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웨이 캠프(Sleepaway Camp, 1983) | 크로스 섹슈얼한 반전!
<고전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정말 오싹하지 않는가?> |
특수효과가 표현하는 실제보다 더 풍부하고 잔인하도록 섬세한 묘사가 시각적 공포를 제공해주는 것은 사실이고, 오로지 그런 시각적 자극만을 과장되게 부추기는 공포영화도 애호가들을 위해 존재하지만, 간혹 잘 만들어진 고전 공포영화를 보면 특수효과가 공포영화의 전부는 아니라는 격언과도 같은 말을 깨닫게 된다.
바로 그런 공포영화 중 하나가 오늘 소개하려는 「슬리퍼웨이 캠프(Sleepaway Camp)」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의 천진한 장난이 불러온 비극이라고 봐야 하나?> |
영화는 불의의 보트 사고로 시작된다.
아이들의 악의 없는 장난에 등이 떠밀려 물에 빠진 아빠, 그리고 물에 빠진 아빠를 보고 웃고 떠들 새도 없이 잽싸게 물로 뛰어든 두 아이. 진부하면서도 소박한 행복을 자아내는 장면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행복은 공포영화와 친하지 않다기보다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만큼이나 비극적인 공포영화를 좋아할 것 같은 운명의 여신은 이러한 점을 핑계 삼아 미숙한 보트 운전자를 대리인으로 삼는다. 운전자는 악마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라도 된 듯 가차 없이 물에 빠진 세 사람을 향해 보트를 돌진시킨다.
<이 아이가 그 모든 짓을 저질렀을까?> |
영화는 보트 사고의 의미가 관객의 머릿속에서 채 정리되기도 전에, 또다시 운명의 여신의 도움을 받아 시간을 8년 후로 돌려버린다. 그곳은 주인 없는 방앗간이라도 만난 참새 떼처럼 왁자지껄하게 지저귀고 바람처럼 신선하고 영양처럼 영원히 뛰어다니는 크고 작은 아이들로 바글거리는 생기가 넘치는 여름 캠프장.
시끄럽고, 번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저런 곳에서라면 참새나 까마귀 떼와 종일을 함께 보내야 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자연의 법칙을 발로 짓밟아서라도 동심으로 회귀하고 싶은 풍경이다.
<80년대 분위기 물씬, 그런데 저 남자 왠지 성룡을 연상시킨다> |
예상할 수 있듯, 그 참새 떼 무리 중엔 8년 전 일어난 불행한 사고의 생존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고가 남긴 트라우마 때문일까? 정의의 기사처럼 자신을 지켜주는 사촌 리키와 함께 캠프에 참가한 안젤라는 먹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고 타인과 전혀 어울리려고 하지 않음으로써 미운털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당연히 안젤라의 캠프 생활은 시작부터 꼬인다. 그리고 캠프에서 일어나는 심상치 않은 사고와 죽음들.
그런데 별로 놀랍지 않게도 사고로 죽거나 다친 자들은 하나같이 안젤라를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괴롭힌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안젤라일까? 아니면, 안젤라를 지키는 정의의 기사 리키일까? 혹은 안젤라를 좋아하게 된 리키의 절친 폴일까? 영악하게도 영화는 용의자를 여럿 선정해 이렇다 할 것도 없는 간단한 추리에 혼선을 가하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별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범인 추리 놀이에 흥이 식을 즈음 영화는 천지를 뒤엎을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감격 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고전이니만큼 반전 내용은 대단치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동양 사람이 보기엔 어른도 아닌 그렇다고 아이처럼 보이지도 않는 우리와는 다른 성장 곡선을 그리는 미국 청소년들의 신선한 자존심 싸움에 몰입하다 보니 반전 같은 것을 추측할 겨를이 없다(진짜 청소년들이 열연해 박진감 넘친다!). 그래서 반전은 더 뜻하지 않은 충격이었으리라.
또한, 반전은 영화 초반을 장식한 보트 사건에 암시와 이어져 있었다는 점에서 탄탄한 시나리오를 자랑한다. 나야 결과를 아니까 보트 사건에서 암시를 확인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 암시는 숨은그림찾기처럼 단박에 알아차릴 정도로 쉬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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