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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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물 이야기 | 모시치 대장의 따뜻한 추리 세계

맏물 이야기 | 미야베 미유키 | 모시치 대장의 따뜻한 추리 세계

맏물 이야기 | 미야베 미유키 |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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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추리소설로 돌아왔다!

전편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서 짤막짤막 등장했지만, 무게감은 태산처럼 묵직했던 모시치 대장을 기억하는가? 시큼털털하면서도 의외의 명석한 추리로 주인공 기질을 다분히 보여주었던 모시치 대장을 작심하고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작품이 『맏물 이야기(初ものがたり)』이다. 이번 작품은 모시치 대장의 ‘오캇피키(岡っ引き)’라는 직분을 100% 살려 범죄와 추리에 집중한 흔적이 역력하다. 고로 지난 작품에서 ‘추리’ 양념이 살짝 부족해 살짝 실망한 독자가 있다면, 그 실망감은 이번 작품을 통해 살짝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 배경이 에도 시대이니만큼 현대 추리소설처럼 물증 기반의 과학적인 추리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또, 그런 현대적이고 세련된 추리소설은 이미 넘칠 대로 넘친다. 바닥에 어질러진 퍼즐 조각 맞추듯 물증을 찾아내어 분석하고 그로부터 범죄의 그림을 완성하는 과학 수사는 이지적인 멋이 있어 좋고, 사람들 간의 복잡한 사회적 관계와 저마다의 비밀스러운 사연에서 사건의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정황 추리를 주로 사용하는 『맏물 이야기』는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그래서 모시치 같은 사람이 나름 활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모시치 대장은 완고하기로 유명해서 성의 돌담보다도 머리가 딱딱하다는 말을 듣지만, 그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있는 마음은 방금 오븐에서 꺼낸 카스텔라처럼 부드럽고 따뜻하다. 피해자의 고통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말 못 할 고민까지도 헤아릴 수 있는 그이기에 증거 부족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건도 어떻게든 매듭을 지을 수 있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물증에 의한 추리를 아예 외면한다는 의미는 아니니 오해 없기를. 어디까지나 비중이 그렇다는 말이다.

미야베 미유키(宮部 みゆき)가 시대소설을 쓰기 전에 항상 읽는 작품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오카모토 기도(岡本綺堂)의 『한시치 체포록(半七捕物帳)』이다. 『한시치 체포록』은 『맏물 이야기』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미미 여사의 소설 못지않게 재미 역시 뛰어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에도를 배경으로 한 시대소설 중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그리 많지 않은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꼭 읽어보도록 하자.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생성 이미지

풍요 뒤에 숨은 어둠

누누이 말했듯 미야베 미유키가 에도 시대를 계속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그리고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미야베 월드 제2막엔 작가의 작심 같은 포부가 물처럼 빈틈없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미미 여사의 시대소설을 몇 권 읽다 보면, 문득문득 타임슬립 당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에도시대를 동경하게 된다. 이것은 나이 드신 분들이 70 • 80년대를 동경하는 것과도 사뭇 비슷하다. 그분들이 그때 그 시절이 살기 좋았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때가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더 풍족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돌아오지 않는 청춘에 대한 향수와 미운 정 고운 정을 탁구처럼 주고받았던 이웃들 간의 소통에 대한 기억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미미 여사의 붓끝에서 환생한 에도엔 인정과 소통이 있다.

그렇다고 마냥 미화만 하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조명 뒤엔 으레 그림자가 있듯 에도 시대에도 그늘진 곳은 엄연히 존재한다. 고이시카와 요양소는 가난한 환자들을 무료로 보살펴 주는 복지 시설이라는 점에서 빛이지만, 환자들의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난은 어둠이다. 번성한 상가들은 에도의 부와 번영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빛이지만, 자기 자식에게는 의상 겨루기 같은 도락을 즐기게 해 주면서 하녀에겐 하루 두 끼 먹이는 것도 아까워하는 상인 밑에서 생활하는 고용살이 일꾼의 말 못 할 고달픔은 어둠이다.

에도가 풍요롭고 화려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서민들의 생활은 빠듯하다. 갓 나은 자식을 죽이고 몰래 파묻어야 할 정도로 빠듯하다. 버림받은 아이들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걸 못 본 척해야 할 정도로 빠듯하다. 마누라를 전당포에 잡혀서라도 먹고 싶다고들 하는 제철 가다랑어를 겨우 두세 조각 사다 먹어야 할 정도로 빠듯하다.

『맏물 이야기』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빈부 격차의 음울함과 그 빈부 격차에 짓눌려 신음하는 서민들의 신산한 생활이 상처를 싼 붕대의 피처럼 배어 있다. 그런데도 그들이 무너지지 않고, 삶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것은 가난한 사람의 마음은 가난뱅이가 잘 안다는 역지사지에서 발로한 인정이지 않을까? 이웃이 갓난아기를 죽여 파묻은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낯선 사람이 그걸 캐물으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쉬쉬하고, 그러한 사정을 알게 된 오캇피키는 차마 포박해 갈 수 없다며 눈감아주는 그런 마음 씀씀이. 현대인은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현대 사회에선 명백한 범죄인) 영아 살해를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에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에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 또한, 에도 사람들은 살면서 생기는 사람들 간의 다툼, 분쟁, 마찰, 갈등을 부모와 자식 간에도 편을 갈라 고소하는 현대인들과는 달리 쌍방 간의 대화, 그것이 실패하면 모시치 같은 중재자를 통해 (법정 따위가 아닌) 그들 손에서 어떻게든 매듭을 지으려고 했다는 것.

이런 차이들이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그리고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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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의 원조?

사실 『맏물 이야기』엔 모시치보다 더 흥미를 끄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후카가와 도미오카바시 다리 기슭에 있는 유부초밥 노점상이다. 흔해 빠진 노점상이지만, 당시로서는 새벽 두 시까지 장사하는 유일한 심야 노점상이라고 한다. 거기다 유부초밥 가게지만 유부초밥뿐만 아니라 조림과 구이 등 그때그때의 재료에 따라 여러 종류의 요리를 낸다. 모시치가 인정하는 불한당들의 두목 가쓰조도 범접하지 못하는 기품과 요리사치곤 지나치게 탄탄하고 장대한 기골은 노점상 주인이 무사 출신일 것이라는 정도만 짐작할 수 있게 할 뿐 진짜 정체는 끝내 드러내지 않는다. 만만치 않은 주인장은 엄한 얼굴에 불가사의한 미소를 담으면서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손님을 맞이한다. 떠오르는 사람 없는가?

된장국, 맥주, 사케, 소주, 메뉴는 이것뿐이지만 재료가 있으면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것이 내 방침이다. 손님들이 있느냐고? 생각보다 많다.

그렇다. 바로 아베 야로(安倍夜郎)의 만화 『심야식당(深夜食堂)』에 등장하는 마스터다. 심야식당 마스터와 유부초밥 노점상 주인장 두 사람은 심야 영업, 범접하기 어려운 외모, 알 수 없는 과거, 간판 메뉴와 상관없이 그때그때 재료에 따라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손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점에서도 일맥상통한다. 아베 야로는 『맏물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입춘 전날 밤, 액운을 쫓는다며 많은 사람이 콩을 뿌리며 도깨비들을 내쫓을 때, 콩에게 팔매질 당하며 도망쳐 다니는 도깨비들이 가엾다면서 노점상 한구석에 빈자리를 만들어 도깨비들에게 술을 대접하는, 보통 사람들과 꽤 어긋나는 기묘한 다정함도 닮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심야식당의 마스터는 유부초밥 노점상 주인장과는 깊던 얇던 모종의 연관이 있다.

마치면서...

어찌 되었든, 떠밀리듯 한해의 끄트머리에 서게 되면 옛날 일은 먼지 털 듯 차가운 바람에 날려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싶다. 글을 쓰다가 마무리할 때쯤 되면 앞선 못난 글들은 애써 잊어버리고 ‘그럭저럭 괜찮은 글‘이라는 감흥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수업 중에 몰래 소설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귀가 떨어져 나가는 고난 속에서도 장아찌의 누름돌처럼 버티고 앉아 읽고 싶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유부초밥 노점상 주인장은 모시치가 사는 집의 새끼 고양이 이마 정도 넓이의 마당에 있는 감나무가 15년 만에 열매를 맺었다는 기가 막힌 소식을 전하자,

“꽃나무가 아니라 열매가 달리는 나무가 마당에 있으면 즐거운 법이지요.”

라고 시시한 한마디를 보탠다.

새끼 고양이 이마는커녕 새끼 쥐 눈알만큼의 마당조차 꿈꾸기 어려운 한국인에게 유부초밥 노점상 주인장의 한마디는 얼큰하게 취한 도락가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읊는 시처럼 허망하게 들린다.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머릿속에 낀 흐리멍덩한 안개를 날려 보낼 수 있는 그런 마당이 있으면 매우 좋겠다. 아니면 근엄하게 열병해 있는 책들과 이런저런 꿍꿍이를 맘껏 꾀할 수 있는 서재라도 있으면 이런저런 시름을 덜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그런 서재에 누가 반갑게 찾아와 파김치처럼 축 늘어진다면, 망설임 없이 미미 여사의 책을 추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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