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중독 | 안병수 | 그래도 잘 팔린다!
연달아 두 번 읽은 이유?
잊을만하면 다시 감상하는 명작 영화가 있듯, 책도 그런 명작이 있다. 하지만, 연달아 두 번을 감상했던 영화는 지금까지는 없었고, 책은 겨우 몇 권 있었다. 얼마 전에 읽은 옌롄커(閻連科)의 『작렬지(炸裂誌)』와 오래전에 읽은 J.M. 쿳시(J. M. Coetzee)의 『야만인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barbarians)』 정도뿐이다. 그리고 그 세 번째 영광은 안병수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중독』이 차지하게 되었다.
앞의 두 책 중 전자는 노벨상 후보 작가, 후자는 노벨상 수상 작가의 작품으로써 두 번이 아니라 세 번 네 번 열 번을 읽어도 딴지를 걸 수 없는, 모두가 인정하는 훌륭한 소설들이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안타깝게도 그런 반열에 오를 정도의 명성을 누리는 책은 아니다. 앞의 두 소설처럼 문학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고, 문장이 유려해 텍스트를 읽는 맛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내리 두 번을 읽은 것일까? 아니 왜 내리 두 번을 읽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스스로 경각심을 다지기 위해서다. 뭐에 대한 경각심을? 그것은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과자, 더 나아가 라면이나 즉석조리식품 같은 마트의 선반을 형형색색으로 가득 채운 인스턴트 식품의 위험성을 잊지 않고자 함이다. 출전 예정인 병사가 실전 전투 영상을 반복해 보며 승리와 생존을 향한 각오와 열망을 확인하듯, 정제당 • 나쁜 지방 • 첨가물에 무방비로 노출된 나의 건강을 수성하려는 발악이다.
<뿌리치기 어려운 값싼 유혹, 과자> |
왜 우리는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할까?
알다시피 정제당 범벅인 과자를 끊는 것은 (담배 한 개비도 피어 본 적이 없는 내가 이런 말 하기엔 적당하지 않겠지만) 금연보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담배는 (담배 회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 해로움을 인정하는 공공의 적인 만큼 금연을 결심하면 주변으로부터 도움과 격려를 받으면 받았지, 잔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반면에 설탕을 끊겠다고 말하면 건강을 위한 결심이니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아마도 대부분 마음속으론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비웃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람은 설탕을 많이 섭취하면 해롭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식품회사가 바라는 대로) 적당히 먹으면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은 대중과 사회에 설탕이 육체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까지 해치는 중독 물질이라는 사실이 확고하게 심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술처럼 적당히 먹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무지에서 비롯된 어리석고 둔감한 생각이다. 대중은 정제당 • 나쁜 지방 • 첨가물 등이 다량 포함된 가공식품이 몸에 해롭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것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로운지는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영향력을 파생시키지는 못한다. 모르는 게 약이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과자, 라면 등을 쉽게 끊지 못하는 이유는 이 순간 10초마다 기아로 인해 죽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한 인류의 비자발적 테러가 계속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 현장에 있다면, 잘 먹고 자랐다는 증거가 명백한 당신의 포동포동한 두 팔 위에 죽는 그 순간까지 단 한 끼도 배불리 먹어보지 못했다는 증거가 명백한 불룩한 배를 가진 아이가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면, 당신은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그 순간부터 당신의 행동은 변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정제당에 관해 아는 것이라곤 단지 몸에 해롭다는 막연한 정보일 뿐이라서 행동으로 옮길 의지와 동기를 유발할 정도의 확실성은 제공하지 못한다. 집중가축사육시설(CAFO)에서 자행되는 동물 학대와 그 처참한 사육 환경을 직접 목격한다면 소고기를 (특히 미국산 소고기) 먹을 엄두가 안 나듯, 정제당 • 나쁜 지방 • 첨가물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지금까지 무심코 먹어왔던, 우리의 출출한 허기를 때워주는 것 이상으로 편리와 즐거움을 제공했던, 누군가에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유일한 낙이라는 어리석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던 그 모든 가공식품을 바라보는 탐욕스러웠고 흐리멍덩한 눈은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다. 이것들 전부는 끊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적게 먹으려는 노력은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바야흐로 정보의 힘이다.
합법적 마약, 설탕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중독』은 우리가 지금까지 먹어 왔던, 그리고 지금도 먹고 있고 조금 전에도 먹었으며 조금 있다가도 먹을 식품(좀 더 정확하게는 공장에서 생산된 식품처럼 보이는 상품)들의 독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책이니 재밌을 리가 없다. 만약 평생 가공식품 같은 것은 입에 대지도 않던 사람이 이 책을 읽고, ‘그 녀석들 고소하다, 쌤통이다’라는 비웃어도 가공식품의 범람을 문명의 발전인양 받아 들여온 우리로서는 한마디 대꾸할 말이 없을 정도로 가공식품에 관한 이 책의 비판은 심각하다 못해 치명적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먹어 온 것들이 똥보다 해로운 것이라고 낱낱이 파헤치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말 그대로 똥 씹은 표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완전히 끊기가 어렵다. 어렸을 적에 지나치게 많이 먹은 라면과 과자가 현재 내가 앓는 과민대장증후군, 기능성 위장 장애의 주요 병인이라고 짐작하면서도 양은 예전보다 확실히 줄긴 줄었지만,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불법으로 규정된 마약과는 달리 정제당 • 나쁜 지방 • 첨가물은 합법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도 있지만, 에둘러 말하면 이미 우리는 그런 것들에 꽤 익숙해진 상태고 나쁘게 말하면 중독된 상태다. 만약 식사 후 단 과자나 초콜릿을 먹어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그리고 단 것을 찾는 자신을 당이 떨어졌다고 합리화한다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설탕 중독자다.
한편으론, 그런 것들로 범벅된 저가 식품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경제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저소득은 저가 식품 구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이다. 지갑이 얇을수록 선택의 여지는 줄어들게 마련이니까. 만약 당신이 넉넉한 살림임에도 설탕, 나쁜 지방, 첨가물 범벅인 식품을 먹는다면 그야말로 인생을 헛사는 것이며, 바보 중의 바보가 따로 없으며 심각한 가공식품 중독자다.
<20세기 최악의 발명품 중 하나, 인스턴트 라면> |
3 Fast: Make fast, Eat fast, Die fast
빠르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즉석식을 빨리 먹으면 그만큼 빨리 죽는다. 하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백해무익한 가공식품을 아무리 많이 먹는다고 해도 지금 당장 죽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식품회사는 이 점을 악용해 도덕적 불편함을 느낄 필요 없이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사람들은 가공식품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하면서도 지금 당장은 끊지 못한다. 지금 죽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달콤하고 기름지고 짭짤한 악마의 유혹으로 우리의 의지박약한 식탐을 들쑤시면서 건강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는 것, 그것이 우리가 즐겨 먹는 가공식품의 진면모다.
배스킨라빈스 창업자 중 한 사람이었던 버튼 배스킨(Borton Baskin)이 50대 초반에 심장마비로 죽은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다고 그의 죽음이 아이스크림 과다 섭취 때문이라고 증명하기는 어렵다. 이는 나의 기능성 위장 장애가 어렸을 때 먹은 라면과 과자 때문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와 같다. 설령 내가 오늘 먹은 어느 특정 가공식품 때문에 10년 후 암에 걸린다고 해도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설령 내가 10년 동안 그 식품 하나만 먹는다고 해도 식품회사는 여러 가지 트집을 잡으며 발뺌할 것이다). 그래서 식품회사는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지금 당장 죽지 않을 정도로, 혹은 먹고 심각하게 탈이 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만들어 팔면 되는 것이다. 화장품처럼 말이다.
과자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자기 가족에게는 과자를 먹이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 안병수도 가족에게 먹일 수 없는 식품을 파는, 아니 ‘제품’을 파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건강 악화, 그리고 친하게 알고 지냈던 슈크림 사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그를 자신의 과거를 배신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는 고발자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이 책은 매일 같이 과자를 먹으며 과자 개발에 임했던, 누군가에겐 꿈의 직장처럼 보이는 한 식품 개발자의 양심선언이다. 그런 만큼 이 책의 설득력은 당신이 견지해 온 식품 철학에 작게나마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하리라.
과자, 라면? 지금도 불티나게 팔린다!
포텐거 고양이 실험에서 영양상으로 다소 결함이 있는 사료를 투여해 사육한 고양이는 3대에 이르자 육체적 • 정신적 건강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났으며 4대째에는 생식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실험이 중단되었다(실험할 새끼가 없었던 것!). 한편으론, 미국 생식의학회(ASRM)에 따르면 서구 남성의 생식 능력이 매년 2%씩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가정에서 부엌을 몰아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가공식품은 정제당, 나쁜 지방, 첨가물도 문제지만, 열량은 높으면서 비타민, 미네랄, 섬유질, 좋은 지방 등이 부족해 생기는 영양 섭취의 불균형도 문제다. 포텐거 고양이 실험을 현대인에게 적용한다면 가공식품을 주식으로 섭취하는 현대인의 말로가 보이지 않는가? 몇 세대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나아간다면 자연적인 방법으로 임신에 성공한 부부는 SNS 자랑감이 될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피임 시장은 자연스럽게 폐장될 것이다. 20세기 들어 비약적으로 성장한 식품회사 때문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앞으로도 증가할 것을 우려한다면, 훗날 이들 식품회사 덕분에 인구가 감소할 수도 있다니 안심해야 할까?
끝으로 이 책을 읽고 나면 우주에 내팽개쳐진 것 같은 공허함이 압박해오면서 주변에 ‘나 먹어줍쇼’ 하고 널브러진 먹거리들이 모두 블랙홀에라도 빨려 들어간 듯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마트에 진열된 식품 중 이것저것 꼼꼼하게 따지다 보면 고가의 몇몇 제품만이 남게 된다. 그렇다면 가공식품과 건강 문제는 오로지 나의 경제적 능력에 기인한 선택의 문제인가?
식품회사는 정제당, 나쁜 지방, 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혹은 최소한의 사용만으로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만한 식품을 만들 능력이 있음을 이미 몇몇 회사가 증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해롭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과자와 라면은 지금도 불티나게 팔리는데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수고를 하겠는가?
식품시장을 설탕, 나쁜 지방, 첨가물이 독점하도록 허용한 주체는 누구인가? 정부? 기업? 아니면,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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