에 언제나 사람 좋은 얼굴을 해야만 하는 호텔직원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닛타의 변신, 티격태격 싸우기만 할 것 같은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과 변화, 그리고 말 그대로 다양한 사람이 드나드는 호텔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재밌는 일화 등은 살인 사건, 그것도 연쇄살인이 빈번하게 등장하여 우중충한 분위기를 띄우기 마련인 추리소설에 산뜻한 기분 전환을 가져온다. 오로지 논리적인 추리에만 혼신을 불어넣은 엘러리 퀸(Ellery Queen)의 ‘독자에게 도전’ 시리즈를 본 독자라면 그 구성에서의 차이점은 금세 드러난다.

비록 엘러리 퀸 등의 본격 추리물처럼 책에 나온 단서들만 가지고 독자가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완벽한 논리적 구성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고, 메스커레이드 호텔(マスカレ-ド ホテル)』 막판에 경찰 시선을 다른 곳은 돌리고자 하는 범인의 계획 정도는 추리소설은 좀 읽어본 독자라는 누구나 간파할 수 있는 평범한 트릭이지만 범인의 충분한 의외성과 허릴 찌르는 살인 계획, 그리고 나오미가 들려주는 호텔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연결지은 범인의 살인 동기와 ‘닛타 vs 나오미’와 노세의 갈등과 화해의 흐뭇한 드라마는 충분히 독자를 매료시키고도 남는 감흥을 준다.

히 나오미가 들려주는 손님의 처지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엄격한 호텔 서비스 정신과 호텔에 출입하는 다양한 손님 때문에 겪는 호텔 측의 우여곡절은 이야기의 풍미를 더 해주며 독자를 잠시나마 초일류 호텔에 머무르는 것 같은 유쾌하고 만족스러운 착각을 준다. 경찰관은 이미 법으로 정해진 규칙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로 옳은지 나쁜지를 판단한다면, 호텔의 규칙은 손님은 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에 따라야 하는 직원의 고충을 듣노라면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숙박비를 내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인 스키퍼의 정보를 공유하는 호텔들, 일부러 호텔 물품을 숨겨 자신을 도둑으로 몰리게 한 다음 명예훼손이니 뭐니 떠들며 돈을 뜯어낼 속셈으로 숙박한 진상 손님, 금연실인데 담배 냄새가 난다고 클레임이 걸어 일반실 요금으로 스위트룸을 얻는 영악한 손님, 시각장애인 남편이 숙박하기 전에 시각장애인에게 얼마나 친절한 서비스를 해주는지 직접 확인하려고 일부러 시각장애인으로 꾸미고 온 치밀한 노부인, 텔레비전을 통해 얼굴이 잘 알려진 유명 인사가 들키지 않고 젊은 여자와 호텔에서 밀회를 즐기려고 구사하는 기상천외한 방법, 호텔은 숙박 중인 손님의 호실을 절대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규칙 때문에 호텔에서 반강제적으로 쫓겨나야 했던 여인과 이 규칙을 역이용해 남편의 불륜 현장을 덮칠 수 있었던 아내 등 나오미가 들려주는 호텔과 함께 사는 사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세상의 수많은 직업 중에서 일하기가 가장 까다롭고 그들에게는 고충이지만 타인이 볼 때는 재미있는 일화도 많이 생기는 직업은 다름 아닌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막으로 추리소설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명탐정이다. 이번 『메스커레이드 호텔』에는 엘리트 의식이 강한 닛타 형사가 등장한다. 그에게는 가가 교이치로 같은 겸손이나 차분함은 찾아볼 수 없었만, 아무도 해결할 수 없었던 범인이 남긴 메시지를 해독하는 명철한 두뇌를 소유함으로써 명탐정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만족한다. 그러나 자만심이 충만하며 공명심이 가득한 닛타 형사는 주변과 쉽게 동화되지 못한다.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눈에 독기를 품고 호텔에 드나드는 모든 손님을 의심하는 눈초리도 쏘아보니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나오미의 마음은 애간장이 탄다. 이런 외골수인 그는 두 사람의 짝을 맞이한다. 한 명은 그의 이글거리는 눈의 독기를 잠재우고 편안하게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서비스 충만한 호텔직원의 유순한 눈으로 가라앉혀야 할 임무를 지닌 다소 고지식한 나오미와 우둔해 보이지만 발로 뛰는 수완가이면서도 모든 공을 다른 사람에 돌리는 괴짜 형사 노세이다. 기름과 물 같았던 세 사람은 사건 해결을 위해 함께 고심하면서 어느새 자연스럽게 융화되어간다. 닛타는 나오미를 통해서는 부드러움을, 그리고 노세를 통해서는 팀워크의 중요성과 겸손을 배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명탐정, 그러나 완성을 향해 조금씩 전진하는, 그것이 바로 닛타 형사다.

Share:

2015. 11. 25.

바이두 클라우드 ~ 네트워크 연결 실패, 로그인 오류 해결법

얼마 전에 바이두 클라우드(Baidu Cloud: 百度云) 연결에 문제가 생겼다. 로그인은 잘 되지만 곧 '네트워크 연결 실패' 오류가 뜨면서 연결이 끊어졌다가 다시 연결되는, 이런 현상이 반복 되었다. 랜카드 드라이버를 롤백, 또는 업데이트를 해보고 랜카드 설정도 초기화해봐도 해결이 안 되기에 혹시나 하고 노트북 유선랜 연결을 끊고 무선랜으로 접속하니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고로 계정 블록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시 유선랜으로 접속하면 문제가 다시 발생했다. 그래서 윈도우 10의 문제인 줄 알고 다시 윈도우 7로 복구했어도 연결과 끊김임 반복되는 증상은 여전히 나타났다(참고로 다시 윈도우 10으로 돌아가기 귀찮아서 윈도우 7에 눌러앉았다). 물론 치후 360, 토렌트 등 다른 인터넷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무튼 이 증상은 유선 랜카드의 MAC 주소를 변경하고 새 IP 주소를 할당받음으로써 해결 이 되었다(또는 프록시 서버를 사용해도 문제가 해결되었다). 즉 어떤 이유로 필자의 유선 랜카드에 할당된 IP 주소가 일시적으로 바이두 서버 접속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일시적이라고 말한 이유는 3일 정도 후에 기존의 IP로도 문제없이 접속이 되고 업/다운로드도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평소에 프록시 서버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IP 주소를 바꾸고자 랜카드의 MAC 주소를 임의로 변경했다. MAC 주소 변경 방법은 첨부된 파일의 Win7 MAC address changer 유틸을 사용해도 되고 [네트워크 연결]의 [네트워크 어댑터 설정]의 [고급] 탭에서 직접 바꿔줘도 된다. 단, 첨부된 파일로 주소를 변경했을 때는 변경한 랜카드를 [사용안함] 그리고 [사용함]을 해줘야 변경된 MAC 주소가 적용이 된다.

MAC 주소가 변경되면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DHCP 서버에서 새 IP를 할당받기 위해 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한두 번의 변경으로 안 될 때도 있으니 끈기를 가지고 시도해 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허브나 공유기의 전원을 껐다 다시 켜보거나 컴퓨터를 재부팅 해본다.

이 리뷰는 2015년 11월 25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2015. 11. 24.

[책 리뷰] 문화보다 앞서 존재함으로써 문화를 태동시킨 ‘놀이’ ~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book cover
review rating

문화보다 앞서 존재함으로써 문화를 태동시킨 ‘놀이’

Original Title: 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Element in Culture by Johan Huizinga
순수한 탐욕은 거래도 하지 않고 놀이도 하지 않으며 노름도 하지 않는다. 과감하게 나서고, 모험을 걸고, 불확실성을 견디고, 긴장을 참는 것, 이런 것들이 놀이 정신의 본질이다. 긴장은 게임의 중요성을 배가(倍加)하고, 긴장이 커질수록 놀이하는 사람은 자신이 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p116)

‘생각하는’ 사람? 아니 ‘놀이하는’ 사람!

생 인류의 분류학상 학명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추천한 인류 지칭 용어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놀이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즉, 이 말은 인류가 ‘놀이하기’를 통해서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사람의 놀이 행위를 중요하다고 본 것인데, 놀이가 문화에 영향을 얼마나 미쳤는지, 또는 그렇지 않았는지를 떠나서 사람은 다른 영장류와는 달리 어른이 되어서도 놀이에 집착할 뿐만 아니라, 때론 ‘동심의 세계’를 잊지 못해 그 세계에 다시 빠져들어 어린이가 되고 싶어 하는 경향을 보면 놀이가 사람의 삶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인류의 특징을 가리켜 어느 책에선가 ‘유아성숙’이라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즉, 다른 영장류처럼 완전하고 성숙하고 털이 풍성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아이의 상태를 어느 정도 유지한 채로 어른이 된다는 뜻인데(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처럼 털이 없다?), 어찌 되었든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놀이에 집착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두뇌를 자극하고 육체를 단련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놀이의 특징

이가 원시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즉 문화보다 먼저 앞서 존재함으로써 문화를 태동시켰다는 조금은 낯선 하위징아의 이론에서 정의하는 놀이의 특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모든 놀이는 자발적 행위이다. 명령에 의한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고 기껏해야 놀이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p41)

‘자발적’이라는 단어에서 ‘축구 사역’이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축구 사역’이란 말은 군대에서 계급이 낮은 장병이 선임자의 명령에 따라 억지로 축구 시합에 참여하는 것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때의 축구는 즐거운 놀이가 아니라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의무이자 노동이다. 놀이의 자발성은 (요즘 젊은이들에겐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어렸을 때 ‘술래잡기할 사람 여기 붙어라~’라고 소리쳐 동네 애들을 불러모아 놀았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놀이의 두 번째 특징은 ‘일상적인’ 혹은 ‘실제’생활에서 벗어난 행위라는 점이다. 놀이는 ‘실제’생활에서 벗어나 그 나름의 성향을 가진 일시적 행위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p42)

‘술래잡기’, ‘딱지치기’, ‘다방구’ 등의 놀이가 진행되는 공간 역시 참여하는 사람들만 이해하고 관계되는,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임시적인 또 다른 현실이다. 이러한 점은 온라인게임도 마찬가지다.

놀이의 형태적 특징과 관련하여 모든 학자는 무사무욕(disintere-stedness)을 들고 있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p43)

온라인게임을 즐기며 아이템 현금거래로 손을 뻗는 순간, 즉 과도한 현금을 게임에 쏟아붓는 순간 게임은 일상 아닌 것에서 일상으로 돌아와 현실이 된다. 그리고 과도하게 진지해진다. 즉 놀이의 순수성을 잃은 것이다. 이것은 막대한 자금의 이적료와 후원자가 오고 가고 경기 결과를 두고 내기를 하는 상업적인 현대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놀이는 그 장소와 시간에 있어서 ‘일상’생활과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처럼 따로 떨어져 있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 놀이의 세 번째 특징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p45)

보통 ‘술래잡기’를 시작할 때 어느 거리까지 숨어도 되는지 규칙이 정해지며, ‘다방구’를 할 때도 술래를 피하고자 마을을 벗어나면서까지 마냥 도망가지는 않는다.

게임의 규칙은 절대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고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다. …… 사회는 게임을 망치는 자보다는 게임을 속이는 자에게 훨씬 관대하다. 이것은 왜 그런가 하면 전자(게임을 망치는 자)가 놀이의 세계를 아예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p48)

주지하다시피 규칙이 없으면 놀이는 순조롭게 진행할 수가 없다. 일반적인 현대 스포츠에서도 엄격하게 경기 규칙이 정해져 있고, 이를 심판하는 주심이 경기에 참여한다. 그리고 게임을 속이는 자, 게임의 규칙을 위반하는 자에게는 벌칙을 주지만 누구나 감당할만한 가벼운 벌칙이다. 심지어 우루과이 국가대표 축구선수 수아레즈처럼 상대편을 이로 무는 행위도 규칙대로 징계를 받을 뿐이지 축구선수로의 자격을 발탁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승부 조작이나 관중 난입 등으로 게임을 훼손하고 망치려는 자들은 선수자격 박탈이나 경기장 영구 입장 금지 등의 중징계를 받는다.

긴장의 요소는 놀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긴장은 불확실성과 우연성을 의미한다. 문제를 파악하여 그것을 해결하는 노력을 가져온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p47)

이런 점 때문에 어린아이에게 적절한 놀이는 지적 능력과 인성을 향상시킨다. 그리고 어른에게는 스트레스 해소와 기분 전환에 도움을 준다. 또한, 요한 하위징아가 언급한 놀이의 특징들을 내가 어린 시절에 즐겨 놀았던 놀이에 비추어보면 얼추 들어맞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심’을 죽인 ‘진지함’은 더는 놀이가 아니다!

한 하위징아는 순수했던 원시 시대 놀이-의식(意識)은 다양한 놀이 형태와 의례 속에서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표출되었으며 리듬, 조화, 변화, 교대, 대조, 클라이맥스 등을 바라는 인간의 생래적 요구가 충분히 개화(開花)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문화를 생산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놀이-의식에 명예, 위엄, 우월함,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정신이 결부되고, 주술과 신비 의례, 영웅적 동경, 음악 • 조각 • 논리의 예시(豫示)는 고상한 놀이 속에서 형태와 표현을 얻으려 했으며 이러한 열망의 사회적 형태는 경기와 경주, 공연과 전시, 춤과 무용, 행렬, 가면극, 토너먼트, 철학, 시 등으로 표출되었고 말한다.

놀이의 형태로 발생했고, 태초부터 놀이되었던 문화는 장엄함을 과시하는 기사도 놀이와 정교한 궁정 연애 놀이 등의 놀이 정신으로 충만했던 중세시대에도 그 명목을 이어갔으며, 르네상스와 휴머니즘 시대에는 전체적인 정신적 태도에 놀이의 태도가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생각’이 뛰어놀 수 있는 이상적 공간을 만들자는 낭만적 계획 그 자체가 하나의 놀이 과정이었던 낭만주의 시대까지 문화는 놀이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의식, 교육적 열망, 과학적 판단이 문명의 지배 요소가 되었던 19세기 산업 시대를 거치면서 문화가 순수한 놀이 정신을 잃어버림으로써 문명은 전체적으로 더 진지해졌고, 그래서 진지함을 대표 철학으로 삼는 현대 문화는 ‘놀이되는’ 것을 중단했으며, 진정한 놀이가 되려면 어른이 동심으로 돌아가 놀이하는 그런 게임이 되어야 한다고 요한 하위징아는 충고한다.

마치면서...

부신 기술과 과학, 거대한 자본과 소비가 현대 문명을 이끄는 지금은 원시 시대에 놀이가 인류의 문화를 잉태했듯이 문화가 놀이를 잉태하면서 문화와 놀이가 서로 역동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첨단시대다. 여기에 약간의 상업성을 배제하지 않고 공간과 시간적인 제약에 쫓기는 한국인의 숨 가쁜 현실을 참작한다면, 많은 사람이 즐기는 온라인게임은 게임에 참여하는 사용자의 의도와 의지에 따라 어느 정도는 과거의 놀이를 대체하는 현대식 놀이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요한 하위징아가 정의한 놀이의 특징대로 규칙이 있고, 특정한 환경적 제약(인터넷, 컴퓨터)을 가지며, 일상생활과는 전혀 다른 가상의 현실을 제공하고, 컴퓨터를 조금이나마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자유롭게 참여하고 나갈 수 있고,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사람을 완벽하게 몰두하게 한다. 그리스의 경기처럼 경쟁적 요소도 있지만, 선악의 구별이 없으며 도덕의 바깥에 있다. 보통은 물질적인 이득과는 관계가 없다. 또한, 길드나 인터넷 카페 같은 사회적 집단의 형성을 촉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놀이적 특징에도 온라인게임을 순수한 놀이로 즐기려면 도박처럼 중독되지 않고 게임 시간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참여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이것은 “중요한 건 승부가 아니라 게임이다”라는 네덜란드 속담처럼 순수하게 게임을 게임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스의 시민이나 중세의 귀족처럼 여가가 많지 않은 바쁜 현대인에게 틈나는 대로 간편하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컴퓨터 게임이 전 세계 수많은 사용자를 끌어당긴 것은 ‘놀이하는 사람’으로서의 인류의 본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아마도 요한 하위징아는 이 정도까지 전자기기를 활용한 게임 문화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진정하고 순수한 놀이가 문명의 주된 기반 중 하나임을 증명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다. 지금은 문화와 문명을 이끄는 원동력으로써 놀이의 힘이 원시 시대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사람은 ‘놀이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으며 그러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놀이’와 ‘놀이하는 사람’은 인류를 상징하는 여러 대표 아이콘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폐쇄적이고 비운동적인 온라인게임이 다른 건전한 놀이 문화를 제치고 득세하는 것은 그리 반가운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주거 지역에서는 아이나 어른 등 여러 사람이 함께 안심하고 뛰어놀만한 안전하면서도 넉넉한 공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과 기껍게 여러 사람과 어울려 허심탄회하게 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 그리고 이웃과의 소통 부족을 방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2015년 11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2015. 11. 19.

윈도우 8.1/10 파일 및 폴더 접근 권한 설정에서 [모든 권한] 얻기

윈도우 8 이후 내장된 관리자 계정은 보안상 비활성 되어 있고 윈도우 설치하면서 사용자가 생성한 계정 역시 관리자 그룹(Administrators)에 속하지만 실제 사용해보면 파일 접근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 이럴 때 보통 「관리자 계정에 모든 권한 부여하기 레지스트리」 문서에서 제공하는 [모든 권한 얻기]로 소유권을 가져오면 해결되지만, 그럼에도 파일 이름을 변경할 때 관리자 권한을 요구하거나, 포터블로 제작된 프로그램이나 굳이 재설치(Setup.exe, Install.exe로 설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하지 않아도 잘 작동하는 프로그램들처럼 이전 윈도우에서 사용했던 것들은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 옵션을 주어야만 제대로 실행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포터블화된 포토샵을 이용하면서 포토샵 및 Adobe 프로그램의 설정이 저장된,

C:\Users\사용자이름\AppData\Roaming\Adobe

폴더를 다른 폴더로 심볼릭 링크(ex: Y:\Adobe)를 시켜 사용한다. 그러면 포맷할 때마다 따로 백업할 필요없이 Adobe 프로그램들의 설정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Y:\Adobe 폴더에 대한 접근 권한이 부족하면, 포토샵을 사용하면서 설정이나 환경(액션이나 브러쉬, 작업공간 등등)이 변경되었을 때 그 변경사항이 저장되지 않는다. 물론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으로 사용하면 해결이 되지만, 가능하면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은 피하려는 사용자에겐 아래 글이 도움될 것이다.

이것은 로그인한 사용자가 포터블 프로그램, 혹은 굳이 재설치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파일 및 폴더(프로그램의 설정 파일이 저장된 Y:\Adobe을 포함하여)의 접근 권한을 완전히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 이다.

예전에는 (윈도우 7을 포함하는 이전 윈도우들) 소유권만 가지고 있으면 읽기/쓰기/수정 권한이 부여된 것처럼 작동했고, 또는 Administrators 그룹에 모든 권한(읽기, 쓰기, 수정 등)이 주어져 있으면 로그인한 사용자도 Administrator 그룹의 일원이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모든 권한을 가져야 함이 마땅하나 윈도우 8 이후로는 실제 사용하는 데 있어 소유권만 가지고는 완전한 접근 권한을 갖지 못할 때가 있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아래 스샷처럼 로그인한 계정에 별도로 모든 권한을 할당 해야만 한다.

일단 「관리자 계정에 모든 권한 부여하기 레지스트리」 방법을 통해 소유권을 얻었다면, 파일 및 폴더의 [보안] 탭의 [고급] 설정으로 들어간다. [감사] 항목에서 [계속]을 클릭하여 '적절한 권한'을 얻은 다음, 다시 [사용 권한] 항목으로 돌아온다.

[보안 주체 선택]을 클릭해서 모든 권한을 할당받을, 즉 로그인한 계정 이름을 입력한다. 예를 들어 로그인한 계정 이름을 모른다면 [고급]으로 들어가 찾으면 된다. 그런 다음 해당 계정에 아래 스샷처럼 모든 권한을 부여한 다음 [사용 권한] 항목에서 반드시 [모든 자식 개체 사용 권한 항목을 이 개체의 상속 가능한 사용 권한 항목으로 바꾸기(P)]에 체크 하고 [적용] 및 [확인]으로 마무리한다.

이렇게 해당 파일 및 폴더의 모든 권한을 얻으면 굳이 내장된 관리자 계정을 사용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으며,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 옵션을 주지 않아도 대부분의 프로그램(포터블 포함)이 제대로 작동한다(System Explorer 같은 시스템 유틸리티는 여전히 관리자 권한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모든 하드디스크의 접근 권한을 위와 같이 설정할 필요는 없고, 사용자 전용 폴더(바탕화면, 사진, 문서, 즐겨찾기 등이나 AppData 밑의 심볼릭 링크)와 포터블 프로그램이 있는 폴더, Temp 같은 임시 파일 폴더 등에 설정해주면 된다.

그리고 윈도우 앱이 있는 C:\Program Files\WindowsApps 폴더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모든 권한을 얻은 다음 삭제할 수 있다. 하지만, WindowsApps 폴더의 권한을 변경하면 앱이 제대로 실행이 안 된다. 이때는 「윈도우 앱/스토어 오류 - "앱이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이벤트 오류 5973)」 글을 참고하여 "All Application Packages" 그룹을 추가하면 된다.

이 리뷰는 2015년 11월 19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2015. 11. 18.

[책 리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한없는 쓸쓸함 ~ 라쇼몽(아쿠타가와 류노스케)

Rashomon book cover
review rating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한없는 쓸쓸함

Original Title: 羅生門 by 芥川 竜之介
인간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이 있다. 물론, 누구라도 타인의 불행을 동정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불행을 어떻게라도 극복하게 되면, 이번에는 그것을 바라보던 쪽에서 왠지 섭섭한 마음이 된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같은 불행에 빠뜨리고 싶다는 마음조차 생긴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소극적이기는 하나, 어떤 적의를 그 사람에게 품게 된다. (『라쇼몽(羅生門)』, p25)

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라쇼몽(羅生門)』(영화에 사용된 실제 줄거리는 동명의 단편 「라쇼몽」이 아니라 「덤불 속」이다)의 저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竜之介)는 일본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까지 있고 일본 근대문학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소설가지만, 나에겐 그런 사실이나 그의 유명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나쓰메 소세키(夏目 漱石)의 제자이기도 했으며 몇몇 작품은 나쓰메 소세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더 흥미를 끌었다.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고 읽기 전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조금은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라쇼몽(羅生門)』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들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한없는 쓸쓸함은 필자마저 오싹한 한기에 떨게 할 정도로 서릿발 같은 냉기를 발하고 있었으며, 탐욕, 이기, 불신, 어리석음, 망상, 광기, 질투 등 사람의 어둡고 탁한 면을 인간 세상 밖에서 관조하는 듯 차분하다 못해 때론 냉담해 보이기도 하는 차갑고 쓸쓸한 필치로 무덤덤하게 그려낸 점은, ‘그저 막연한 불안’이란 유서를 남기고 요절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염세주의적인 불안감이 읽는 이에게 그대로 스며드는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일례로 이등석과 삼등석도 구분 못 하는 어느 한 시골 소녀가 기차를 타고 도시로 떠나는 날 배웅하러 나온 남동생들에게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의 따뜻한 햇살로 물든’ 귤을 던지는 활기찬 모습이 짤막한 한편의 광고처럼 아련하게 스쳐 가는 「귤」에서는 사랑하는 가족과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로 떠나야만 하는 소녀의 쓸쓸함이 물씬 배어 나온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미세한 교집합이라 볼 수 있는 출퇴근길에서의 뜻하지 않은 작은 인연으로 새싹처럼 살포시 솟아난 연정을 더는 진행하지 못하고 추억으로만 되새기는 「인사」에서는 못 이룬 사랑에 대한 처량함이 느껴진다.

껏 싱그러움을 머금은 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가을이 성숙해지면 중력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에는 땅으로 어김없이 곤두박질치는 낙엽처럼 자신의 삶이 ‘그저 막연한 불안’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어둡고 깊은 곳으로 떨어지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저 막연한 불안’이라는,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뿐더러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유로 자살을 단행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복잡 미묘한 내면세계가 투영된 그의 작품을 배부르고 등 따스하게 사는 평범한 독자에겐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터질 듯이 배가 부르고 타들어 갈 듯이 등이 따스해도 결국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남들이 보기엔 별 시답잖은 고민일지라도 늘 번민하며 사는 것이 또한 사람의 삶이다. 그래서 생에 한 번이라도 삶에 대해 진지한 고뇌를 해본 독자라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 리뷰는 2015년 11월 18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2015. 11. 16.

저사양(노트북)에서 윈도우 7 vs 윈도우 10(TH2) 벤치마크 및 윈도우 10 빌드 10586 TH2 사용기

<PCMark 7>
<Performance Test>

 보통 새로운 Windows OS가 나오면 가장 큰 성능 향상을 보는 것은 최신 사양의 컴퓨터이다. 구형 컴퓨터는 약간의 성능 향상은 둘째치고 드라이버라도 지원해주면 감지덕지할 뿐이다. 그래서 구형 컴퓨터 사용자는 새로운 윈도우 OS를 설치하는데 더더욱 망설여진다. 가장 큰 고민은 최소한 이전 윈도우보다는 성능 하락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과 막연한 호기심 때문에 설치하고 싶지만, 성능하락을 감수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 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신의 고사양에서만 진행되는 벤치마크 결과는 이런 면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뿐더러 자신의 컴퓨터와 현격한 차이가 나는 성능에 한숨만 내쉬게 한다.

그래서 이번에 TH2(정확히는 빌드 10576)부터 윈도우 10을 다시 사용하게 된 나는 Performance Test 8.0(테스트 시간: Very Long)와 PCMark 7(프로 버전)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윈도우 클린 설치한 상태가 아니라(말은 뭔가 그럴싸하지만 사실은 재설치하기 귀찮아서) 평소에 사용하던 윈도우 7과 윈도우 10 환경에서 벤치마크를 했다. 쉽게 말해 내 입맛대로 이것저것 설정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설치한 실제 사용 환경에서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돌렸다.

<벤치마크 결과>
<Performance Test 세부 결과>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지만, Performance Test와 PCMark 최종 점수만을 보면 어느 한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는 않다. 그러나 벤치마크 세부 항목을 보면 차이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위의 Performance Test 세부 항복 결과를 보면 윈도우 7이 두 항목에서 윈도우 10보다 앞서는데 2D Graphics 항목은 대략 10%로 꽤 큰 차이가 난다. 반면에 윈도우 10이 앞선 세 항목은 1% 안팎의 근소한 차이다.

<PCMark 7 세부 결과>
<CPU 온도>

 자신이 주로 작업하는 환경과 관련된 세부 항목에서 우세한 성능을 보여주는 윈도우를 쓰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어느 항목의 우세한 점이 다른 항목의 부진으로 상쇄될 수도 있으며 PCMark 세부 항목 결과에서 볼 수 있듯 두 윈도우 중 저사양에는 여전히 윈도우 7이 가볍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윈도우 10이 크게 부담을 느낄 만큼 무겁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윈도우 10 드라이버가 갖추어진 구형 컴퓨터라면 사용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하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더 가벼운 OS를 사용하고 싶다면 아직은 윈도우 7이 답이다. 그리고 벤치마크 결과와는 달리 온라인 게임이나 패키지 게임에서 윈도우 10의 프레임이 떨어지는 것을 종종 느꼈다. 이것은 게임 자체의 최적화 문제 때문일 수도 있기에, 저사양 게임 유저도 윈도우 7이 최선의 선택이다.

빌드 10576부터 윈도우 10을 다시 사용하는 나는 지금까지 그리 큰 문제는 없었지만, 종종 explorer.exe가 죽었다 재시작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Process Lasso이었고 문제점을 제거한 이후로는 explorer.exe가 죽는 문제는 사라졌다. Process Lasso 최신 버전은 윈도우 10을 지원함에도 여전히 호환성 문제가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TH2로 빌드업되고 나서 V3가 바로 블루스크린을 내뿜었다는 몇몇 유저들의 보고에서 보듯이 여전히 호환성 문제는 여전하다. 특히 오래전에 제작되어 배포된 포터블 프로그램이 제대로 실행이 안 된다는 것이 상당히 불편하다(설치형으로 사용하면 문제는 없다). Process Lasso의 경우에서 보았듯 윈도우 10을 사용하다 남들이 겪지 않는 특이한 문제와 부닥쳤을 땐 호환성 문제를 살펴봐야 할 수도 있다.

반면에 윈도우 10의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메모리 관리나 효율이 윈도우 7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좋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확실히 TH2 빌드업이 많은 개선을 가져왔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뭔가 참기 어려운 문제가 발견될 때까진 윈도우 10에 남기로 했다. 그럼에도, 저사양 입장에서는 좀 더 최적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아 있다.

이 리뷰는 2015년 11월 1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2015. 11. 12.

[책 리뷰] 한국의 높은 자살률의 원인을 19세기 프랑스에서 찾다 ~ 자살론

On Suicide book cover
review rating

한국의 높은 자살률의 원인을 19세기 프랑스에서 찾다

Original Title: David Émile Durkheim by Le Suicidé
사실 오늘날의 타락의 원인은 바로 종교가 이제는 무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살론(Le Suicidé)』, p499)

경제적 풍요가 가져온 정신적 빈곤

OECD 국가 중 자살률과 자살 증가율 1위, 세계에서는 12년간 109.4% 증가로 자살 증가율 2위를 기록한 한국. 세계 경제 순위에서는 꾸준히 20권 안에 머무른 중산층 국가라고 자부할만한 한국에서 왜 그렇게 높은 자살률이 나오는 것일까.

이미 19세기 말에 자살에 대한 명쾌한 사회과학적 분석으로 객관적 평가를 내린바 있던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자살률 증가의 원인으로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문명이 가져온 정신적 빈곤을 지적했다. 보통 사람들은 가난, 또는 이와 비슷한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의 원인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 일쑤지만, 실제 통계를 보면 경제적으로 한참 뒤에 있는 국가들의 자살률이 한국보다 훨씬 낮은 경우가 허다하다.

뒤르켐은 『자살론(Le Suicidé)』에서 19세기 유럽의 주요 국가들의 자살률을 분석하면서 19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증가한 유럽 여러 국가의 자살률을 개인적 기질, 성격, 내력, 개인사나 심리학, 정신병리학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사회의 한 현상으로 보았다. 그는 하루, 한 달, 한 해에 따라 나타나는 자살률의 변화는 사회생활의 리듬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러한 자살률이 사회의 통합 정도에 반비례함을 밝힘으로써 자살의 사회과학적 연구의 기초를 다졌다.

보이지 않는 죽음을 가져오는 가족과 사회의 해체

살이 범죄나 단순한 정신병이 아닌 중대한 사회 현상으로 본 뒤르켐은 자살을 크게 세 종류로 분류했다. 사회의 해체가 이미 개인들이 겪는 정신적 고뇌를 더욱 가중시키고,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유대가 느슨해짐으로써 삶과의 연결고리 역시 약해지면서 발생하는 이기적 자살과 지나치게 부족한 개인화 때문에 발생하는 이타적 자살, 그리고 가장 규제가 필요한 상황에서 욕망이 규제를 받지 못해 일종의 무규율상태 증가로 발생하는 아노미성 자살이다.

이기적 자살은 지나친 개인주의로 말미암은 우울과 의기소침을 예로 들 수 있으며, 이타적 자살은 원시 부족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늙거나 병든 남자의 자살, 남편의 죽음을 따른 아내의 자살이나 족장의 죽음에 따른 부하나 시종의 자살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유명인들의 급작스러운 자살 같은 권태감이나 환멸감으로 말미암은 자살은 아노미성 자살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뒤르켐은 이기적 자살은 인간이 존재의 근거를 삶에서 찾지 못해서 일어나고 이타적 자살은 존재의 근거가 삶의 외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일어나며 아노미성 자살은 인간의 활동이 충분히 규제되지 못해서 생기는 고통에서 나온다고 분석하며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성 자살을 현대사회의 정규적이고 일정한 수의 연간 자살률이 나오는 주요 원인으로 보았다. 둘 다 개인에게 사회가 불충분한 존재인 까닭에 생겨나지만, 이기적 자살은 진정한 집단활동의 결핍으로 인해서 개인이 목적과 의미를 상실하는 경우이고 아노미성 자살은 개인의 열망에 미치는 사회의 영향이 결핍됨으로써 개인을 제동 없이 방치함으로써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사회의 통합력에서 자살의 사회적 원인을 찾았던 뒤르켐은 19세기 초에서부터 말까지 증가한 프랑스의 자살률 증가 원인을 출생률 감소, 이혼 증가, 전통의 해체로 말미암은 가족의 해체와 분산, 그리고 사회적 통합력의 상실, 공동 목표의 상실, 국가 이상의 상실 등으로 보았다.

자살로 이르는 궁극적 원인

르켐이 밝힌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자살률 증가의 원인을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작금의 한국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선진국들은 경제발전과 시민 의식의 상호 변증법적인 과정에 비교적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성장한 끝에 명성에 걸맞은 성숙한 시민 의식을 이룩했다면, 한국은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루는 대부분 시기에 시민적 자유가 정체되면서 사회적 성숙도 지체되었다. 빠른 속도로 붕괴해 가는 전통적 가치관을 시기적절하게 대체할 가치관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빈곤한 정신은 빈곤한 사회를 낳았다. 빈곤한 사회는 사회적 이상과 국가적 이상의 상실이라는 혼란과 권태의 씨앗을 잉태했고, 이로써 한국 사회는 나침반을 잃은 배처럼 목표를 잃고 떠도는 유령선이 되었다. 그저 나 하나만의 출세와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내달릴 뿐이다. 치열한 생존 투쟁에 육체는 지치고 정신은 피폐해진다. 지옥 같은 세상이라고 한탄하지만, 그런 지옥 같은 세상을 만든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갑작스러운 경제적 풍요가 가져온 예기치 못한 정신적 빈곤의 쓴맛을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뒤르켐은 자기의 삶이 불행하다고만 해서 자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실 직전은 슬프지만, 그것이 원인은 아니며 그를 슬픔으로 이끈 사회적 원인, 즉 슬픔을 극복할 힘과 기회를 주지 못하고 벼랑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사회, 즉 우리라는 말이다. 만약 대한민국 사회가 각성하지 못하고 일말의 책임도 느끼지 못한다면 ‘자살 국가’라는 불명예는 늘 우리의 뒤를 따라다닐 것이며, 해 질 무렵 드리우는 어둠처럼 소리 없이 밀려오는 검은 유혹에서 당신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 리뷰는 2015년 11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가상머신 벤치마크 ~ VirtualBox 5.0.10 vs VMware Player 12.0.1

필자의 노트북(Asus K55DR, AMD A6-4400M, 윈도우 10 Pro x64 빌드 10586.3)에서 사용할 가상 머신을 선택하고자 VirtualBox 5.0.10VMware Player 12.0.1에 윈도우 XP를 설치하여 간단하게 벤치마크를 해봤다.

가상머신(guest) 설정

  • CPU - 1개
  • RAM - 2G
  • Video Memory - 128M, 3D 가속 On
  • HDD - FAT32, vmdk 10G(동적)
  • OS - Windows XP Professenal SP3 integrated Juli 2015
  • 벤치마크 도구 - PassMark(TM) PerformanceTest 7, 3DMark2001SE
  • 기타 가상머신 기본값
  • PassMark 결과값 자세히 보기 - VirtualBox 5.0.10
      Benchmark Results

      Test Name: This Computer
      CPU - Integer Math: 122.8
      CPU - Floating Point Math: 675.3
      CPU - Find Prime Numbers: 408.7
      CPU - Multimedia Instructions: 0.9
      CPU - Compression: 1214.8
      CPU - Encryption: 3.2
      CPU - Physics: 49.2
      CPU - String Sorting: 727.8
      Graphics 2D - Solid Vectors: 5.0
      Graphics 2D - Transparent Vectors: 4.3
      Graphics 2D - Complex Vectors: 114.1
      Graphics 2D - Fonts and Text: 68.8
      Graphics 2D - Windows Interface: 151.8
      Graphics 2D - Image Filters: 271.6
      2D Graphics - Image Rendering: 282.3
      Graphics 3D - Simple: 172.5
      Graphics 3D - Medium: 117.8
      Graphics 3D - Complex: 3.3
      Memory - Allocate Small Block: 2428.0
      Memory - Read Cached: 1436.9
      Memory - Read Uncached: 1356.3
      Memory - Write: 1340.2
      Memory - Large RAM: 654.0
      Disk - Sequential Read: 111.7
      Disk - Sequential Write: 90.7
      Disk - Random Seek + RW: 96.7
      CD - Read: 81.3
      CPU Mark: 790.2
      2D Graphics Mark: 544.6
      Memory Mark: 569.1
      Disk Mark: 1081.7
      CD Mark: 9955.3
      3D Graphics Mark: 168.0
      PassMark Rating: 662.3

      System information: This Computer
      CPU Manufacturer: AuthenticAMD
      Number of CPU: 1
      Cores per CPU: 1
      CPU Type: AMD A6-4400M APU with Radeon HD Graphics
      CPU Speed: 3004.3 MHz
      Cache size: 1024KB
      O/S: Windows XP (32-bit)
      Total RAM: 2047.5 MB.
      Available RAM: 1795.4 MB.
      Video settings: 800x600x32
      Video driver:
      DESCRIPTION: VirtualBox Graphics Adapter
      MANUFACTURER: Oracle Corporation
      BIOS: Version 0xB0C2 or later
      DATE: 11-10-2015
      Drive Letter: C
      Total Disk Space: 10.0 GBytes
      Cluster Size: 8.0 KBytes
      File system: FAT32
  • PassMark 결과값 자세히 보기 - VMware Player 12.0.1
      Benchmark Results

      Test Name: This Computer
      CPU - Integer Math: 129.7
      CPU - Floating Point Math: 813.3
      CPU - Find Prime Numbers: 437.9
      CPU - Multimedia Instructions: 1.0
      CPU - Compression: 1292.3
      CPU - Encryption: 3.5
      CPU - Physics: 46.6
      CPU - String Sorting: 682.7
      Graphics 2D - Solid Vectors: 2.1
      Graphics 2D - Transparent Vectors: 2.1
      Graphics 2D - Complex Vectors: 88.4
      Graphics 2D - Fonts and Text: 57.8
      Graphics 2D - Windows Interface: 163.8
      Graphics 2D - Image Filters: 221.0
      2D Graphics - Image Rendering: 278.5
      Graphics 3D - Simple: 186.4
      Graphics 3D - Medium: 60.7
      Graphics 3D - Complex: 오류
      Memory - Allocate Small Block: 2684.5
      Memory - Read Cached: 1571.8
      Memory - Read Uncached: 1253.3
      Memory - Write: 1478.6
      Memory - Large RAM: 216.2
      Disk - Sequential Read: 53.8
      Disk - Sequential Write: 49.9
      Disk - Random Seek + RW: 34.7
      CD - Read: 80.3
      CPU Mark: 842.1
      2D Graphics Mark: 335.2
      Memory Mark: 481.9
      Disk Mark: 500.5
      CD Mark: 9828.3
      3D Graphics Mark: 156.1
      PassMark Rating: 593.7

      System information: This Computer
      CPU Manufacturer: AuthenticAMD
      Number of CPU: 1
      Cores per CPU: 1
      CPU Type: AMD A6-4400M APU with Radeon HD Graphics
      CPU Speed: 2695.0 MHz
      Cache size: 1024KB
      O/S: Windows XP (32-bit)
      Total RAM: 2047.5 MB.
      Available RAM: 1740.6 MB.
      Video settings: 1024x665x16(800x600x32로 테스트 시작했으나 Graphics 3D - Complex 테스트 도중 오류나면서 해상도 변경)
      Video driver:
      DESCRIPTION: VMware SVGA II
      MANUFACTURER: VMware, Inc.
      BIOS: VMware SVGA II
      DATE: 11-17-2014
      Drive Letter: C
      Total Disk Space: 10.0 GBytes
      Cluster Size: 8.0 KBytes
      File system: FAT32

일단 체감에 큰 영향을 미치는 디스크 성능은 VirtualBox가 우세했으며 실제로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속도도 벤치마크 결과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러나 인터넷 벤치마크에서 업로드 항목은 VMware가 큰 폭으로 앞섰다. 두 제품 다 개인 사용자에겐 무료이고, VirtualBox는 포터블 버전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런데 VirtualBox는 실사용에서 가장 큰 편의성을 제공하는 호스트와 게스트 사이의 클립보드 공유와 드래그 앤 드롭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현재 이 기능은 게스트 OS가 리눅스일 때 완벽하게 작동한다고 한다). 게스트에서 호스트로만 드래그 앤 드롭이 작동했고 그 반대는 안 되었다. 반면에 VMware는 예전부터 이 두 기능은 아무 문제 없이 잘 작동했다.

가상 머신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택의 기로가 달라질 수 있는 벤치마크 결과였다. 주로 바이두나 치후 360의 업로드 머신으로 사용하는 필자로선 VMware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VMware의 디스크 성능 결과가 너무 이상해서 게스트 윈도우를 NTFS로 재설치했더니 Disk - Sequential Write 항목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항목은 VirtualBox에 버금가는 성능(500.5에서 979.3으로 대폭 상승)이 나왔다. 반면에 VirtualBox의 C 드라이브를 NTFS로 변환해도 성능 향상은 없었다.

2017년 12월 3일 추가: 인터넷 속도 때문이 아니더라도 VMware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안정성이다. VirtualBox는 간혹 문제가 생겨 게스트 OS를 재설치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는 데 반해 VMware는 한 번 윈도우를 게스트 OS에 설치하면 그걸로 끝이다.

이 리뷰는 2015년 11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2015. 11. 6.

[책 리뷰] 아름다움과 칼 속에 숨은 이중성을 파헤치다 ~ 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book cover
review rating

아름다움과 칼 속에 숨은 이중성을 파헤치다

Original Title: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by Ruth Fulton Benedict
일본인은 최고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력이 있고, 유순하면서도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고,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고,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고,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 그들의 병사는 철저한 훈련을 받지만 또한 반항적이다. (『국화와 칼』, 「제1장 연구과제 – 일본」)

국이 태평양 전쟁에 참여하고 나서인 1942년 전쟁공보청에 들어간 베네딕트(Ruth Benedict)는 유럽과 아시아 문화에 관한 논문을 쓰는 일을 맡게 되면서 우방국가, 적성국가, 적국에 의해 점령된 국가 등 전시 미국과 관련이 있는 나라들의 문화에 관해 연구했는데, 그 결과물인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1946년)』은 서양인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일본의 전시 수행 방식을 이해하고자 일본의 문화와 국민의 보편적 특성을 연구한 책이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일본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원격 문화 연구 기법으로 다양한 문학적 자료들 - 역사, 기행문, 연극, 소설, 영화, 인터뷰, 일본군 병사들의 일기 – 등을 이용해 현지 조사를 중요시해온 인류학자의 관례를 뒤집으면서 매우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을 완성했다.

이 연구를 통해 베네딕트는 일본인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것은 바로 책의 제목 『국화와 칼』에서 언뜻 내비치듯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를 가꾸는 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이면서 동시에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린다는 ‘이중성’이다. 이 이중성은 베네딕트가 여러 자료를 통해 매우 주의 깊게 관찰한 일본의 보편적 특성이다.

네딕트는 일본인의 이중적인 언행의 배후, 일본을 일본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의 주요인으로 각자 알맞은 위치에서 기리(義理)와 기무(義務)를 충실히 이행하려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거론한다. 기무가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친밀한 의무의 수행이라면, 세상에 대한 기리는 계약관계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리는 법률상의 가족에 대한 일체의 의무를 포함하고, 기무는 직계 가족에 대한 일체의 의무를 포함한다. 타인에게 온(恩)을 받는 것처럼 기리는 아주 괴로운 일이자 '본의 아닌 일’이다. 따라서 '기리 때문'이라는 표현은 일본인에게는 번거로운 관계를 나타내는 데 적합한 말이며 이런 이유로 일본말 중 ‘감사하다’라는 단어에는 온을 받아 마음이 편치 않다는 뜻도 포함된 경우가 많다. 기리에 몰린 사람은 어떻게든 그것을 갚아야 하며, 만약 온진(恩人)의 편을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기리를 모르는 인간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기리의 규칙은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하는 갚음의 규칙이기 때문에, 초상집에서는 부조를 정확하기 기록한다. 또한, 돈을 빌리면 이자가 붙듯이 이 기리도 갚는 기한이 늦어질수록 커진다.

이름에 대한 기리는 자신의 명성에 오점이 없도록 하는 의무이며, 이것은 서양인은 죄책감으로 윤리의 기본적인 틀을 짜듯 일본은 수치가 도덕의 기본이 되게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을 의식하며 자신을 자제하고 동시에 자기방어적이다. 자신에게 수치를 준, 명예를 훼손시킨 자에게는 복수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그 분노는 자신으로 향해 자살해야 하는 일도 있다. 여기서 보복은 인간의 덕행이지 인간의 본질적인 약점에 기초한 피할 수 없는 악덕은 아니다. 또한, 이름에 대한 기리는 신분에 맞는 생활을 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일본의 계층사회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러한 점들은 일본 문학에서도 잘 나타난다. 베네딕트는 이러한 예로 「하치 야이기」, 「47인의 로닌」,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들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꼭 갚아야 하는 기리에 대한 중압감과 이름에 대한 기리에 상처받았을 때의 극단적인 예는 나쓰메 소세키의 『우미인초』에 더욱 잘 드러나는 것 같다.

고아이자 가난한 오노는 고도선생의 은혜를 받아 도쿄 제국대학 문학부를 우등생으로 졸업해 천황에게 은시계까지 하사받은 장래가 촉망되는 스물일곱 살의 젊은이이다. 도쿄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오노는 결혼 상대로 교토에 있는 고도선생의 딸인 사요코가 아닌 자신의 장래를 위해 재력가이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후지오를 선택하기로 하지만, 친구 무네치카의 설득에 굴복해 출세를 포기하고 은사에 대한 기리를 선택한다. 그러나 오노에게 버림받은 후지오는 파혼된 것에 수치를 느끼고 그 분노를 자신에게 돌린다. 그것은 곧 자살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듯이 자살을 죄악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과 기리를 지키는 명예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기리는 상황에 따른 현실주의적인 선택을 한다는 밝은 면도 있다. 1945년 항복과 그로 말미암은 강제적인 변화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경우가 그러하다. 전쟁으로 알맞은 위치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했고, 현명하게도 맥아더 원수는 일본인에게 굴욕을 주는 수단을 강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은 무력으로 뜻을 이루는 것은 잘못되고 명예롭지 않은 방법이라고 여기고는 이를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 미국인 배척 법안을 만들게 하고 해군군축조약으로 크나큰 국가적 치욕으로 느끼게 하여 마침내는 그처럼 불행한 전쟁 계획으로 내몰게 한 것은 기리의 어두운 면이다. 그래서 항복 조건에 천황제 폐지가 없었던 것은 매우 중대한 의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베네딕트는 유럽이나 아시아의 어느 나라도 앞으로 10년간 군비를 갖추지 않는 나라는 군비를 갖추는 나라를 능가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주의적이기 때문에 만일 사정이 허락되면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구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장된 진영으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게 될 것이다고 내다봄으로써 전후 서독과 일본의 경제 번영을 정확하게 예상하기도 했다.

본은 패전 후 서양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에 베네딕트가 인류학적 고찰로 밝혔던 일본의 보편적 특성이 현재에도 얼마나 남아 있는지 나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국화와 칼』을 보면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사상적 배경과 그 와중에 저지른 잔학무도한 범행의 문화적 동기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난징 대학살과 위안부는 국가나 사회, 또는 가족에 대한 기무와 기리에 저촉되지 않는 한 마음껏 육체적 쾌락을 즐기는 것이 허락된 일본 사회의 극단적인 경우를 본다. 그리고 베네딕트가 마지막에 지적했듯이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주의적이다. 현재 일본은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립하는 데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앞으로 기후변화, 에너지와 식량 위기 등의 지구적 위기가 닥친다면 일본이 어떻게 나올지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재 일본의 의욕적인 재무장 추진은 우리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다.

한국처럼 식량뿐만 아니라 에너지 자급자족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일본은 충분히 돌변할 소지가 있다. 이것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 같은 힘의 논리로 돌아설 수 있으며 이때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돈, 기술력, 외교력 그리고 국민의 단결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가 되면 일본은 기무와 기리가 지배했던 과거를 회상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의무와 의리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일본은 효(孝)보다 충(忠)이 우선이었던 반면에 한국은 충보다 효가 우선이었다. 조선 시대 의병 활동을 하다가도 제사 지내러 갔던 의병장들의 기록은 우리를 얼마나 당황하게 하였던가.

군가는 이 책을 보고 서양인이, 그것도 일본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학자가 일본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 것이냐고 힐문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무지의 오만은 『국화와 칼』을 몇 페이지라도 읽는 순간 꺾이리라고 나는 장담한다.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베네딕트의 글쓰기에 대해 “완벽한 설명 스타일이다. 절제되어 있고, 자신감에 넘치고, 보석을 세공하는 듯하고, 무엇보다도 단호하다. 단정적으로 표현된 단정적 견해”라고 평가했으며, 베네딕트의 연인이자 훌륭한 동료였던 마거릿 미드는 “아름다운 글쓰기 스타일, 폭넓은 인간성 이해” 등을 손꼽아 칭찬했다. 훌륭한 베네딕트의 글쓰기는 인간을 이해하는 인류학이라는 다소 어려운 학문을 어느 독자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비록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일본에 대해 폭넓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으며 그 이해는 지금까지 봐온 일본 문학이나 영화를 일본인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의 「역자 서문」에는 “1930년부터 모교에서 인류학 교수로 재직했다.”라고 베네딕트의 이력을 설명하고 있지만, 베네딕트의 전기 『루스 베네딕트』(마거릿 미드, 옮긴이 이종인)을 보면 베네딕트의 스승 보아스가 그녀에게 컬럼비아대학의 조교수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 1931년이고 1937년이 되어서야 부교수로 승진했으며 정교수가 된 것은 1948년의 일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Share:

Category

팔로어

Recent Comments

Blog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