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이 2(Brahms: The Boy Ⅱ, 2020) | 돌아왔다고 무조건 반기지 않는 것이 세상의 무서움
"규칙을 어기고 있잖아, 브람스가 화낼 거야"
세상 돌아가는 물정이나 변화를 통해 인정사정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끼곤 하는데, 완전히 잊고 있었던 영화의 후속작품 출시 소식도 그중 하나다. 「더 보이 2(Brahms: The Boy Ⅱ, 2020)」가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감상은 어떤 영화일까 하는 기대감보단 1편을 본 이후 어느덧 4년이 흘렀는가 하는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심장과 폐의 모든 공기를 짜낸 깊고 깊은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그만큼 1편으로 받은 감흥이 대수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더 보이(The Boy)」 2편을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1편을 봤다는 망할 놈의 기억 때문이지, 기타 특별한 사유가 있거나 누군가로부터 추천을 받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실 1편이 어떤 내용인지는 영화 정보 사이트의 줄거리를 흩어 보기 전까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사실 대부분 영화가 소수 정예를 빼고는 빨리 잊혀지기 경쟁이라도 하듯 곧 기억에서 사라진다. 아니면 나만 그런가?) 그다지 특별한 영화는 아니었다. 다만, 기차 창밖으로 얼핏얼핏 스쳐 지나가는 풍경 보듯 1편의 줄거리와 주요 장면을 대충 흩어 보니 문득 떠오르는 감상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더 보이(The Boy)」 1편에 등장하는 고상한 저택에서 일하는 고상한 아르바이트다. 그처럼 고요하고 한적하고 운치 있는 저택에서 인형을 돌보면서 보수도 넉넉히 받는다면 나 같은 은둔형엔 ‘땡 보직’이나 다름없다는, 그런 바보 같은 감상에 젖어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도 거의 10년째 각종 공사와 층간 소음으로 시달리다 보니 현재의 저주스러운 거주 환경과 그렇게 내버려 둔 한국의 도시 계획에 불만과 불평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하다 보니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유난히 탁 트이고 여유 있는 주거 환경에 집착하게 되고, 「더 보이(The Boy)」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저택을 보면 남모르게 부러움과 질투의 탄식을 내뱉게 된다.
지금의 울컥하는 마음으로선 설령 유령과 함께 산다고 해도, 아니 그보다 더해 유령의 시중을 드는 한이 있더라도 ─ 집안에선 간단한 스트레칭도 버거운 ─ 성냥갑 같은 집을 훌쩍 떠나 브람스(Brahms)와 영원한 친구가 되고 싶다.
고물상에 뒤죽박죽 쌓인 물건들처럼 잡다한 생각이 많은 나로선 영화를 보며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것도 유치하지만 나름의 독특한 재미다.
아무튼, 「더 보이 2(Brahms: The Boy Ⅱ, 2020)」는 공포영화라고 하기엔 손색이 참으로 많은 영화다. 나로서는 이 영화보다는 아파트 아래층 위층에서 간혹 단말마처럼 들리는 정체불명의 ‘쿵’ 소리가 더 무섭다. 또한, 인상만 따지면, 멋들어지게 빼입은 신사 같은 브람스보다 인생의 신산함이 굴곡진 얼굴 윤곽에 베어져 있는 듯한 쥬드의 엄마 리자가 더 무섭게 생겼다. 차라리 리자가 브람스의 조종을 받는 마리오네트가 되어 그 험상궂은 인상을 잔뜩 찌그러트린 채 음흉한 미소를 띠며 무서운 짓을 마음껏 저질렀더라면 더 볼만했을 것이다.
관심이 있던 없던, 흥미가 있던 없던, 호기심이 있던 없던 상관 없이 1편을 봤다는 이유로 그 후속작을 봐야겠다는 의지에 굴복하고 마는 것도 일종의 ‘경로의존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기세라면 「더 보이(The Boy)」의 3편이 나와도, 그리고 그에 대한 혹평이 2편처럼 소나기처럼 쏟아진다고 해도 기꺼이 보고 말 것 같으니 참으로 곤란하다. 더욱 곤란한 것은 공포영화를 보며 집이 어떻고, 여배우의 인상이 어떻고 하는 둥 영화와는 하등 상관없는 것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는 나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더 보이(The Boy)」 1편은 마지막 자막이 사라지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면 왠지 마음 한구석이 예리한 무언가에 쓱 잘려나간 것처럼 애잔하게 아려 오는 감상이 있었는데, 2편은 ‘아, 고놈의 가면 참 탐나네’ 정도로 마무리될 수 있으려나. 참으로 무성의한 리뷰지만, 나를 도통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지 못하고 잡념에나 사로잡히게 만들어 결국엔 이런 객쩍은 글을 쓰게 한 영화도 조금은 무성의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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