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정치사 | 로드릭 맥파커 | 별의 탄생과 진화를 떠올리게 하는 중국 현대사
모든 위대한 혁명은 천 년의 비전을 제시하지만,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을 다 얻지는 못한다. (『중국 현대정치사』, 627쪽)
별처럼 탄생한 ‘신중국’
계급투쟁에 기반을 둔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인민민주독재 등의 강령으로 1921년 창당한 중국 공산당에 의해 태어난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는 별의 탄생과 진화를 떠올리게 한다. 우주를 떠도는 수많은 먼지가 어느 날 밀도 높은 하나의 중심을 향해 모이듯, 넓은 대륙에 점점이 흩어져 있던 혁명가들은 ‘중국 해방’의 이상을 품은 공산당 깃발 아래 모여 놀라운 응집된 투쟁력을 보여주었다. 이제 막 탄생한 별이 중력수축으로 중심온도가 상승하면서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듯, 특유의 지도력과 탁월한 역량으로 당을 이끈 마오쩌둥(毛澤東)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혁명 무리는 지칠 줄 모르는 뜨거운 열정을 발산하여 중국 인민을 해방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통일된 중국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 막 탄생한 별이 지구처럼 생명이 살 수 있는 경이로운 별로 거듭나려면 그냥 기다린다고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운이 좋아 주변적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별이 안정되기까지는 끊임없는 지각변동과 무수한 기후변화라는 길고도 긴 인고와 수난의 시련을 견뎌내야 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떠한가?
폭풍 성장한 중국이 앓는 병
혁명 1세대들은 지도자이자 우상이기도 한 마오쩌둥의 공산주의적 이상을 현실에 반영한 사회주의 노선에 따라 인류사에 없었던 거대한 대중 선동 실험인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의 수난을 견뎌내야 했다. 이후 잠시 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제2대 영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 • 개방 정책으로 중국은 ‘이완과 통제’의 주기적인 방황과 그에 따르는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 했고, 결국 톈안먼 사태라는 거대한 지각변동을 맞이했다. 냉혹한 통솔력으로 톈안먼의 불을 잔인하게 진압한 덩샤오핑은 남순강화로 개혁 • 개방 정책에 다시 활력을 붙어 넣으면서 3대 영도자이자 문민 지도자인 장쩌민(江泽民)에게 무사히 바통을 넘겼다. ‘3개 대표론’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내세운 장쩌민은 국유기업 해체를 주도하며 대외 개방을 가속하고, 개혁으로 중국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전문직 엘리트들을 정치적으로 포용함으로써 마오쩌둥 노선의 계급투쟁을 묽게 희석시켰다.
IMF, WTO 가입 등 세계 경제에 깊숙하게 개입한 중국은 개혁 • 개방 정책에 따른 시장 경제 체제 도입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극심한 빈부 격차, 도시와 농촌 간의 발전 격차,지역 간의 불균형 발전,환경오염,수출 지향적 성장과 국내 소비의 불균형, 사회주의 복지 시스템의 해체, 청년 실업 등 각종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자 사람을 기본으로 삼고 균형적인 발전을 내세운 ‘과학적 발전관’의 후진타오(胡錦濤)를 거친 시진핑(習近平)은 ‘중국몽(中國夢)’과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등을 내세우며 앞으로 당내 민주화와 공민(사회) 민주화를 동시에 강화해 나갈 것을 목표로 삼았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경제 발전과 정치적 안정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애써 중국 특색 사회주의로 설명하려고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을 맹몽적으로 도입함으로써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겪는 고질적인 병폐들을 그지없이 체현한 중국의 현실을 보면 순수한 이데올로기로써 인간 중심의 ‘사회주의’와 자본 중심의 ‘자본주의’, 그리고 그 둘의 어설픈 조합 역시 실패했음이 명확하다. 하나는 너무 가난해서 경제적 정의를 실천할 기본적 여건이 충족되질 못했고, 또 한쪽은 너무 부유해서 손 쓰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한번 불이 붙자 태양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부를 향한 인민의 갈망과 탐욕은 그동안 빵과 고기가 아닌 선전과 대의, 혁명만으로 인민의 배를 채우려고 고집해 왔던 알량한 사회주의 이상을 잠식해버렸다.
마르크스가 예견했듯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면 자본주의를 통해 충분한 부를 축적해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지속적인 계급투쟁과 선동을 통해 인민을 도덕적으로 완성된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고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 공허한 믿음의 부질없음은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재난을 통해 증명되었다. 이처럼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중국은 사회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경제발전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개혁 • 개방 정책으로 세계 경제에 뛰어들었다. 중국이 시장 경제 체제를 받아들인 것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 특색 사회주의’ 건설에 필요한 도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국은 눈부신 성장으로 미국의 뒤를 바짝 쫓는 G2의 자리까지 올라서며 세계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경제적 불평등과 지역 간 발전 속도 차이에 따른 내부 갈등, 만연한 부정부패로 말미암은 공산당 입지의 약화, 혁명 세대의 퇴장과 함께 퇴색해진 혁명 이데올로기 등의 부작용으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 건설의 장래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낙관적인 것은 덩샤오핑 이후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권력 승계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과 관료 경력을 쌓은 문민 간부들이 혁명 세대를 대체하여 집단영도체제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개인적 권위에 의존하던 구시대적 정치 투쟁에서 벗어나 안정적이고 제도적인 정치 체제의 기틀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뜨거웠던 별이 식으며 안정기를 맞이하듯, 중국 역시 정치적 안정을 되찾고 있다.
중국 앞에 놓인 또 하나의 거대한 실험
이제 중국이 풀어 할 과제는 덩샤오핑이 언급한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 진화하여 후진타오 지도체계가 내세운 ‘민주주의와 법에 기초하고,공명정대하고,신뢰와 우의를 가지고,열정과 활력으로 충만하고,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고,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주의 사회’인 ‘사회주의 조화사회 건설’을 이룩하는 것이다. 정치가 안정을 되찾을수록 사회 및 경제적 안정에 쏟아부을 수 있는 노력과 시간적인 여유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인민이 현재의 부조리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부 식자들은 가속화된 개혁 • 개방 정책 때문에 중국이 소련처럼 화평연변(和平演邊)식으로 붕괴시킬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그러나 아직 중국 공산당의 개방 • 개혁 정책 뒤에는 여전히 중국 특색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으며, ‘국가안전위원회(State Security Committee, 國家安全委員會)’를 설립하면서 ‘허용되지 않은 것’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늦추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특히 국가안전위원회는 최근의 추세에 맞게 인터넷에 대한 정부의 감독과 통제를 강화해 나갈 것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2016년) 일어난 중국 클라우드 서비스의 잇따른 폐쇄는 인터넷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작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 ‘가난한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등 덩샤오핑식의 실용주의 노선이 큰 성과를 얻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이 얻은 큰 결실 뒤엔 인민의 엄청난 불평 • 불만이 도사리는 것 역시 사실이다. 작가 량샤오성(梁曉聲)이 자신의 수필 『우울한 중국인(郁闷的中国人)』을 통해 진단한 중국인의 우울증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개혁 • 개방에 따른 각종 부작용을 덩샤오핑이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먼저 부자가 된 자가 다른 이들을 도와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낙관하면서 문제들을 후세에게 떠넘겼다. 그런데 부자가 – 강제적인 세금 징수가 아닌 – 선의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 부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중산층이라는 경제적 지위를 어렵게 얻은 인민이 훗날 ‘사회주의 중급단계’로 도약할 기회가 왔을 때 순수히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누어줄까? 이것은 로드릭 맥파커(Roderick MacFarquhar)의 『중국 현대정치사(The Politics of China: Sixty Year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를 배우고 이해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중국의 괄목할만한 현대사가 증명하듯) 공산주의 인간이 자본주의 인간으로 변하기는 물 마시듯 쉽지만, 과연 그 거꾸로도 가능할지. 대약진, 문화대혁명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 중국의 앞날에 놓여 있는 듯하다.
마치면서...
중화인민공화국 건립부터 후진타오가 재임한 2009년까지의 60여 년간의 중국 정치사회를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종합적 평가까지 내린 로드릭 맥파커(Roderick MacFarquhar)의 『중국 현대정치사: 건국에서 세계화의 수용까지 1949~2009』은 실제적인 사회주의 건설이나 중국 정치 • 사회에 관심 있는 독자를 위해서는 보기 드문 훌륭한 책이다. 이러한 독자들에게는 한 장 한 장이 소중한 인연으로 다가와 그동안 가려웠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줄 것이지만, 막연하게 『중국 현대정치사』를 선택한 독자는 학술서이니만큼 교과서처럼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볼 때는 읽으면 득이 되었지 절대 잃을 것이 없는 책이지만, 선택에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럴 때 용기 한번 발휘해서 광명이라도 찾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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