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3

작은 집 | 너무 오래 살아서 슬픈 일이란

The Little House 2014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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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The Little House, 2014) | 너무 오래 살아서 슬픈 일이란

“나 왔어. 할머니? 왜 그래? 왜 울고 있어?” - 타케시
“나 말이야…너무 오래 살았어...” - 타키

보시다시피 내 ‘영화 리뷰’에는 정통적인 드라마 장르는 별로 없다. 이것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은 아니고 특별히 ‘드라마’라는 장르를 꺼려서 그런 것이다. 소싯적에는 쩨쩨하게 장르 같은 것 따지지 않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되는 작품은 다 봤다. 그러나 주로 독서로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드라마’는 피하는 장르가 되었다. 여기에는 그럴 듯한 이유가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고, 주로 책을 읽는 도중 기분 전환 삼아 영화를 찾다 보니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장르를 찾게 된다. ‘공포’와 ‘SF’ , ‘액션’ 같은 장르 말이다. 진지한 것은 책으로도 충분하니 영화는 머리도 식히고 기분도 전환할 수 있는 가볍고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 것이다. 뭐, 그렇다고 모든 ‘드라마’가 진지하다 못해 지루하고 골치 아픈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튼,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 「작은 집(The Little House, 2014)」은 내 블로그에서는 보기 드문 정통 ‘드라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영화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얼마 전에 본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 (重版出来!, 2016)」의 주연을 맡은 여배우 쿠로키 하루의 인상적인 연기가 날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생기발랄하게 똘망똘망 빛나는 눈망울을 부라리며 새끼 곰처럼 여기저기 쏘다니는 활기찬 연기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그렇게 예쁜 얼굴도 아니고, 그렇다고 섹시함으로 어필하는 배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니 왠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그녀의 해맑은 눈빛과 청초한 미소, 소탈한 자태가 날 사로잡았다.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녀가 발산하는 알듯 모를 듯한 페로몬에 빠져들고 말았다고 할까? 그런 상태에서 드라마가 끝나니 당연히 아쉬웠고, 그래서 그녀를 다시 보고픈 간절한 마음으로 그녀가 주연한 영화를 찾다 보니 「작은 집」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The Little House 2014 scene 01

영화 「작은 집」은 혼자 살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할머니 타키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타키의 손자뻘 되는 타케시와 다른 친척들은 할머니가 혼자 살던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던 중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집필을 끝낸 것으로 보이는 자서전을 펼쳐본다. 혼자 사는 할머니가 안쓰럽기도 하고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는 맛있는 돈가스도 먹을 겸 타케시는 평소 틈틈이 할머니를 방문했었다. 그는 할머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집안일을 거들어 주면서 어떨 때는 할머니가 자서전 쓰는 것을 격려하는 독자로, 어떨 때는 신랄하게 비평하는 비평가로서 얄궂은 참견꾼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돈가스만큼이나 할머니의 글이 좋았고, 할머니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래서 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할머니의 집을 방문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인생을 읽고 싶어서 말이다.

The Little House 2014 scene 02

고향에서 제국의 수도로 상경한 타케시의 할머니 타키는 하녀 생활을 했다. 타케시 같은 요즘 젊은이에겐 하녀는 ‘노예’처럼 고생스럽고 비천한 직업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1930년대 도쿄 중산층 가정엔 하녀는 필수였을 정도로 하녀라는 직업이 낯설거나 천대받는 직업은 아니었다. 타키는 하녀 생활이 신부수업 같았다고 말한다. 특별히 고생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벚꽃이 질 무렵, 타키는 모시던 선생님의 소개로 토키코 사모님댁의 하녀로 가게 된다. 주인어른은 장난감 회사 임원이었고, 쿄이치라는 작은 소년이 있었다. 타키는 친절한 주인어른 가족들도 좋았지만, 그들이 사는 빨간 기와지붕의 작고 귀여운 집이 무척이나 좋았다. 타키가 작은 집에 정착하고 얼마 안 있어 도쿄가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일본 전역이 자부심과 기대감으로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을 때, 작은 집에 장난감 회사의 젊은 디자이너 이타쿠라 씨가 방문한다. 어딘지 모르게 모성애를 자극하는 연약한 모습과 모던한 느낌이 멋있게 보였던 이타쿠라는 사모님과 각별한 사이로 발전하고, 곁에서 타키는 초조하게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보게 된다.

The Little House 2014 scene 03

「작은 집」은 나카지마 쿄코의 동명 원작을 각색한 영화로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초기까지의 도쿄 중산층 가정생활을 한 폭의 그림 같은 ‘작은 집’을 무대로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재밌게도 타키가 회고하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추억으로 가득한 과거는 단편적인 역사 교육을 받은 타케시 같은 젊은이에겐 과거를 미화하는 왜곡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타케시는 작문을 검사하는 선생님처럼 할머니의 자서전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틈만 나면 전황이 악화하는 시기에 어떻게 그런 생활을 누릴 수 있느냐고 할머니를 구박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뽀로통한 얼굴로 자신은 그저 경험했던 그대로를 쓴 것이라며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어떨 때 할머니는 내 글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면 더는 자서전을 쓰지 않겠다고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실제로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과 책으로만 막연하게 과거를 이해한 사람 사이의 괴리는 이다지도 깊고도 끈질긴 것이다.

우리가 보통 기억하고 싶을 정도로 괜찮았던 추억을 회상하면서 범하는 흔한 오류인 과거 미화가 타키에게서만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다고 모든 추억이 진실을 빗겨가는 왜곡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의 자서전은 우리가 지레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패전이 짙어지기 전까지는 도쿄 중산층의 삶은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것조차 ‘과거 미화’라고 싸잡아 비판해야 할지, 아니면 역사에서 소외된 보통 사람들의 보통 삶을 부각시켰다고 인정해야 할지 여전히 아리송하기는 하지만, 기록이 말하는 과거와 그 때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의 과거 사이에는 분명히 격차가 존재한다. 한편, 할머니와 손자가 아옹다옹 다투면서도 마치 친구처럼 돈독하게 정을 나누는 진득한 모습이 부럽다. 너무나도 보기 좋다. 이것이 일본 가정생활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기풍이라면 단연코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전쟁이 태평양 전역으로 확산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처럼 일본을 집어삼켜 갈 즈음 ‘작은 집’에서 은근하게 전개되었던 연애사건은 막을 내리고, 그렇게 짧지 않았던 할머니의 자서전도 끝난다. 어찌 되었든 연필에 침까지 발라가며 꼭꼭 눌러 쓴 자서전을 마무리 지었으니 시원섭섭할 법도 한데 어찌 된 일인지 할머니는 너무 오래 살았다고 자책하며 눈물을 펑펑 쏟는다. 할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하염없이 깊어만 가는 추억이 쏟아내는 쓸쓸함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오래 산 것이 슬펐던 것일까? 아니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나날이 되새기며 추억에 잠기는 것에 진저리가 났던 것일까? 아니면 손자조차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고약한 세상을 너무 오래 살았던 것이 한스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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