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30

장이허 | 나의 중국 현대사(最后的贵族)

장이허 | 나의 중국 현대사 | 중국 현대사의 마지막 지식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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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이 1956년에 죽었더라면?

중국 공산당 혁명 원로 중 경제관료였던 천윈(陈云)은 마오쩌둥(毛泽东)이 1956년에 죽었더라면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된 1949년, 대약진 운동을 시작한 1958년, 문화대혁명이 발발한 1966년도 아닌 1956년을 꼭 집어 말한 속사정은 천윈 자신만이 알고 있겠지만, 1956년은 마오쩌둥이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 운동을 시작한 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온갖 꽃이 일제히 피고 모든 이들이 다투어 논쟁한다(百花齊放 百家爭鳴)’라는 글 뜻만 놓고 보면 백화제방 백가쟁명 운동은 모든 사상과 학설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비판하여 과학 • 문화 • 예술 사업을 발전시키고 번영시키자는 취지의 괜찮은 사상운동처럼 보인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시작은 그랬을 것이다.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해방 이후 크고 작은 정치 운동으로 억압받고 박해당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해 냉가슴 앓고 있던 수많은 지식인은 십 년 묵은 체증을 단번에 해결하려는 것처럼 울분을 토하듯 공개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비판은 나라와 인민을 근심하는 충정에서 우러나온 것이었겠지만, 결과는 중국에 그나마 있던 지식인과 민주 역량의 철저한 몰락이었다.

그들이 마오쩌둥의 음흉한 속마음을 여태껏 간파하지 못했을 정도로 순진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명을 불사르는 것뿐이라는 각오로 피를 토하듯 목소리를 내고 칼을 휘두르듯 붓을 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백화제방 백가쟁명 운동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한) 1957년 반우파 운동은 중화 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 공산당이 시작한 최초의 대규모 대중 정치 운동으로서 가뜩이나 취약했던 중국의 민주 역량과 지식인들의 자주독립 정신을 완전히 말살시킴으로써 중국 공산당의 실질적인 일당 독재, 또는 마오쩌둥의 1인 독재 시대에 접어드는 시발점이었다.

백화제방 백가쟁명 운동은 여러 분야에 걸친 자유로운 논쟁과 철저한 비판을 허용하여 중국의 사상 • 의식 발전을 도모하려는 포부로 시작했을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것이 뱀 굴에 깊숙이 은거하고 있는 뱀을 유인하고 더 나아가 그물에 스스로 걸려들게 만들기 위한 고도의 정치 음모였음에 통탄한다. 백화제방 백가쟁명 운동을 제안한 것도 마오쩌둥이었으며, 백화제방 백가쟁명 운동이 화산처럼 폭발하려는 찰나에 제동을 걸어 반우파 운동으로 반전시킨 것도 마오쩌둥이었으며, 이후 현대 중국의 새로운 황제로 등극한 것도 마오쩌둥이었다.

만약 1956년에 마오쩌둥이 죽었더라면, 백화제방 백가쟁명 운동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설령 일어났더라도 반우파 운동으로 기류가 급격히 바뀌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공산당과 지식인 사이의 언로가 막히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중국처럼 언론의 자유가 말살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말살되지 않았다면, 지식인들의 간언과 민주인사들의 역량이 말살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수천만 인민을 기아 • 아사의 지옥으로 빠트린 대약진(大躍進) 운동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가당치도 않게 ’문화'가 쏙 빠진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랬더라면 현재의 중국은 경제는 둘째치고 정치 • 시민 의식이 지금과는 다른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옹호하고 지원하는 그런 파렴치한 국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뱀 굴에 깊숙이 은거하고 있는 뱀을 유인, 중국공산당, 정치운동

반우파 운동과 중국 지식인의 몰락

어느 시대에나 언로가 통하면 국가가 다스려져 편안하고, 언로가 막히면 국가가 어지러워 망하는 것이 명확했다. 반우파 운동으로 공산당 사상을 수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도록 지식인을 굴복시킨 중국이 관료주의, 부정 • 부패, 언론 조작, 허위 • 과장 보고, 인권 문제 등 反민주적인 문제를 만성적으로 앓고 있는 것은 어쩌면 1956년 이후 (언로를 차단한 것과 더불어) ‘진정한 지식인’이 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작금의 한국도 이와 살짝 비슷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는 점에서 통탄스럽다).

감히 ‘공산당이 모든 것을 다 좌지우지해 공산당 천하가 되고 있다(黨天下)’라고 직언했던 중국 현대사의 마지막 지식인 추안핑(儲安平), 자신의 모든 재산과 노력을 쏟아부어 수많은 국가 문물을 지켜내고 그것을 정부에 헌납했음에도 우파로 몰린 전통 중국 문인의 풍모 그 자체였던 장보쥐(張伯駒), '귀족'이란 결코 실리를 위해 명성을 바꾸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준 중국의 마지막 귀족 캉퉁비(康同璧) 모녀, 20세기 마지막 반백 년 중국사에서 가장 치열한 고난과 배반이 점철된 시기의 산증인인 녜간누(聂绀弩) 등 정신의 고결함을 추구했던 진짜 지식인은 반우파 운동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중국 공산당은 음모적이고 파괴적인 정치 운동의 반복으로 ‘민주적’인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들의 씨를 말리는 데 얼추 성공한 셈이다.

大우파 가족의 이야기

장이허(章诒和)의 『나의 중국 현대사(最后的贵族)』는 공산당이 반우파 운동으로 지식인의 내면을 철저히 파괴해 가는 유린의 과정과 기개 넘치던 지식인들이 가혹한 비판 투쟁을 견디지 못해 결국 공산당의 꼭두각시로 전락하는 좌절과 굴욕의 역사를 폭로한 책이다. 이 책의 폭로 수위는 대륙에서 출판되자마자 중국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다는 것만 말해도 짐작이 갈 것이다.

1957년 반우파 운동은 ‘중국 현대사’를 다룬 책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대규모 정치 운동이지만, 대부분 역사책은 분량상, 그리고 역사성과 중요도 때문에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한 일정 범위 내의 주요 정치적 사건만 다룰 뿐 우파로 낙인찍힌 사람들의 실제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아마 그런 점에선 장이허의 책은 드물면서도 위험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흥미로우리라. 이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도 ‘우파 • 반혁명 분자 • 10년 노동 개조’라는 찬란한 이력을 가졌지만, 그녀의 아버지 장보쥔(章伯鈞)은 1957년 숙청 당시 극장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소곤거릴 정도로 유명한 ‘우파 대두목’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장이허의 어머니이자 장보쥔의 세 번째 아내인 리젠성(李健生) 역시 남편을 비판 • 배반하는 대신 남편을 따라 우파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즉, 한 가족이 모두 사이좋게 우파였다는 점에서) 매우 독보적인 책이다.

‘정치적 안정‘이라는 미끼로 지식인을 유린

정치적 갈림길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지는 우정 • 연대감 • 지조 • 사상 • 사랑 등을 보면 저자의 말대로 인간적인 감정과 정신의 자유를 지켜온 인격과 심성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임을 깨닫게 해준다.

사람은 모름지기 나약하면서도 이익에 밝은 동물이다. 어쩌면 이익을 탐하기 때문에 나약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동료와 가족과 친구를 배신함으로써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면, 충분히 고민할 이유가 된다. 배신으로 얻는 이득이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거나 훗날을 기약할 수 있는 단순한 물질, 혹은 돈 몇 푼 정도라면 각자의 양심에 따라 배신을 택하는 대신 의리를 택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신으로 얻는 이득이 단순한 물질만이 아니라 정치적 안정까지 달렸다면? 어쩌면 목숨보다 더 중요했을 이 ‘정치적 안정’ 때문에 중국 특유의 기만적인 정치 운동사가 완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민주적인 사회에선 그런 질문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정치적 평등은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정치적으로 박탈된다는 것은 외부의 위협과 사람들의 적의와 고립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한다는 동의어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정치범은 살인자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십년지기를 배반한 스량(史良)과 연인을 배반한 푸시슈(浦熙修)를 무작정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목에 칼을 들이대도 흔들리지 않을 강인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무장했을 법한 중국의 수많은 지식인이 미풍에도 화들짝 놀라는 연약한 작은 새가 된 것에 대해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인간적 나약함에 굴복한 지식인들이 아니라 ‘삼국지’의 나라답게 온갖 방법으로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해 끊임없이 대립 • 경쟁시키는 (윤석열 대통령의 슈퍼울트라 초특급 메가톤급 필살기인 갈라치기 같은) 이분법으로 공포심을 조성해 온 공산당이다. 설령 그들이 공산당의 비열한 술책을 간파하고 있었더라도 당을 선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양심과 도리를 거스를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선 메시가 밭을 갈고 있다?

중국에선 메시가 밭을 갈고 있다?

어마어마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성과는커녕 추락하기만 하는 중국 축구에 대한 비아냥 섞인 우스갯소리로 중국에선 메시가 밭을 갈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메시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태어나더라도 꽌시 • 부정 • 부패 • 관료주의 등 후진적 사회 구조 때문에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중국의 고질적 병폐를 꼬집은 말이다. 어디 메시뿐일까. 추안핑, 장보쥐, 장보쥔 같은 인재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중국에서만큼은 그 재능을 펼칠 수가 없다. 메시뿐만 아니라 공자, 노자, 석가모니, 예수도 중국에선 밭을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지 않겠는가! 아마 지금의 중국은 마오쩌둥 같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도 반갑지 않을 것이다.

장이허의 아버지 장보쥔은 “진짜로 개조되어야 할 대상은 공산당 자신”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중국에 장보쥔의 이 말을 당당히 재창할 수 있는 지식인이 과연 있을까? 중국의 진정한 지식인은 모두 죽었고, 『나의 중국 현대사』에 등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순수한 가치와 신성한 의미를 추구했던 중국 현대사의 마지막 지식인들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글’이라는 것은 단순히 희거나 누런 바탕에 검은 글씨가 옹긋옹긋 모인 것이지만, (내게 그런 것처럼) 누군가에겐 살아갈 이유와 힘을 주는 삶의 낙이자 위안을 주는 반려자이기도 하다. 장이허는 “말을 해도 다 볼 수 없고, 볼 수 있다 해도 다 상상하기 힘들다”라고, “언어도 문자도 한 사람의 가슴 깊이 자리한 사랑과 기쁨과 고통과 원한을 다 담아낼 수는” 없다고 언어의 한계를 자백하지만, 이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장이허의 자백이 겸손하게 느껴질 것이다.

끝으로 장이허는 이 책과 한국 인터넷 서점에 소개된 것처럼 1949년생이 아니라 1942년생이다. 생년월일이 잘못된 지는 책 초반을 읽어보면 대뜸 알 수 있다. 1949년생이라면 성립되기 어려운 어색한 장면들이 몇몇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이두를 검색했더니 역시 예상대로 1942년생이다. 우리는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시까지 하니 한국의 문화 하나하나를 파헤쳐 자기 것으로 우기는 중국을 어찌 상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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