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일상적인 생각을 쓰고. 이 모든 것을 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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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2019

윈도우 창 크기와 위치를 기억하는 ShellFolderFix 한글판

출처: ShellFolderFix 1.15

<이게 마지막 버전인 듯>

사실 사용자가 마지막으로 작업한 상태 고대로 윈도우 창 위치와 크기를 기억할 줄 아는 똘똘한 윈도우 7이나 (내가 볼 땐 7보다는 약간 들 똘똘한) 윈도우 8.1에서 ShellFolderFix 같은 써드파티 유틸이 필요할까 싶지만, 치매 환자처럼 창 위치와 크기를 기억할 줄 모르는 멍청한 윈도우 10에서는 매우 유용할 것 같기는 하다. 써본 적은 없고, 그렇다고 현재 사용하는 윈도우 10 2016 LTSB가 창 위치와 크기를 잘 기억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은 증상이 치매 말기 환자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요게 참 신기한 것이, 어쩔 땐 조금 전까지 작업한 창 위치와 크기를 전혀 기억 못 하는 치매 중증 증상을 보이다가 윈도우 업데이트를 먹여주면 기적처럼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이럴 땐 마치 윈도우 업데이트가 치료제라도 되는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업데이트가 반대로 치료제가 아니라 맹독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9년 6월 업데이트 후 무선랜과 블루투스를 동시에 켤 수 없는 왕짜증 나는 증상이 그러하다. 물론 난 윈도우 10 2016 LTSB 버전(RS1) 정도까지만 사용해봤기에 최근 나오는 윈도우 10들도 이런 고질적인 버그들로 사용자를 심심치 않게 괴롭히는지는 모르겠다. 설마 지금도 윈도우 창 위치와 크기를 기억하는 기본 중의 기본적인 기능이 말썽을 부리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비극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일반 설정>
<고급 설정>

아무튼, 지금 당장 사용할 계획은 없지만, 언제가 사용할지도 모를 것 같아 한글화했다. 그런 고로 테스트도 제대로 못 했다. 번역은 99.99% 구글과 파파고에 의존했기에 영 알아듣기가 껄끄럽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탓하지 말고 쿨하게 그냥 원본을 사용하자. 참고로 번역률은 100%는 아니며 우선적으로 보이는 것들만 진행했으며 32비트 버전보다 64비트 버전이 아주 약간 높다.

ShellFolderFix v1.1.5 한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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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2019

[책 리뷰] 인간 정신의 위대한 해방자인가, 그냥 미친 자인가? ~ 불멸의 에로티스트 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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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정신의 위대한 해방자인가, 그냥 미친 자인가?

Original Title: Sade by Jean-Paul Brighelli

… 내 무덤의 흔적은 그렇게 해서 대지의 표면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질 것이요, 나로서는 사람들의 뇌리로부터 나에 대한 기억이 깨끗이 사라지는 게 더없이 기쁠 따름이다.

1806년 1월 30일, 온전한 정신과 몸 상태로 생 모리스 샤랑통에서 작성함.

D.A.F. 사드(『사드』, p271)

당신은 ‘사드’를 읽었는가?

직 ‘사드(Sade)’는 읽지 않았다. 영화, 문학, 정신의학 등 꽤 많은 분야에서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 ‘사디즘(sadism)’, ‘사디스트(sadist)’라는 ─ 그의 이름에서 파생한 ─ 단어는 익히 들어온 바이지만, 사실 나는 그를 시대가 허용할 수 있는 경계를 훌쩍 넘어서는 쾌락을 추구한 방탕아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소설을 쓴 작가였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디즘, 사디스트라는 어딘지 모르게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럽고, 얼굴을 붉힐만한 괴상망측한 뭔가를 떠오르게 하는 단어들이 밀어붙이는 과도한 상상력에 압도된 나머지 어원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사드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력이 없었다. 그렇지만, 도서관의 프랑스 소설들이 몰려 있는 서가를 들쑤시며 다닐 때마다 작게 일어나는 먼지 속에서 종종 내 눈에 띄곤 하던 책 한 권이 있었다. 바로 장 폴 브리겔리(Jean-Paul Brighelli)이 지은 『불멸의 에로티스트 사드(Sade)』이다. 책표지에 빨간 글씨로 새겨진 ‘SADE’라는 글자는 사드의 거북살스러운 명성만큼이나 음침하다. 그것은 마치 나약한 중생을 유혹하려는 악마의 활활 타오르는 음탕한 불꽃처럼 나를 노려본다. 지금까지 왜 이 책을 선택하지 못했을까? 아니 애써 외면해야 했을까? 그것은 내가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려는 의지가 유독 강했다기보다는, 이 책을 대출하려는 행위가 왠지 금단의 열매를 따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섞인 망설임 때문이었다. 나를 파멸로 이끌 것 같은 망상적인 두려움이 악마의 음침한 유혹을 눌러버린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만은….

‘사드’를 읽고 싶게 만드는 잔인한 책

러나 이 리뷰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렇다고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다기보다는, 조금씩 차오르다가 결국 흘러넘치고만 어둡고 음울한 내 호기심에 결국 굴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사드’에 관한 책을 선택했다는 말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렇다고 구차하게 믿어달라고 호소하고 싶지도 않다. ‘사드’에 관한 책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비록 그 ‘모든 것’이 무엇인지 나열할 수는 없더라도 말이다.

아무튼, 『불멸의 에로티스트 사드(Sade)』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지금,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말하라고 강요한다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드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수사적 표현을 즐겨 쓰는 프랑스 작가 특유의 읽기 수월치 않은 문장들이 보란 듯이 눈앞에서 어지러이 광무를 추는 가운데, 세상에 유례없는 논리적인 광기로 세상에 유례없는 소설을 집필했다는 사드의 전설적인 글쓰기와 신화적인 삶, 그리고 지극히 파괴적이고 불경한 사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적어도 나의 능력으로서는 너무나도 벅차다. 더군다나 사드의 소설을 단 한 권도 읽지 못한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한 가지 확실해지는 것은 하나 있다. 그것은 더는 망설이지 말고, 누군가가 간곡하게 말리더라도, 혹은 애인이 절교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아내가 이혼장을 들이밀더라도, 반드시 사드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의지의 용솟음이다. 19세기에 활동한 비평가이자 작가인 쥘 자냉(Jules Janin)이 사드가 감옥에서 미친 듯이 쓴 『쥐스틴(Justine)』을 읽고 나서 심한 발작을 일으켰다는 실화나, 사드의 작품을 읽었다는 이유로 모든 걸 팽개치고 수녀원에 들어간 한 젊은 처녀의 이야기는 어떻게든 사드의 책을 읽어보겠다는 의지와 호기심을 ‘사드적으로’ 부채질한다. 하지만, 사드의 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대출하려면 용기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동네 도서관에 사드의 책이 총 네 권 있는데, 그중 두 권이 서고에 안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고에 안치된 책은 대출자가 도서관 직원에게 ‘직접’ 문의해야 빌릴 수가 있는 것이며, 그 직원 대부분은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기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바로 안면몰수와 철면피다!

아쉽게도 동네 도서관에는 국내에 번역된 사드의 소설 중 가장 엽기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소돔 120일』은 (아주 오래전에 영화를 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비루먹을 불쾌감을 끝까지 견뎌낸 나 자신이 정말 대단하다) 없다. 그러나 글 읽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조차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악덕 쪽으로) 믿기 어려운 파괴력을 발산하는 책인 『쥐스틴』(미덕의 불운)은 있다! 오호라. 반드시 이 책을 읽고야 말 것이다. 전문연구가가 아니면서 사드를 읽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로부터 무사히 헤어나올 수가 없다는 아니 드 브륑(Annie Le Brun)의 경고도 무시한 채 말이다.

부디 사드의 독으로부터 약간의 상처만을 받기를. 그 약간의 독으로부터 역사와 문학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환상제조기 사드가 선사하는 시정(詩倩) 어린 상상력을 흡수할 수 있기를. 부디 신의 가호가 있기를.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알라후 아크바르….

‘사드’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사드’는 없다?

책은 방탕과 감금이라는 이분법으로 쉽게 구분되는 사드의 일생뿐만 아니라 지난 2세기에 걸쳐 악덕의 화신에서 자유의 화신으로 부침에 부침을 거듭한 사드의 철학, 사상, 작품에 대한 비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종교적, 사회적, 윤리적 관습과 더불어 선과 악을 초월하여 신과 자연에 저항하는 고독한 외골수로 신격화된 자유인이자 순교자로서의 사드, 그리고 그저 방탕하고 변태적이면서 사악하고 신성모독적이지만 절대 미치지는 않은 광인으로서의 사드가 한 권의 책 안에서 서로 팽팽하게 대척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 일말의 관용도 없었던 과거에 비교하면 ─ 긍정적으로 재평가되는 최근의 분위기를 반영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균형을 잃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사드에 대해서는 말하면서도 정작 사드는 없다. 전기(傳記)에 할당된 분량이 빈약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사드가 죽은 지 벌써 200여 년이나 지났다는 것과 당대 끔찍스러운 악명으로 말미암아 그에 대한 자료가 별로 보존되지 못했던 소치이다. 그러하니 사드의 삶이 도대체 어떠했기에 불미스러운 모든 수식어를 석권할 수 있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던 나로서는 깊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몇 가지 소득이 있다면, 사드가 저지른 방탕이 흉흉한 명성만큼은 대단치 않다는 것(그렇다고 평범하다는 것은 아니다!)과 사드가 걷잡을 수 없는 열정에 휩쓸린 나머지 극단적인 쾌락과 방탕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논리적이고 일관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누군가는 그것을 단순히 ‘광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을 뒤엎는 악덕의 자유의지를 (물론 이 대부분은 거칠 것 없는 글쓰기를 통해) 실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드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수사적인 문장을 무지막지하게 구사하는 프랑스 작가들의 글이 형언하고자 하는 사드의 그 사드적인 무언가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마치 미증유의 혼란 속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가 느낄법한 방향을 잃었다는 두려움과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곳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호기심이 자석의 척력처럼 서로 밀어내는 가운데, 그 어쩔 수 없는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나는 당황하는 것이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광기 비슷한 그 무언가를 자유의지로 발산한 자이자 미덕을 강간한 자이자 악덕의 지존인 그 앞에서 나는 오줌 싼 어린애처럼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이다. 신 앞에 선 한 인간이 그 전지전능한 권위에 압도되어 옴짝달싹 못 하는 것처럼 신과 자연을 거부한 사드의 사악한 힘에 짓눌려 나는 녹다운당한 것이다.

한 줌의 기적처럼...

렇게 방바닥에 널브러진 나는 어느새 사드가 조촐한 난교파티를 벌이던 라코스트 성의 음침한 구석에 내팽개쳐 있다. 방종과 방탕, 통음난무의 질퍽한 흔적이 역력한 그곳을 꽉 채운 사드의 얼굴은 블랙홀처럼 짙은 음영으로 가려져 있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드의 한쪽 손에는 과거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을 전율에 떨게 했던 채찍이 들려 있다. 채찍이 차가운 돌바닥을 매몰차게 내리치는 소리는 엉덩이를 채찍질 당한 말처럼 나를 엉금엉금 기어가게 했고, 채찍이 서늘한 공기를 가르는 음흉한 소리는 내 항문을 뚫고 들어와 고막을 울린다. 정확히 그곳, 채찍이 내리친 폭력의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그곳에는 제단 위로 올라탄 성상처럼 한 권의 책이 광휘를 발하고 있다. 그때까지도 사정없이 내 고막을 때리던 채찍 소리는 빛으로 휩싸인 책에 나의 손이 닿는 순간 기적처럼 사라진다. 사드도 기적처럼 사라졌다. 나도 기적처럼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손에는 기적처럼 한 권의 책이 놓여 있다. 이 모두가 기적이었고, 그래서 나는 자연조차 철저하게 거부한 사드가 탄생한 것도 기적이라고 부르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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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2019

바이두 클라우드 안드로이드 앱 v10.0.0 SVIP MOD v3/v4/v5/v6/v8 한글판

출처: [系统工具] 百度网盘(*Mod*)v10.0.0去广告/不限速/共存VIP版

Baidu-cloud-android-app-v10.0.0-svip-mod-v3
<간소한 백업 설정 화면>

오늘 소개하는 바이두 클라우드 안드로이드 앱 MOD 버전의 APK 파일 크기는 최근 발표한 바이두 공식 버전의 절반도 안 되는 용량이다. APK 파일 크기가 무려 20M 약간 넘는 정도다. 이렇게 용량이 작은 이유는 겉으로는 버전 10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소스는 (아마도) 버전 8.12를 사용했다는 것과 MOD 버전이니만큼 나름의 최적화를 적용하여 앱 크기를 줄인 것이 아닌가 싶다.

전체적인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버전 10 이후로 새롭게 단장한 새 인터페이스에 익숙한 사용자에겐 어딘지 모르게 퇴보한 듯할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로 간소하다. 메인 인터페이스와 기능은 예전에 소개한 「바이두 클라우드 안드로이드 앱 v8.12.0 Mod 한글판」과 비슷하고(그래서 소스도 버전 8일 것이라 추정), 파일 크기도 비슷하다(오늘 소개하는 버전이 조금 더 작다). 첫 로그인 후 [설치 완료] 단계에서 선택하는 옵션 수만 봐도 앞에서 언급한 버전 8.12보다 더 다이어트된 것을 알 수 있다. 정말이지 모든 면에서 요즘 버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깔끔하다. 구버전으로 작업한 것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클라우드 파일 관리에 필요한 기능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퇴출시킨 듯하다.

Baidu-cloud-android-app-v10.0.0-svip-mod-v3
<언제봐도 반가운 황금왕관!>
Baidu-cloud-android-app-v10.0.0-svip-mod-v3
<가속 중이라니...말이라도 고맙다>

재밌게도 SVIP 황금왕관이 사용자 이름 꼬리에 보란 듯이 달려있어, 정신적으로나마 조금 위안이 된다. 다운로드 속도는 블랙리스트 계정이 아니라 그런지 2M 안팎으로 잘 나온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아무리 크랙을 잘해도 블랙리스트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 혹시 모를 빌어먹을 기대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도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그냥 황금왕관을 가까이 두고 볼 수 있다는 것과 최적화된 앱 크기 정도 선에서 만족하는 것이 무료 사용자의 현명한 마음가짐이다. 버전 3까지 나왔으니 안정화도 어느 정도 되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구버전으로 작업한 모드 버전이라 그런지 루팅되지 않은 기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한글판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굳이 새 글을 올리면서까지 소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정 사항]

• SVIP 다운로드 가속을 즐기고, 블랙 효과를 당겨 즐길 수 없습니다(블랙리스트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 15초 동영상 광고 및 방송 제거

• 비디오 오디오 배속 재생 제한 해제

• 인터페이스에 쓸모없는 배너 제거

• 불쾌한 작은 빨간 점 제거

• 업데이트 확인 금지

[V2]

• 화웨이 기기에서 사용할 수 없는 문제 수정

• 비디오 로딩 팁 제거

• 활동 센터 제거

[V3]

• 경우에 따라 인증 코드가 표시되지 않습니다(전화 인증 없이 로그인할 수 있다는 뜻인가?)

• 로그인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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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30일: 위 버전하고 인터페이스가 확 바뀐 것으로 보아 내부 소스를 v10 이상으로 교체한 것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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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百度云网盘(*VIP*)v10.0.12 破解VIP/倍速

• 2019/10/04: 위에 소개한 모드 버전을 제작한 kingwae라는 분이 제작한 것으로 출처에서는 소개한 바이두 안드로이드 앱 v10.0.12. 그런데 막상 텍스트에는 제작자 정보가 없다. 그리고 이것은 Unsigned(언사인) 버전이다.

Unsigned_BaiduNetdisk_v10.0.12_SVIP_MOD_by_kingwae_ko

LinK 1 / Link 2 / 압축 암호: singingdalong

• 2019/12/03: ‘梦宇’이란 분이 제작한 또 다른 모드 버전

모드된 내용은 기존과 대동소이하지만, 이 버전은 제작자가 다르다. 바이두 앱 버전은 v10으로 되어 있으며 가장 최근에 배포된 모드 버전이기도 하다.

Sign_BaiduNetdisk_final_updated_version_by_梦宇_eng_kor.a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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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2019

[책 리뷰] 정신과 의사가 치료할 수 있는 병은 없다! ~ 정신의학의 역사(에드워드 쇼터)

A-History-of-Psychiatry-book-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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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치료할 수 있는 병은 없다!

Original Title: A History of Psychiatry: From the Era of the Asylum to the Age of Prozac by Edward Shorter
어느 선도적 생물정신의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신질환의 발현에서 심리적 • 사회적 요인을 평가절하하는 것이나, 생물학적 치료법 …… 의 심리적 요인을 간과하는 것이나, 임상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모두 어리석은 짓이다. (『정신의학의 역사』, p466)

정신과 진료실 문을 당당하게 들어갈 수 없는 이유

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반생을 살면서 아직 정신과 진료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 사실이 내가 어떠한 정신질환도 앓고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정신 상태가 비교적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지만, 이 ‘미친 세상에서’ 아직 정신과를 한 번도 찾아보지 않고 나름 잘 버텨온 것을 굳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상에서 알 수 없는 불안과 이유 없는 짜증을 동반한 발작성 우울함이 간혹 찾아온다는 것을 굳이 숨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뭐, 이 정도는 현대 도시 사회를 사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유행병 아닌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우울증 자가 진단 테스트’를 해보니 정상이지만 가끔 우울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몇 가지 문장으로 진행한 간단한 테스트임에도 이 얼마나 정확한 진단인가? 또한, 같은 사이트에서 다행스럽게도 조울증 테스트는 통과했지만, 공황장애 테스트는 12점으로 공황장애가 의심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마지막 결과를 놓고 보면 어쩌면 나도 한 번쯤 정신과를 찾아가야만 하는 수많은 고개 숙인 사람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정신과 진료를 받으려고 마음먹는다면 치료 비용 문제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정신질환자’라는 낙인이다. 2017년도 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살면서 한 번 이상 정신질환 증세를 겪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은 사람은 전체의 10%도 안 된다는 조사 결과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구글에서 ‘정신과진료’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 중 (광고를 제외하고)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것들은 죄다 정신과 진료를 받았을 때 받게 될 사회적 불이익(취직, 보험 가입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나 간단한 소개, 혹은 개인이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겪은 경험담보다는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을 때의 불이익을 걱정하는 이야기가 검색 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한다. 그것은 아직도 한국 사회와 한국인은 정신질환에 대한 말 못 할 두려움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검색 내용을 계속 살펴보면 전문가들은 실재적으로 불이익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사람들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볼멘소리로 말한다. 취업, 보험 가입 등의 문제는 둘째치고 정신과 진료를 몇 번 받았을 뿐인데 어느새 주변 사람들에겐 ‘정신질환자’라고 소문이 퍼진다면, 그래서 ─ 한국 사람의 소심한 성격상 대놓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 어딘지 모르게 예전과 사뭇 다른, 마지못해 배려하는 듯한 냉소적인 주변 사람들의 눈빛과 태도를 지속해서 받게 되면 없던 정신질환도 생길 수밖에 없다.

정신의학을 대하는 그 냉담함 속에 담긴 두려움

거에는 ‘광기’라고 불리며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기피 대상이 되었고, 한때는 질병의 존재조차 부인되었던 정신질환을 다루는 정신의학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정신의학을 대하는 한국인의 두려움과 혐오감 섞인 시선에는 불신과 냉대가 가득하다. 이것은 정신과 의사들이 자신들의 권위에 압도된 나머지 보다 적극적으로 ─ 그 뻣뻣한 고개를 좀 더 부드럽게 숙이고 ─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지 못한 소치이기도 하지만, 어느 문화를 가나 존재하는 ‘정신질환 = 광기’라는 케케묵은 공식을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대중의 고지식함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군데군데 오명과 불명예로 얼룩진 정신의학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정신의학을 대하는 현대인의 불신이 이유 없는 근거에서 비롯한 편견 때문만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나름 자업자득인 면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기 충격 요법(ECT)이 효과가 있지만, 그것이 왜 효과가 있는지 정신의학은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악명 높은 전두엽 절제술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장에 쌓인 독성물질이 정신질환의 원인이라고 생각되었을 땐 대장을 일부 혹은 통째로 제거하기도 했다. 하물며 그 끔찍했던 ─ 그러나 공포 영화 제작자에게 최상의 무대로 작용하는 ─ 수용소 시대는 어떠했던가?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기가 막힌 치료법이 정신의학에서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종종 행해졌으며, 다른 의학 분야의 역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괴담 같은 일화가 정신의학에서는 종종 등장한다.

그렇다고 정신과 의사들이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때 자행했던 그 악명 높은 실험처럼 사악한 의도로 그러한 일을 저질렀던 것은 절대 아니다. 개중에는 질병 치료보다는 정신의학의 전문적 권위를 먼저 앞세우고자 했던 의사도 있을 것이고, 개인 진료소를 열어 부자들의 두둑한 주머니만을 노리는 탐욕적인 의사도 있겠지만, 의사 대부분은 어떻게든 증상을 완화하여 환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더 나아가 병을 완치하여 환자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가 남은 삶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즉 의사로서의 직무를 다하려고 노력했다. 권위, 이익, 치료 등 이 세 가지는 단순히 우선순위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으나, 그 위대했던 ‘도덕 치료’가 희망을 빛을 발산하던 시대가 잠시나마 유지될 수 있었고, 어떻게든 정신질환을 치료해 보겠다는 의사들의 일념 위로 우연과 행운이 포개지면서 정신약물학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사이비 과학이라는 비난과 야유 속에서 부침에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정신질환자 치료에 더욱더 큰 의미와 우선순위를 둔 의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무튼,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별별 시도를 해야 할 만큼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가지고 있는 처참함과 치유할 수 없다는 절망을 의사들은 견뎌내기 어려웠고, 선정적인 기삿거리나 가십거리에 쉽게 놀아나는 대중이 의사들의 그런 고충을 헤아리기에는 ─ 예나 지금이나 ─ 지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무뎠다고 볼 수 있다. ─ 예나 지금이나 ─ 대중의 관심을 무엇보다 사로잡는 것은 거대한 붉은 벽돌집 안에서 행해지는 머리끝이 쭈뼛할 정도의 무서운 이야기가 전해주는 그 짜릿함이지, 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장본인들이 어떠한 병을 앓고 있고 어떠한 치료를 받고 있는지, 그러한 환자와 대면하는 의사는 어떠한 삶을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하기에 대중은 광인을 바라볼 때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적당한 비율로 공존하는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광인을 다루는 정신의학 앞에서는 냉담하다. 그 냉담함 속에는 더는 광인을 오락거리로 이용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작금의 도덕적 잣대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이 담겨 있으면서도, 자신이 정신의학과 가까이함으로써, 즉 정신과 진료실로 자진 행차함으로써 자동으로 받게 될 오명과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으스스하게 서려 있다.

수용소의 ‘도덕 치료’에서 약물치료까지

교적 치우침 없이 정신의학 역사를 다뤘다고 생각되는 에드워드 쇼터(Edward Shorter)의 『정신의학의 역사(A History of Psychiatry): 광인의 수용소에서 프로작의 시대까지』를 읽고 몇 자 남긴다고 손이 가는 대로, 느낌이 지시하는 대로 적어봤더니, 장광설도 안 되는 잡글이 되고 말았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정신의학이 걸어온 역사를 되짚어보면 ‘의학’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난감하기 그지없다. 계몽주의의 과학적 사고방식과 낭만주의적 인도주의가 결합한 ‘도덕 치료’가 수용소에 적용될 때는 정신의학에 뭔가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이것은 정신의학이 정신질환자를 기어코 치료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이자, 그럼으로써 의학의 한 분야로 당당하게 자리 잡겠다는 당찬 시도였다. 하지만, 수용소 의사들은 밀려드는 환자 앞에서 자신들의 무력함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고, 그럼으로써 좋은 환경과 세심한 배려로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그들의 아름다운 의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때쯤이면 다른 분야에서는 과학적 합리주의가 꽃을 피우고, 일부에서는 그 열매를 따고 있었다. 이에 뒤질세라 정신의학 역시 1세대 생물정신의학(정신질환의 원인을 네 가지 체액(점액, 황담즙(담즙질), 혈액, 흑담즙(우울질))의 불균형에서 찾는 체액 이론)에서 벗어나 마음과 뇌의 연관 관계에서 찾기 시작한다. 정신의학 역사상 획기적인 반환점이 될 수도 있었던 1세대 생물정신의학은 곧 스스로 들고나온 잠꼬대 같은 이론인 ‘퇴행’ 이론에 철퇴를 맞는다. 잠시 주춤거리던 정신의학은 ‘퇴행’의 사례를 직접 보여주려는 듯, ‘정신분석’이야말로 모든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만능치료법이라고 약장수처럼 떠들며 스스로 사이비 과학에 빠져든다. 이로써 정신의학은 일반 의학으로부터 멀어지고 더불어 정신의학의 과학발전 역시 오랫동안 침체의 늪에 빠진다. 하지만, 대중이 열광했던 첫 번째 정신질환약 밀타운(Milltown)이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제약회사들은 정신질환 약물 개발에 발 벗고 나섰고, 정신의학은 다시 한번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불타오른다. 다만, 이번에는 그 방법이 ‘도덕 치료’가 아니라 ‘약물’이었다. 이로써 2세대 생물정신의학이 정신의학의 주류로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고, 정신약물학은 독보적으로 군림해오던 정신치료를 대체하게 된다.

정신질환자의 증가,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지만, 『정신의학의 역사』는 갈지자걸음처럼 비틀거리는 정신의학의 장황한 역사를 설명하는 데만 의의를 둔 책은 절대 아니다. 물론 그 우여곡절 가득한 역사만으로도 매우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 쇼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 망각의 언저리를 맴도는 주요 인물들의 생생한 삶을 복권하고, 종종 순수한 과학의 승리라고 묘사되는 사건에 사실상 문화와 상업성이 어떻게 침투하였는지를 묘사하는 사회사로서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쇼터가 광인을 집단 감금한 수용소 시대부터 정신질환의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는 프로작(Prozac)까지의 짧지 않은 시간을 세심하게 집필한 것은 21세기 정신의학이 걸어가야 할 길을 묻고자 함이다.

한때 톰 소여는 모험심을 발휘해야 하는 사내아이들의 이정표였으나, 지금은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로 진단해 버린다. 어느새 톰 소여가 뇌 손상이 있는 아이로 둔갑한 것이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무서운 영화를 보거나 이야기를 듣고 무서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를 보고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까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내려버린다. 같은 방식으로 우울증의 범위도 확장됐다. 행복하지 않으면 전부 우울증 환자가 되어버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낮의 우울(The Noonday Demon: An Atlas of Depression)』의 저자이자 그 자신이 우울증 환자인 앤드류 솔로몬(Andrew Solomon)이 지적한 것처럼 현대의 지나치게 빠른 삶의 속도, 기술 혁신이 가져온 혼돈, 사람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소외감, 전통적인 가족구조의 붕괴, 풍토병이 되다시피 한 외로움, ─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 사회적 분야를 총망라하여 과거에 인간들에게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제시했던 ─ 믿음 체계의 와해 등을 대표하는 현대성이 우울증 환자 증가의 한 원인이 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정신의학이 우울증의 질병 역치(불편함의 수준을 넘어 병에 해당한다고 간주하기 시작하는 증상의 심한 정도)를 낮추고, 제약회사의 과장 광고와 약 효과에 대한 소문에 현혹된 사람들이 단지 기분이 좀 나쁘고 짜증이 좀 난다는 이유로 처방전을 요구하고, 이에 발맞추어 진단을 남용하는 현실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제약회사가 치료제를 내놓을 때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질병이 전염병처럼 유행을 타는 것은 또 어떠한가?

바리움이 등장했을 때, 불안을 치료할 효과적인 약이 존재하게 되자 환자와 의사 모두는 온갖 문제를 불안이라는 용어로 정의하는 데에 기꺼이 동참했다. 우울증을 치료할 프로작이 등장하자 이제는 우울증이 주인공이 되었고 우울증은 모든 종류의 스트레스에 대한 검증표가 되었다. (『정신의학의 역사』, p521~522)

이렇게 되면, 21세기에 와서 정신질환자가 증가하는 현상이 앤드류 솔로몬의 지적처럼 우리를 끊임없이 압박하는 현대성 때문인지, 아니면 제약회사의 탐욕과 정신의학의 기만이 교묘하게 뒤섞인 합작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또한, 특정 질환을 진단하는 기준이나, 기존에는 그냥 가벼운 증상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새로운 질병으로 등록되는 것이 ─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강력한 로비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탄생한 것처럼 ─ 로비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하니, 앞서 말했던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살면서 한 번 이상 정신질환 증세를 겪는다는 조사도 믿기가 어렵다.

마치면서...

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신의학은 정신질환자를 약물로 길들이려고 하는 하얀 수의를 입은 과학의 탈은 쓴 조련사인가? 한때 정신의학이 야심 차게 걸었던 ‘도덕 치료’ 같은 진정으로 정신질환자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의사-환자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관계는 처방전 발급기로 전락한 정신과 의사로 말미암아 완전히 소멸한 것인가? 또한, 정신질환이 뇌과학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약물로 치료하거나 제어할 수 있다면, 정신질환은 그 자리를 뇌를 포함한 모든 신경계에 관해서 연구하는 신경과 의사에게 반납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신경매독은 내과 의사에게, 지적장애(정신지체)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에게, 뇌졸중은 신경과 의사에게 넘어간 것처럼 말이다. 만약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기반을 잃다 보면 과연 정신과 의사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앞으로 정신과 의사가 치료할 수 있는 질병 같은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한마디로 『정신의학의 역사』는 자기 앞길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여기저기 휩쓸리는 정신의학에 대한 강력한 질타이나 쓰디쓴 충고이다. 내 비록 정신의학에 몸담고 있지는 않지만(만약 그렇다면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래도 명색이 의사인데 말이다), 그들이 한때 보여주었던 ‘도덕 치료’라는 인류애의 절정이 다시 한번 이 척박한 땅에 재림하는 날을 고대하며, 그리고 수용소의 붉은 벽돌 뒤에서 행해지는 잔혹한 실태를 고발한 ─ 그래서 한때 反정신의학 운동의 밑거름이 된 ─ 대중문화를 한낱 가십거리로만 받아들였던 나의 완벽한 무지함을 반성하며, 마지막으로 정신과 진료실을 방문하지 않는 날이 절대로 오지 않기를 학수고대하며 넌더리 나도록 길고도 길었던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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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2019

PhotoZoom Pro로 스캔한 이미지의 가독성과 OCR 인식률 높이기

이미지 확대/축소를 도와주는 전문 프로그램

예전에 「300dpi 스캔 이미지를 600dpi로 업샘플링하여 가독성 높이기」라는 방법을 소개했었다. 이것은 300DPI 스캔이 600DPI 스캔보다 속도 면에서는 빠르지만, 스캔 결과물의 가독성이 600DPI보다 떨어진다는 단점을 포토샵 보정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포토샵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에게 같은 효과를 줄 수 있는 괜찮은 프로그램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BenVista PhotoZoom Pro이라는 이미지 확대 및 축소 전문 프로그램이다.

PhotoZoom Pro를 이용하면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라도 몇 번의 클릭만으로 손쉽게 300dpi 문서를 600dpi로 업샘플링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PhotoZoom Pro는 이미지를 확대 및 축소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왜곡이나 손실을 바로잡기 위한 S-Spline Max 같은 독창적인 알고리즘을 지원한다. 특히 S-Spline Max 기술을 사용하여 업샘플링하면 가독성을 높임과 동시에 OCR 인식률도 높일 수 있다. 한마디로 일거양득이다.

Improves OCR recognition and readability of scanned images with PhotoZoom Pro
<확실히 눈에 띄는 가독성>
Improves OCR recognition and readability of scanned images with PhotoZoom Pro
<300DPI 원본 OCR 결과>
Improves OCR recognition and readability of scanned images with PhotoZoom Pro
<600DPI 보정 후 OCR 결과>
Improves OCR recognition and readability of scanned images with PhotoZoom Pro
<PhotoZoom Pro은 포토샵처럼 일괄 처리도 지원>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하지만, PhotoZoom Pro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결과물의 파일 크기가 포토샵을 사용하여 업샘플링했을 때보다 비약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스크린샷에 사용된 테스트 파일은 300dpi로 스캔한 183KB의 TIFF 파일이다. 이것을 스크린샷 설정을 이용하여 600dpi로 업샘플링한 다음 TIFF로 저장하면 파일 크기가 3M를 훌쩍 넘어선다. 포토샵으로 작업하면 300KB~700KB(어떤 필터를 얼마만큼 사용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정도이다. 둘 다 일괄 처리를 지원하지만, 작업 속도는 포토샵이 훨씬 빠르다. 참고로 PhotoZoom Pro은 GPU 가속을 지원한다고는 하는데, 내 노트북의 A10-4600M APU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GPU가 없다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OpenGL이나 OpenCL이 아닌 NVIDIA의 CUDA만을 지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보정 실력이 허접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포토샵 결과물보다 PhotoZoom Pro 결과물이 OCR 인식률은 조금 더 높다. 파일 크기에 개의치 않고, 매우 좋은 CPU를 사용하면서 포토샵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용자가 사용하기에 딱 좋은 프로그램이다. 이미지 파일 크기가 커질수록 PDF 파일 크기도 증가하지만, ABBYY FineReader 같은 경우 PDF 저장 옵션에서 DPI나 이미지 압축률을 조절하여 파일 크기를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다.

최종적으로 PhotoZoom Pro을 사용해 300DPI로 스캔한 문서를 600DPI로 업샘플링했을 때의 장 • 단점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장점

1.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는 편의성.

2. 부담 없는 프로그램 크기.

3. 기본적인 설정만으로도 높은 가독성과 높은 OCR 인식률 보장.

★ 단점

1. 파일 크기가 커짐(개선이 필요해 보임).

2. 포토샵에 비해 느린 작업 속도.

3. 유료 프로그램(구글링으로 해결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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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2019

[책 리뷰] 멀고도 가까운 당신, 그대 이름은 ‘광기’ ~ 광기와 문명(앤드류 스컬)

Madness-in-Civilization-book-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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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당신, 그대 이름은 ‘광기’

Original Title: Madness in Civilization: The Cultural History of Insanity by Andrew Scull
내 해석은 정신의 의학에게 받아 마땅한 것을 주고자 하면서도 받아 마땅한 것보다 더는 주지 않고자 하는 해석이 될 것이며, 우리가 광기에 따르는 불행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는커녕 광기의 뿌리라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직도 얼마나 멀었나를 강조하는 해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광기에는 어떤 한 묶음의 의미와 관습에도 견줄 수 없이 커다란 사회 • 문화적 특징과 중요성이 있음을 인정하는 해석이 될 것이다. (『광기와 문명』, p21)

세상이 미쳤을 때

국의 모던록 밴드이자 내가 즐겨 듣는 노래 <1/10>, <유자차> 를 부른 브로콜리 너마저(broccoli, you too>)가 2010년 발표한 2집 앨범의 타이틀곡 <졸업> 은 ‘이 미친 세상에’라는, 단순 명료하지만 다소 불손한 가사에 막막한 미래를 앞둔 대학생들의 불안과 분노를 집약시켰다. 한편, 파괴적인 장소라는 이유로 정신병원을 맹렬히 반대한 스코틀랜드의 정신과의 로널드(R. D. Laing) 랭은 정신분열증이란 그가 미친 세계라고 공표한 세계에 맞닥뜨린 최고 제정신의 한 형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제대로 미치지 않은 대학생들은 노래를 부르며 무지막지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암울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삭히고, 우리가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세상이 미쳤다며 자신들은 그저 그런 미친 세상에 적응한 것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세상이 미친 것일까? 정말로 세상이 미칠 수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이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이 미친 것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세상이 미쳤을 때가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굳이 멀리 되돌아갈 필요도 없다. 난징대학살, 베트남 전쟁, 한국 전쟁, 세계 1 • 2차 대전,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 그리고 앞에 언급한 사건들만큼은 유명하지는 않지만, 전쟁에 열정을 쏟아붓느냐 궁핍해진 정부가 정신병원 예산을 삭감함으로써 환자의 1/3을 간접적으로 살해한, 충분히 ‘약한 말살’이라고 불릴만한 조치도 있다. 그리 놀랄 것도 없지만, 분명히 사회, 민족, 국가, 혹은 세상 전체가 미칠 때가 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세상이 미쳤을 때, 광기는 인류가 자부하는 문명의 범주에서 크게 비켜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영악한 일부는 광기를 발산하는데 문명의 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나치의 산업적이고 기계적이고 효율적인 학살 시스템은 문명의 진보가 없었다면 절대 실현될 수 없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한순간에 폭망시켰던 원자 폭탄은 ─ 보는 사람의 눈을 한순간에 멀게 하는 핵폭발 순간의 그 강렬한 섬광만큼이나 ─ 첨단 과학의 눈부신 상징 중의 상징이지 않았던가? 마지막으로 일사불란한 학살 시스템을 가동시키고 인류 문명이 집약된 원자 폭탄 발사 스위치를 누른 장본인들이야말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자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자부하는 문명인이지 않았던가?

‘광기’, 그것은 ‘문명’의 지울 수 없는 일부!

‘광기’와 ‘문명’, ‘어딘지 모르게’가 아니라 확연하게 서로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들린다. 인류는 지구상에서뿐만 아니라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로는 우주에서 유일하게 문자를 기반으로 한 언어로 소통하는 지능적 동물이다. 인류는 자연을 마냥 착취하는 야만적인 수준을 넘어서 자연을 능수능란하게 조작하는 훌륭한 기술과 뛰어난 능력, 그리고 집요한 의지까지 고루 갖췄다. 이로써 지속가능한 착취를 달성하고자 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동물인 인류의 야무진 염원은 달성된 셈이다. 오래전에 지구를 야심 차게 정복한 인류는 이제 태양계 넘어 광활한 우주를 넘보며 군침을 흘릴 정도로까지 진보했다. 강아지가 주인 손에 들린 뼈다귀를 탐내며 침을 질질 흘릴 수는 있다지만, 지구상의 그 어느 생명체가 감히 우주를 바라보며 그 경이로움에 감명받은 나머지 입을 떡 벌리고 침을 질질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실정이 이러한데, 감히 그 누가 인류와 인류가 이룩한 문명을 보고 ─ 실성한 자가 아니고서야 ─ ‘광기’라는 불경한 단어를 떠올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여기 바로 그 실성한 자가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광기와 문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하니, 차마 문명인으로서는 입에 언급하는 것조차 민망하고 지성인으로서는 충분히 대경실색할만한 그의 주장은 제대로 실성한 자가 아니고서야 할 말이 아니다. 하지만, 각양각색의 광기로 뒤덮인 세상을 광기 없이 온전하게 통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그의 실성은 이유 있는, 지적으로 우아하고 용기가 가상한 실성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말본새가 막 나가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실성한 자라고 소개했지만, 진짜 그런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앤드류 스컬(Andrew Scull)이 야심 차게 집필한 『광기와 문명(Madness in Civilization): 성경에서 DSM-5까지, 문명 속의 광기 3000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문명과 광기의 관계는 우리의 상상과는 정반대다. 우리의 바람대로 광기는 그저 문명의 끄트머리, 혹은 그 반대편, 혹은 그 변방에 존재하는, 문명의 우수리처럼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아니다. 예로부터 광기는 화가, 극작가, 소설가, 작곡가, 성직자, 의사, 과학자의 중심적인 관심 주제의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광기로 가득 찬 연극이나 영화를 우리는 즐겨 본다. 특히 광기가 지독하게 들린 살인자를 소재로 한 섬뜩한 공포 영화를 보는 관객은 환호하고 전율에 떨며, ‘이 미친 세상에’ 얼마 안 되는 기분전환 거리로 삼는다. 문학이나 예술에서 광인은 사회에 만연한 허영, 가식, 부조리를 비꼬고 까발리고 풍자하여 대중의 꽉 막힌 심중을 활명수처럼 뚫어주는 없어서는 안 될 소재다. 스컬의 말처럼 광기는 중요한 여러 면에서, 문명의 밖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지울 수 없는 일부이며, 우리 의식과 일상생활을 끈덕지게 침범하는 문제이고, 따라서 의식의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동시에 절대 그렇지 않은 문제다.

광기를 사회 • 문화적으로 재미나게 통찰한 책

속하지만, 사회적 편견이 물씬 풍기는 단어 ‘광기’와 품위 있지만, 인류의 고독한 오만이 물씬 풍기는 단어 ‘문명’. 왠지 원수처럼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 같은 두 단어는 사이좋게 각각 인류사의 한 단면씩을, 한쪽은 지극히도 비참하고 한쪽은 지극히도 찬란하게 대변한다. 그렇게 광기와 문명은 자신의 건재함과 위용을 칼춤을 추듯 뽐내고 견제하며 위태롭게 공존해왔다. 세상이 미친 듯이 너도나도 전쟁으로 뛰어들며 광기의 위세를 한껏 드러내면, 이에 질세라 문명은 전쟁을 빨리 끝내겠다는 그럴싸한 논리를 들이대며 첨단 과학의 온갖 잡다한 결과물로 세상을 초토화한다. 문명의 선봉에 섰다고 자부하는 국가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판단 아래 식민지 건설에 매진하고 있을 때, 광기는 문명사회에서는 드러내놓고 발산하기 어려웠던 강간, 살인, 폭력, 약탈 등의 야만적인 쾌락을 식민지 사회에서만큼은 위법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문명이 한 수 위인지, 아니면 광기가 한 수 위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인류 문명의 찬란한 역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광기는 빠트릴 수 없는 핵심 조미료이다.

이것은 작금의 문명을 힘겹게 이끌어가는 인류를 이해하는 데도 역시 광기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만약 문명과 광기 사이에 ─ 그것의 용도가 무엇이든 간에 ─ 보이지 않는 다리가 놓여 있다면, 그 다리의 길이가 길든 짧든 그것은 멀고도 가까운, 그런 마법의 다리다. 혹은,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유명한 경구처럼 문명이 ─ 재미 삼아서든 연구 삼아서든 ─ 광기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기에 가끔 문명이 광기에 휩싸이듯, 광기 역시 ─ 광인 특유의 무분별한 호기심 때문이든 아니면 아무 생각 없어서든 ─ 문명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기에 가끔 광기가 문명인 척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광기와 문명』은 광기와 문명의 문화 • 사회적 변천 과정을 변증법적으로 접근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피와 눈물, 살육과 복수, 갈가리 찢긴 도덕과 인간성 말살 등의 광기로 얼룩진 연극, 소설, 영화 등의 작품들이 ─ 아직 광기 근처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잠재적으로 광기 보균자라 할 수 있는 ─ 대중의 흐느끼는 환호와 전율 속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광기’를 다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 책은 독자의 겸연쩍은 호기심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광기는 인류의 야릇한 관심과 환호 속에서도 한편으로 비참한 대접을 받아왔다. 감호소와 전기경련치료(Electroconvulsive treatment, ECT), 전두엽 절제술(frontal lobotomy)로 대변되는 매우 문명적이고 사회적인 폭력의 압제를 묵묵히 견뎌야 했다. 신들린 자, 의지박약한 자, 퇴폐한 자, 사회의 찌꺼기라는 무지막지한 편견 속에서 광기는 자신의 존재를 꿋꿋하게 지켜왔다. 그리고 그 존재감은 광인 몇 사람이 의기투합하고 문명의 이기에서 도움을 얻어 자행된 테러에서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뿐인가? 미친 듯이 빠르고 거칠게 돌아가는 세상은 또 어떠한가? 이곳에서는 폭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지옥에 빠진 구제불능의 영혼처럼 울부짖고, 저곳에서는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를 한탄하는 노예처럼 신음하고 있다. 세상에 만연한 부조리와 불편한 진실을 따라가다 보면 문명이 광기에 오염된 것인지, 광기가 문명을 흉내 내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감히 문명과 광기의 경계를 긋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악마의 구슬림에 넘어간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이거나, 아니면 실성한 자이거나, 그도 아니면 세상 남부러울 것 없는 바보천치다. 여전히 그 원인을 뾰족하게 밝히지 못한 광기는 여전히 문명의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기웃거리며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감히 충고하건대, 당신이 아직도 정신질환을 앓는 불행한 사람을 ‘의지가 박약한 자’, ‘인간쓰레기’로 낙인찍는 무식쟁이에다가 시대착오적인 사람이라면 그냥 이 책 『광기와 문명』을 가만히 내버려 두길 원한다. 당신처럼 변변치 못한 사람에게 이 책은 고작해야 광기가 문명 언저리에서 노닥거리다 남긴 반사회적인 흔적을 가십거리로 엮은 그렇고 그런 책정도로나 비칠 테니까. 하지만, 문명과 인류에 대한 보다 심연 하면서도 세밀한 이해에 목마른 독자라면, 인류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심연의 우주처럼 문명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 아니면 이해하기를 포기한 ─ 광기를 사회 • 문화적으로 이보다 재미나게 통찰한 책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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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2019

바이두 SVIP 유료 계정을 무료로 공유하는 사이트 #1

출처 1: [팁] 바이두 SVIP 계정 23일까지. SVIP 계정 구하는 방법

출처 2: 59网赚

내가 아는 한에서 가장 양질의 바이두 정보가 공유되는 곳 중 한 곳이라 장담할 수 있는 tcafe 클라우드 게시판에서 매우 유익한 정보가 올라와서 염치 불고하고 이 자리에도 소개해 볼까 한다. 소개하기에 앞서 좋은 정보를 공유해 준 tcafe의 μTorrent®Pro 님께 변변치 못한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의 뜻을 표하고 싶다.

오늘 소개하는 정보는 바이두 무료 사용자라면 깜짝 놀랄만한 소식인데, 다름이 아니라 바이두 SVIP(유료) 계정을 공유하는 www.59tb.com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이 사이트의 무료 회원도 하루 한 번 유료 계정을 공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방법은 하나의 유료 계정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니만큼 자기가 받을 자료를 바이두 클라우드로 옮기는 과정에서 개인 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유의해야 한다(로그인해 보면 알겠지만 별의별 자료가 다 있다). 그런 고로 타인에게 노출되어도 아무 걱정없는 일반적인 자료(인터넷에서 흔하게 공유되는 자료들)를 다운로드하는데만 사용할 것이 좋을 것 같다. 공유 글에 있는 계정 지침도 (구글 번역으로라도) 한번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예를 들어 계정 주인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자료(음란물 같은)는 절대로 삼가자. ─ 삭제가 가능하다면 ─ 받은 자료는 알아서 삭제해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을 확보해 두는 것도 잊지 말자.

바이두 SVIP 공유 계정 얻는 방법

참고로 아래에 소개된 방법은 구글 번역 기준으로 작성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바이두 로그인할 때 반드시 [ 시나웨이보 ] 계정 연동(QQ 왼쪽에 있는)으로 로그인해야 한다.

1. www.59tb.com 회원 가입,

(검증 Q & A 답변은 이후 모두 344868이다).

2. 每日薅羊毛(데일리 薅 울)로 이동.

3. 가장 최근 공유 게시글 클릭.

4. [답장을] 클릭.

5. 적당한 댓글 입력, 예를 들면 아래 같은 것.

확인 질문과 답변은 당연히 344868.

6. 본문에 나타난 공유 아이디와 비밀번호 확인.

7. pan.baidu.com에서 웨이보 계정으로 로그인.

Site-to-share-Baidu-SVIP-paid-account
<사이트 이용은 구글 번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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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비밀번호면 가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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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번 공유 글이 올라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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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댓글)'을 달아야 본문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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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는 글 정도는 남기자>
Site-to-share-Baidu-SVIP-paid-account
<반드시 웨이보 계정 연동으로 로그인>
Site-to-share-Baidu-SVIP-paid-account
<붉은색! 역시 중국답다>

사실 예전부터 바이두 유료 계정을 공유하는 몇몇 사이트들(아래 링크 참조)은 알고 있었는데, 뭔가 제대로 되는 곳이 없었고, 유료 결제를 요구하는 곳이 많아 그냥 미끼성 글로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μTorrent®Pro님이 소개한 사이트는 제대로 되는 것 같다. 일단 오늘 공개된 웨이보 아이디는 8월 23일까지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고, 59tb 사이트에 가입한 무료 회원들을 위해 매일 하루 한 번 업데이트된다고 하니 지긋지긋했던 바이두 다운로드 속도 문제는 당분간 이 사이트를 이용하면 원만하게 해결될 것 같다. 다만, 59tb 사이트도 기본적으로 유료 회원을 염두에 둔 곳이라 (나 같은) 무료 회원이 언제까지 바이두 유료 계정을 공유받을 수 있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첫 공유가 2019년 7월 1일(이 사이트의 첫 글은 대략 2018년 5월 정도로 추정)인 것을 보면 바이두 SVIP 계정을 무료로 공유한 지는 얼마 안 된 것 같기에 앞으로의 귀추가 참으로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일단 이용할 수 있을 때 맘껏 이용하는 것이 우리 무료 사용자의 신조 아니었던가? 훗날에 대한 염려는 악마에게나 줘버리고 밀린 다운로드가 있다면 묵은 때 밀 듯 이 기회에 시원하게 풀어버리자! 참고로 바이두 유료 계정 공유는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티카페 클라우드 게시판에 자주 들락날락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바이두 유료 계정을 공유해주시는 부처님 같은 분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 바이두 SVIP 계정 공유하는 사이트(장담은 못 함)

http://www.fenxiangdashi.com/baiduyunhuiyuan

https://www.feiyuka.com/baiduyun

https://www.vipkoudai.com/baidu

http://www.yunpanba.com <-- 여기는 됨, 웨이보 계정(μTorrent®Pro님 제보)

└ 공유자의 위챗 페이지에서 계정 정보 공개

https://www.xunleizu.com <-- 웨이보 계정이고 본문처럼 회원 가입 필요(μTorrent®Pro님 제보)

• 2019/12/30: https://www.lingkeba.com/7390.html

└ jingmilian9@163.com 아이디는 2020년 1월 3일까지 사용 가능한 SVIP 계정 확인.

• 2019/11/27: sina.com 계정은 웨이보 앱의 QR 코드 리더로만 로그인이 가능한 것으로 보임. 중국에선 QR 코드 로그인이 유행 중....

• 2019/12/03: 새 사이트를 하나 발견했는데, 계정 정보를 얻는 과정이 다소 까다로워 부득이 새 글로 작성했다. 「바이두 SVIP 유료 계정을 무료로 공유하는 사이트 #2

• 2019/12/28: 「바이두 SVIP 유료 계정을 무료로 공유하는 사이트 #3」 하나 더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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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2019

대표적인 무료 방화벽 COMODO와 Privatefirewall Ransim 테스트

추천할만한 무료 방화벽 제품 두 개를 가지고 오랜만에 심심풀이로 Ransim을 돌렸다. Privatefirewall 같은 경우 예전에 「무료 방화벽 Privatefirewall을 활용한 랜섬웨어 방어」에서 이미 Ransim 테스트를 거쳤지만, Ransim 버전이 업데이트된 관계로 다시 테스트해볼 필요도 있었다. 사용한 랜심(Ransim) 버전은 2.0.0.54, COMODO Firewall 버전은 12.0.0.6882, Privatefirewall는 오래전에 업데이트가 끊겼기 때문에 여전히 7.0이다. 그런데도 Privatefirewall은 Ransim 테스트를 무난하게 통과했다. 이 결과만을 놓고 보면 Privatefirewall의 랜섬웨어 방어능력이 앱체크보다 더 좋아 보인다. 하지만, Privatefirewall의 Process Detection 기능(코모도의 HIPS 기능도 마찬가지지만)은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모든 실행 파일을 일일이 감시하면서 사용자에게 허용 여부를 묻기에 사용자를 겁나게 귀찮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고로 지능적으로 방어한다기보다는 그냥 일단 다 막고 보자는 식이기에 Privatefirewall이 꼭 좋은 프로그램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랜섬웨어란 것이 단 한 번이라도 걸리면 피해자의 억장을 무너트릴 정도로 매우 치명적이기고 절망적이기에 사용자 입장에 따라 선택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Privatefirewall>
<COMODO Firewall>

참고로 Ransim 실행을 위해 두 제품 다 RnSimulator 폴더에 있는 Collector.exe, Ranstart.exe Starter.exe 파일들을 ‘Trust’ 목록에 추가했으며, 코모도 방화벽은 기본값으로, Privatefirewall은 [Settings] > [Advanced] > [Enable Process Detection](코모도의 HIPS와 비슷한 기능)을 체크해 주고 테스트했다. 코모도의 경우 HIPS 기능만으로는 Ransim 테스트를 통과하진 못했지만, Auto-Containment(샌드박스 실행)으로 Ransim을 실행하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루프에 빠짐). 그런 고로 코모도 사용자는 ─ 앱체크 같은 ─ 별도의 안티-랜섬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Auto-Containment 기능(혹은 의심스러운 파일은 마우스 우클릭 메뉴의 [Run in COMODO Container]로 실행)을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대충 보아도 기능이 많고 인터페이스도 화려하고 설치 용량도 큰 코모도 제품이 백그라운드로 실행되는 프로세스 수도 Privatefirewall보다 많아 무겁게 느껴지기는 하는데, 무거운 백신을 설치할 때만큼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가벼운 무료 방화벽 제품을 찾는 사람이라면 코모도보다는 Privatefirewall이 나을 것이고, 많은 부가 기능과 세밀한 사용자 설정을 원하는 사람은 코모도를 추천한다.

• 2019/08/25: 어느 분께서 Collector.exe, Ranstart.exe, Starter.exe 파일들을 ‘Trusted’ 목록이 아닌 ‘Unrecognized’ 목록에 추가해야 한다고 지적해주셨는데, 이렇게 설정하고 (더불어 Cloud Lookup도 끄고) Ransim을 실행하면 위 세 가지 파일의 움직임을 HIPS가 감지해내긴 한다. 그러나 테스트를 계속 진행하려면 어차피 ‘허용’해줘야 한다(Privatefirewall도 위 세 가지 파일을 ‘Trusted’ 목록에 추가했다). 이 세 가지 파일을 차단하면 테스트 자체가 진행이 안 된다.

그리고 COMODO의 진짜 문제는 Privatefirewall과는 달리 Ransim이 Tests의 하위 폴더(총 15개 폴더, 즉 15개 랜섬웨어 방어 테스트)를 랜섬웨어에 감염시키는 프로세스 자체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아래 스크린샷을 보면 알겠지만, COMODO HIPS는 1, 7, 14 세 개의 폴더에서 진행된 랜섬웨어 테스트만 성공적으로 감지했고, 나머지 폴더에서 진행된 테스트는 감지해내지 못했다. 애초의 설정이 문제라면 세 개의 폴더도 방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 개의 폴더는 방어했는데, 나머지 폴더는 방어에 실패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내 생각엔 이것은 설정의 문제라기보다는 COMODO HIPS가 랜섬웨어에는 취약하다고 말하고 싶다.

<HIPS는 세 개의 폴더 방어만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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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2019

듣고 싶은 노래 모두 다 가져라 ~ ONE MUSIC

출처: ONE MUSIC V1.0

오늘 소개하는 ONE MUSIC 은 중국 음원 사이트에서 유료 음원을 다운로드하는 안드로이드 앱이라고 말하면 잊을만하면 나오는 고만고만한 MP3 다운로드 프로그램이라고 심드렁하게 반응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더라도 그와 마찬가지로 업데이트 역시 빈번하게 끊기기에, 즉 수명이 매우 짧다고 볼 수 있기에 (같은 이유로 나 역시 잊을만하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아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잊을만하면 나온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관심 없으면 못 본 척 지나가면 그만이다.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더군다나 요즘 같은 더위에 땀까지 흘려가며 짜증 부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 글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냉큼 웹브라우저의 '뒤로가기' 버튼을 클릭하자.

<매우 심플한 인터페이스의 ONE MUSIC V1.0>

ONE MUSIC은 MP3 320k와 무손실(FLAC)를 지원하는 유료 음원 다운로드 앱이다. 물론 가사도 내려받을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ONE MUSIC은 다른 비슷한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사용자가 검색한 노래나 음원을 어디에서 받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소스를 분석하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알다시피 내 능력이 미치는 범위를 훨씬 벗어나고도 남는다). 내 짐작으로는 샤미뮤직(虾米音乐), 쿠워뮤직(酷我音乐), 넷이즈 클라우드 뮤직(网易云音乐)은 아닌 것 같고 쿠거우뮤직(酷狗音乐) 아니면 QQ 뮤직 같은데, 그 이상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는가 하는 것인데, 대체로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대체로’라고 표현한 것은 테스트에서 일부 파일은 받는 도중 서버와의 연결이 끊어졌는지 파일 크기가 비정상이었다. 받다가 만 파일을 지우고 다시 받으면 정상적인 파일 크기로 다운로드 완료가 되는 것을 보면 서버와의 연결이 매우 불안정한 것으로 보인다. 고로 이것도 수명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일단 오늘내일 정도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ONE MUSIC V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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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2019

[영화 리뷰] 작품성 운운을 떠나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 ~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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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 운운을 떠나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

"다른 누군가의 과거가 너의 현재를 찾아올 거라고" - 점쟁이

이렇게 좋은 영화를 감상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예의가 아닐뿐더러 거사(?)를 막 치르고 난 후 찢어진 콘돔을 보는 것만큼이나 께름칙한 일이라서 힘겹고 괴로운 갈등 끝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혹은 포스터의 경고대로 난 견디지 못하고 결국 글을 쓰고야 말았다!). 이왕 시작한 이상 그래도 천자는 채워야 할 터인데, 무슨 얘기로 그 많은 천자를 채워야 할지 벌써부터 난감하다. 이 영화의 리뷰를 형편없이 썼다는 이유만으로 욕 바가지를 얻어먹을까 봐 영화를 볼 때보다 지금이 더 긴장되고 무섭다. 그래도 두 명의 여주인공은 매우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일단 공포 영화라고 하면 끗발이 설 수 있는 미인이 등장해야 제맛인데, 일단 이 점에서만큼은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은 합격점을 주고 싶다. 다만, 공포 영화의 막간으로 등장하는 베드씬이 없어 두 미인의 뽀얀 살결을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IMDB 평점이 무려 7점을 넘어선다. 마구 쏟아지는 공포 영화 중에서 평점 7점을 넘기는 작품을 발견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래서 보고 만 것이다(개인적으로 Naver 평점보다 IMDB 평점을 더 신뢰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IMDB 사용자 후기에 10점 만점을 준 사용자가 한 분 계시다는 것, 그런데 미스터리한 것은 그 사용자가 리뷰를 남긴 영화는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이 유일하다는 것. 아마도 그분은 감독과의 관계가 매우 돈독한 지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뼈가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친구를 둔 것 같아 정말 부럽다.

영화를 본 사람을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놀라운 반전이 있는데, 그것은 이 영화가 콜카타 국제 컬트 영화제(Calcutta International Cult Film Festival) 2018년 Best Horror/Science Fiction Feature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내가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혹스럽게 만드는 갖가지 어설픈 요소들이 잔인하리만치 즐비하다고 느낀 것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와 어림도 없는 소리 모두 죄다 끌어모아 주절주절 늘어놓아도, 여기에 공백까지 포함해도 천자가 안 된다. 천원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천자는 쉽게 볼 수 없는 녀석이다. 그래서 천자문 외우는 것도 그토록 어려웠었나 보다.

아무튼,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는 내가 처음 들어보는 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은 수작이니, 코를 후벼 파다 못해 콧속을 대머리처럼 반질반질하게 윤기 낼 정도로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은 꼭 감상하기 바란다. 감히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못 하지만 말이다. 또한, 다른 사람이 재미없다고 해서 나 역시 재미없으리란 법도 없으니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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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2019

굳이 스캔테일러(ScanTailor)를 사용해서 전자책을 만드는 이유

전자책을 직접 제작해 읽어온 지도 벌써 5년

내가 「종이책을 스캔해서 전자책(PDF) 만들기 ~ 1. 스캔」이란 글을 블로그에 소개한 지도 어느덧 5년이나 흘렀다. 이 글의 요지는 책을 훼손하지 않는 평판 스캐너로 책을 스캔한 다음, 그 결과물을 스캔테일러(ScanTailor)로 보기 좋게 재단한 다음, 포토샵 보정으로 가독성을 높인 다음, 최종적으로 파인리더(ABBYY FineReader)라는 OCR 및 PDF 제작 프로그램으로 나만의 전자책을 만드는 과정을 장장 7편에 걸쳐 소개한 글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캐논 복합기에 딸린 스캐너를 이용하고 있다. 참고로 스캔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00DPI/그레이/A4 크기/Text’ 설정에서 스캔하는 데만 걸리는 시간은 6초, 헤드가 되돌아오는 시간까지 모두 합산하면 10초 정도 걸리고, 600DPI에서는 각각 10초/14초 정도 걸린다. 고로 300DPI에서 헤드가 되돌아오는 4초 남짓 동안 재빠르게 다음 페이지를 준비할 수 있다면, 한 시간에 최대 360번 스캔할 수 있다는 말이고 이것은 720페이지 분량에 해당한다. 책이 문고판처럼 크기가 작다면 스캔하는 시간도 그만큼 짧아진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그 절반 정도 예상하면 될 것 같다. 대략 한 시간에 300페이지 이상은 스캔할 수 있다는 말이고, 난 이 작업을 영화나 축구 중계를 보면서 한다.

스캔테일러(ScanTailor)를 고집하는 이유

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복합기 스캐너를 사용 중이고, 중간에 한번 완전히 분해해서 평판 안쪽을 닦은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문제가 된 점은 없다. 그동안 대략 400권의 책을 스캔해서 전자책으로 만들었는데, 권당 평균 페이지 수를 500페이지로 잡으면 대략 10만 번 스캔했다는 말이다. 얼마나 더 만들어야 내구성이 바닥날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스캔 품질 역시 인터넷에 공유된 고가 스캐너의 결과물과 비교해보더라도 ─ 그레이 수준에서는 ─ 딱히 나쁘지 않다. 하지만, 컬러 스캔은 좀 차이가 나는 것 같지만 일반적인 책 스캔에서 컬러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닌지라 지금의 복합기 스캐너로도 꽤 만족스러운 전자책을 뽑아낼 수 있다. 다만, 고가의 장비는 편리성에서 압도적 우세하다. 물론 책을 파손해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말이다.

Why-create-an-e-book-using-ScanTailor
<ABBYY FineReader 14 이미지 사전처리>
Why-create-an-e-book-using-ScanTailor
<ABBYY FineReader [맞붙은 페이지 분할] 오류>
Why-create-an-e-book-using-ScanTailor
<ABBYY FineReader [페이지 방향 교정] 오류>

전자책을 만드는 과정은 5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좀 달라졌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하고 힘을 덜 쓰기 위해 지금은 주로 300dpi로 스캔하고, 소설책보다 글씨가 작은 책들만 특별히 600dpi로 스캔한다. 그리고 포토샵 보정도 생략한다. 그래도 7인치 테블릿으로 보는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스캔테일러(ScanTailor)로 재단하는 과정만큼은 유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ABBYY FineReader의 재단 능력, 즉 [맞붙은 페이지 분할]과 [페이지 방향 교정] 능력이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다. Readiris 17의 경우는 페이지 분할 기능이 아예 빠져 있다. Acrobat도 비슷해 보이는데, 이것은 내가 해당 기능을 찾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OCR 프로그램의 재단 기능이 아무리 좋아도 현재로서는 스캔테일러(ScanTailor)로 재단한 파일로 PDF를 만드는 것이 보기에는 가장 깔끔하다.

ABBYY FineReader이나 Readiris 등의 OCR 프로그램들의 페이지 분할 능력이 믿을만하면 이제는 쿼드 코어를 사용하고 있기에 OCR 프로그램에 내장된 스캔 기능을 이용하면 스캔과 OCR 작업을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OCR 프로그램들의 재단 능력이 좀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문제는 스캔 품질에 따라, 그리고 OCR 언어 설정에 따라 다를 수도 있으니 사용자 환경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여전히 쓸모 있는 나만의 전자책

요즘은 산책하면서 전자책을 TTS(Text-to-Speech), 즉 음성으로 듣고 있다. 깊이 생각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는 책들을 이런 식으로 듣는 것은 대충 흘려보는 수준이나 다를 바 없어 별로 추천하지는 않지만,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있는 소설 같은 경우는 시간도 절약하고 눈의 피로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그런 고로 나만의 전자책을 만들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것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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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언어가 드러내는 우리의 ‘민낯’ ~ 단어의 사생활(페니베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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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드러내는 우리의 ‘민낯’

Original Title: The Secret Life of Pronouns: What Our Words Say About Us by James W. Pennebaker
우리에게는 각자의 <단어 사용 스타일> 이 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 그 단어 속에 자신에 대한 단서, 자신에 대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어딜 가든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만의 <언어 지문> 을 남긴다. 그 지문을 따라 단서를 추적하여 분석하면 그 단어를 사용한 사람의 개인적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단어의 사생활』, p8~9)

‘글’과 ‘댓글’은 글을 쓴 사람의 ‘인격’

는 인터넷상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조금이라도 짐작할 방법은 그 사람이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나 뉴스 사이트, 포럼, 기타 다양한 게시판에 쓴 글이나 댓글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상대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즉 상대에 대해 완전히 무지할 수밖에 없는 인터넷상에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건더기가 그 사람이 썼다고 생각하는 ‘글’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심결에, 그리고 습관처럼 남기는 글들이 익명이라는 무시무시한 탈을 쓴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웅덩이에 고이고 고여 글을 쓴 사람조차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숨은 캐릭터이자 사이버 인격이 된다. 비록 내가 쓴 글을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치거나 대충 흘겨보면서 넘어갈지라도 결국 그것이 쌓이고 쌓여 인터넷에서 ‘나’를 대표하는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해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것들에 대해 누리꾼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무관심과 방관으로 일관한다. 전염병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한글파괴 현상과 외계어의 범람, 저속한 글들이 난무하는 현실이 그러한 사실을 방증하고도 남는다. 인터넷이 현대 사회가 앓는 만성 질환인 소통의 부재를 완화하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비방, 악담, 욕설 등 마음속에 욱여넣어 두었던 악에 찬 외침을 폭발시키는 스트레스 해소의 공간으로 전락한 것만 같아 씁쓸하다. 물론,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지나치게 참는 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병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인터넷이라는 익명성이 부추기는 ‘막말’이 개인과 사회에 이바지하는 스트레스 해소 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위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우리가 문명인의 가식과 위선을 인터넷이라는 또 하나의 현실에서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만천하에 드러내는 작태는 추하면 추했지 아름다울 리는 없다. 물론 나라고 뭐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다고 해서 글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과 맞닥뜨리다 보면 한 줄기 차가운 분노와 그 분노를 집어삼키는 슬픔이 내 심장을 꿰뚫고 지나가는 뜨악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내겐 짧게 쓰는 댓글 한 마디도 대수롭다. 타인이 쓴 글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초등학생 수준보다 못할 정도로 성의가 없거나, 한글파괴와 외계어가 난무하는 형편없는 글이라고 판단이 들면, 그 글을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더라도 그냥 무시해 버린다(사실 읽어줄 만한 글에는 무성의하다는 불쾌한 기분이 들 정도로 기초적인 국어 표현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글은 없다). 예의상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그런 글 중에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글을 잘 써도 내용이 천박하여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글이 있고, 글을 못 써도 내용이 순수하여 미소를 자아내는 글이 있듯, 이것은 글을 잘 쓰고 못 쓰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내 생각에는 글을 쓴 사람의 ‘성의’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즉, 인터넷에서 누군가에게 사람대접받고 싶다면, 최소한의 성의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것들이 무시된 글을 읽었을 때, 글을 읽은 사람이 글을 쓴 사람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그런 막글을 함부로 쓰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정중하고 우아하게 상대를 비난하는 글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데 그런 막글로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더럽히는 짓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능히 그러고도 남는 것이 사람이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누구라도 틀릴 수 있고, 나 역시 시시콜콜하게 그런 것들을 지적하는 좀팽이는 아니다. 내 글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렇다고 ‘성의’ 없이 막 쓰지는 않는다. 그럴 바엔 아예 글을 쓰지 않는다. 아무튼, ‘성의’ 없는 글은 도무지 읽을 생각이 코딱지만큼도 생기지 않는 것은 나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다.

‘단어’가 우리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

터넷에 올리는 ‘글’과 ‘댓글’이 그 사람의 ‘인격’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데,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놓기만 해놨으니, 나도 별수 없는 녀석이다. 그런데 평소의 이런 나의 가치관을 어느 정도 뒷받침해 주는, 너무나도 반갑고 고마운 책을 발견했으니 바로 사회심리학자 제임스 W. 페니베이커(James W. Pennebaker)가 쓴 『단어의 사생활: 우리는 모두,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The Secret Life of Pronouns: What Our Words Say about Us)』이란 책이다. 사람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즉 ‘언어 지문’을 남김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 그 지문을 따라 단서를 추적하여 분석하면 그 단어를 사용한 사람의 개인적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이 책은 ‘글’뿐만 아니라 ‘말’까지 포함했다는 점에서 내 주장(벌써 잊어버렸을 것 같아 다시 말하자면, 인터넷에 올리는 ‘글’과 ‘댓글’이 그 사람의 ‘인격’이다!)보다 더 포괄적이지만, 단어 연구를 위한 컴퓨터 분석을 위해 대화, 연설 등 일상생활에서 서로 주고받는 ‘말’을 ‘글’로 변환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실험이 종이에 쓴 글, 채팅 기록, 인터넷에 올린 글 등 텍스트 자료로 행해졌다는 점에서 내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다시 말해, 일상에서 소통의 목적으로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나 연설, 기자 회견 등의 ‘말’뿐만 아니라 편지, 일기 등의 고전적인 글쓰기부터 SNS, 포럼, 블로그 등의 현대적인 글쓰기까지 모두 포함해서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는 그 사람의 성격뿐만 아니라 생각이나 감정, 동기 등의 복잡한 심리 상태와 사회적 관계를 알아내는 강력한 ‘도구’인 것이다. 고로 그 사람이 사용한 단어를 분석하면 성별, 나이, 사회적 계층, 감정 상태, 정직성, 성격 유형, 지위, 격식을 차리는 정도, 서열 관계, 지도력, 인간관계의 질 등 한 사람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추리할 수 있다고 『단어의 사생활』은 말한다. 여기서 ‘글쓰기 치료’를 떠올리는 분들이 쉽게 오해할 수 있는 점이 있는데, 그렇다면 사용하는 단어를 바꾸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심리 상태, 사회적 관계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니고,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들은 단어는 단지 그 사람의 심리 상태나 사회적 관계를 반영하는 거울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 사실이지 않은가? ─ 노파심에 또 한 번 더 말하자면 ─ 인터넷에 올리는 ‘글’과 ‘댓글’이 그 사람의 ‘인격’이라는 내 생각이 그리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도록 감개무량하게도 이 책은 모든 수고와 나를 대신하여 훌륭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이 제시한 흥미로운 사실들은 거꾸로 말해 자신이 쓴 글을 통해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자신의 심리 상태와 성격, 사회적 관계 등도 알아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사돈 남 말하는 격이지만, 이 책을 읽는 당신, 남을 험담하기 전에 자신이 한 말과 자신이 쓴 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뜻깊은 성찰의 시간을 꼭 가져보기 바란다.

‘나’라는 일인칭 단순 대명사에 숨겨진 무서운 비밀

미롭게도 『단어의 사생활』의 모든 장에 걸쳐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나’라는 일인칭 단순 대명사이다. 거짓을 탐지하려고 할 때 ‘나’라는 단어는 정직함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시이며,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보다 ‘나’라는 단어 사용의 빈도가 우울증을 더욱 정확히 예측한다. 단어 사용 스타일은 우리 정체성을 보여주는 일부임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이 책의 논지는 영어뿐만 아니라 모든 언어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이런 언어 특성이 기원전 5세기에 쓰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에서도 발견된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 굳이 그렇게까지 오래된 책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얼마 전에 읽은 앤드류 솔로몬(Andrew Solomon)의 『한낮의 우울(The Noonday Demon: An Atlas of Depression)』을 살펴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멋대로 한 페이지를 골라 다시 읽어봤는데, 소름 끼치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앤드류 솔로몬의 글쓰기에는 1인칭 단수 대명사 ‘나’의 사용 빈도가 유난히 높은데, 그것은 조금 전에 언급한 ‘나’라는 단어의 사용이 우울증을 예측한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했다. 왜냐하면, 앤드류 솔로몬이 바로 우울증 환자이기 때문이다. 비록 번역된 책이라 원문을 분석했을 때보다 정확도는 떨어질 수 있지만, ‘나’의 사용 빈도가 높은 것이 ─ 저자가 우울증 환자임을 고려하면 ─ 오히려 번역의 정확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 솔로몬의 책은 자아 성찰적인 면이 강한 만큼 어쩌면 ‘나’의 사용 빈도가 당연히 높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인생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나만한 정도의 조건으로 인생을 시작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만족스러워할 것이다. 살아오면서 기준으로는 좋았던 시절도 있었고 불행했던 때도 있었지만 그 불행들은 내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못하다. 인생이 좀 더 험난했더라면 나는 내 우울증에 대해 아주 다르게 이해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나를 절대적으로, 끊임없이, 아낌없이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이 계셨고 역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남동생과도 우애가 좋은 편이었다. 완전하다고도 할 수 있는 가정이어서 부모님의 이혼이나 심각한 싸움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진정으로 서로를 무척 사랑하셨고 이런저런 일로 가끔 다투긴 했지만 서로에 대한, 그리고 나와 동생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이 흔들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이나 중학교 시절에 인기 있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고교 시절 말쯤에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학업 성적은 늘 우수했다. (앤드류 솔로몬, 『한낮의 우울』, 61쪽, 민승남 옮김, 민음사)

‘단어’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 그리고 ‘민낯’을 드러내는 ‘글쓰기’

심결에,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말이나 휘갈겨 쓴 글이 한 사람의 성격이나 심리 상태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다는 것이 인터넷에 올리는 ‘글’과 ‘댓글’이 그 사람의 ‘인격’이라는 나의 주장을 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가 그 사람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글쓰기나 말하기 스타일은 상황에 따라,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변한다는 점에서 고정적 특성이 강한 ‘인격’을 반영한다는 나의 주장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하지만, 글이나 댓글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는 전제는 얼추 들어맞는다. 고로 ‘막글’이나 ‘막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그냥 그 사람의 인격이 더럽다고 지레짐작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심리 상태나 사회적 상황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무의식중에 ‘막글’이나 ‘막말’을 내뱉게 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남들이 피하고 혐오하는 거칠고 험한 일을 하고, 혹은 거의 착취에 가까운 노예 계약으로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이나 사회로부터 동정은커녕 빈번히 무시당하거나 괄시당한다. 그렇게 사회에 대한 불만이 자기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쌓이고 쌓여 무의식적으로 거친 언어를 통해 분출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타고 난 천성을 반영한다고는 할 수 없다. 도둑놈에게도 경찰 제복을 입혀놓으면 보란 듯이 도둑을 잡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번지르르한 말과 그럴싸한 글로 사람들을 홀라당 속이는 위선자는? 이렇게 생각하면 인터넷에 올리는 ‘글’과 ‘댓글’로 그 사람의 ‘인격’을 멋대로 재단해버리는 일이 얼마나 오만하고 위험한 일인지, 새삼스레 깨달을 수밖에 없다. 내 주장은 허무맹랑하다 못해 편견과 선입관을 부추기는 위험하기까지 한 일이었으니, 쑥스럽다 못해 쥐구멍에라도 숨어 들어가고 싶다. 장광설을 내뱉고, 스스로 그것을 무너뜨리니 바보가 따로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단어의 사생활』은 여기까지만 알려준다는 점이다. 단어는 그것이 정확히 어떤 심리 상태이고 어떤 사회적 상황인지, 그리고 왜 그러한 심리 상태와 사회적 상황에 부닥쳤는지, 무엇이 그러한 상황을 유발했는지 등 좀 더 세밀한 부분까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단어는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관심 사항,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는 무언가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넌지시 말해줄 뿐, 좀 더 자세한 정황까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말해주지 않는 것인지, 말해주고 있지만,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편지나 일기 등 종이에 글을 쓰는 일은 줄어들었지만, 이메일, SNS, 블로그 등 인터넷의 보급으로 오히려 예전보다 글을 쓰는 일이 많아진 요즘, 페니베이커 같은 학자들은 더 쉽고 빠르게 자료를 모으고, 그 많은 자료를 컴퓨터 단어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후속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된다면, 우리는 단어가 우리에 대해 시사하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날도 멀지 않다. 이런 분야의 연구가 더 널리 알려진다면, 앞으로 신입생이나 직원을 뽑을 때, 수필이 필수 항목이자 중요한 잣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결혼 중매사이트에서 짝을 찾을 때도 마치 궁합을 보듯 구혼자들의 언어 스타일 일치도를 분석하여 짝을 지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SNS나 블로그, 게시판 등에 글을 남긴다는 것이 사뭇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는 일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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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2019

바이두 비로그인 공유 자료 다운로더 앱 ~ 闪电下载(번개 다운로드)

출처: 闪电下载纯净版APPV91.1.7

闪电下载(번개 다운로드)안드로이드에서 바이두 공유 링크 자료를 로그인하지 않고 다운로드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앱이다. 같은 기능을 윈도우 PC에서 구현해주는 [판다운르도 웹 버전]이나 [Xdown]만큼 속도가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정적인 것도 아니라 딱히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부분적으로나마 한글화에 성공했고, 어쩔 땐, 혹은 자료에 따라 다운로드 속도가 1~2M까지도 나와줄 때도 드물게 있어 일단 소개해놓고 보자는 생각이 파닥 들었다. 그런 연유로 새벽잠을 설쳐가며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 앱을 소개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게 만든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 앱을 사용하는 사용자에게 ‘안정성’이란 말을 한 번쯤은 언급해주지 않고 넘어가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겠다 싶을 정도로 다운로드가 되고 안 되고는 완전히 엿장수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런 고로 다운로드가 안 된다고 나에게 투덜거린다고 해서 나로서도 딱히 대답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늘 그랬듯이 그냥 운에 맡기자!

그래도 이런 앱을 만들어 준 것이 어디냐?

비로그인 다운로드를 지원하는 걸 보면 번개 다운로드 앱도 (같은 기능을 지원하는 다른 프로그램처럼) 유료 계정과 연동되는 개인 서버를 따로 운영하는 듯싶다. 그래서 서버 상태에 따라, 혹은 연동된 계정 상태에 따라 다운로드 성공 여부가 오락가락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고로 (추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개인 주머니를 털어가면서까지 무료 사용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운영자에게 고마움 마음을 품기는커녕 안 된다고 욕을 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정말이지 그런 상놈도 따로 없다. 그렇다고 버그와 안정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정당한 피드백마저도 제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그런 피드백을 나에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저기 바다 건너 광활한 대륙에 사는 것으로 유추되는 번개 다운로드 제작자에게 문의하는 것이 상책이지 않을까 싶다(이것은 번개 다운로드 앱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블로그에 소개하는 바이두 관련 모든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다).

<바이두 클라우드 로그인 가능>
<설정 화면>

그래도 뭔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로그인하지 않고 바이두 공유 자료를 직접 받을 수 있는 기능 외에도 바이두 클라우드에 직접 로그인하여 자료를 다운로드하는 것도 가능하고, 사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토렌트 파일과 마그넷 링크도 지원하다. 포럼에 올라온 드라마 같은 비디오를 실시간으로 감상하는 것도 말로는 가능(하드웨어 디코딩도 지원!)하다. 그 외에도 출처 설명을 보면 꽤 기능이 많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바이두 다운로드 속도가 아닌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렇게 많은 기능은 죄다 공불하고 바이두 다운로드 속도에만 집중해주면 안 되겠니?

사실 부분 한글화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싶어 한글화를 해봤다. 그리고 闪电下载(번개 다운로드) 앱이 실행된 상태에서 클립보드에 바이두 공유 링크가 감지되면 번개 다운로드가 다운로드할 것이냐고 물어보기에 (동영상에도 두 번이나 물어본다) 공유 링크 주소를 일일이 입력하는 수고를 들이보다는 [복사하기] 기능을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번개 다운로드 부분 한글판 v91.1.7.7

링크 암호: a8ah / 압축 암호: singingda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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