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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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저주(失眠) | 좀비가 되고 싶어? 그럼 자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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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저주(失眠, 2017) | 좀비가 되고 싶어? 그럼 자지마!

그녀의 심장 박동수와 혈압은 다 정상이다
역시 정신력이 넘치는 것 같다
그녀는 일주일 내내 한숨도 자지 못했다

역시 온몸 구석구석 찐득찐득하는 한여름에는 공포 영화가 최고다 해서 한 편 골라봤는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불면증으로 어떻게 공포 영화를 만든다는 거지?’ 하는 의구심 반 기대 반으로 재생을 시작하는 분이 많겠지만, 후반부로 가니 보통 수준 이상의 강렬한 비주얼이 전반부의 조금은 지루했던 시간을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특히 일본 장교의 성기를 통째로 도려내 일본 녀석들 엿 먹어라 하듯 장교 입안으로 그대로 쑤셔 넣는 장면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영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통쾌함을 관객의 오감 속으로 욱여넣어 준다. 하지만, 「불면의 저주(失眠, 2017)」가 단지 공포 영화라고 해서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내가 지금까지 본 중국/홍콩 영화에서는 별로 이슈화되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를 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위안부’ 문제만큼은 한국과 중국이 힘을 합쳐 일본을 압박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리뷰가 쓰고 싶어졌다.

The_Sleep_Curse movie secene

초반만 놓고 보면 ‘불면증’을 의학적으로만 다루는 듯한 오해의 소지는 충분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 두 가족사에 대대로 유전됐음에도, 현대 의학으로는 해결하지 못한 ‘불면증’을 ‘저주’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비극적인 내력이 이야기보따리의 터진 옆구리에서 새어 나오듯 서서히 드러난다. 때는 일본이 중국을 한창 점령하던 시기로서 친일파가 기세등등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눈에 보이는 어린 여자는 죄다 잡아들여 위안부를 조직하던 시기다. 이때 부모로부터 흑마술을 전수 받은 자매와 얼떨결에 매국노가 된 람싱과 한국의 이완용처럼 적극적으로 친일파가 된 차우복의 운명이 엇갈리면서 ‘불면의 저주’를 시작된다.

그런데 친일파를 '착한 친일파'와 '나쁜 친일파'로 구분할 수 있을까? 내가 볼 땐 람싱처럼 소극적인 친일파와 차우복처럼 적극적인 친일파로 구분하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 한마디 더 덧붙이면 람심 같은 소극적 친일파는 그럭저럭 봐줄 수 있지만, 차우복 같은 적극 분자는 얼마가 지났든 반드시 숙청해야 하며 후손들만 남아있다면 친일 행위로 얻은 모든 이익과 그 이익이 낳은 이익까지 모두 몰수(이것은 소극적인 친일파도 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The_Sleep_Curse movie secene

불면증이 이다지도 큰 병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영화 속에서 오랫동안 잠을 못 잔 사람들은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휘두르다 끝내 자멸한다. 잠을 못 자면 뇌세포가 손상된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잠을 못 잔 사람이 좀비처럼 난폭하게 돌변하는 것은 파괴된 뇌세포를 회복하기 위한 단백질을 보충하고픈 강렬한 욕구의 발산일지도 모르겠다. 생살을 뜯어 먹는 좀비가 되고 싶다면, 잠을 안 자면 된다! 그런데 하루라도 버틸 수 있으려나. 아니면 잠을 안 재워 좀비로 만드는 건가?

The_Sleep_Curse movie secene

잠은 하루 동안 온갖 정보를 처리하고자 혹사당한 뇌에 주어지는 유일한 휴식이다. 우리는 보통 하루에 습득한 정보 대부분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지만, 꿈에서 막 깨어났을 때 방금 꿈에서 본 것들을 힘겹게 떠올려보면 별의별 정보가 다 있다. 심지어 책에서 본 (당연히 의식적으로는 절대 기억할 수 없는) 글자 하나하나까지 선명하게 떠올라 스스로 놀랄 때도 있다. 물론 놀람과 동시에 곧바로 잊어먹지만, 이런 점만 봐도 뇌는 엄청난 과부하를 견뎌내고자 선택적 기억을 고안해낸 것이리라. 만약 우리가 하루에 접하는 모든 정보를 다 기억한다면, 하루하루 쌓이는 그 엄청난 정보량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끝끝내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고로 뇌 활동이 왕성하거나, 뇌세포가 많이 남아있는 사람은 잠이 많을 것이다(참고로 난 아직 잠이 많다). 반면에 뇌세포가 이미 많이 손상된 사람은 잠도 적을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잠도 없어지나 보다. 이것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깨어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려는 것이 아니라 휴식을 취할 뇌세포가 젊었을 때보다 현격히 줄어들었을 테니 그만큼 필요한 잠도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충분한 수면이 뇌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불면의 저주(失眠, 2017)」는 참으로 통탄할 만한 이야기로 섬뜩하게 깨우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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