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의 모든 역사 | 매튜 코브 | 본격적인 ‘뇌’ 탐구에 들어가기 전에
‘뇌 과학의 모든 역사’를 선택한 나의 짧은 역사
마트나 시장에서 장바구니를 채울 때 절반 정도는 ‘과일, 식용유’ 등 사전에 생각해 둔 구매 예정 물품으로 채우지만, 절반은 그때그때 구미에 당기는 것 등을 충동구매 한다. 도서관에 갈 때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블로그 관리 때문에 독서량이 부쩍 줄어 한 번 갈 때 한두 권 정도만 대출하는데 한 권은 미리 골라둔 책을, 나머지 한 권은 장을 보듯 그날 호기심이 쏠리는 책을 선택한다.
‘삼한사온’에서 ‘사온’에 해당하는 추위가 한 꺼풀 꺾인 그날은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어서 그런지 겸연쩍은 듯이 진열된 신간 도서 중 눈에 띄는 책 한 권이 있었다.
그전부터 ‘뇌’에 관한 책을 읽고 싶다는 뇌의 당돌한 요구도 있었고, 나의 호기심 역시 완충된 배터리만큼 충만하지는 아니더라도 방전되지는 않았을 정도로 충분히 잔류하고 있었지만, 이 방면의 책이 생각보다 많고 다양하다 보니 딱히 마음의 동요를 일으킬 만한 책을 발견하지 못해 계획이 흐지부지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아직 책 냄새도 가시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간인 데다가 그날은 유난히 ‘뇌 지식‘이 고팠던 것일까? 아무튼, 제목 중 ‘뇌’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공포영화광답게 한니발 렉터의 ‘뇌 요리’가 생각나는 바람에 흠칫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내가 잠시 머뭇머뭇하는 사이 혹여라도 누가 집어 갈지도 모른다는 성마름에 서점에서 책을 훔치듯 재빨리 대출했다.
이렇게 나름 지적인 계획에 망측한 충동이 더해져 매튜 코브(Matthew Cobb)의 『뇌 과학의 모든 역사(The Idea of the Brain)』를 읽게 되었다.
본격적인 ‘뇌 과학’ 탐구에 들어가기 전에
특정 뇌 과학 이론에 대한 세부적인 지식이 아닌 ‘어떤 역사적 배경에 의해 어떤 뇌 과학 이론들이 나오게 됐는가?’ 하는 역사를 다룬 책이니만큼 ‘뇌 과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닌가?’ 하는 당연한 우려는 충동구매의 뒤끝처럼 집에 와서야 깨우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도서관에 갔다 온 것을 헛걸음으로 만들 수 없다는 근성으로, 그리고 읽다 보면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는 안일함으로 깃털처럼 가벼운 책장을 뭉글한 마음으로 넘겼는데, 어럽쇼, 생각보다 술술 읽힌다, 그뿐만 아니라 요것이 재미도 있다.
읽고 나니 뇌 과학 분야의 책들을 접하기 전에 읽어두면 일종의 지적 백신처럼 작용하여서 한 이론에 쉽게 휩쓸리거나 편벽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다시 말해 그 어떤 뇌 과학책을 읽더라도 저자의 주장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그 주장에 쉽게 현혹되지 않는 일종의 지적 균형 감각을 가져다줄 수 있는 책이다. 고로 이 책을 읽기 전에 일어났던 우려와는 달리 『최 과학의 모든 역사』는 뇌 과학에 흥미가 있는 독자들이 무엇보다 우선하여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두껍긴 하지만, 역사를 다룬 책치고 이 정도 두께 안 되는 책도 없고, 두꺼운 만큼 얻는 것도 많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매우 복잡하고 제멋대로인 진화의 역사를 거쳐온 뇌에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뇌를 비유하고 이해하는 과학사에도 인류 나름의 고충과 복잡한 사정과 성깔 있는 문화적 배경이 있었다는 점은 ‘뇌 지식’과는 별개로 흥미롭다. 간혹 졸음을 몰고 오는 부분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진하게 우려낸 블랙커피처럼 각성 효과를 일으키는 부분이 더 많아 잠을 설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무엇보다 저자의 위트 넘치는 조언을 그대로 인용하면,
이 책을 읽는다고 뇌를 더 잘 이해하게 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뇌의 사고력 자체는 한결 풍부해질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여전히 알쏭달쏭한 존재이지만, 미래를 위해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뇌세포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꼭 읽어두자. 나의 쭈글쭈글한 뇌도 꽤 흡족해하면서 쭈글쭈글하게 웃고 있으니 말이다.
한때 데츠로처럼 ‘기계 인간’이 되기를 꿈꾸었다!
지금에서야 고등교육의 결실로 이성과 사고는 뇌가 담당한다고 믿는 사람이 압도적이지만, 감정만큼은 여전히 가슴(심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두고, ‘가슴이 불타오른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만, ‘뇌가 불타오른다’라고 표현하면 아주 어색하다. 이것은 우리의 직감은 감정과 마음이 머리가 아닌 심장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의 뇌 과학은 이성과 사고뿐만 아니라 마음과 감정도 뇌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매우 비낭만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 심지어 영혼이라고 느끼는 그런 신비스러운 것까지 수많은 뇌세포 및 그와 관련된 분자들의 활동이나 그로 인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물론적인 가정이 현재 뇌 과학을 바라보는 기본 전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뒷받침하는 절대적인 증거는 없지만, 마음을 비물질적이고 영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그 어떠한 견해들보다는 이를 지지하는 근거가 훨씬 더 많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육체가 영혼의 지배를 받는다는 초현실적이고 종교적인 개념이 당신의 뇌 과학인가? 사실 뇌 과학이 지금까지 이룬 주목할 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매튜 코브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는 인류가 뇌를 완벽하게 정복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것에 회의적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공상과학영화에서 관객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안드로이드 같은 인간형 로봇들이 머지않아 우리를 좀 더 안락하고 편리한 삶으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한때 품었었지만, 요즘은 사람처럼 사고하고, 말하고, 상상하고, 욕망하고, 충동하는, 추론하는 로봇의 존재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의 뇌만큼은 영원히 비밀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여기엔 인간의 뇌마저도 정복당했을 때 일어날 법한 디스토피아적인 공포가 절반은 차지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공상과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실현될 수 없다고 해서 상상해서 안 되는 것은 아니고, 실현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즐거움은 지적 생물만이 누릴 수 있는 독보적인 쾌락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알 수 있을 만큼만 알아도 유용한 뇌 과학
뇌의 작용 기제에 대한 전체적인 이론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는 뇌는 5억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스스로 진화해 오면서 특정한 목적을 향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진화의 순간마다 각기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분들이 더해지고 더해진 매우 복잡한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수억 년의 비법이 농축된 뇌의 비밀을 수십 년 만에 터득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그 모든 비밀을 풀기 전에 인류가 먼저 멸종할 수도 있고, 그 5억 년의 비밀을 티끌만큼의 오해와 의심 없이 완벽하게 풀어헤치는 것은 우리 뇌 능력 밖의 일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뇌는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진 것 치고는 꽤 잘 작동하지만, 한편으론 뇌는 그 소유자가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골칫덩어리이기도 하다.
기타 등등 뇌 과학에 대한 모든 회의적인 푸념들이 저마다 합당한 논리를 갖추고 있더라도, 그래서 인류가 영영 뇌의 작용 기제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와 통찰을 얻지 못할지라도 그것이 뇌 과학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부정해서도 안 된다. 생각만으로 조종할 수 있는 인공 신체 같은 뇌 과학의 성과가 임상의학으로 실현된 놀라운 결과물을 보면 우리가 비록 뇌 전부를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부분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공 안구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성공한다면, 시각장애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 이상으로 일반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과학적 호기심이 아닌 치료, 삶의 질 향상 등의 현실적인 이유에서라도 뇌 과학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인공 안구, 인공 팔다리, 뇌 - 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 - computer interface) 등 뇌 과학을 응용한 치료적 시술이 한 사람의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어쩌면 미래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통제권을 놓고 (앞에 언급했던 기구들을 제조하고 판매하고 관리하는) 민간기업과 씨름하는 황당한 현실과 마주칠 수도 있다. 과학의 양면성은 우리에게 늘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도덕적 • 윤리적 문제를 안겨주었다는 것은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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