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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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リング), 그리고 사다코(貞子) 시리즈 완주 후기

영화 리뷰 | 링(リング), 그리고 사다코(貞子) 시리즈 완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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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リング), 그리고 사다코(貞子) 시리즈 완주 후기

영화 리뷰 | 링(リング), 그리고 사다코(貞子) 시리즈 완주 후기
<모호한 화질이 오히려 공포적 상상력을 부추긴다>

간혹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야 숙면할 수가 있는 영화 애호가가 아니라도 나처럼 짬짬이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이라면 새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어제오늘 떠난 애인이 되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해맑은 미소로 반갑게 맞이할만한 영화가 몇 편씩은 있을 것이다.

이런 영화들은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장르라서 후속 작품이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영화 링 같은 경우는) 그 첫 편이 등장한 때가 어수룩하게나마 반짝했던, 그리고 몽당연필만큼이나 짧게 느껴졌던 나의 청춘 시절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런 영화의 새 시리즈는 동창회 자리에서 헤어진 지 20년 만에 마주친 첫사랑처럼 무심코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나이를 꾸역꾸역 먹고 세월에 좀이 쓸어갈수록 이다지도 추억에 약한 것이다.

아무튼, ‘스타워즈’, ‘에이리언’ 시리즈와 더불어 ‘링(リング)’, ‘사다코(貞子)’, ‘주온(呪怨)’ 같은 공포영화도 새 시리즈가 학수고대 되는 그런 영화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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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 비디오가 생각난다. 그들은 왜 후속작을 만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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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의 푼수 이미지 때문에 약간 난처했지만, 역시 나카마 유키에의 연기!!!>

‘링’ 시리즈처럼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거나 긴밀하게 연관된 영화들은 새 편이 나오는 시기에 맞추어 한 편 한 편 긴 호흡으로 감상할 때와 마치 장편 드라마 완주하듯 내리 감상할 때의 감흥은 사뭇 다르다.

영화란 것이 감상에 소비하는 시간이 짧아서 그런지 기억에 자리 잡고 버티는 시간도 짧다. 자극이 강한 영상물이니만큼 감상 직후의 감흥은 강렬할지 몰라도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운은 책처럼 길지 못하다. 한마디로 (강렬했던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세부적인 것들은) 금방 잊힌다.

그래서 2편을 볼 때, 3편을 볼 때 이전 편과 관련된 대화나 장면이 나오면 그 연관성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오늘처럼 ‘모여라 꿈동산’ 하듯 좋아하는 영화 시리즈를 한자리에 모아 놓고 내리 감상하는 멋도 유쾌하게 즐길만한 오락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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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단순한 행동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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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는 과학이다‘, 실험으로 증명해 보이겠다?>

아주아주 오래전 공포영화는 ‘원한’, ‘저주’의 근원에 깊이 천착하기보단 무시무시하게 생긴 귀신이 다짜고짜 놀래주며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는 ‘복수’에 중점을 둔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링(リング)’은 ‘저주의 비디오’에 담긴 원한의 근원을 마치 추리소설처럼 추적해나갈 뿐만 아니라 (원한에서 비롯한) 저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대담한 발상도 서슴지 않는다.

‘링 – 라센’에선 ‘저주의 비디오’가 방사선처럼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킨다는 병리학적인 분석을, ‘링 2’에선 ‘저주의 비디오’에서 복사되는 에너지가 ‘저주’로 실체화된다는 물리학적인 분석이 시도된다.

이 모두 허망한 이야기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아귀는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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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히라사와 코코로(나기 역)의 연기가 돋보였던 「사다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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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코가 현실에 적응하는 길은 가발 공장에 취직하는 것>

‘링(リング)’ 첫 편은 1998년, 그리고 20주년 기념작인 ‘사다코(貞子)’는 2019년에 나왔는데, 흥미롭게도 2019년 작품은 첫 편의 빈틈인 사다코의 불행한 출생을 다루고 있다. 그럼으로써 사다코가 생각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게 된 원인을 설명한다. 1998년 작품에선 ‘저주의 비디오’에 담긴 사다코의 원한을 설명하고, 이후 20년 만에 나온 다른 편에선 사다코를 살해당하게 만든 초능력의 근원을 설명하고 있으니, 마치 두 작품이 애초부터 계획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마도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영화 제작자들이 능숙한 이야기꾼답게 첫 편 이야기의 빠진 부분을 제대로 기운 것이렷다.

‘링(リング)’ 시리즈를 (라센’을 제외하곤) 재밌게 내리 감상하면서, 확연하게 깨달은 점은 첫 단추를 잘 끼우면 ‘시리즈’라는 명목으로 몇 번이고 우려먹을 수 있으니 영화는 첫 편을 잘 만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스타워즈’, ‘에이리언’, ‘람보’ 등도 첫 편이 실패했으면 이후 시리즈들은 씨도 뿌리지 못했을 것이다.

에도 시대는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넉넉하지도 않았다. 다산을 정책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산파는 마을 인구를 적절하게 유지하고자 갓 태어난 아기를 어디론가 데려갔다곤 한다. 아마도 그런 아기들은 사다코처럼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 버려졌을 것이다(이외에도 기형아, 전 남편 자식 살해 등 영아 살해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따지고 보면 영아 살해의 근원은 한정된 자원 문제다). 먹을 입을 줄이기 위해 아이들을 버려야 했던 슬픔, 죄책감 등의 집단 죄의식이 이런 도시 전설을 나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앞으로 ‘링(リング)’ 시리즈가 더 나올지 안 나올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사다코의 원한과 저주는 어떻게든 대물림 가능하다는 점에서 ‘링(リング)’ 시리즈는 지속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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