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0

진화와 인간 행동 | 진화에 관한 총괄서 같은 길잡이

진화와 인간 행동 | 존 카트라이트 | 진화에 관한 총괄서 같은 길잡이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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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 않은 과학자들, 여전히 낯선 개념들

존 카트라이트(John Cartwright)의 『진화와 인간 행동(Evolution and Human Behaviour)』에는 한 번 이상 ‘책-인연’을 맺은 반가운 저자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중엔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 과학자부터 헬레나 크로닌(Helena Cronin), 마고 윌슨(Margo Wilson), 폴 이왈드(Paul Ewald), 에드워드 웨스터마크(Edward Westermarck) 등 (앞에서 언급한 과학자들과 비교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 같지는 않은 과학자까지 아주 다양하다.

내가 한 번 이상 읽었던 책들의 저자들이 무수히 등장하니 내심 이제 나도 책 좀 읽었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만심이 들지만, 한편으론 (내 기준으로 볼 때) 읽을 만큼 읽었음에도 마치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서 미적분을 처음 대면했을 때처럼, 혹은 맞선 자리에서 만난 여자가 다짜고짜 재밌는 이야기 해달라고 졸랐을 때처럼 막막하고 아득한 것이 여전히 기초적인 개념조차 제대로 안 잡혀 있구나, 하는 실망감과 그 많은 책을 헛읽었구나, 하는 자책감과 자괴감도 든다.

그래서 존 카트라이트의 책은 적어도 두 번 아니 세 번은 읽어야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하는 의욕과 자포자기가 반반 섞인 묘한 동기가 용솟음치듯 발동되기도 했고, 실제로 한 번 더 읽을까? 하는 아찔한 상황으로까지 치달을 뻔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객기에 가까운 각오는 도서관 반납 일자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아주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아주아주 먼 훗날로 미루어지고 말았다.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생성

진화에 관한 총괄서 같은 길잡이

짐작할 수 있듯 『진화와 인간 행동』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에 초점을 맞춘 대중적인 과학도서와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격이 다르다. 그렇다고 반값 할인 상품 앞에서 지갑을 만지작거리는 소비자처럼 우물쭈물 망설일 필요는 없다. 쉽게 읽히든 어렵게 읽히든,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이 책은 ‘진화’라는 블랙홀처럼 깊고 우주처럼 넓고 대자연처럼 아름다운 주제를 탐험하려는 진지하고 용감하고 현명한 독자에게 수많은 가설이 시끌벅적 경합하고 티격태격 부침하는 학문 시장의 현황과 이해득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해주는 믿음직스러운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믿음과 설득이 아니라 올바른 과학적 방법론과 검증할 수 있는 실험 성과에서 비롯된 합리적인 추론으로 진화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끌어내기를 종용한다.

서울대에서 교재로 쓰이는 책답게 명칭과 분류에 대한 개념 확립부터 시작하는 것이 꼼꼼하고 빈틈없다. 그뿐만 아니라 다루는 주제와 영역이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지구 전역으로 퍼진 것처럼 아주 넓게 분포되어 있다. 사고와 감정, 짝짓기와 가족, 친족과 비친족의 협력, 사회와 문화, 도덕과 종교, 성격과 정신장애 등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관련된 여러 진화적 주제를 진화심리학, 동물행동학, 유전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 진화 생태학, 진화 인류학, 진화 의학, 진화 정신의학, 진화 윤리학, 진화 종교학 등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한 책에서 다루고 있는데, 탐욕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한 권의 책에서 많은 주제와 폭넓은 영역을 다루다 보니 하나의 주제나 영역을 파고드는 깊이와 세밀함은 다소 떨어질지는 몰라도 현재 진화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어떤 영역에 걸쳐 얼마만큼 진행되고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통찰할 보기 드문 기회를 제공해 준다. 아마 한국어로 번역된 책 중에 이런 책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 서울대에서 교재로 사용할 만한 것이다.

『진화와 인간 행동』은 인류의 기원과 사람의 마음과 행동의 근원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흥미진진하고 흥미로운 분야인 ‘진화’에 입문하려는 자, (나처럼) ‘진화’와 관련된 책을 다수 읽었음에도 여전히 앎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으로 목이 타는 자, 그리고 어렵사리 ‘진화’에 입문했지만 앞으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방향을 잃은 자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생애사 이론과 후성유전학

진화와 관련된 책을 어지간히 읽은 사람이라면, 언제 어느 책에서 한 번 정도는 읽었던 익숙한 가설 • 이론 • 실험들 덕분에 편안한 복습의 시간도 짬짬이 가지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종종 그런 시간을 가졌지만, 두 이론만큼은 생소했을 뿐만 아니라 용어 자체도 『진화와 인간 행동』을 통해 처음 접했다. 하나는 유기체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예산을 어떻게 맞추어 사용하는지를 설명하는 생애사 이론(Life History Theory, LHT)이고, 다른 하나는 단기간의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으로서 《사이언스》에서 ‘최근 역사에서 과학적으로 가장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언급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다.

후성유전학은 그동안 진화 관련 책에서 반면교사의 사례로 우려먹던 (기린의 목으로 상징되는 용불용설과 획득형질 유전설로 유명한) 라마르크 주장의 반전과도 같은 버전이라 더욱더 흥미롭다. 생애사 이론은 지금보다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태어난 소녀들이 조숙하게 발달했던 반면에 먹는 것이 풍족해진 지금의 소녀들은 고등학생이 되어도 앳된 티를 못 벗어나는 차이를 사회생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매우 흥미로운 이론이다.

지금까지는 자연선택을 통한 DNA 수준의 적응은 아주 긴 시간 단위에서만 일어나고, 플라이스토세의 기후변화 같은 빠른 환경 변화에선 불, 의복, 도구 같은 문화적 진화가 복잡한 적응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이해해 왔지만, 후성유전학과 생애사 이론은 개체가 자기 부모 혹은 조부모와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중간 수준의 시간 단위와 한 개체의 성장, 회복, 생존, 번식, 노화 같은 짧은 수준의 시간 단위의 변화 속도에서도 적합도를 최적화하는 적응적 반응이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면)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있음을 설명한다.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제공

진화론, 사람과 사람의 모든 연계를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틀

우리는 태아 시절부터 엄마와 포도당 각축전을 벌이며 생존 경쟁을 시작한다. ‘응애응애’ 자궁에서 힘겹게 탈출하면 부모가 가진 자원을 가지고 형제자매와 한바탕 쟁탈전을 벌인다. 이후 학교,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경쟁은 시작도 없었던 것처럼 끝도 없다. 그저 종(種)도, 사람도, 유전자도 호흡을 멈추는 그날까지 경쟁뿐이다. 이 모두가 개체의 행복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유전자의 복제와 증식에만 관심이 있는 무자비한 자연선택 덕분이다.

그런 빡빡하고 가차 없는 와중에도 호모 사피엔스는 성공에 성공을 거듭해 지구에서 가장 번성한 한 종(種)이 되었고, 우리는 그 성공적인 번식과 번영의 이유를 ‘그저 그럴듯한 이야기’로 자화자찬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진실하게 진득하게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진화를 연구하고 학습하고 계승하고 있다.

우리의 게놈은 걷고, 사냥하고, 경쟁하고, 먹고, 싸고, 아기를 만드는 목적을 위해 빚어졌지, 우리의 존재 가치와 존재 이유와 존재 연원에 천착하는 고상한 목적에는 적합하지 않다. 사실 진화론 따위는 몰라도 걷고, 사냥하고, 경쟁하고, 먹고, 싸고, 아기를 만드는 것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고,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세계 인구가 토바 화산 대폭발 동안 이어진 핵겨울(nuclear winter)로 인해서 2,000명까지 감소했던 위기를 극복하고 현재 70억 명에 달했을 것이다(이런 이유로 3차세계대전 • 4차세계대전 등의 전쟁놀이 따위로는 인류가 멸종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인류가 이룩한 이 모든 것은 인간 본성이 맹목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들이다. 참으로 대단하지 아니한가?

하지만, 그 참으로 대단한 인간이, 그것도 가장 먹고살기 풍족하다는 국가의 국민이 번식을 거부하며 스스로 적합도를 깎아 먹는 진화론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정신장애의 높은 유병률 • 높은 유전율과 높은 적합도 손실만큼이나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질 않는 복제와 증식에 유전자도 지친 것일까? 아니면 이젠 할 만큼 했으니 이 정도 농땡이는 부려도 된다고 여길 정도로 현명해진 것일까? 아마도 인간 행동 생태학적 견지에서 적응적 최적화 모델과는 들어맞지 않는 이 ‘아이 안 낳기’ 현상은 ‘도시’라는 높은 개체 밀도가 주는 스트레스가 (쥐나 사슴 등 많은 동물이 개체수 과밀을 벗어나는 나름의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개체수 조절 기전 같은 것을 작동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현상은 후손들은 지금보다 좀 더 여유롭고 넉넉한 환경에서 살기 바라는 의식적인 발로에서 비롯된 오로지 복제와 증식만 욕구하는 유전자에 대한 유전자 운반체 그룹의 무의식적인 항거일지도 모른다(개인적 생각으론 저출산은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출산율은 그저 주식처럼 환경 변화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할 뿐이다. 6 • 25 전쟁 이후 남한이 먹고 살기 좋아서 출산율이 높았는가? 남한 같은 좁은 땅에 수억 수십억 인구가 들어서야 만족하겠는가? 그러니 사이비 과학자의 주장처럼 인구가 제로가 될 일은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자라는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다!).

진정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진화론은 그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혹은 대수롭지 않거나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사람 하나하나의 각양각색 행동을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틀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어려우면서도 지극히 일상적인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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