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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30일 목요일

[책 리뷰] 조국의 근대화에 난파된 이름 모를 작은 목선 ~ 미스 양의 모험(조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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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근대화에 난파된 이름 모를 작은 목선

Original Title: 미스 양의 모험 by 조선작
난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어. 다만 나는 내 꿈을 좇아왔을 뿐이야. 꿈을 좇아서 여기까지 달려온 거야. (『미스 양의 모험』, p386)

미스 양, 드디어 서울로 상경하다!

안의 경제적 사정으로 고등학교 1학년 중퇴한 열여덟 살의 양은자는 펜팔을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잘 팔리는 주간잡지에 약간의 양념을 가미한 인적사항을 실었는데, 얼마 후 한두 통씩 도착하던 편지가 어느덧 사백칠십팔 통의 편지가 쌓이게 되었다. 그 많은 편지 중 태반은 시시껄렁한 것들이었고, 그중 마음에 드는 몇 통에 편지에 대해서만 은자는 답장하곤 했다. 은자는 나름대로 비밀을 지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괜히 참견하길 좋아하는 우체부의 넓은 오지랖과 하필 우체통이 은자를 몰래 사모해오던 소꿉친구 기수네의 라디오방 앞에 있었기 때문에 기수에게 덜미가 잡혀 편지를 압수당하는 수치를 당한다. 이로 말미암아 은자의 별거 아닌 펜팔 이야기는 가족들뿐만 아니라 온 동네방네로 퍼지는 별 거지 같은 일이 다 일어나 은자의 펜팔은 시들해질 수밖에 없었다.

위문편지로 알게 된 육군 병장에 대한 짝사랑의 실패에 따른 쓴맛에 이어 펜팔 사건으로 동네북이 되는 흉한 몰골까지 당한 은자는 정말 자기의 인생이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 돼버리리라는 망상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 몰린 것 같은 은자는 고민 끝에 오래전에 막연하게 결심해 왔던 대모험을 감행하기로 한다. 바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는 것이다. 은자의 대결심은 훗날‘대모험’이라 감히 칭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냥 철없는 시골 처자의 ‘가출’이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그 시대 무작정 상경한 대부분의 소년 소녀들이 그러하듯, 은자의 서울 진출이 확실한 자각과 뚜렷한 신념을 바탕으로 결정된 것이기보다는 막연한 호기심과 막연한 기대, 그리고 막연한 희망과 막연한 가능성 등이 그들을 움직인 것이다.

때마침 어디론가 사라졌던 양아버지이자 자칭 군납업자가 놀랍게도 삼만 원을 어디선가 마련해 왔고, 가슴 설레면서 그 돈을 훔친 그 날 은자는 바로 서울로 떠났다. 한마디로 야반도주를 한 계집애가 된 것이다. 그리고 한 달포쯤 시들시들 풀죽어 있던 기수는 어느 날 마침 기수 아버지가 돼지 팔아 온 돈 오만 원을 훔쳐 가자고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은자는 서울로 향하는 입석 기차 안에서 고통스러운 여행을 견디며 내심 이렇게 다짐했다.

‘돌아갈 때는 좌석 번호가 있는 특급열차를 타야지. 아니야, 택시는 대절하지 못 할라구. 또 모르지, 자가용 타고 고향 갈는지도…….’

드디어 혼잡하고 분주한 서울역에 도착한 은자. 은자는 물론 사전에 공중전화 사용법과 서울의 지도를 보고 지리도 연구해 두었다. 또한, 동대문구 전농동에 사는 시집간 언니와 형부의 전화번호와 주소도 수첩에 적어 왔고, 만약을 대비해 이 년 전에 은자보다 먼저 서울로 돌격해 미아리 양말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친구 경혜와 펜팔로 사귀었던 몇몇 남자들의 연락처도 준비했다. 그러나 형부와 경혜와는 도통 통화할 수가 없었고 마침내 전화 통화에 성공한 것은 펜팔로 알게 된 한 남자가 있는 신학대학생의 가정교사 집이었다. 그리고 그 대학생은 기꺼이 은자가 있는 서울역으로 나오기로 약속한다.

우리의 미스 양이 지키고 싶어 했던 ‘선’

리의 미스 양, 은자는 그 당시 시골에 사는 소녀라면 한 번쯤 상상했을 법한 일을, 그리고 많은 소년 소녀들이 과감히 저질렀던 ‘무작정 상경’의 대모험을 감행한다. 은자의 서울 상경에 대한 배경은 출세와 돈에 대한 억척스러운 집념보다는 어떻게 하든지 성공을 거두어서 이제까지 자기를 길러 오느라고 고생한 이리댁의 여생을 편안하게 해주고 동생들을 대학까지 공부시켜보자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부모와 그런 가정에서 자라는 동생을 둔 누나, 오빠, 형이라면 누구나 바랄법한 기특하고 소박한 소망이다. ‘어떻게 하든지’라고 은자는 말하지만, 사실 서울 진출 초기만 해도 은자는 막연하게나마 지켜야 할 선을 나름대로 마음속에 그었다.

은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자 중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괜찮은 한국남자나 외국인을 꾀어 한순간의 신분 상승을 노리는 야심에 찬 기회주의적인 여자들도 있었다. 『영자의 전성시대』로 유명한 조선작의 『미스 양의 모험』에도 은자의 고향 친구 경혜는 양말 공장, 비어 홀을 전전하다 결국에는 소망대로 한국으로 관광 온 50대 일본 남자를 만나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런 경혜를 두고 은자는 돈도 좋지만 그렇게 혼까지 팔아먹을 수는 없다며, 적어도 좋은 남자 하나를 사랑할 수 있는 맑고 투명한 혼만은 고이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다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권씨 일가의 마나님에게 식모살이를 권유받자 식모살이를 하려고 서울까지 올라왔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모멸감까지 느낀다. 또한, 은자가 아직 시골에 있을 때 서울에서 놀러 와 은자의 가출을 부채질하는 경혜를 보고는 기껏 양말 공장의 공순이나 할거하면 서울 안 간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시대를 불문하는 남자들의 채워지지 않는 정욕

자는 무작정 상경한 소녀들이 주로 몸담는 식모살이나 공장 노동자는 경멸했으며, 경리 학원이나 타자 학원 같은데 다녀 떳떳한 직장에 취직하고 떳떳한 길을 밟아 성공하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그리 큰 꿈도 아니다. 하지만, 시대가 좋지 못했다. 무허가의 직업소개소는 은자 같은 이들에게 뒷돈을 요구하기 일쑤였고, 요정이라고 속인 다음 반강제로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니라 허름한 니나놋집이었고, 그것도 모자라 햇빛도 들지 않는 음침한 방에서 감금 생활과 ‘여관 출장’을 강요당했다. ‘자립하기를 원하는 여자들’을 데리고 있는 지배인은 회비라는 명목으로 부당하게 착취했으며, 이러한 구조적 악습은 요정, 비어 홀, 카바레, 목욕탕 등 하층 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곳에서 그들을 더욱 고단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부당한 대우 속에서 은자를 더욱 괴롭힌 것은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남자들의 시도 때도 없이 들이미는 정욕이었다.

은자가 상경 첫날 만난 신학대학생이라고 속인 문대성, 장차 일류 가수로 출세할 것이 틀림없는 자기에게 일찌감치 프러포즈를 해두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던 세차원 길병수, 치과대생이라고 속인 소매치기 구상철, 열여덟 살밖에 안 된 다방 주방에서 일하던 머슴애 차군 등 은자를 만나는 남자들의 목적은 단 한 가지, 고이고 고인 정충을 쏟아붓고 싶은 동물적 욕망뿐이었다.

누가 그들을 ‘종점’으로 몰아붙였는가?

자는 상경 때만 해도 나름대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다. 몸을 파는 유혹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림과 불면을, 연금과 약탈을, 배회와 허망을, 실망과 분노를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는 조그마한 소망들과 채워지지 않은 사랑의 갈증을 겪으면서” “돈은 가장 어두운 곳에 또는 가장 더러운 곳에 흔하게 널려 있다는 깨우침이라든가 남자는 동물과 사람의 중간쯤 되는 동물이라는 각성, 또는 세상이란 얼마나 어리숙한 인간들의 집합인가 하는 데 대한 인식 따위의 총체가 은자를 가만히 비극적으로 눈뜨게” 한다. 또한, “마침내 자신의 순결 같은 것이 남자들의 애타는 요구에 비해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에 대해서 슬프게 유념하기” 시작한 은자는 온갖 치졸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끈질기게 매달렸던 남자들의 힘겨운 요구에도 지켜왔던 마지막 보루, 상경 초기 막연하게나마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게 된다. 그렇게까지 해서 도착한 그곳은 동료이자 고참인 미스 유의 말대로 ‘종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우리나라의 산업화 • 도시화에 따른 사람 사는 모습의 변화에 대해 남다른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 것이 문학의 주제나 조형의 뼈대가 되어 줄 것이라는 확실한 신념을 가져서는 아니었고, 날로 비대해져 가는 도시의 한 서민으로서 느끼는 소외감과 열등감이 도리어 도전적인 흥미를 부채질하지 않았는가 싶다. (「작가의 말」 중에서)

숨 쉴 틈도 없이 치고 달리는 도시화와 산업화에 편승해 소박한 꿈을 이루고자 무작정 상경한 시골 청소년들은 ‘조국의 근대화’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조국의 근대화나 산업화, 자본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결코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음주운전처럼 안전한 속도와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지 않고 미친 듯이 내달렸고, ‘빨리빨리’라는 단 한마디로 민족성을 대변할 수 있는 시대답게 과속으로 맹렬하게 달리던 산업화를 조기에 이룩하려는 국가적 탐욕은 마땅한 희생이 필요했다. ‘한강의 기적’은 참말로 맞는 말이었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소박한 꿈조차 체념하게 만드는 잔인한 도시

소한 나에게 있어서 최인호와 함께 1970년대 하면 떠오르는 작가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성벽』 등의 중단편과 첫 장편 『미스 양의 모험』은 산업화에서 소외된 도시 하층민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렇지만 값싼 동정이나 연민에는 휩싸이지 않는 절제된 문장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여기에 그만의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 뭍으로 막 올라온 붕어처럼 파닥거리는 생동감과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유감없이 보여준 거칠면서도 재치있는 매우 맛깔스러운 글쓰기는 순수하게 텍스트를 읽어내는 재미만으로도 독자를 유쾌하게 만든다. 참고로 난 소설을 읽을 때 자신만의 개성 있는 글쓰기를 구사하는 작가를 높이 평가하는데, 그런 점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담백한 문장은 평생 잊을 수 없으며, 그 독특한 문장의 멋 때문이라도 가끔 다시 읽고 싶어진다.

아무튼 『미스 양의 모험』에서 조선작은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원대한 포부를 안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수많은 청소년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서울에서 겪어야 했던 다사다난한 삶을 은자의 7년간 서울살이를 통해 대변하고 있다. 상경 초기에만 해도 순결을 지키고자 했던, 진실한 사랑을 믿었던 당차고 억새며 약간의 순박함도 간직했던 우리의 은자가 세상 풍파에 닳고 닳은 여자들이 도달하기 마련인 ‘종점’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조선작은 딱 잘라 ‘체념’이라고 말한다.

세상 누구도 은자를 진실하게 맞이해 주지 않았다. 비집고 들어가려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냉담한 콘크리트의 벽들 사이에 갇혀 외롭고 쓸쓸했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줄 믿음직스럽고 따뜻한 어깨를 간직한 든든한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은자의 주변엔 어떻게든 은자를 한 번 안아보려고 침을 질질 흘리는 발정 난 양의 탈을 쓴 늑대뿐이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낯선 서울에서 은자는 늘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사방은 어수룩한 사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적(敵)들이었다.

은자는 피곤했고 이 모든 넌더리에 그만 지쳐버렸다. 그래서 모든 걸 체념했다. 상경할 때 마음먹었던 소박한 꿈이나, 돈을 벌더라도 최소한 지켜야 할 선 같은 애초에 지키지도 이루지도 못할 것들을 체념했다. 이제는 고액의 수입보다는 터무니없을지라도 안정된 삶과 휴식이 필요했다. 조선작은 은자는 조난당한 난민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에 조난당했다는 말인가. 그것은 홍수나 지진 따위가 아니다. 차라리 그런 자연재해에 조난당한 난민이라면 구제할 길은 얼마든지 있으니 다행일지도 모른다. 은자가 당한 재난은 바로 조국의 근대화라는 돌풍이었다고 조선작은 말한다. “돌풍의 와중에서 마침내는 형체도 없이 난파해 버린 하나의 작은 목선”, 그것이 바로 양은자다.

‘여름 해가 지다’나 ‘유리문 안에서’도 그랬지만, 거의 3년 전에 쓴 글을 이제야 올리는 이 게으름과 불성실함이란! 된장 고추장처럼 마냥 묵혀둔다고 조악한 글이 절로 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3년 전에 쓴 글이라 그런지 ‘리뷰’를 쓰는 방식이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줄거리’를 앞에 붙이는 것이 꼭 독후감을 쓰는 것 같다. 지금은 책의 내용에는 구애받지 않고 책을 읽고 떠오르는 느낌이나 감상을 적으려고 노력 중이다. 아무튼, 지금도 밀린 ‘책 리뷰’ 글일 수두룩한데 앞으로는 좀 부지런히 글을 올려야겠다. 이러다 내가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죽으면, 다른 것은 미련이 없지만, 비록 쓰레기 같은 글이지만 이것만은 좀 미련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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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6일 일요일

간단한 바이두 공유 링크 다운로드 가속 도구 ~ 百度网盘免登高速下载

출처: Pnl-BD极限获取器(百度网盘免登录高速下载程序)V3.1 最新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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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단순한 메인 화면>

Pnl-BD极限获取器(한도 취득자)는 로그인 없이 공유된 바이두 자료를 다운로드 가속해 주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유용한 프로그램이다. 사용법도 매우 간단하여 바이두 공유 링크 주소만 알면 로그인 없이 자료를 받을 수 있다. 고로 바이두 회원이 아닌 모든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암호가 걸린 공유 링크는 아직 지원하지 않는 것 같으며 내가 사용하는 한글판 윈도우 서버 2016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실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테스트는 어쩔 수 없이 중국어판 윈도우 7에 한글 언어팩이 설치된 버추얼박스(VirtualBox)를 이용했다. 한글판 Windows Server 2016에서 실행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글판 윈도우 10에서도 왠지 실행이 안 될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일단 소개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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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연결수]50으로 설정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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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연결수]100으로 설정했을 때>

파일이 저장되는 위치는 따로 지정할 수 없으며 기본적으로 Pnl-BD极限获取器이 실행된 폴더에 다운로드한 파일이 저장된다. [최대연결수](최댓값은 800!)를 조절하여 다운로드 속도를 올리거나 낮출 수 있다. ‘블랙리스트’가 걱정된다면 (확인한 바는 없지만) 5M 정도 이하로 맞추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위의 스크린 샷은 [최대연결수]를 50으로 설정했을 때와 100으로 설정했을 때를 비교한 화면인데, [최대연결수]를 두 배로 늘리니 속도도 대략 두 배로 올라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복 실행을 지원하니 한 번에 여러 자료를 받는 것도 가능하다.

다른 사람이 공유한 자료를 받는 용도로 사용해도 되고, 아니면 자신의 바이두 클라우드에 있는 자료를 받을 때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앞으로 개선될지는 모르겠지만) 암호가 걸린 공유 자료는 받을 수 없다는 단점 때문에 내 클라우드 자료를 받을 때 암호가 없는 공개 공유로 설정해야 한다는 약간의 부담이 있다. 만약 공유한 자료가 저작권 위반, 성인 동영상 등의 자료라면, 그리고 바이두에 적발된다면 경고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확률은 매우 낮지만) 그 짬에 누군가 바이두 자료 검색에서 내가 공유한 자료를 찾아낼 수도 있다. 이런 자료들이 공개 공유 즉시 자동으로 적발되는 시스템인지, 아니면 사람의 모니터링에 의한 수동 적발 시스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부득이하게 Pnl-BD极限获取器를 이용하여 자료를 받고자 공개 공유했다면, 자료를 받는 즉시 공유를 취소하는 것을 잊지 말자.

다운로드: https://pan.baidu.com/s/1y_EQYCV37IgSipFmRth2Fg

암호: uz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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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한 잔의 원두커피처럼 씁쓸함 뒤의 개운함, 그리고 ~ 유리문 안에서(나쓰메 소세키)

Inside My Glass Door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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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원두커피처럼 씁쓸함 뒤의 개운함, 그리고 따뜻함이 담긴

원제: 硝子戶の中 by 夏目 漱石

아무리 좁은 세계라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사건은 일어난다. 그리고 자그마한 나와 넓은 세상 사이를 격리시키고 있는 이 유리문 안으로 이따금 사람이 들어온다. 그게 또 나로서는 전혀 뜻밖의 사람들로 이 또한 전혀 뜻밖의 말이나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나는 흥미에 가득 찬 눈으로 그런 그네들을 맞이하거나 보낸 일조차 있다. 나는 그런 일들을 여기에 조금 써보려고 한다. (『유리문 안에서』, p10)

매일처럼 유리문 안에 앉아서, 아직 겨울이다 겨울이다 하고 있는 사이, 봄은 어느결에 저만큼 다가와 내 마음을 휘젓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리문 안에서』, p159)

병인 위궤양과 감기 등의 병치레로 쇠약하진 나쓰메 소세키(夏目 漱石)가 병상에서 일어나 겨우 집안 정도를 거동할 수 있을 무렵에 쓴 『유리문 안에서(硝子戶の中)』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해인 1915년 1월부터 2월에 걸쳐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다. 자신이 다음 해에 죽으리라는 것을 꼭 집어 예견할 수는 없었겠지만, 오랜 지병인 위궤양과 신경쇠약 때문에 자신의 삶이 곧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어느 정도 예감한 듯, 죽음에 대한 상념과 고찰뿐만 아니라 과거에 대한 회상을 주로 담은 『유리문 안에서』는 집필 시기였던 겨울만큼이나 쓸쓸하고 적막한 죽음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신변 정리를 하듯, 과거, 현재를 반추하고,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인과 관계 등을 되돌아보는 삶에 대한 담담한 자기 성찰과 회고가 담긴 이 수필은 유리문 하나로 세상과 격리된 채 양지바른 툇마루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자신의 영혼이 자유롭게 노니는 대로’ 붓을 휘둘러 완성된 작품이다. 곧 맞이할 것 같은 죽음을 떠올려야만 하는 사람들의 막막한 불안함 속에서도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삶을 해탈하고자 하는 의지가 자아내는 영혼의 여유로움을 은근히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을 속세와는 ‘유리문’ 한 장으로 격리된 툇마루에서 홀로 숙고해야만 하는 자의 쓸쓸함이 독자의 심금에 잔잔한 울림을 전해주기도 한다.

떻게 보면 (너무나도 유명한) 나쓰메 소세키의 이름 없는 고양이, 누런 점박이 강아지 헥토르, 저자의 사진을 담고 싶다는 사진사, 자신의 기구한 인생을 고백하며 인생의 조언을 구하는 여자 손님,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 원고를 들고 평가를 받고자 찾아오는 사람, 한시나 하이쿠를 써달라고 멋대로 단자쿠와 선물을 보내는 사람, 일찍 죽은 형제와 지인, 그리고 여전히 마음속에 어른거리는 올 성근 감색 홑옷이나 조붓한 검은 공단 오비를 두른 그리운 어머니 이야기 등 한 개인의 과거와 주변을 훑는 신변잡기 따위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쓰메 소세키 특유의 재치와 관조적인 담백한 문장은 한 귀로 흘려도 무방할 듯한 사소하고 소소한 개인의 일상을 허탈하게 웃고 넘기기엔 무척이나 아쉬운 그럴듯한 이야기로 끌어올린다. 한편으로는 그의 다른 작품에서는 엿보기 어려웠던 나쓰메 소세키의 일상적인 모습과 사유가 담겨 있어 매우 친근감이 느껴진다.

은 각 이야기의 마무리는 친근한 무언가를 갑자기 잃어버리는 듯한 상실감이나 처량함, 때론 믿었던 누군가에게 버려진 듯한 씁쓸하고 허탈한 여운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런 씁쓸한 뒷맛을 소처럼 되새겨 보면 막 내린 따끈한 원두커피처럼 씁쓸함 뒤의 구수한 개운함이 온몸을 따뜻하게 퍼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삶의 과중함에 억눌려 노곤해질 대로 노곤해진 영혼의 각성을 위한 천연의 강장제가 될 수도 있으며, 바쁜 일상의 굴레를 잠시 중단하고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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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0일 월요일

바이두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때 대처법, 그리고 '블랙리스트' 회피하는 방법

How to respond when you're on the Baidu Blacklist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땐, 그냥 로그인하지 않고 자료를 받으면 된다>

내가 볼 땐 바이두 무료 사용자의 비애는 속도 제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 속도 제한을 벗어나려고 하는 몸부림에 가까운 처절한 시도를 한낱 물거품으로 만드는 ‘블랙리스트’에 있다. 그러나 오늘 몸소 ‘블랙리스트’를 겪어본 바로는 당분간은 크게 걱정할 것은 없을 것 같다. 내 블로그의 바이두 관련 글에 달린 댓글로 미루어 보아 바이두의 '블랙리스트' 는 IP 차단 방식이 아니라 계정 블록으로 보였고, 고로 스피드판(SpeedPan) 제작자의 친절한 조언처럼 자신의 계정이 ‘블랙리스트’에 걸려 속도가 현격하게 떨어졌다면 바이두에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료를 받으면 된다.

그럼 어떻게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료 계정의 야속함을 벗어나는 빠른 방법으로 원하는 자료를 받을 수 있는가? 그것은 모든 사람이 알다시피 매우 간단하다. 내려받을 자료가 바이두 클라우드에 있다면 해당 자료를 공유 링크로 만든 다음 스피드판을 이용해 받으면 된다. 물론 이때 절대로 로그인하면 안 된다. 평소에는 바이두에서 많은 자료를 받지 않아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지 못했는데, 얼마 전 간만에 재미를 붙인 드라마 수십 편을 내려받는 도중 벌컥 걸리고 말았는데, 이 방법으로 나머지 자료들도 빠른 속도로 (하지만 ‘블랙리스트’에 걸리기 전보다는 다소 느리고, ‘블랙리스트’에 걸렸을 때보단 빠른)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 방법도 과하게 사용하다 보면 IP 제한이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제재를 받을 수 있겠지만, 모두 알다시피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하루에서 일주일 사이면 풀리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시적 처벌이라 크게 우려할 것은 없을 것 같다. IP 제한에 걸렸다고 생각되면, 공유 링크를 다시 생성하던가, 컴퓨터를 재부팅하고 다시 시도해 본다.

▲ 2018년 10월 26일 추가

최근 바이두 정책의 변화로 비로그인 다운로드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는 중국의 실력자들이 새로운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당분간은 아쉬운 대로 로그인하고 나서 다운로드 받아야 한다.

▲ 2018년 10월 28일 추가

현재 「바이두 로그인 없이 다운로드 하기? ~ proxyee-down」 방법으로 비로그인 사용자 다운로드 가능!

▲ 2018년 11월 23일 추가

바이두 '블랙리스트' 회피하는 방법 #2」 방법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용자도 다운로드 가속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

▲ 2019년 5월 12일 추가

스피드판 2.1.6 버전에 새로 추가된 ‘반조화 공유 링크’는 로그인하지 않고도 스피드판으로 자료를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이다. 「PanDownload에 기능을 더 추가한 바이두 다운로드 가속 도구 ~ SpeedPan(한글판)」 참고.

▲ 블랙리스트 회피하는 방법? #1

‘다운로드 속도 제한’을 이용해 ‘블랙리스트’를 회피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5M’ 정도로 속도 제한을 걸어놓았더니 ‘블랙리스트’에 걸리지 않았다는 어떤 사용자의 글을 본 적도 있다.

스피드판이나 판다운로드 같은 바이두 다운로드 가속 도구의 속도 제한은 [설정]에서 [최대 스레드 수] 혹은 [서버 동시 연결 수] 등 이와 비슷한 설정값을 10~20 정도로 낮춰 파일 한 개의 다운로드 속도가 1M/s 안팎 정도로만 나오도록 맞추는 것이다. 즉 파일 한 개의 서버 동시 연결 수를 낮추고 동시에 다운로드 속도도 낮춰 ‘블랙리스트’를 피해가자는 것이다. 2018년 10월 26일, BaiduPCS-Web으로 700짜리 동영상 13편을 앞서 말한 방법으로 받았는데, 마지막 동영상까지 ‘블랙리스트’에 걸리지 않고 잘 받았다.

이 방법이 계속 통한다면, 아마 ‘블랙리스트’는 한 파일의 다운로드 속도가 제한 속도를 일정 시간 넘어서면 걸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블랙리스트’에 걸리자 않는 ‘안전 속도’가 있다는 말인데, 이 부분은 앞으로 테스트가 더 필요할 것이다. 또한, 최근(2018/11/3)에 로그인 상태에서 「템퍼몽키(Tampermonkey)와 사용자 스크립트 조합으로 바이두 다운로드 가속」 방법으로 다운로드 시 100G 자료를 받았음에도 무사하다는 글을 보았다. 이 고전적인 방법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것인데, 내 생각엔 이 방법으로 받는 다운로드 속도가 보통 2M/s 안팎인지라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을 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블랙리스트 회피하는 방법? #2

두 번째 방법에 대한 고찰은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 어쩔 수 없이 새 글 「바이두 '블랙리스트' 회피하는 방법 #2」로 대신한다. 여기서 잠깐 이 방법의 핵심을 언급하자면, PCS 링크를 추출하여 ‘비로그인 상태’에서 바이두 자료를 다운로드하는 것인데, 자세한 사항은 링크를 참조하자.

▲ 블랙리스트 회피하는 방법? #3(2019/05/12)

중국 커뮤니티 게시판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내 클라우드에서 직접 다운받지 않고, 공유 링크로 만들어서 받으면 괜찮다고 한다. 이때 추천하는 다운로드 가속은 고전적인 IDM + 템퍼몽키 스크립트 조합이다. 「템퍼몽키(Tampermonkey)와 사용자 스크립트 조합으로 바이두 다운로드 가속」 참고.

<속도 제한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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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9일 일요일

[책 리뷰] 미학적 가치가 자아내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성 ~ 여름 해가 지다(옌롄커)

Xia Ri Luo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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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적 가치가 자아내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성

원제: 夏日落 by 閻連科
자오린이 말했다. “빌어먹을, 지는 해를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군그래.” (『여름 해가 지다(夏日落)』, p261)

서 전문 작가라는 불명예인지 명예인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호칭을 달고 다니는 중국 작가 옌롄커(閻連科)의 『여름 해가 지다(夏日落)』는 군대 사회의 일상화된 부정 • 부패, 그리고 병영에서 일어난 총기 도난 사건과 한 병사의 자살 사건으로 빚어지는 출세 지향적인 중대장과 지도원 간의 암묵적 갈등과 긴장을 통해 중국 사회에 만연한 가식과 위선을 폭로한 비교적 짧은 분량의 소설이다. 한편으로는 소설 속에서 자살한 병사의 이름 샤를뤄(夏日落: 여름 해가 지다)의 뜻처럼 황하고도(黃河故道)에서 지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수준 높은 미학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감성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를뤄가 무엇 때문에 자살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지만, 그가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쓰여있듯 샤를뤄는 석양이 하늘을 가르는 미세한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해서 누구라도 그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마음이 백지장처럼 깨끗해질 것 같은, 그곳의 지는 해(日落)의 장엄한 아름다움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은 듯하다. 그런데도 그는 자살을 선택했다. 여름 해에 의해 뜨겁게 달구어진 대지는 해가 지면 서늘한 기운에 가늘게 몸서리를 치고, 사람의 뜨뜻한 피도 결국엔 우물물처럼 식는다. 여름 해가 질 때 태어나 여름 해가 질 때 세상을 떠난 샤를뤄를 통해 저자 옌롄커는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인생의 무상함을 말하고 싶었을까. 생존의 의미를 잃어버린 한 인간에 대해 역설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살 사건으로 출세에 대한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짐으로써 삶의 목적을 유실한 중대장과 지도원은 샤를뤄가 극찬한 여름 해자 지는 장관을 감상하며 자살 사건으로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지난날의 응어리가 자신들도 모르게 풀어짐을 느낀다. ‘우리가 살면서 뭘 더 바라겠나? 자기 인생의 몫을 살아내는 것뿐이지’라는 지도원의 체념 아닌 체념의 말처럼 그들은 다시 삶을 환기시키고 자신들을 추스른다. 한 사람에겐 죽음의 이정표가 된 여름 해가 지는 경이로운 광경이 또 다른 사람에겐 나침반이 되어 목적 없이 표류할뻔한 삶의 방향을 잡아준 것이다. 생존의 의미를 잃어버린 인간에게 여름 해가 지는 장관은 죽음이라는 영원한 안식을 주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론 위안과 동정심을 자아내는 등 모순적인 의미로 표현되고 있다. 생존의 의미를 잃어버린 인간을 묵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회유하며 제 갈 길로 보내려고 하는 『여름 해가 지다(夏日落)』의 이중성은 비록 삶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인간일지라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성만큼은 놓치지 않으려는 옌롄커의 남다른 의지는 아닐까.

일 나누는 인사처럼 군대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신랄하게 비난하기보다는 똥을 싸면 으레 밑구멍을 닦듯 천연덕스럽게 꾸며대는 것도 묘미이지만, 여름 해가 지는 황하고도의 아름다운 운치에 푹 빠져 일상과 경쟁에 지친 노곤한 마음을 깨끗이 비울 수 있는 잠시 쉬어 가는 짬을 주는 것도 이 작품의 또 다른 묘미이다. 한마디로 매일 입지는 않지만, 잊을만하면 요긴하게 쓰이는 유행을 타지 않는 옷처럼 두고두고 곁에 두고 위안을 얻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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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8일 토요일

아쉽게 놓친 2018년 스택 초대 코드 이벤트

Sadly missed 2018 stack invitation code issue event

출처: https://www.transip.nl/knowledgebase/artikel/267-wil-een-invitecode-voor-stack/

위 링크에 주렁주렁 달린 댓글을 보아 올해, 그러니까 2018년 4월 정도에 스택(stack) 초대 코드 신청이 가능했던 것 같다. 작년, 그리고 그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일시적인 이벤트 형식으로 초대 코드 신청을 받은 것이다. 스택 계정을 세 개나 가지고 있지만, 알림 메일 같은 것 받지 못했다. 받았으면, 블로그에 시기를 놓치지 않고 글을 올렸을 텐데 말이다. 올해는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다. 1테라 무료의 스택 클라우드가 꼭 필요한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벨기에 스택 홈페이지를 확인하다 보면 언젠가는 초대 코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이 짧은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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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사양 노트북에 Windows 10 19H1 Preview Build 18219를 설치하다

별 기대 없이, 그저 순전히 호기심 차원에서 올가을에 정식 출시될 윈도우 10 RS5를 이을 것으로 예상하는 윈도우 10 19H1 프리뷰 빌드 18219를 설치했다. 20G VHD에 설치했는데, 설치 후 용량은 대략 10G 조금 못 미쳤으며, 아주 잠깐 사용해 보면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는데, 보통의 윈도우 10처럼 하드웨어 드라이버 업데이트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 이제 첫 스타트를 끊은 인사이더 프리뷰 단계라 아직 드라이버 지원이 미흡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인 드라이버 설치와 대충 이런저런 설정을 마치고 나서 윈도우 디펜더를 끈 상태에서 PCMark7를 돌렸다. 구닥다리 저사양 노트북이니만큼 벤치마크 소프트웨어도 구닥다리를 사용한 것이고, 또한 이전 데이트와 비교하려면 역시 이 녀석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점수는 예상대로 이전 윈도우보다 소폭이지만 하락했다. (최소한 내 노트북에서는) 새로운 버전과 새로운 빌드가 거듭할수록 윈도우는 무거워지고 있다. (「저사양 벤치마크(PCMark 7) - Windows 10 Enterprise RS1 vs 2016 LTSB vs Server 2016」 참고) 다만, Windows RS5 Lean 빌드 17655보다 약간 향상된 점은 의외다. 그럼에도,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살짝 끊기는 불편한 감이 있는 것이 영 미덥지가 못하다. 서비스 항목에는 전혀 반갑지 않은 못 보던 녀석들이 진을 치고 있다. 역시 최적화보다는 잡다한 기능을 추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고로 이 녀석도 이전 윈도우처럼 내겐 별볼일없다.

테스트 사양: Asus K55DR(8G, 128G SSD), fixed VHD 20G

Windows Server 2016을 제외하곤 전부 인사이더 프리뷰 버전

Install Windows 10 19H1 Preview Build 18219 on Low-end Notebook
Install Windows 10 19H1 Preview Build 18219 on Low-end Notebook
Install Windows 10 19H1 Preview Build 18219 on Low-end Notebook

사실 내 생각엔 빌 게이츠가 애플의 첫 아이패드가 출시된 상태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타일러스 입력 방식이 이길 거라고 목숨을 걸고 장담했던 때,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의 혁신과 창의성은 죽은 것이라고 본다.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현재 윈도우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젠 윈도우에 기대할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다. 내가 학수고대하는 것은 리눅스에서 윈도우 프로그램을 구동시켜주는 와인(Wine)이 좀 더 매끈하게 진화해 완벽한 호환성과 성능을 보장하는 날이 오는 것이다. 만약 윈도우와 Mac OS가 리눅스처럼 오픈 소스로 공개된다면, 현재 리눅스처럼 다양한 배포판 중에서 사용자 환경과 취향에 따라 골라 먹는 재미가 솔깃할 텐데...한낱 사용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참고로 윈도우 10 19H1 빌드 18219 ISO 파일은 ‘홍차의 꿈’님 블로그를 통해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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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6일 목요일

[책 리뷰] 진정 누가 '신의 괴물'인가? ~ 데이비드 쾀멘

Monster of God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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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누가 ‘신의 괴물’인가?

원제: Monster of God: The Man-Eating Predator in the Jungles of History and the Mind by David Quammen
우주는 아주 넓은 장소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우주는 대부분 텅 비어 있는 지루하고 차가운 곳이다. 만약 우리가 지구에 남아 있는 최후의 야수를 절멸시킨다면 나머지 역사 동안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든지 간에 그와 비슷한 다른 종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LV-426 에 도착해 에일리언의 둥지를 발견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그곳이나 그 다음번 미지의 행성들에서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신의 괴물(Monster of God)』, p584)

신이 만들어 낸 최고의 괴물!

작한 사람도 있고 그 짐작이 빗나간 사람도 있겠지만, 데이비드 쾀멘(David Quammen)이 말하는 ‘신의 괴물(Monster of God)’은 사람까지 잡아먹는 대형 포식 동물이다. 급할 땐 동료도 잡아먹고, 여유를 부릴 땐 별 희귀한 것까지 굳이 찾아 먹는 사람에게 포악한 괴물로 낙인찍힌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직 생존만을 위해 진화해 온 그들로선 꽤 억울한 일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윤리관을 다른 종에게까지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사람의 오만하고 위선적인 버릇에서 비롯된 선과 악이라는 별 신빙성 없는 이분법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즉, 사람을 잡아먹거나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은 ‘악’이고 ‘괴물’인 것이다. 그래서 신화와 전설은 ‘괴물’에 맞서 싸우는 용감하고 영웅적인 행동으로 가득 찼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시대에 사자, 호랑이, 곰 등의 포식 동물을 사냥하는 행위는 남성적인 용기와 그러한 사냥을 즐길 수 있다는 사회적 위상과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괴물은 대형 포식 동물이 아니라 다름 아닌 사람이다.

다른 종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식을 즐기는 잡식성이라는 유일무이한 종적 특성과 과도한 식탐 때문에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온갖 잡다한 동물들을 잡아먹는다. 사자, 호랑이, 곰 등의 포식 동물이 드물긴 하지만 사람을 잡아먹은 이유는 사람의 지나친 영역 확장이 불러온 서식지 파괴와 축소로 먹을 것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굶주림에서 비롯한 생존 본능 때문에 사람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지만, 사람은 단지 맛있고 새롭고 희귀하다는 이유에서 별의별 동물들을 다 잡아먹는다. 고로 우리와 같은 사람인 데이비드 쾀멘이 이 책을 썼기에 ‘신의 괴물’은 사람을 잡아먹는 대형 포식 동물(책에서는 ‘알파 포식자’)을 지칭하지만, 만약 먼 훗날 돌고래나 개든 사람이 아닌 누군가 이와 비슷한 책을 쓴다면 ‘신의 괴물’은 다름 아닌 사람일 것이다.

생태계에서 인류가 맡은 역할과 지위에 대해 묻다

런데 그들은 정말 아무짝에 쓸모없게도 단순히 다른 종들을 잡아먹기만 하는 괴물들일까? 실상은 그 반대다. 먹이 사슬에서 최상위에 있는 포식 동물은 생태계의 균형과 조화를 조절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만약 그들이 생태계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백수(백수조차 먹고살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 활동을 한다)보다도 못한 존재였다면 진화 도중 도태되었을 것이라고 바보라도 예상할 수 있다.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면 필연적으로 생태계가 단순해지고, 그에 따라 복잡한 먹이 사슬 시스템의 가지가 처지면서 종의 멸종이 줄줄이 발생하고 이는 곧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진다.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하지 않더라도 단순해진 생태계는 덩치 큰 육식 동물이 사라짐에 따라 작은 동물들의 세상이 될 확률이 높다. 운석으로 공룡이 멸종했기에 설치류의 세상이 올 수 있었던 것처럼(공룡의 빈자리를 포유류의 진화적 도약으로 채워지면서 인류의 출현도 가능했다!) 그들이 사라지면 우리는 바글대는 쥐들과 함께 전쟁 아닌 전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괴물’ 아닌 괴물들이 사라졌을 때의 생태학적 손실은 대충 이러하지만, 사람에게 있어 대형 포식 동물이 차지하는 자리는 생태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쇼베 동굴에 남긴 사자 그림에서 볼 수 있듯, 그들은 역사시대 이전부터 사람에게 정신적, 심리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때 그들은 토템이나 신의 존재로서 우상과 흠모,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의 위엄과 용맹함은 영웅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시 인류의 미숙했던 영혼과 정신적 토양은 그들을 두려워하면서도 흠모할 수 있었기에 풍성해지고 다양해질 수 있었다. 또한, 사람을 잡아먹든 안 잡아먹든 그들이 있어 인류는 지구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위치를 겸손하게 숙고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은 그러한 겸손을 억누르고 대신 그 자리에 인류가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심어 놓았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그들의 서식지는 계속 줄어들어 왔고, 이제는 생존조차 위태로운 지경이다. 각각의 종이 저마다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다름에도 모두 각자의 역할과 위치를 벗어나지 않았기에 자연의 조화와 안정을 유지하면서 서로 공존할 수 있었다면, ‘신의 괴물’은 자연의 조화와 공존을 파괴하는 것을 즐기는 영악한 인류에게 인류가 지구에서 맡은 역할과 지위는 무엇인지 자신들의 희생으로써 묻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여섯 번째 대멸종의 진행을 말하는 것일까?

『신의 괴물(Monster of God)』은 데이비드 쾀멘의 또 하나의 역작 『도도의 노래(The Song of the Dodo)』를 잇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야기꾼다운 쾀멘의 유창한 글솜씨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 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염두에 둘 생각조차 못 하던 생태계에서의 인류의 역할과 위치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뜻깊은 시간을 주는 책이다. 이 책 역시 『도도의 노래』를 집필했을 때처럼 저자가 많은 지역을 직접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았으며, 그렇게 모은 현장 자료에 신화와 전설까지 보태져 한결 더 풍부해지고 생생해진 이야기는 마치 사자의 포효처럼 독자의 마음과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데이비드 쾀멘이 남긴 발자취에는 기적적으로 조그만 숲에 갇혀 사는 인도의 기르 사자, 4만 년 동안 악어와 함께 살아왔던 욜른구족 사람들, 부자들을 위한 사냥 상품이 된 루마니아 갈색곰, 아파트 쓰레기통을 뒤지는 갈색곰을 평화롭게 바라보는 루마니아의 러커더우 사람들, 호랑이를 거의 신처럼 받들었던 투르카나족, 자신에게 마취총을 쏜 과학자의 개를 잡아먹음으로써 나름의 복수(?)를 행한 젊은 수컷 호랑이 페댜,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SF 공포영화 ‘에이리언(Alien, 1979)’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끓는 냄비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쾀멘은 책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는 세계 인구가 약 110억에 이르는 2150년이 되면 알파 포식자는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하면서 냄비를 단숨에 식혀버린다.

어쩌면 최상위 포식자 자리에 호모 사피엔스가 등극하여 생태계를 평정하는 것이 비록 지금까지 와는 다른 (그것은 먼 과거와는 달리 황폐하고 빈약한 생태계다!) 자연의 질서와 균형을 가져오는 것일지라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진화의 결과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여러 생태학자의 우려대로 생태계의 혼란과 파괴가 가중되어 자연의 질서와 균형이 붕괴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다는 조짐일 수도 있다. 즉, 다섯 번째 대멸종인 공룡 시대의 최후를 잇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생태계 보전 문제에 대한 공감이 확산하는 요즘에도 생태계 보전 문제는 국가 간, 사회적 계층 간의 정치적 • 문화적 • 경제적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어 예측이 어렵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연과의 공생을 중요시했던 우리의 선조가 했던 대로 자연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지혜를 구하면서, 가능하면 이 모든 것의 해달을 자연에서 찾으려는 진실 어린 노력이다. 그리고 신은 인류가 자연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어떤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지, 신이 부여한 자연에서의 인류의 위치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려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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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3일 월요일

바이두 클라우드 자료 검색 프로그램 ~ 云盘搜索(한글판)

출처: 天若幽心云盘搜索 V1.0 绿色免费版

Cloud search 01
Cloud search 02

云盘搜索(클라우드 검색)은 바이두 클라우드 사용자들이 공유한 자료만을 전문적으로, 그리고 세밀하게 검색해주는 매우 작은 크기의 프로그램이다. 스피드판(SpeedPan)으로도 바이두 공유 자료 검색이 가능하지만, 결과물이 많을 경우 세부적인 검색 필터를 적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云盘搜索(운반수색?)보다는 한 수 아래다. 云盘搜索이 스피드판의 검색 기능보다 좋은 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云盘搜索은 암호 설정된 공유 링크나 자료까지 검색해줄 뿐만 아니라 그 암호 또한 보여준다. 공유된 파일이 링크된 원본도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 아마 자체 검색 엔진(혹은 구글링)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완벽해 보이지는 않지만, 한글 검색도 가능하고, 역시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글 패치도 가능했다. 스피드판과 같이 사용하면 괜찮을 것 같아 云盘搜索 원본이 포함된 한글 패치 자료를 공유한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검색창에 원하는 단어를 입력하고 검색하면 된다. 결과물이 너무 많다 싶으면, 파일 크기, 파일 유형, 업로드된 시간 등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필터링이 가능하다. 참고로 닷넷 프레임워크(.NET Framework) 4.0이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로그인 및 1云豆 버튼이 보인다. 유료화 되는 걸까?>

云盘搜索 v1.0 한글판 다운로드:

https://pan.baidu.com/s/1NMBljUXL-0J49Io4rwUBhg

비밀번호: 9jdp

기타 바이두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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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2일 일요일

[책 리뷰] 사악한 ‘백골정’?, 아니 새장에 갇힌 인형 ‘노라’ ~ 장칭(로스 테릴)

Madame Mao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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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백골정’?, 아니 새장에 갇힌 인형 ‘노라’

원제: Madame Mao: The White-Boned Demon by Ross Terrill

처음에는 성(性)이 흥미를 끈다. 하지만 오랫동안 흥미를 지속시키는 것은 권력이다. (『장칭(Madame Mao)』, p179)

권위는 항상 장칭의 적이었다. 화합 또한 장칭에게는 자기표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장칭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차갑게 말했다 .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어린 시절 지난에 살면서 나는 어디에서나 모욕을 당했죠 .”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듯한 이런 대격동을 환영했을 것이다. (『장칭(Madame Mao)』, p408)

골정(白骨精)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간사하고 독하고 또 변장과 변신을 잘하는 요귀인데 현실에선 수단이 교활하고 악독한 나쁜 사람을 비유할 때 종종 사용한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마지막 아내이자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한복판에 당당하게 섰던 인물 장칭(江青)이 바로 백골정이라 불렸다. 장칭은 정말 요귀처럼 상황과 환경에 따라 우아하고 겸손한 요조숙녀와 권력의 칼날을 잔혹하게 휘두르는 사악한 악녀 사이를 밥 먹듯이 오갔으며, 그녀가 갈고닦은 서슬 퍼런 복수의 칼날 앞에 펼쳐진 블랙리스트에는 30여 년 전의 일도 수두룩할 정도로 한 번 품은 원한은 절대 잊지 않았다. 손을 떠난 복수의 칼날은 반드시 누군가의 피를 맛보고서야 거두어들였으며, 복수를 완수한 칼을 거두어들일 때조차 승리한 폭군에게서조차 종종 보이곤 하는 알량한 자비심조차 내비치지 않은 그녀의 잔혹함과 사악함은 사탄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녀를 단죄한 덩샤오핑 시대는 장칭을 사악한 요괴, 요부 정도로 평가했지만, 장칭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드러낸 로스 테릴(Ross Terrill)의 책 『장칭: 정치적 마녀의 초상(Madame Mao: The White-Boned Demon)』은 조금은 다르게 바라본다. 헨리크 입센의 희극 ‘인형의 집’을 뛰쳐나온, 혹은 뛰쳐나오고 싶은 반항심 가득한 ‘노라’로서 말이다. 실제로 장칭은 연극에 입단하는 윈허(장칭의 소녀 시절 이름) 때 이미 '인형의 집' 노라에게 매료됐으며, ‘란핑’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던 상하이 여배우 시절에는 '인형의 집'의 노라 역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낡은 봉건사상과 남성 중심 사회를 과감하게 탈출하고 싶었던 ‘노라’는 다름 아닌 장칭 바로 그 자신이었으리라. 그 이후에도 그녀는 중국을 무대 삼고 인민을 관중 삼은 인생의 연극에서 노라 역에 충실했으며,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기표현’에 대한 비범한 의지력과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강렬한 자립심과 민감한 자존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장칭이 배우를 택한 것도 ‘자기표현’의 한 수단이었고, 마오를 선택한 것 역시 그랬다. 그녀는 일본의 상하이 침공과 전쟁으로 배우 활동이 어려워지자 ‘자기표현’의 또 다른 수단으로 공산주의와 정치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최고 통치자의 아내가 되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봉건사상과 남성 중심 사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평범한 여성이었다면 마오 주석 곁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난, 언제가 자유롭게 하늘을 날게 해 줄 자신의 우아한 날개를 희망과 절망이 뒤범벅된 우울한 눈으로 바라고 있었던 장칭에겐 최고 통치자의 아내라는 역할도 새장 속에 갇힌 새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보기엔 자신이 갇힌 새장은 단지 다른 이들 것보다 좀 더 넓고 화려해 보일 뿐이었으리라. 그렇게 장칭은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을 갇혀 지냈고 그동안의 억압 되고 좌절된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 바로 문화대혁명이었다. 이러한 점이 그녀가 문화대혁명 중에 보여준 묵은 원한과 증오심으로 벼리고 벼린 복수의 칼을 잔혹하게 휘두른 것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상당한 추종자들이 장칭을 흠모하고 칭송했던 것을 보면 장칭의 과감한 ‘자기표현’ 능력과 배우 특유의 무대 장악 능력이 문화대혁명이라는 큰 무대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식을 줄 모르는 장칭의 반항심은 그녀의 마지막 무대가 되는 재판 과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녀는 자기 앞에 쌓인 모든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재판 과정 내내 당당하고 품위 있는 모습을 유지했다. 사실 문화대혁명의 비극은 마오의 현실을 크게 벗어난 공산주의 실험과 경직된 공산당 체제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었지만, 공산당은 마오와 공산당의 잘못까지 비겁하게 모두 사인방의 잘못으로 돌렸다. 이에 대해 장칭은 모두 마오가 시킨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공산당을 당황케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씌우려는 그들의 교활함까지 폭로했다. 낡은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모든 인민이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혁명적 기치에서 일어선 공산당이었지만, 결국 명칭과 사람만 바뀌었을 뿐 또다시 인민을 억압하는 구시대적 체제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당에 굴복하지 않고 진실이든 거짓말이든 하고 싶은 말은 다 쏟아내던 장칭의 반항심은 공산당 통치에 회의적이거나 염증을 느낀 인민들의 마음 한편에 알 수 없는 묘한 흥분과 감동을 일으키며 일말의 카타르시스 적인 대리 만족을 전해주었을 것이다.

을 읽다 보면 개인적 기질과 역사적 오류가 우연히 만나 일으킨 스파크가 문화대혁명의 비극을 더욱 확장시킨 듯한 뉘앙스를 조금 풍기기도 하지만, 워낙 장칭에 대한 백골정이라는 악의적인 평가가 단호하고 요지부동이다 보니 저자 로스 테릴(Ross Terrill)이 공정함을 기한다는 측면에서 일말의 자비심을 베푼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장칭이 여배우라는 직업이 흠이 되기는커녕 나름 흠모받는 지금의 중국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녀의 히틀러를 뺨치는 의지력과 대중 장악 능력은 배우로서 성공하는 데 아주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비천한 출신 배경과 고통, 갈등, 슬픔, 외로움으로 가득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태산 같은 증오와 원한을 품지 않고 좀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따지만, 누구나 다 현실의 불행과 잘잘못을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으로 돌리면 되니 더 이야기할 거리는 못 되지만 아무튼, 그녀가 마지막 부대에서 보여준 용기와 배짱은 정말 두고두고 남을 명장면이다. 그 한 장면 때문에 그녀에 대한 작금의 평가가 크게 달라질 리는 없겠지만,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일시적인 감흥에 따라서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비슷한 이유로 문화대혁명 기간 전후에 보여준 ‘복수의 화신’ 같은 장칭의 소름 끼치는 이미지 역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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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9일 목요일

[책 리뷰] ‘찰칵’, 앨범 속에 간직하고픈 추억 ~ 시로밤바(이노우에 야스시)

Shirobamba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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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앨범 속에 간직하고픈 추억 같은 이야기

원제: しろばんば by 井上靖

고사쿠는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할머니가 참 많이 늙어버렸음을. 마을의 어느 노인보다도. (『시로밤바(しろばんば)』, p434, p296)

큰집 식구들 말대로 할머니는 오래 못 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문득 ‘세상사 서글픈 일이 가득하다’라는 시험문제 속 문장이 떠올랐다. 인생이란 참으로 서글픈 일투성이였다.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이누카이 선생, 갈수록 흉하게 늙어가는 할머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버린 사키코. 별나게 고즈넉한 그 날 밤, 인생이라는 것이 너무도 서글픈 얼굴을 하고 고사쿠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로밤바(しろばんば)』, p434)

상은 한 번 지나가면 절대 돌아오지 않는 아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어제’와 ‘오늘’이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며, 우리의 ‘유년 시절’, ‘젊은 시절’, 그리고 애틋한 ‘첫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말 못 할 비밀이 숨겨져 있고, 행복했던 때보다 슬펐을 때가 더 많았을지라도, 단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과거는 소중한 ‘추억’으로 포장되어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마음 한 켠 빛바랜 서랍 속에 고이 간직된다. 마음속 서랍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을지는 몰라도 빅뱅 후 우주로 뻗어 나간 시간의 지배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법, 망각이라는 세월의 성배 속에서 어느새 비밀은 녹이 슬어 감흥 없는 고물 덩어리로 퇴색되고, 슬픔에서 감로주처럼 발효된 시큼 달콤한 향기는 행복했던 기억에 풍미를 더해주면서 추억은 한 사람의 정신적 평온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이처럼 초장부터 주절주절 ‘추억’을 주워 담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거칠지만 순박하고 목가적인 시골의 삶을 담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의 『시로밤바(しろばんば)』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겪고 싶은, 혹은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고 달콤하면서도 씁쓰름한 우리 모두의 ‘추억’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의 유년 시절 추억이 떠올리는 것조차 진저리가 날 정도로 비참하다면, 이 작품으로 그 비참함을 어루만지며 소소한 위안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본의 국민 작가로 노벨상 후보였던 이노우에 야스시의 자전적 장편 소설이기도 한 『시로밤바(しろばんば)』는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도시에 사는 가족과 떨어져 한적한 시골 온천 마을 유가시마에서 소학교 시절을 보내게 된 고사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사쿠가 흙집에서 증조부의 첩과 단둘이 살게 된 복잡한 집안 내력만큼 고사쿠를 둘러싼 인간관계 역시 평범하지 않다. 첩에게 자신의 남편을 빼앗긴 원한에 사무친 큰할머니가 사는 큰집 친척들에게 고사쿠는 원수에게 붙들려간 인질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고사쿠에게 있어 할머니는 유일하게 자신을 애지중지 보살피고 어떤 일에서도 편들어 주는 든든한 보호자다. 고사쿠는 강아지 새끼처럼 할머니를 쪼르르 따르지만, 당연히 큰집에선 이런 고사쿠가 못마땅할 따름이다. 고사쿠에겐 큰집 식구들이야말로 피를 나눈 혈육이지만, 큰집에 가도 툭하면 미운 오리 새끼 취급받기 일쑤니 역시 할머니와 흙집에 사는 게 더 좋다.

견원지간처럼 날카롭게 대립하는 할머니와 큰집 식구들과의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해묵은 감정싸움이 가져오는 갈등을 경험하는 고사쿠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남몰래 사모하던 이모의 때 이른 죽음에서는 쓰라린 상실의 슬픔을 맛본다. 자신보다 어리지만 조숙했던 한 소녀에게서 사춘기의 풋사랑을 느낀 고사쿠는 예전처럼 멋대로 여자아이들을 대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는 걸 문득 깨닫기도 한다. 이 모든 경험은 고사쿠를 소년에서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시키는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한 인생의 자양분이다.

교생활, 수험 준비, 여행, 친구, 소녀, 복잡한 친척 관계, 낯선 도시 생활과 정겨운 시골 등 차곡차곡 나이를 먹고 학년을 올라가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고사쿠에게 가장 가깝고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는 작품의 제목 ‘시로밤바’(백발의 할머니)에서도 알 수 있듯 바로 할머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바라보는 고사쿠의 인식 변화는 고사쿠의 내적 성장의 변화를 감지하는 척도다. 아침마다 할머니가 준비한 오메자(단 과자)를 받아먹고 나서야 일어나는 늦잠꾸러기 ‘아가(고사쿠)’는 어느 날 문득 할머니의 가늘고 앙상한 팔과 눈에 띄게 허리가 굽은 할머니의 등을 통해 비로소 할머니가 참 많이 늙어버렸음을 깨닫는다. 자신을 애지중지 키워준 할머니, 혹은 엄마가 늙어가고 있음을 문득 깨달았을 때만큼 온몸을 통째로 불사르고 싶을 정도로 슬프고 억울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그 착잡하고 무겁고 쓰라린 심정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한 고사쿠는 죽기 전에 고향을 방문하고 싶은 할머니 여행에 기꺼이 동참하게 된다.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는 ‘아가’ 고사쿠에서 이제는 할머니를 돌봐줄 수 있는 어엿한 고사쿠로 성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러일전쟁을 막 끝내고 1차대전을 지나치는 20세기 초 격동기임에도 ‘전쟁’, ‘천황’, ‘식민지’, ‘군인’ 등의 당시 역사적 상황을 대변해주는 정치적 단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역사적 배경이 제거된 유가시마 마을은 마치 동화 속나 등장할법한 평온하고 목가적인 마을과 다름없다. 투박하면서도 어딘가 정겹고 소박한 일본 특유의 시골 풍경은 『시로밤바(しろばんば)』가 발표될 당시 패전의 참혹한 고통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채 인내와 고난의 재건 시절을 보내던 일본인에게 달콤한 솜사탕과도 같은 추억과 위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을 서정적인 필치로 한껏 담아낸 이 작품은 일본 국민이 간직한 ‘일본의 추억’이고 그래서 그들은 이 작품에 매료되었던 것이리라. 비단 일본인에게뿐만 아니라 목가적인 생활을 동경하는 나 같은 도시인에게도 서정적인 분위기로 한층 더 아름답게 포장된 고사쿠의 추억은 은근한 시샘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시로밤바(しろばんば)』를 읽는 내내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방학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댁으로 놀러 가곤 했는데, 양반처럼 상투를 틀고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시곤 했던 엄격한 외할아버지와는 달리 외할머니는 고사쿠의 할머니처럼 손자들에게 이것저것 챙겨주시기에 바쁘셨다. 특히 도시 생활을 하는 내가 시골 밥상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 봐 걱정하셨던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 몰래 다락방에 – 시골집의 다락방은 곶감, 약과, 사탕, 말린 생선, 누군가 사다 놓은 통조림, 먹다 남은 술 등 아이들에게 있어 보물 창고나 다름없었다 - 라면을 숨겨 놓았다가 외할아버지가 외출하실 때 종종 끓여주시곤 했다. 사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거나 잘 먹는 식성이지만, 아무튼 그때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이름 모를 라면의 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진다. 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를 갔다 오고 난 후부터는 특별한 이유 없이 명절 때조차도 잘 내려가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 말년에 치매에 걸리신 외할머니는 아들 셋이 건장하게 살아있음에도 딸 집들만을 버려진 개처럼 배회하시다 우리 집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시고 말았다. 당시 일을 핑계로 외할머니 일을 모조리 어머니에게만 맡겨둔 채 틈틈이 손 한 번 따스하게 잡아드리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후회막심하다. 그래서 그럴까. ‘시로밤바’가 ‘아가’ 곁을 떠나던 날, 고사쿠가 아닌 또 한 명의 아가도 통렬한 회한의 눈물을 흘렸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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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5일 일요일

[책 리뷰] 공산당의 정당성을 경제 성장에 예속시킨 장본인 ~ 덩샤오핑 평전(에즈라 보걸)

Deng Xiaoping and the Transformation of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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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의 정당성을 경제 성장에 예속시킨 장본인

원제: Deng Xiaoping and the Transformation of China by Ezra F. Vogel

처음 정권을 장악했을 때만 해도 덩샤오핑은 이론적으로 민주주의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당내에 더 많은 민주적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격려했다. 그러나 시위자들이 더욱 많은 군중을 끌어모아 중국공산당 영도의 근본 체제를 반대하기 시작하자 그는 과감하게 이러한 도전을 탄압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한 성위원회 제1서기가 나중에 말한 것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덩샤오핑의 시각은 엽공호룡(葉公好龍)과 마찬가지로 진짜로 용이 나타나자 그 역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덩샤오핑 평전』, p352)

계속해서 긍정적인 의미로 ‘민주’라는 말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민주 집중제(民主集中制)’를 견지했다. 일단 당이 결정하면 모든 당원은 이를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덩샤오핑 평전』, p726)

중국의 경제 성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느덧 미국의 뒤를 바짝 쫓는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의 놀라운 고도성장 배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중국 ‘개방 • 개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덩샤오핑(鄧小平)이다. 엄밀히 말해 개혁 • 개방은 4인방을 타도하는 데 앞장서고도 중국공산당 역사에서 사라진 비운의 인물 화궈펑(华国锋)이 시작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그 눈부신 성과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 가난한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일부 사람을 먼저 부자가 되게 하라 등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통속적인 구어로 실용주의 노선을 명쾌하게 설파하면서 (뭔가 그럴싸하게 들리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 이론을 들고나온 덩샤오핑의 영도하에 실현될 수 있었다고, 에즈라 보걸(Ezra F. Vogel)의 『덩샤오핑 평전: 현대 중국의 건설자(Deng Xiaoping and the Transformation of China)』은 말하는 듯하다. 정말 그런 것일까? 흥미롭게도 이와는 정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한 역사학자가 있다. 바로 프랑크 디쾨터(Frank Dikoter)인데, 그는 중국 현대사를 인민 중심으로 다룬 역작인 ‘인민 3부작’ 중 마지막 저서인 『문화 대혁명(The Cultural Revolution)』을 통해 충격적인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디쾨터는 자신의 책을 통해 중국의 경제 개혁을 이끈 위대한 원동력은 덩샤오핑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의 인민들, 그중에서도 농민들이 스스로 궁색한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로써 일으킨 소리 없는 자본주의 물결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디쾨터의 책은 뭉뚱그려 희생자라는 암울한 통계 수치 정도로만 조명을 받아왔던, 중국 역사의 어렴풋한 배경 같은 존재로만 인식됐던 인민을 새로운 시각과 새롭게 공개된 자료를 동지 삼아 역사의 중심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 역작이니만큼 중국 현대사에 관심 있는 독자에겐 반드시 권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아무튼, 한 사람의 전기임에도 1978년 이전까지 덩샤오핑이 살아온 70년이 넘는 이야기는 비교적 적은 분량이 할당되었고, 나머지는 덩샤오핑이 마오쩌둥(毛澤東)의 뒤를 이은 2대 핵심으로 급부상하여 무소불위의 권위를 휘두른 말년을 다루고 있다. 덩샤오핑의 말년은 (우연이건 아니건) 중국의 개혁 • 개방의 찬란한 도약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덩샤오핑 평전』은 중국의 개혁 • 개방의 구상과 진행, 그리고 그 성과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책이지만, 그 업적을 오로지 한 사람의 영웅적인 의지로 돌리고 있다는 점이 조금은 개운치 못하다.

공산당의 정당성을 경제 발전에 예속시키다

실 덩샤오핑은 개혁 • 개방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계획이나 구상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고의 영도자로서 개혁 • 개방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필요한 많은 일을 주관했다.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었던 베트남과 소련과의 국경 분쟁, 그리고 (결국, 피를 보고 말았지만)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단호한 판단과 강력한 지도력으로 해결하면서 국가 발전에 필수적인 안정과 평화를 가져왔으며, 장기적인 안목과 유연한 외교력으로 미국과의 수교 및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통해 4개 현대화 노선에 필요한 기술과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공헌했다. 또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처럼 잔인하고 파멸적이지 않은, 교활함마저 감쪽같이 숨겨버리는 우아한 방법으로 개혁 • 개방에 방해되는 인물들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더불어 보수파와의 마찰도 유연하게 피해 가는 특유의 적응력 높은 변칙적인 통치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성과만 뚜렷하다면 일부 당원들의 정도가 미약한 부정과 부패는 눈감아 줄 정도로 오로지 경제 발전을 가속하는 데만 집중했는데, 이는 공산당은 경제 발전을 통해서만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한 그의 신념을 반영한다. 그가 1992년 남순강화 때 많은 인민의 지지와 환호를 받은 것처럼 개혁 • 개방의 효과를 톡톡히 본 인민들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반면에 또 다른 수많은 인민은 개혁 • 개방 초기부터 심화되는 빈부 격차, 도를 더해가는 당원들의 부정 • 부패, 질적으로는 낮았을지라도 그나마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름을 들먹일 수 있게 만들었던 기존 복지 시스템의 해체, 프롤레타리아 국가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열악한 노동 환경, 도시 집중화로 말미암은 열악한 주거 환경, 환경오염 등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를 덩샤오핑이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먼저 부자가 된 자가 다른 이들을 도와 같이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희망으로 앞선 문제들을 후세에게 넘겼다. 그는 공산당의 정당성을 오로지 경제 발전에만 예속시킴으로써 그의 뒤를 이은 영도자들도 성장주의에 목매달 수밖에 없게 만든 셈이다.

하지만, 일찍이 산업혁명을 겪은 서구 세계가 저성장 체제로 진입했듯 고도성장은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내 정보획득력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부자가 (강제적인 고율의 세금 징수가 아닌) 순전히 선의적인 의도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다수의 부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개혁 • 개방 정책을 중국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덩샤오핑은 중국이 부자로 향하는 길을 개척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 많은 부의 대부분은 중국 정부, 기업, 사업가, 관리 등 극히 일부가 독점하며 (그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비판하는) 서구 자본주의보다도 더 극심한 빈부 격차를 낳았다. 덩샤오핑은 중국이 부자가 되면 그 부를 어디에다 어떻게 써야 할지 개략적으로도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어느 정도 부를 쌓은 다음에야 의료 보험, 연금 제도 등 경제적 정의를 실현할 사회주의 정책을 1순위로 올려놓아야 하는지 등의 사회주의 국가의 초석이 되는 묵직한 과제들은 손도 대지 않은 채 고스란히 후세로 미뤘다. 그래서 영민하게도 덩샤오핑은 일찌감치 사회주의 고급 단계를 100년 이후의 목표로 연기해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백만의 백만장자와 1억 명의 중산층에 가려진 12억은 둘째치고 극빈층 1억의 인민들은 여전히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며 살아가는 중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그 100년 동안 앞에서 제기된 문제 등으로 고통받고 신음하게 될 수많은 인민의 삶을 국가의 안정과 당의 권위를 위해 마땅히 희생된 톈안먼 광장의 열사들처럼 진보와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한 값비싼 희생으로 치르겠다는 뜻과 다름이 없다.

우울한 중국인

국은 '2016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부유한 국가답지 않게 초라하게도 83위를 기록했다. 작가 량샤오성의 냉정한 진단처럼 중국인은 우울한 것이다. 부와 행복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보장되어야만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삶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자긍심이 삶의 만족도와 행복에 크나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생각하면, 중국 정부는 부자지만 그 울타리 안에서 사는 인민들은 경제적으로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민들의 불평 • 불만이 단지 경제에만 한정된 것일까? 앞서 제기한 문제점들에 미흡한 법치와 인권, 그리고 여전한 언론 감시와 통제, 급증하는 노동자들의 시위 건수(하지만, 절대 공개되지는 않는)가 더해지면 앞으로 '세계 행복 보고서' 순위에서 중국이 추락할 여지는 충분한 셈이다.

이것은 경제 성장에만 공산당의 정당성을 부여한 덩샤오핑의 특권계급 독재 하의 불도저식 개방 • 개혁 정책도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이 남긴 지속적인 계급투쟁과 대중 선동이라는 과거의 혁명적 유산을 극복함으로써 개혁 • 개방의 길로 중국을 인도하며 수렁에 빠진 국가를 구출해낼 수 있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한 고도성장의 부작용이 점점 더 심각하게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현재의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 • 개방이 남긴 성장지상주의를 극복하고 또한, 덩샤오핑이 후세로 미뤘던 ‘민주’, ‘자유’, ‘인권’ 등 인민의 기대와 삶의 질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보편적 문제를 정의롭고 공정하게 다룰 수 있을 때 현재의 수렁을 빠져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초급 단계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상당히 부담스러운 분량의 책이며 무미건조하게 업적이나 행적만 기술한 부분은 눈꺼풀을 무겁게 짓누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에즈라 보걸의 『덩샤오핑 평전』은 현재의 중국을 만든 덩샤오핑의 지도력을 흠모하거나, 혹은 정치가나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이 눈여겨 볼만한 덩샤오핑 특유의 기만적이고 변칙적인 통치술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저서 중 하나다. 그리고 중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 추진력을 받기까지의 개혁 • 개방 정책의 부단한 정치적 과정을 비교적 세밀하게 다룬 수작이다. 또한, 대체로 덩샤오핑의 치적과 경제를 중심으로 다뤄져 있지만, 중국의 개혁 • 개방 정책과 사회주의 시장 경제를 이해하고 그 문제점과 앞으로의 발전 과정을 논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역사를 한 사람의 영웅적인 전기로 대체하려는 것 같아 여전히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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