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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2019

[책 리뷰] 창의력 부족을 민족성에서 찾다 ~ 중국, 엄청나게 가깝지만 놀라울 만큼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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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부족을 민족성에서 찾다

Original Title: 中國人的邏辑 by 石毓智
이 책을 쓰게 된 목적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중화민족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사고습관을 알고, 그것의 득실을 이해하여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길 바라서다. 그것을 토대로 지혜를 넓히고 경쟁력을 높여 인류의 과학 문화 발전에 공헌하길 바라서다. (『중국, 엄청나게 가깝지만 놀라울 만큼 낯선』, 6p)

책을 읽고 보니 책 제목이 눈에 거슬리다

오늘 리뷰하는 책의 한국어판 제목은 부제까지 포함하면 책 제목치고는 무지하게 긴 『중국, 엄청나게 가깝지만 놀라울 만큼 낯선: 의외로 낯선 중국 문화와 사유의 인문학』이지만, 원제는 이보다는 훨씬 간략한 ‘中國人的邏辑’이다. 구글 번역이 아니라 바이두 번역을 이용하여 한국어로 번역하면 ‘중국인의 논리’다. 간혹 외국책이나 외국영화의 제목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원제나 작품의 내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한, 그래서 원제와 동떨어진 감이 없지 않은 한국어 제목이 탄생하곤 하는데, 이 책의 제목도 그런 생뚱맞은 제목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인의 논리’라는 제목이 어떤 우여곡절을 거쳐 『중국, 엄청나게 가깝지만 놀라울 만큼 낯선』으로 재탄생했는지 그 오묘한 이치를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책을 읽고 나면, 그래서 내용을 알고 나면 한국어 제목이 상당히 놀라울 만큼 낯설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별로 의미심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책 내용을 성의있게 암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기차처럼 길어 보이기만 하는 제목은 한국인의 입장을 고려해서 나온 듯한 추측이 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 영화나 책이나 ─ 가능한 한 원제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제목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원제는 직역하고, 현재의 한국어 제목을 부제로 덧붙이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중국인의 논리: 중국, 엄청나게 가깝지만 놀라울 만큼 낯선』처럼 말이다.

낯설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고

뜬금없이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려가며 제목에 시비를 건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중국, 엄청나게 가깝지만’이라는 말에는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 뒤에 붙은 ‘놀라울 만큼 낯선’이라는 말은 독자의 소양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중국이 낯설게 느껴졌을지 몰라도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어찌 된 일인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중국의 민족성에서 놀랍게도 한국의 민족성과 유사한 면을 많이 발견하면 할수록 더욱더 중국인이 가깝게 느껴진다. 물론 독자의 가치관이나 쌓아온 역사 지식이나 살아온 경험에 따라, 그래서 한국의 민족성을 어떻게 보고 이해하는지에 따라 이와는 반대로 작용할 수도 있다.

즉,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의 낯선 모습에 더 많은 의미를 둘 수도 있고, 이 책의 한국어 제목도 그러한 연유로 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최소한 나는 저자 스위즈(石毓智)가 조목조목 일목요연하게 지적한 중국의 민족성에서 중국인의 특성뿐만 아니라 한국의 민족성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 그래서 어떻게 보면 두 민족이 쌍둥이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물론 같은 부모, 같은 환경 아래에서 서로 사이좋게 성장한 화목한 쌍둥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부모와 환경 아래에서 자라면서 일찌감치 사이가 틀어져 어쩌다 만나기만 하면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는, 일란성보다는 이란성 쌍둥이에 더 가깝지만 말이다. 한국인의 유전자는 중국 남방에 사는 한족보다는 북방에 사는 조선족이나 만주족과 더 가깝다고는 하지만, 문화 유전자인 밈(Meme)으로만 따지면, 중국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문화적으로도 이란성 쌍둥이 정도는 될 것 같다.

중국의 민족성에서 발견한 한국의 민족성

그렇다면 이쯤에서는 『중국, 엄청나게 가깝지만 놀라울 만큼 낯선』에서 스위즈가 통찰한 전 세계 중국인을 망라하는 민족성에서 한국인의 민족성과 유사한 점을 (이것은 순전히 내 주관적인 관점이다!) 꼽아보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 첫 포문은 먹는 행위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중국인처럼 ─ 나를 포함한 ─ 한국인도 먹는 모습으로 그 사람의 인품을 가름하거나 첫인상을 결정하는 사람이 꽤 있다. 누군가와 첫 식사 자리를 같이하는데 먹는 둥 마는 둥 깨작깨작 밥을 먹는 사람, 심술 난 아이처럼 편식하는 사람, 음식을 터무니없이 남기는 사람, 밥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는 사람 등 이들의 첫인상은 같을 수가 없다. 또한, ‘밥은 잘 먹고 다니니?’, ‘밥 먹었어?’, ‘식사하셨어요?’ 등은 가족, 친구, 지인, 혹은 처음 만난 사이에서도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눌 때 가장 흔히 주고받는 말이다. 옛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의 음식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인은 날짐승이나 들짐승을 봤을 때 가장 먼저 '잡아먹어야겠다'라는 생각부터 한다고 하는데, 한국인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중국인은 빈 땅을 보면 먹을거리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서양인은 무엇을 심어야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어떨까? 아마 요즘 사람들은 빈 땅을 보면 집을 짓거나 상가를 올려 세를 받아먹을 생각을 할 것 같다. 동양화의 매력은 여백인데, 빈 땅을 그냥 놔두질 못하니 도시 공간의 여백이 모두 죽어가는 덕분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숨 막혀 죽을 지경인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교육 부분이다. 스위즈는 중국의 교육 시스템이나 부모는 개성이 강하고 독립적이거나 권위와 전통에 도전하는 아이보다는 기존 질서에 순응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평범한 사람을 길러낸다고 (한국이랑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말한다. 부모는 자식이 사회에 큰 공헌을 하기보다는 평생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거나, 아니면 자녀의 성공이나 출세를 등에 업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위세 등등한 부모가 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중국이나 한국의 젊은이들은 창업이라는 모험과 도전의 길로 들어서기보다는 대기업이나 공무원이나 교직 등 안정된 울타리 안에서 일하기를 바란다. 또한, 지나치게 기초와 준비를 강조하는 나머지 창업과 혁신에 가장 필요한 모험 정신과 기회를 놓치기 일쑤다.

이렇게 모험 정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안정적인 것만을 찾는 데다가 모방 정신까지 투철하다 보니 가게를 열어도 뭔가 새로운 것을 모색하기보다는 장사가 잘되어 보이는 업종을 유행처럼 따라 하다가 결국 자멸한다. 그래서 한 중국인이 가게를 열어 돈을 엄청나게 벌면, 얼마 안 가서 다른 중국인이 같은 지역에 하나둘씩 같은 가게를 연다. 그런 식으로 제 살 깎는 경쟁이 시작되고, 다들 돈을 못 벌다가 결국은 하나둘 문을 닫는다. 스위즈는 이 이야기를 중국인의 특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소개하는데, 한국도 남 따라 하기는 뒤지지 않는다. 1990년대 말 우리 동네에서 최초로 PC방을 개업한 입장으로서는 소름 끼치도록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 번째로 살펴봐야 할 것은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폐해다. 직업에 대한 편견, 공정함에 대한 이해 부족, 어떤 일에 대해 옮고 그름을 따질 때 사람의 지위나 명성, 부를 보고 판단하는 관본위(官本位) 사상, 질서와 권위에 대한 복종을 미덕으로 여기는 전통, 지나치게 인내를 강요하는 사회 등 한때 유교를 광신했던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구구절절한 말들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바는 직관적 사고방식이다. 스위즈는 중국의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로 중국인의 수많은 발견이 직관적 관찰에만 그치고, 이것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논리적이고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부분이 약했다고 분석한다. 그로 말미암아 문학, 역사, 철학 방면의 직관적 사유 분야는 나름 발전할 수 있었지만, 번뜩이는 생각이나 제품이 적지 않았음에도 추상적 • 논리적인 과학 체계가 만들어지기 어려웠던 까닭에 현대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중국인이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사고가 발달하지 못하고 대신 직관적 사유가 발달한 근원에 대해 스위즈는 기호화되기 어려운 한자의 특성을 언급한다. 세계적인 발명이라 할 수 있는 측우기나 금속활자를 개발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이런 발명품들을 통해 어떤 과학적인 이론이나 기술 체제를 확립하여 지속적인 개량과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나머지 이제는 중국에까지 뒤처질 위기에 처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일리 있는 분석이다.

이밖에도 낯선 이를 차갑게 바라보는 폐쇄성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담장, 울타리 문화, 성격적 특성과 습성을 지역화하는 경향, 쉽게 감동하고 쉽게 감정에 휩쓸리는 냄비 근성, 자신의 잘못을 어떻게든 상대의 잘못으로 덮어보려는 행동, 개인의 능력과 도덕성을 집요하게 연결 짓는 것, ‘나 하나쯤이야.’ 하는 이기주의 등 중국인의 민족성에서 우리의 새가슴을 뜨끔하게 할 항목은 한둘이 아니다. 반면에 짝퉁에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것과 목숨보다 더 체면을 중시하는 풍조, 오직 돈으로만 성공을 판단하고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돈에 대한 맹신과 지나친 탐욕, 불신이 난무하는 교육계, 연줄과 인맥이 없으면 아주 간단한 일조차 복잡하게 변해버리는 이상한 사회 등 어딘지 모르게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중국은 놀라울 만큼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낯설 수 있다.

창의력을 죽이는 중국인의 민족성

원제 ‘中國人的邏辑’를 직역한 그대로 중국인의 논리와 사고방식을 허심탄회하게 토로하는 한편, 그로 말미암은 부작용과 폐해를 진지하게 질책하는 책이다. 부끄럽게도 남의 험담을 듣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고, 그 대상이 우리를 위협하는 경쟁 상대라면 즐겁다 못해 고소하기까지 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러니까 중국은 더는 발전할 수 없는 거야’, ‘이래서 중국은 안 되는 거야’ 등의 안일한 생각을 품는 안일한 사람이 있을 수 있겠으니, 이 책은 그런 안일한 한국 독자들의 안일한 기대와 희망을 충족시키고자 쓰인 안일한 책은 절대 아니다. 그런 생각으로 가볍고 만만하게 이 책을 읽은 나머지 오히려 중국을 더 얕잡아 보는 우를 범하게 될까 봐 걱정이 태산이다.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에겐 부담스럽게도 『중국, 엄청나게 가깝지만 놀라울 만큼 낯선』은 중국인의 습관성 사고의 폐단과 이해득실을 따져보고 반성하기 위해 쓰인, 지혜롭고 근면한 민족인 중국인을 각성시켜 한 단계 더 나아가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쓰인 책이다. 그렇다고 중국인이 당장 이 책을 읽고 뜨거운 반성의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아, 이래선 안 되겠구나’라고 뉘우치면서 곧바로 자기성찰의 길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는 성급한 판단이지만, 체면에 죽고 체면에 사는 중국인 스스로가 외부 세계에 드러내기 껄끄러워하는 민낯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그럼으로써 각성을 촉구한다는 것은 마치 루쉰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을 일게 할 정도로 섬뜩하면서도 충격적인 일이다.

스위즈는 총 10장에 걸쳐 중국인의 사고방식을 논하면서, 그리고 유구한 문화와 전통에서 현대 사회에 맞지 않거나 오히려 현대 사회 발전에 해가 되는 민족성의 단점들을 대중이 알기 쉽게 요목조목 따지면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능력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창의력이다. 스위즈는 ‘왜 오늘날의 뛰어난 과학기술은 중국인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가?’라는 질문의 답으로 중국인의 부족한 창의력을 제일로 꼽고 있다. 중국 민족성의 단점들을 총 10장에 걸쳐 나열한 이유도, 뒷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천박한 호기심이나 만족시켜줄 가십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중국인의 민낯을 드러내어 전 세계인의 비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다. 바로 중국인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창의력이 부족한 근원을 중국인의 민족성에서 찾고자 함이다.

정말로 창의력의 부족이 민족성에 있고, ─ 쉽지는 않겠지만 ─ 창의력에 해가 되는 민족적 특성을 점차 개선해나갈 수 있다면, 그리고 중국이 정말 그럴 의도와 의지가 있다면 이 책은 중국인에게는 정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이다. 스위즈의 바람대로 중국인이 각성과 반성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고갈된 민주 의식도 싹이 터 그것을 토대로 인류의 과학 문화 발전에 공헌하는 방향으로 진보한다면야 천만다행일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만, 지금처럼 공산당이 배출한 제3대 황제 시진핑을 필두로 고약한 공산당이 모든 걸 좌지우지한다면 우리에겐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다. 중국의 어마어마한 경제력에 창의력까지 더해져 과학기술과 혁신 분야에서도 중국이 성큼 나아갈 수 있다면, 중국의 국가경쟁력은 세계 최고가 될 것이며, 그로 말미암은 전 세계적 여파는 상상하기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튼, 이 책이 지금의 중국에 당장 큰 영향을 끼칠 리는 없겠지만, 깨어 있는 중국인이 많을수록, 그리고 그들의 외침이 더욱더 커질수록 중국의 미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물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인류에 유익한 방향으로만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말이다.

우리도 부족한 것이 창의력인데

의도적이지 않게도 이 책은 중국처럼 창의력에 목말라 허덕이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사가 지나온 성장 지상주의의 씁쓸한 뒤안길을 다시금 뒤돌아보게 한다. 투기와 과대광고가 유행하는 것은 그 사회에 창조력이 부족함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중국인은 자연 앞에서 시나 노래를 지으면서 아름다운 문학을 얻었고, 유럽인은 자연 앞에서 거대한 돌의 이동 원리를 생각하여 새로운 과학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면, 한국인은 자연 앞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무엇을 남겼나? 사고습관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낸다면, 한국인의 사고습관은 어떠한 논리와 이치에 맞물려 돌아가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투영되고 있을까? 물론, 스위즈의 이 책처럼 ‘한국인의 논리’나 민족성을 분석한 책이 어딘가에 있겠지만, 막상 펼쳐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스위즈의 책은 다른 나라 이야기니 그러려니 하고 읽을 수 있었지만, 내가 만약 중국인이라면 나의 속내나 치부를 끄집어내는 『중국, 엄청나게 가깝지만 놀라울 만큼 낯선』을 읽고자 한다면 상당한 각오 없이는 어렵지 않을까? 아마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불편한 마음을 억누르는 인내심과 진정시킬 수 있는 냉정함이 꽤 많이 필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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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2019

중국산 지역화 프로그램 Athena-A 한글판

출처: Athena-A 3.7.9 Build 20190828

Localization Program Athena-A Korean Edition
<Athena-A 프로젝트 생성>

Sisulizer localizes나 Lingobit Localizer는 유명한 상용 지역화(영어, 중국어 등 다른 언어로 된 프로그램을 한국어화할 때 사용) 프로그램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과 인터페이스 언어가 이미 제작자, 혹은 누군가의 노력으로 한국어화가 되어 있어 사용하기도 쉽다. 물론 Resource Hacker나 헥사 에디터로도 지역화가 가능하지만, 이때는 앞의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온통 수작업뿐인지라 여러모로 불편하고, 특히 원본 파일이 업데이트되었을 때 재작업하기도 무척이나 번거롭다. Sisulizer localizes 같은 프로그램들은 이미 번역된 문장은 자동 번역이 적용되므로 (업데이트 이후) 수정되거나 추가된 문장만 번역하면 되지만, 헥사 에디터로 지역화를 하면 모든 번역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니 이만저만한 수고가 아니다. 내가 SpeedPan(스피드판)을 처음 한글화했을 때 그러했는데, 정말이지 고역이 따로 없다.

그런데 중국의 어느 개발자가 Athena-A라는 지역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 중인 것으로 보인다. 윈도우 포럼의 왕초보님의 글 「대박! 중국 Athena-A 프로그램의 능력이 끝내주네요...간단한 사용법입니다」을 우연히 읽고 알게 되었는데, Athena-A의 장점은 Sisulizer localizes처럼 ‘프로젝트’ 단위로 지역화 작업을 저장할 수 있다는 점과 그럼으로써 원본 파일이 업데이트되었을 때 기존 번역을 업데이트된 파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원본 파일과 지역화된 파일을 비교해서 번역 정보를 사전으로 저장하는 것이 가능하고, 번역해야 할 문장을 텍스트 파일로 내보낸 다음에 이 텍스트 파일을 번역하고 이것을 불러오기로 해서 번역 작업에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참고로 텍스트 파일로 내보낸 파일로 번역 작업을 할 때는 탭으로 원문과 번역문을 구분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본 긴 숫자를 나열한 것 같은 헥사 편집 화면을 기본 작업창으로 사용하는 Athena-A는 초보자는에겐 대부분의 번역 작업을 그래픽 인터페이스로 제공하는 Sisulizer localizes 같은 전문 지역화 프로그램보다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번역 작업이 비직관적이다 보니 번역해야 하는 문장과 번역하지 말아야 할 단어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또한, 원본 파일 언어로서 중국어를 지원하지 않는다. 아마도 중국인이 사용할 것이란 염두 하에 제작된 프로그램이라 그런 것 같은데, 중국어로 된 프로그램을 작업할 때는 일본어로 지정하면 되는 듯하다. 이런 단점도 있지만, 일단 한번 완료된 프로젝트는 원본 파일이 업데이트되어도 별도의 수고 없이 기존 번역 작업을 그대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사용법을 익혀두면 요긴하게 쓸데는 많을 것 같다.

예) '00927740 MY -> '00927740 MY (Tap) 나의

(내보내기한 텍스트를 수정할 땐 탭으로 원문과 번역문 구분)

나도 아직 프로그램 파악 단계라 자세한 사용법은 묻지 말았으면 좋겠고, 물어본다고 해도 대답할 요량도 없다. 대신 오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 환영이다.

Localization Program Athena-A Korean Edition
<일반적인 헥사 에디터를 연상시키는 Athena-A 작업 화면>

Athena-A 32비트 버전 한글판

아무튼, 중국산 무료 지역화 프로그램인 Athena-A를 한글화했다. 활용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 같아서 작업하긴 했는데, 내가 앞서 배포한 모든 한글판처럼 오직 기계 번역에만 의존해 번역은 매끄럽지 않다. 또한, 미숙한 자의 손에서 어렵게 나온 결과물이라 프로젝트 생성이나 빌드가 안 된다거나 하는 버그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럴 땐 프로젝트 생성은 원본 파일로 작업한 다음 한글판으로 프로젝트를 불러와 나머지 작업을 하면 된다. 빌드도 마찬가지다.

Athena-A를 벌써 누군가 한글화한 것 같은데, 스크린샷만 공개하고 자료를 배포하지 않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손수 작업했다. 배포할 것도 아니면서 왜 공개를 하는지 그 심보를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뭐라 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 결국 목마른 자가 우물 판 격이 되고 말았다. 사실 Athena-A를 찾아 사용할 정도의 실력이면 굳이 내가 한글화하지 않아도 각자 한글화해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아무도 공개하지 않으니 그것이 아쉽고 섭섭할 따름이다. 내가 볼 땐 한글화 작업에 특별한 실력이 요구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과 약간의 의지와 노력이 요구될 뿐이다.

Athena-A는 32비트 버전과 64비트 버전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한글화 작업은 32비트만 했다. Athena-A 전체 파일은 출처에서 받으면 된다.

Athena-A 32비트 한글판 다운로드

(마지막 업데이트: 2019/10/29)

Athena-A_3.7.9_Build_20190828_ko.7z

(공유 암호: abua / 압축 암호: singingdalong)

파일만은 출처에서 받도록 해야 블로거의 쥐꼬리만 한 광고 수익이 그나마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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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2019

10분짜리 공유 링크 알아내는 아주 간단한 팁 ~ 6盘(6판)

계속 늘어나는 저장 공간!

신묘하게도 쓰면 쓸수록 저장 공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6盘(6판) 클라우드를 내 블로그에 소개한 지도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 그새 내 저장 공간은 별로 사용한 일이 없음에도 누군가 마법이라도 부린 듯 12T에서 24T로 늘어났다. 보아하니 2배수로 늘어나는 것 같은데, 한 번 더 마법에 걸리면 48T가 됨으로써 전설의 360 클라우드가 기록한 36T를 뛰어넘게 된다. 아마 파일 복사 작업을 반복하면 (이런 식으로 생성된 더미 파일만 7T가 넘는다) 48T가 아니라 96T도 문제없지만, 이렇다 할 의미가 없어 그만둔 상태다(계정에 뭔가 불이익이라도 생길까 하는 걱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탐욕스러운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는 누군가는 수백 테라바이트라는, 거의 서버급에서나 언급될법한 무지막지한 저장 공간을 기록했을 것도 같다.

만약 훗날 6盘(6판) 클라우드가 유료화되는 시점에서 그때 보유한 저장 공간으로 (나 같은 경우는 변동이 없다면 24T가 될 것이다) 영구 고정된다면 누군가는 땅을 치며 통곡할 것이고, 누군가는 환호의 함성을 내지를 것이다. 바이두 같은 경우 무료 사용자의 저장 공간이 2T에서 1T로, 다시 1T에서 305G로 줄었지만, 이미 획득한 2T 저장 공간은 몰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혹시 모르는 일이고, 어려운 일도 아니니 저장 공간 확장 작업을 12T~24T 정도까지는 해둘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 블로그에 6盘(6판) 클라우드를 처음 소개할 때 파일을 공유하려고 하면 ‘应监管部门要求, 我们将在9月15日-10月15日对分享功能进行升级, 在此期间分享功能将无法使用(관리 당국의 요구로 9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 공유 기능을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며, 이 기간 공유 기능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이라는 공지와 함께 공유 기능을 사용할 수 없었고, 이미 (공지에서 언급한 날짜가 2020년이 아닌 이상) 10월 15일은 지났다. 그럼에도 현재 공유 기능은 사용할 수 없다. 기능 업그레이드가 미루어지는 것이 내부 사정 때문인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서비스가 초장부터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니 영 신뢰가 안 간다.

친구에게 파일 공유하기

6盘(6판)에서 제공하는 정식 공유 기능은 여전히 사용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파일 링크를 제공함으로써 공유 기능을 대체할 수는 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다만, 이 방법은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다운로드 가능한 유효 시간이 대략 10분 정도로 생명력이 매우 짧다는 것이다.

6pan-cloud-Simple-Tips-to-Find-Shared-Links
<어느덧 24T로 늘어난 저장 공간>
6pan-cloud-Simple-Tips-to-Find-Shared-Links
<하루살이도 아닌 10분짜리 공유 링크>

1. [下载(다운로드)]를 클릭.

2. 새창으로 뜨는 URL 주소를 복사.

3. 복사한 URL 주소를 친구에게 빨리 전송.

* 이 링크의 유효 시간은 10분임을 명실할 것!

참고로 6盘(6판)의 [오프라인 다운로드]로 바이두 공유 자료를 6盘(6판) 클라우드로 가져오는 기능은 3일 전에 238개의 PDF 문서(약 78G)를 가져오는 데 성공함으로써 여전히 작동 중이기는 하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리니 작업을 걸어놓고 잊는 것이 속 편하다. 바이두 공유 자료 [오프라인 다운로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번 경우는 283개의 파일을 일일이 다운로드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몇 번 경험해 보니 바이두 공유 자료를 [오프라인 다운로드]로 가져오는 작업은 여러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아니라 차례대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한 작업을 완료하고 다음 작업이 진행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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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2019

[책 리뷰] ‘험담’이라는 가학성 취미를 부추기는 인터넷 ~ 망내인(찬호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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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담’이라는 가학성 취미를 부추기는 인터넷

Original Title: 网内人 by 陳浩基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불행을 타인에게 전가한다면 다시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 복수는 오히려 불행을 지속시키고 또 다른 형태로 세상에 원한을 남겨놓을 뿐이다. (『망내인(网内人)』, p625)

재능과 재력 모두 역대급 탐정

아마 찬호께이(陳浩基)의 『망내인(网内人)』을 선택한 독자가 거쳐온 별로 특별할 것 없는 과정은 나와 비슷하리라 본다. 2011년 제2회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을 받으면서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시마다 소지(島田荘司)로부터는 “무한대의 재능”이라는 찬사를 끌어낸 『기억나지 않은, 형사(遺忘.刑警)』에 매료된 나머지 그 이후 발표한 소설 『13.67』을 거쳐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리라. 아마도 말이다. 『망내인』에 대한 세간의 평은 뜻밖에 좋아 보이지만, 내게 미치도록 감상적이면서도 문학적 격이 느껴지는 텍스트를 선물한 『별들의 고향(최인호)』을 읽은 직후라서 그런지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소설 읽기가 되어버렸다.

예전 작품과 비교해 어딘지 모르게 퇴화하여버린 듯 단조로워진 텍스트는 장르소설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재능, 사회적 지위, 명성, 재력 등 어디 한군데 빠질 데 없이 너무나도 완벽한 탐정 아녜의 완벽한 계획과 완벽한 리드가 톱니바퀴 맞물리듯 잘 짜여 있어 싱겁다 못해 허탈하게까지 느껴진다. 마치 롤플레잉 게임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퀘스트처럼 한 치의 오차도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그는 전지전능한 해커 실력과 ‘사회 공학’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상대의 모든 허점과 개인 정보를 꿰뚫어 볼뿐만 아니라 그 정보를 이용해 상대의 감정을 좌지우지하며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상대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조종당한다. 아마도 이러한 설정을 통해 맹목적으로 과학기술을 추종하고, 인터넷과 SNS에 중독된 일부 독자에게 이제라도 개인 정보 유출과 신상털기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라는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은둔한 고수처럼 괴짜 같은 성격만 빼놓으면 남모르게 좋은 일을 하면서 당연하다는 듯 내색하지 않는 그는 정말 완전무결한 인간이지 아닌가?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탐정 아녜라는 인물에게서는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역겹다 못해 기가 찬다.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작품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다양하고 독특한 개성으로 넘쳐나는 탐정들이 발산하는 인간적인 매력이라 할 수 있는데, 아녜에게서는 그런 것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는 인공지능처럼 퍼펙트한 계획을 짜고, 악마처럼 감정의 동요 역시 계획을 착착 진행한다. 하물며 그는 인과응보도 믿는다. 그렇다면 돈을 받고, 혹은 심심풀이로 재미 삼아 염라대왕처럼 단호히 복수를 집행하는 그가 뿌린 것은 어떻게 거둬들여야 할 것인가?

아녜는 보기에 따라 이제껏 보지 못한 독특한 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엄청난 재력에 질린 나머지 일찍이 은거하여 취미 삼아 마치 신이 세상의 악을 단죄하듯 탐정 일과 복수 사업을 병행하는 그를 하등 보잘것없는 내가 어찌 시샘하지 않고 버틸 수 있겠는가? 그런 재수 없는 밥맛 같은 탐정을 나는 내내 질투하고 있었으니, 염라대왕의 멱살이라도 붙잡고 담판을 짓고 싶다. 그런데 무슨 담판을 짓는다는 거지?

아무튼, 질투와 시샘이 극에 달해도 그 격한 감정을 풀 때가 없으니 제풀에 꺾일 수밖에 없고, 대신 그 반작용으로 우울증이 도진다.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진다. 리뷰를 쓰는 지금도 그 우울한 감정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그것은 그만큼 아녜가 알게 모르게 눈부시도록 생생하게 그려졌다는 방증이 아닌가? 아, 이 모든 것이 찬호께이의 트릭이었나?

인간의 가학성을 부추기는 인터넷

어쨌거나 『망내인(网内人)』은 이전 두 작품에 비하면 실망스럽다. 물론 읽는 재미는 있다. 지루하지도 않다. 그러나 추리 깊이나 트릭의 신선함은 예전만 못하다. 특히 『기억나지 않은, 형사(遺忘.刑警)』에 비하면 ‘무한대의 재능’이 벌써 소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앞으로 찬호께이가 추리소설 역사에 길이 남을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긴다면, 이 소설은 위대한 작가의 평작으로 남을 그런 소설이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시조 마쓰모토 세이초(松本 清張)의 『푸른 묘점(蒼い描点)』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망내인』을 고른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아무리 이 소설이 이전 작품과 비교하면 무너진 우물처럼 깊이가 떨어지고 막판 할인에 들어간 생선처럼 신선치 못하다 하더라도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만큼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단순히 공감을 넘어서 마땅히 우리가 인지하고 직시하고 그래서 반드시 개선해야 할 인터넷 세상의 고질적인 병폐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인터넷 마녀사냥이다.

『망내인』은 여타 추리소설과는 달리 단 한 사람의 죽음만이 부각된다. 바로 15살 소녀 샤오원이다. 한창 예민할 대로 예민한 사춘기 시기의 소녀가 말 못 할 고민 몇 가지쯤 가지고 있는 것은 대수가 아니다. 그로 말미암아 죽음을 떠올리더라도 그것은 누구나 응당 겪을 수 있는, 삶을 배우고 이해해 나가는 수업의 한 과정이다. 어른들이 멋대로 설정한 교과서 같은 경로에서 약간 벗어난 정도의 성장통이다. 그러나 소녀가 정말로 자살했고, 그 발단이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악의적인 글 때문이라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소녀의 나약함을 질책해야 할까? 아니면 그 소녀를 모욕하는 더러운 글을 올려 선동질한 누리꾼과 무수한 댓글로 이에 동조한 키보드 워리어들을 탓해야 할까? 아마 이것은 각자가 가진 가치관이나 신념, 인격에 따라 차이가 날 것 같다. 그중에는 어차피 그런 것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다면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나을 거라고 가차 없이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한다고, 그래서 도태되는 쪽이 되지 않으려면 도태시키는 계층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차가운 피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에게서는 일말의 인간성도 찾아볼 수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생각이 현실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에 분노하기보다는 탄식하기 일쑤다.

아무튼, 선동적인 글을 올린 누리꾼을 탓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그 글의 표적이 된 소녀가 스트레스에 시달린 나머지 정신적 붕괴를 일으켜 자살했다고 해도 그 누리꾼은 기껏해야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뿐이다. 그 사람은 그저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뿐이니까. 이것이 『망내인』에서 사달을 일으키는 시발점이다. 소설은 범죄와 추리를 다루는 만큼 잔인하게도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즉, 그저 재미 삼아, 혹은 화풀이로 누군가를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 아니라 표적이 된 사람이 자살하게끔 의도적으로 그런 글을 올려 마치 여론몰이라도 하는 것처럼 누리꾼들을 선동하고 댓글을 조작한다. 참으로 비열하고 비겁하고 더없이 야비한 짓이지만, 인터넷 사용이 활발한 오늘날, 그 누구도 마녀사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름 끼치는 일이지 아닐 수가 없다.

『망내인』처럼 특정인을 자살하려는 목적으로 마녀사냥을 일으킨다면, 그래서 그 목적이 이루어졌다면, 그 누리꾼을 살인자라고 딱 부러지게 지목할 수 있을까?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참으로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문명과 기술이 안락함과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 사고방식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심각한 부조리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사이버 범죄다. 우리가 남이 안 보는 곳에서 맘 놓고 험담을 지껄이듯, 인터넷이라는 익명성은 인간의 보편적인 가학적 취미인 험담을 방종의 상태로 풀어놨다. 사회에서는 점잖은 옷을 입고 점잖게 말하는 그가 모니터 화면 앞에 숨어 인신공격으로 가득한 댓글을 따발총처럼 쏘아댈 때, 과연 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하물며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인터넷에 어떤 글과 댓글을 남기는가? 인터넷이 스트레스에 찌들 때로 찌든 현대인의 해우소 역할을 돈독히 한다고 해도, 변소에 남긴 똥과 오줌이 오롯이 당신 것인 것처럼 인터넷에 남긴 글은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이다. 『망내인』은 인간성의 적나라한 모습이 가장 심각하고 저급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곳인 인터넷과 그 뒤에 숨은 인간의 어두운 모습을 샤오원의 자살과 샤오원을 자살로 몰아간 사람들의 동기와 교차시키며 독자의 양심을 자극한다. 다만, 그 천착의 깊이가 다소 얕고 두루뭉술하며 교조적이라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말이다.

복수의 굴레에 빠진 자만이 복수를 끝낼 수 있다

독자는 『망내인(网内人)』을 읽는 내내 반드시 한 가지 의구심이 들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샤오원의 언니 아이의 처지에서는 범인들이) 샤오원을 마녀사냥으로 자살로 몰아간 동기다. 이 동기를 알게 된 순간, 그토록 복수심에 불타오르던 아이는 동생을 위한 복수를 망설이게 된다. 이대로 복수를 강행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쯤에서 그들을 용서하고 복수를 멈추어야 하는 걸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쳐 아녜에게 복수를 의뢰할 때까지만 해도 추호도 의심할 수 없었던,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았던 복수심이었지만, ─ 분명 동생이 받았을 법한 ─ 고통에 시달리는 한 소녀를 보자 아이의 마음은 동요한다. 복수한다고 자신이 겪는 불행과 고통, 슬픔이 기쁨과 행복으로 마법처럼 탈바꿈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복수했다는 기억만큼은 평생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건 그 복수극의 도화선이 된 소중한 누군가, 즉 아이에게는 샤오원을 잃은 것만큼이나 쓸쓸하고 우울한 기억이자 아물만하면 마음 한구석을 찔러 상처를 남기는 영원의 가시이지 않을까? 난 아이의 선택이 옳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녀의 선택이 현명했다고 말하고 싶다. 비참한 운명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그 비참한 운명에 빠진 그 사람뿐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의 선택은 현명했다.

반은 추리, 나머지 반은 복수에 할당한 긴 소설이자,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해커소설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해킹 실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기에 탐정이 발로 뛰며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고전적인 맛은 부족하다. 하지만, 사이버 시대의 추리소설은 구시대 탐정들이 필수적으로 갖춘 명석한 두뇌에 아녜 같은 컴퓨터 실력까지 갖춘 탐정이 제격일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도 검색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대에, SNS에는 온갖 잡다한 개인 정보가 벼룩시장에 나온 잡동사니처럼 진열된 요즘에, 우리의 신상털기는 총체로 먼지를 털어내는 것만큼이나 쉽다. 현실이 그러하니 구태여 발품을 들여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수고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난 아무리 구린 발 냄새가 사방천지에 진동하더라도 발로 뛰는 탐정들이 등장하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이 좋다. 현실과 소설은 엄연히 다른 것이니까. 아무튼, 전작에 비교해 다소 진부한 소재와 번득이는 맛이 부족한 평작이지만, 찬호께이의 전작 두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그래도 읽어보지 않고는 배길 수는 없는,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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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2019

[책 리뷰] 외로움이라는 괴물에 삼켜진다는 것 ~ 별들의 고향(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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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라는 괴물에 삼켜진다는 것

Original Title: 별들의 고향 by 최인호
우리들이 서로 만나 약속도 없이 서로의 살을 맞댄 것은 사랑 때문이긴 해도 우리는 결과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혼자, 혼자, 혼자뿐이었다. 술을 마시고, 사랑을 하고, 정사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영화구경을 하고, 산보를 하고, 육교를 오르내리고, 커피를 나눠 마시고, 껄껄 웃어도 우리는 결국 혼자였다. (『별들의 고향』, 2권, p265)

한때 그녀가 살아 있었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1972년에 신문 연재를 시작했으니, 반올림하면 어느덧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50년은 반세기이고, 생물학적으로 계산해 본다면 호모 사피엔스의 2세대에 해당하는 짧지 않은 시기다. 이 말은 만약 경아가 살아 있다면, 그녀는 나의 어머니 또래이며 지금 자라라는 아이들의 할머니뻘에 속하는 세대라는 말이다. 그녀가 살아 있다면, 경아가 살아 있었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경아는 그러지 못했다. 경아는 암울했던 유신 시대의 종말을 고함과 동시에 새로운 군부독재의 시작을 고하던 1979년의 그 날도, 도시 빈민에 대한 가혹한 폭력의 역사를 은폐하고 국제무대에 한국을 알리는 계기가 된 1988년의 그 날도, 빚더미에 올라앉은 나라가 통째로 무너진 1997년의 그 날도, 둥그런 축구공이 어디로 튀는지에 따라서 온 국민이 울고 울었던 영광스러운 2002년의 그 날도, 그리고 70여 년 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드디어 한 자리에 마주하던 2018년 희망의 그 날도 그녀는 보지 못했다. 그녀보다 네 살 어린 나의 어머니도 아직 살아 있고, 심지어 그녀보다 두 살 많으면서 믿기지 않게 한창 청춘의 고뇌에 빠져 허우적거려야 할 26살에 『별들의 고향』을 썼다고 하는 소설가 최인호도 당당하게 살아 있는데,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그녀는 죽었다. 그래서 나는 슬프다. 이 슬픔은 잠시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질 때 느낄법한 얄팍한 비애감보다는 내가 죽도로 짝사랑했던 여자가, 평소에는 나를 쳐다볼 생각도 않았던 도도한 그녀가, 그런 그녀가 나를 남모르게 좋아했다는, 그래서 내가 자기에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라는 말을 남기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나의 영혼을 짓누르는 죽음과도 같은 참담함에 가깝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경아가 살아생전에 했던 말처럼 그녀가 죽어서 슬픈 것보다는 그녀가 한때 살아 있었다는 생각이 더더욱 나를 우울하고도 깊은 슬픔에 잠기게 한다. 차라리 경아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태어났더라도 그녀의 존재를 몰랐더라면 그녀의 때 이른 죽음이 나를 때늦은 비애 속에 잠기게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미 지독한 작가를 통해 지독한 삶을 살아간 경아를 알게 되었으니 빌어먹게도 작고 귀엽고 통통하고 착한 그녀를 어찌 사랑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쏘냐! 젠장 맞게도 난 어젯밤 경아를 연상시키는 통통한 중년 여자와 질퍽하게 섹스하면서 뭔가 비장한 쾌감까지 느끼는 이상야릇한 꿈까지 꾸지 않았던가! 상황이 이처럼 빌어먹을 지경으로까지 몰렸으니 이제 작가라도 원망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다. 무심하고 잔인한 작가 최인호, 경아를 죽인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당신이야!

죽기 전에 읽어서 정말 다행이야!

나의 되먹지도 않은 푸념과 내가 지독히도 존경하는 작가에 대한 무례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별들의 고향』을 읽고 나서, 그리고 읽으면서 가장 절실했던 것을 꼭 집어서 말하라면, 이제라도 이 작품을 읽었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이다. 죽기 전에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 정도의 좋은 작품, 좋은 소설은 이 세상에 부지기수겠지만, 한 독자가 평생 읽을 수 있는 독서량의 한계와 그 사람이 책을 접할 수 있는 운신의 폭 내에서 그런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우연과 기회는 좀처럼 드물다. 내가 비록 지금까지 천여 권의 책을 읽었다지만, 그 책 전부가 동네 도서관에 소장된 책으로 한정되어있는 점만 보더라도 세상에 읽을 책은 정말 많지만 실제로 읽을 수 있는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와 더불어 원서를 읽을 수 있는 언어적인 능력까지 겸비한 독자라면 선택의 폭은 더 넓어지겠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천 권을 읽던, 만 권을 읽던 한 사람이 평생 읽을 수 있는 독서량은 한계가 있고, 그러한 현실 인식은 진지하고 현명한 독자에게 단 한 권이라도 양질의 책을 선택하여 읽어야겠다는 의지와 욕심, 조바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런 면에서 고전은 가장 무난한 선택이다. 한편, 가끔은 소일거리로, 혹은 머리도 식히고 기분도 전환할 겸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들도 읽을 수 있겠지만, 그런 책들이 주가 된다면, 독서력을 퇴보시키는 지름길이다. 이런 책들은 독자의 시야를 흐트러트리고 편견과 선입관을 주입시키면서 지적 능력을 퇴화시킨다. 고로 시간 낭비일 뿐만 아니라 인생의 낭비이며 그릇된 독서의 길로 빠지기도 쉽다. 하지만 무엇이 양질의 책이고, 무엇이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이며, 무엇이 인생의 낭비가 되는 책인지는 독자가 선택해야 할 몫이다. 여기서 어떤 책이 좋은 책이다, 혹은 나쁜 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책을 수백 권 정도 진득하게 읽다 보면 누구라도 충분히 감을 잡을 수 있는 경험의 문제다. 고로 책을 읽어라! 그러다 보면 내가 『별들의 고향』을 읽고 났을 때 내 마음속으로 쓰나미처럼 밀려왔던 안도감과 만족감을 이해하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괴물에 대하여

내겐 분명히 ‘좋은 책’으로 다가온 『별들의 고향』이지만, 요즘의 젊은 세대에겐 따분하고 이질적인 정조 관념, 통행 금지 등의 시대적 괴리, 그리고 소위 ‘참여문학’이라고 하는 문학의 한 귀퉁이에서 바라볼 때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대적 반영의 결여라는 결점이 다소 존재하는 만큼 누군가에게는 고만고만한 통속적인 소설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이 가지는 자유의 기치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면 문학이 반드시 시대의 정치적 • 사회적 상황을 반영해야 할 의무는 없으며, 지금보다 낡고 고루한 풍조나 세대 차이를 드러낸다고 해서 외면해야 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겐 문학에서조차 시대의 암울했던 정치적 우울함과 마주치는 일이 고문이거나 가혹 행위이다. 우린 어차피 그 낡고 고루한 풍조의 연장 선상에서 세대 차이에 부대끼며 살고 있지 않은가! 굳이 이런 말장난 같은 변명과 두둔이 아니더라도 『별들의 고향』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거대화된 도시가 필연적으로 잉태할 수밖에 없는 괴물인 외로움이 여전히 우리를 좀 먹고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사람에 치일 정도로 사방팔방에 사람들로 바글거리고, 경아는 상상도 하지 못할 신통하고 별난 기계로 별의별 짓을 다 하는 스마트한 인구 과잉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만성 질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문제이면서도 그 누구도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명확하게 원인을 파헤치지 못한 이 변덕스러운 질병에 대해 한낱 소설 나부랭이에 불과한 이 책이 명확한 답을 제시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전장의 어둠 속에 숨은 죽음과도 같이 도시인을 하염없이 짓누르는 외로움이라는 괴물의 한 단면을 정부 시설에 내버려진 연고자 없는 약물 중독자처럼 지독히도 쓸쓸하게 죽어가는 경아를 통해 생생하게 내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도시라는 거대한 가면 뒤에 숨은 위선과 가식의 자궁 속에서 잉태된 외로움이라는 괴물의 정체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적당한 구실을 얻은 셈이다.

히드라처럼 많은 얼굴을 가진 그 괴물은 때론 행복으로 가장된 불행이며, 때론 꿈을 먹고 사는 절망이며, 때론 인구 과잉과 인구 밀집을 사악하게 비웃는 소외감이며, 때론 옆구리 터진 유조선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처럼 대책 없이 주변을 오염시키는 고독이다. 경아가 아득한 별들의 고향으로 떠나고 나서 5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한강의 기적으로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물질적 번영을 이루었음에도, 문명의 영광이라는 찬란한 후광을 등에 업고 하하 호호 기세등등한 도시를 발작적으로 조롱하듯, 전염병 같기도 하고 기생충 같기도 한 외로움이라는 괴물은 여전하다 못해 시시때때로 도시인의 불안한 정서를 밤마다 드리우는 어둠처럼 파고 들어와 가뜩이나 보잘것없는 우리의 삶을, 조루 환자처럼 빠르게 만개했다 빠르게 져버리는 우리의 행복과 청춘을, 언제나 별 볼 일 없었던 우리의 희망을, 쥐새끼처럼 살금살금 갉아먹는다. 고로 『별들의 고향』이 한겨울에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처럼 우리를 전율케 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이 제아무리 흔하디흔한 소재일지라도 말이다.

지독한 외로움, 우리는 결국 혼자다

문오의 말처럼 삶이 실상은 만나고 헤어짐의 문제뿐이라는 사실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면, 우리는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혼자이고, 고독하고 외로운 동물이며,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특성조차 인간이 혼자임을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 아닌가? 경아를 죽인 것은 빌어먹을 작가도 아니며, 악마처럼 날뛰는 정욕에 점령당해 경아의 처녀를 빼앗고 낙태라는 뼈아픈 상흔을 남긴 영석도 아니며, 과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아를 내팽개친 만준도 아니며, 단물 빠진 껌 뱉듯 몇 개월 재미나게 살다가 경아를 버린 문오도 아니다. 천성이 밝고 낙관적이었던 경아, 일회용품처럼 남자의 놀잇거리가 되어 놀아나는데 이골이 난 경아는 그 정도로 죽을 여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경아는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죽었다. 아니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단지 외로움 때문일까? 아무리 지독하다 할지라도 외로움만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

콜록콜록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앓아눕게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죽는 사람은 도통 찾아보기 어려운 감기처럼 외로움은 우리의 삶을 조금씩 조금씩 갈아먹으며 괴롭힐망정 정작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지는 못하는 그런 병이었지 않았나? 경아가 외로움을 끝내 견디지 못해 죽었는지, 자신의 소박한 꿈이 계속 짓밟히는 것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난 나머지 죽음을 선택했는지, 남자에게 버림받는 삶에 지치고 지쳐 피곤해서 쓰러졌는지, 이기적인 남자들이 배출하는 온갖 잡다한 쓰레기를 정화하는 필터 작용을 했던 경아의 육체가 제 기능을 다 한 나머지 역류한 쓰레기에 오염되어 죽었는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서로 짬뽕되어 일으킨 합병증으로 죽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염병할 작가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허우대 멀쩡하게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선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천기 같은 그 무엇이지 않을까? 혹은 누추한 병상에 누워 홀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사람만이 느낄법한 자조 섞인 비애이자 허무와 고독의 극치를 벗어난 비극의 결정판이다.

뭔가에 취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

그 사람이 죽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한때 살아 있었다는 것이 슬프다고 말하는 경아. 우리 시대에 가지고 있던 따스한 인정과 순정을 아직 간직하고 있었던 경아. 언젠가 버림받을 것을 알면서도 내색 없이 오롯이 현재 그 순간만을 지극히 사랑할 수 있었던 경아. 그런 경아가 보고 생각하는 세상은 우리가 보고 생각하는 세상과는 달랐을 것이다. 뭔가가 달랐기에 경아는 비굴한 우리처럼 세상에 적응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다. 차라리 그 시궁창 물을 마셔 없애버릴지언정 썩을 대로 썩은 시궁창에 몸을 적시기는 죽음보다 싫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미덕으로 자리 잡은 지금으로서는 경아의 순수함은 천진하다 못해 바보 멍텅구리나 다름없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가장 순수했던 경아는 우리처럼 그렇게 억척같이, 안면박대하고, 몰염치하게, 되는대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경아처럼 순수했던 사람들은 억척스러운 사람들만이 살아남아 자식을 낳고 작게나마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진화 법칙에 따라 서서히 도태되어 가고, 이제는 억척스러운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웬만큼의 억척스러움 가지고는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는 이 거지 같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더욱더 악착같은 사람들로 진화하고 있다. 나도 어찌어찌하여 이 척박한 세상 속에서 여전히 생존해 가고는 있지만, 경아처럼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난 정말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남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다들 말이에요, 용이하게 살아가고 있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용이하게들 살아가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별들의 고향』 2권, p275)

그래서 뭔가에 취하지 않고는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나 보다. 경아는 술에 취해 꿈속으로 달아났고, 나는 책에 빠져 세상을 외면한다. SNS에 취한 누군가는 가상현실에 중독되어 현실에서 도피한다. 명성에 취한 누군가는 교만에 빠진 채 현실을 왜곡한다. 돈에 취한 누군가는 빈부격차를 조장하며 현실을 교란한다. 게임에 취한 누군가는 지존을 꿈꾸며 현실을 부정한다. 일에 취한 누군가는 자신을 혹사시키며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이처럼 현대인이 외로움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지만, 뭔가에 취하면 취할수록,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파도처럼 밀려드는 외로움과 허무함은 더 거세고 더 지독한 법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도시를 단숨에 집어삼킬 것처럼 아가리를 쩍 벌린 그 괴물 같은 외로움과 허무함이 굶주림에 지쳐 사냥을 나서기 전에, 누군가 논개처럼 비장하게 그 아가리 속으로 뛰어들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양양한 바다에서 물 한 바가지를 퍼내는 미미한 일일지라도, 그래서 세상일에 별 보탬이 되지 않는 무모한 일일지라도, 나는 애써 변명하고 싶다. 그것은 사막에서 갈증에 허덕이는 자에게 뜻밖에 내린 한 방울의 물과 같다고, 그래서 괴물의 갈증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그 한 방울의 물이 증발할 때까지 괴물은 다른 곳에 한눈을 팔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다른 곳에 한눈을 팔 수 없는 그 찰나만큼은 우리도 외로움을 잠시 잊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괴물이 나를, 당신을 당장 집어삼키지 않는 것은, 괴물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괴물의 시선을 빼앗고 있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괴물에게 삼켜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이야기에 취하고 텍스트에 홀린다

마지막으로 『별들의 고향』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또 하나 들고 싶다. 그것은 텍스트를 읽는 재미다. 내가 한국 소설을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니지만, 그중에서 텍스트를 읽는 재미를 선물해 준 작가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 그 작가만의 색깔, 그 작가만의 멋을 가진 텍스트를 구사하는 작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소설을 이야기만으로 읽는다면 그 이야기가 아무리 재미있더라도 그 소설은 기껏해야 이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은 이야기도 재미있고 그만의 의미가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이야기에 작가만의 멋과 색깔이 담긴 텍스트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상 자신만의 문체, 자신만의 텍스트를 보여주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작가가 자신만의 텍스트를, 자신만의 문체를 구사한다는 말은 이야기가 아닌 종이 위에 선명하게 인쇄된 텍스트만 보고도 그것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를 구분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익명의 글을 문체의 특성만으로 누가 썼는지를 분별해내었던 역사적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 텍스트 분별력은 그 경지까지 오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문체를 구사한다. 나쓰메 소세키(夏目金之助)가 그러하고, 옌롄커(閻連科)가 그러하고, 셀마 라게를뢰프(Selma Lagerlof)가 그러하다. 그리고 약간 추켜세워 한국 작가 최인호가 (『별들의 고향』 한 작품만으로는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대충 그러하다.

장난스럽지만 짓궂지는 않고, 천박한 듯 보이면서도 도를 넘어서지 않고, 냉기가 스며 나오는 경멸감 어린 시선 속에 따스한 관심이 공존하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우리 시대의 마지막 남은 인정을 담을 듯한,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통속적인 흐름에 은근살짝 문학적 품격을 무단 방류해 놓은 듯한 그의 텍스트는 우울하고 구슬프고 쓸쓸한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해내는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그래서 감히 친구의 주량을 빤히 알면서도 말리기는커녕 한 잔 더 따라주는 심정으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거기엔 책에 취해 세상만사 온갖 시름을 잠시라도 잊었으면 하는 선량한 마음과 한 번쯤은 짜릿하게 심장까지 스며드는 외로움과 허무함으로 밤잠을 설치며 번뇌에 빠져보라는 짓궂은 마음이 나란히 공존한다.

(질질 끌어 정말 미안한 마음 금할 수가 없지만, 정말 마지막으로) 갑자기 경아가 하얀 눈 속에 파묻혀 죽은 모습이 노트북 액정 화면 위로 오버랩된다. 우리 시대 순수의 상징인 경아가 깨끗함의 상징인 눈 속에서 죽다니, 이 얼마나 절묘한 궁합인가? 그것은 마치 경아는 무심한 도시인들에 밀려 쓰러지고 짓밟힌 눈사람이라고 은근히 항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그것은 이상하게도 겨울만 되면 쓰라린 인생의 비애를 겪어야 했던 경아가 겨울이 돌아오면 그 고통과 상처를 딛고 우리 앞에 눈사람으로 환생한다는 판타지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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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2019

Pandownload용 바이두 공유 자료 검색 및 QQ뮤직 다운로드 플러그인

출처: Pandownload 插件合集

출처에서 소개한 자료는 바이두 공유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Pandownload(판다운로드)용 플러그인이다. ‘lua’라는 확장자를 가진 스크립트 파일로 되어 있으며 압축을 푼 다음 ‘\PanData\script’ 폴더에 통째로 붙여넣으면 된다. ‘덮어쓰기’할 것이냐고 물으면 잠시 뜸 들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대상 폴더의 파일 덮어쓰기(R)]를 선택하면 된다.

Baidu-Shared-Data-search-Plugin-for-Pandownload
<\PanData\script 폴더에 복사하면 설치 완료!>

원래 Pandownload에도 바이두 공유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가 두 개인가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이 플러그인을 설치하면 여기에 몇 사이트가 더 추가된 총 7 사이트에서 바이두 공유 자료를 검색할 수 있게 된다. 좀 더 많은 바이두 공유 자료 검색 사이트를 원하면 「무려 59개의 검색 엔진을 지원하는 바이두 템퍼몽키 스크립트」를 참고하자.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크롬 확장프로그램인 ‘템퍼몽키’와 ‘사용자 스크립트’ 조합으로 무척이나 많은 바이두 공유 자료 검색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지만, 다운로드는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Baidu-Shared-Data-search-Plugin-for-Pandownload
<기존 검색 사이트에 몇 사이트가 더 추가되었다>

Pandownload나 SpeddPan을 이용해도 되고, 「모르면 엄청 손해 ~ 바이두 다운로드 도우미 百度网盘直链下载助手」(이 역시 ‘템퍼몽키’와 ‘사용자 스크립트’ 조합)을 이용할 수도 있고, 「공유 링크 및 비로그인 다운로드를 지원하는 Pandownload 웹 버전」에서 소개한 대로 Pandownload 웹 버전을 이용해도 된다. 바이두의 속도 제한 정책이 매우 엄격하고, ‘블랙리스트’ 관리도 여전히 철저하지만, 무료 사용자를 위한 꼼수는 여전히 존재하니 세상만사가 한 사람이나 한 기업의 의지대로 휘둘리는 일은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보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드는 것 같다.

본문에 소개한 Pandownload 플러그인은 출처에서 받을 수 있다.

Baidu-Shared-Data-search-Plugin-for-Pandownload
<플러그인은 출처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출처: pandownload插件之QQ音乐搜索/下载脚本(Pandownload 플러그인 QQ 뮤직 검색/다운로드 스크립트)

Pandownload-plugin-QQmusic-search-and-download
< QQ뮤직 검색을 위한 Pandownload 플러그인>

• 2019/10/21: 위에 소개한 Pandownload 플러그인 중에 QQ音乐(QQMusic)에서 노래를 검색하고 다운로드까지 해주는 플러그인도 포함되어 있는데,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Pandownload를 이용해 QQ音乐 음원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업데이트된 플러그인을 재설치할 필요가 있다. 플러그인은 출처에서 받을 수 있으며, 설치 방법은 위에 소개한 것을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 참고로 검색창에 :config라고 입력하면 다운로드 음질을 선택할 수 있다. 선택 가능한 음질은 MP3 128K, 192K, 320K, 그리고 무손실 FLAC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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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음질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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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인민 잔혹사의 음울한 피날레 ~ 문화대혁명(프랑크 디쾨터)

The-Cultural-Revolution-book-cover
review rating

인민 잔혹사의 음울한 피날레

Original Title: The Cultural Revolution: A People's History, 1962-1976 by Frank Dikoter
이 거대한 변화에서 무대의 중앙을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농민들이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통상적인 낙수 효과의 개념처럼 도시에서 농촌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시골에서 도심 지역으로 진행되었다. 경제를 변화시킨 개인 기업가들은 평범한 수백만 명의 농민들이었고 실질적으로 그들이 국가를 움직인 셈이었다. 중국의 경제개혁을 이끈 위대한 설계자가 존재한다면 보통의 인민들일 터였다. (문화대혁명(The Cultural Revolution)』, P492~493)

인민, 중국의 경제개혁을 이끌다!

공산당이 선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 즉 해방이 어떻게 인민을 짓밟고 어떻게 그들의 삶을 파탄의 지경으로까지 몰고 갔는지 파격적으로 폭로한 『해방의 비극(The Tragedy of Liberation)』에서 출발한 프랑크 디쾨터(Frank Dikoter)의 ‘인민 3부작’은 전쟁도, 내전도 없었음에도 대한민국 정도의 인구를 단 4년 만에 증발시킨 참상을 고발한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을 거쳐 어느덧 그 긴, 그렇지만 절대 지루하지 않은 여정의 종착점인 『문화대혁명(The Cultural Revolution): 중국인민의 역사 1962~1976』에 이르렀다. 이제 막 『문화대혁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심정을 한마디로 토로하라고 다그친다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잘 만들어진 추리소설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기가 막힌 대반전을(엄밀히 말하자면 기존 역사관을 뒤집는 충격적인 가설?), 그것도 무방비 상태에서 맞닥트렸으니 그 혼란과 충격은 과히 당신의 짐작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야구 선수가 휘두른 방망이에 머리를 크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띵하지만, 혼란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 전적으로 이 책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 기존의 주류 역사에 과감히 반기를 들고 나선다는 짜릿한 쾌감과 시큰한 우쭐함이 곧바로 파도처럼 전신을 덮쳐온다. 이미 누구나 다 알 것 같은 엎질러진 물이나 다름없는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에 무슨 반전이 있으며, 있어 봤자 별거 있겠느냐고 힐문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볼 땐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선택 범위가 비록 동네 도서관에 한정되지만, 나름 중국 현대사 관련 책을 조금은 읽어봤다고, 그래서 대충이나마 알 것은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이지만, 프랑크 디쾨터가 『문화대혁명』을 통해 펼치고자 하는 견해는 세상을 뒤집어엎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반전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도 놀랍단 말인가?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중국의 경제개혁을 이끈 위대한 설계자는 중국 개혁 • 개방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아니라 그저 우리처럼 평범하고 평범한 보통의 인민들이었다는 기발한 역사 해석과 마주치게 된다.

경제개혁으로 공산당 입지를 다진 덩샤오핑

우리가 짐작하는 것처럼, 혹은 알고 있는 것처럼 덩샤오핑이 진심으로 개혁 • 개방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했던 것이 아니라 그는 그저 대세를 따랐을 뿐이다. 전통적인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뿌리 뽑히는 것도 모자라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과 죽 끓듯 변덕스러운 정치적 반동이 가하는 모진 핍박과 내전을 방불케 하는 대혼란에 내동댕이쳐진 인민들은 스스로 살길을 모색해야 했다. 처음에는 혼자이거나 가족끼리, 그리고 조금씩 더 나아가 이웃끼리 마을들끼리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보이지 않는 덫을 살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극진한 조심스러움과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모진 본능이 뒤섞인 눈빛에는 그 시대에는 충분히 반동적이라고 불릴만한 위험한 변화를 예견하는 선동적인 침묵을 내포하고 있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총체적 난국’이라는 곤경에서 어떻게든 벗어날 방법을 스스로 궁리할 수밖에 없었던 인민들 사이사이로 잠복 기간이 긴 전염병처럼 소리 없이 조용하게 퍼져 나갔다. 그것은 대담하게도 자본주의로의 회귀였다. 마오쩌둥 살아생전에는 꿈도 꿔서는 안 될 그런 도리였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마오쩌둥의 공상적 이상주의가 휘두른 잔악무도한 폭정의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도 가장 큰 인내심으로 근근이 버텨 온 인민들이 소리 없는 혁명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직 마오쩌둥이 ─ 거의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일지라도 ─ 살아 있을 때!

그렇게 소리소문없는 조용한 혁명은 농민에게서 노동자로, 시골에서 도시로, 시장 상인에서 기업으로, 그리고 종국에는 중국을 집어삼켰다. 중국 경제 성장의 원류는 화궈펑도 아니고, 덩샤오핑도 아니었으며, 그것은 인민들 스스로 궁색한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끈덕진 애착과 바퀴벌레 같은 끈질긴 생명력으로부터 파동치는 막강한 자본주의 물결에 있었다. 덩샤오핑은 그 물결에 떠밀려오는 여럿 배 중 적당하다고 여긴 배 위로 적당한 시기에 매우 적절하게 올라탔을 뿐이다. 영악한 통치술을 선보였던 덩샤오핑은 공산당을 공고히 하고 철권통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경제 성장을 이용했다. 그는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오로지 경제 성장에만 묶어놓는 우를 범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것으로 덩샤오핑이 집권 초기에 모호한 태도를 보인 이유가 약간은 이해될 수 있다. 훗날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인민의 피로 진압할 철권 통치자로 거듭날 그가 한때 사상해방과 민주를 지지했던 이유는 양심에 따른 것도 아니었고, 정치적 가치관에 따른 선택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대세를 역행하여 인민의 지지를 잃지 않으려는 노련한 정치적 술책일 뿐이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철저히 보수파였으며, 자신의 권력을 다지고 공산당이 인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경제 성장을 이용했다. 즉, 공산당 일당 독재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공산당에 위협만 되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대체로) 얼마든지 봐줄 수 있었던 것이 덩샤오핑 통치의 핵심이다. 그래서 그는 인민의 민주화 욕구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군침 도는 미끼를 던지며 경제개혁을 제대로 이용했다. 아니 이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오쩌둥 사후에도 경제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고 문화대혁명 같은 암울한 시기가 계속되었더라면, 과거 중국의 농민 봉기 역사를 보더라도 유방(劉邦) 같은 인물이 또다시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경제개혁은 순전히 인민의 의지로 시작된 조용한 혁명이었다. 그렇기에 덩샤오핑은 개혁 • 개방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계획이나 구상을 제시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었으며, 그 역시 중국의 경제 성장을 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 방법은 원칙적으로 사회주의적이어야 했다. 하지만, 떠밀리듯 경제개혁이라는 거대한 조류에 올라탄 덩샤오핑의 처신만큼은 역시 통치술의 대가다웠다. 그야말로 ‘위대한 조타수’였다. 당근과 채찍으로 민주에 대한 인민의 욕구를 표면적으로나마 잠재울 수 있었으며, 더불어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그로 말미암아 중국 공산당은 건재할 수 있었다.

무색해진 ‘중국 특색 사회주의’

이로써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그것은 공산당의 존재성과 정당성, 그리고 일당 독재에 방해되거나 위협이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가는 무엇일까? 조금은 아쉽게도 프랑크 디쾨터는 ‘그리고 그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라는 의미심장하면서도 모호함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는 문장을 끝으로 위대한 ‘인민 3부작’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아마 나머지는 교수가 강의 후 과제를 내듯 고심하고 생각할 줄 아는 독자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놓은 것이리라.

중국은 국가 경제력에서 곧 미국을 추월하는 위치에 있는 명실상부한 경제 대국이지만, 그 안에 사는 인민의 행복지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필리핀, 코소보보다 낮다. 중국인은 불행하다. 디쾨터가 ‘인민 3부작’을 완성하기 전에 이미 량샤오성(梁晓声)은 중국인은 우울하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비교적 간단명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그 원인을 놓고 따져보면 복잡하기 그지없다. 한 사람이 앓는 우울증의 원인을 진단하기도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어마어마한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인의 우울증 원인을 밝히는 일은 오죽할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산당이 자신의 존재성, 정당성을 경제 성장에만 묶어놓을수록, 그렇게 경제 성장주의에만 매달릴수록 중국은 ‘사회주의’ 변두리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경제 성장 지상주의에만 매달려온 국가들이 앓을 수밖에 없는 골칫거리에 자본주의의 길을 걸어온 전 인류가 겪는 공통적 문제가 더해진 온갖 잡다한 폐해가 중국을 물귀신처럼 붙잡고 늘어진 형국이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그럴듯한 표어 속에 숨은 진의가 까발려진 지금 중국의 사회주의적인 선전은 유명무실해졌다. 중국에서 사회주의는 이제 공산당 당헌 속에서나 존재하는 허울뿐인 과거의 유물이다.

어떤 방면에서는 미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지만, 그것을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중국이니 그 폐해에 대한 원인파악과 대책 또한 미적지근할 수밖에 없다. 반자유 • 반민주 • 반평등 • 반인권을 기조로 외국 자본과 중국 정부가 손을 잡고 농민의 토지와 자연 자원을 약탈하고, 생태 환경을 훼손시키고, 수억 명의 노동자와 ‘농민공(農民工)’으로부터 대규모 이윤을 함께 착취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중국은 신속하게 전 세계의 제조공장으로 우뚝 섰다. 그렇게 얻은 부는 국가가 큰 몫을, 집단은 가운데 몫을, 그리고 남은 끄트머리를 개인이 차지함으로써 완성된 ‘중국 특색 사회주의’와 ‘중국 특색 노예제도’가 탄생했다. 그것이 롼밍(阮銘)이 『덩샤오핑 제국 30년(鄧小平帝國三十年)』에서 밝힌 ‘덩샤오핑 제국’의 정체이자 마오쩌둥 제국의 폐쇄적인 공산 노예제도에서 진화한 개방적인 공산 노예제도, 바로 ‘신노예제도’다. 아마도 이것이 앞서 말한 ‘그 대가’ 중 가장 큰 월척이지 않을까?

마오쩌둥 시대 인민의 잔혹사

이로써 ‘인민 3부작’이 완성되었다. 이 시리즈는 중국 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나 호기심을 품은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지만, 취미로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은 알짜다. 중국에서 가장 최근에 공개된 공산당 문서를 기반으로 집필된 책이라 기존 저서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세밀하고 구체적인 상황까지 살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인민 3부작’이라는 시리즈 제목이 은유하듯 삼부작 모두 인민의 삶을 중심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마오쩌둥의 공상적 공산주의에 대한 병적인 집념이 어떻게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무지막지한 대중 실험으로 체현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가혹한 실험의 연속에서 인민의 삶이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지를, 그 어마어마한 숫자의 억울한 사상자와 피해자를 대신하여 이 책은 철저하게 밝힌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식량조차도 해결하지 못한 마오쩌둥 시대에 기근은 하나의 표준이었고, 혼란과 숙청과 정치적 투쟁은 일상이었다. 마오쩌둥이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중국은 혼란에 빠졌고, 수만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의 인민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허무하게 증발했다. 하지만, 상대가 그 위대한 마오쩌둥이었기에 인민은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할 수도 없었고,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변덕스러운 마오쩌둥 때문에 그들은 시시각각 궁지에 몰렸지만, 그때마다 그들은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복종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면서도 절대 선은 넘지 말아야 했다. 그 선은 항상 마오쩌둥이 일으키는 바람에 따라 요리조리 움직였다. 고의든 실수든 일단 선을 넘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다면 지옥이 아가리를 벌리며 마중 나왔다. 고개를 숙인 채 낯을 심하게 가리는 고양이처럼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거듭되는 박해와 시련을 통해 생존하는 법을 깨우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잊을만하면 가해지는 숙청을 통해 정부가 노린 것은 실재하거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적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기보다는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겁을 주어 다루기 쉬운 인민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렇다. 살아남으려면 다루기 쉬운 인민처럼 보이면 된다. 그것은 가장 훌륭한 연기자로 거듭나는 길이다 (그래서 중국 배우들의 연기력이 유난히 뛰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단 한 번의 실수라도 용납되지 않았다. 완벽한 연기자가 되어야 했다. 전설적인 명배우처럼 오로지 연기에만 매달리고 연기에만 목숨을 걸어야 했다. 당과 사회, 이웃뿐만 아니라 때론 가족과 자신마저 감쪽같이 속여야 하는, 달마대사도 혀를 내두르고 도망갈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이자 인내와 고난의 행군이었다. 많은 인민이 중도에 지쳐 쓰려지거나 정체가 탄로 나는 바람에 모진 박해를 겪었다. 때론 목숨마저 빼앗겼다. 그러나 대다수 인민은 훌륭한 연기로 훌륭하게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인민이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반전을 가했다. 그것이 바로 프랑크 디쾨터가 『문화대혁명』에서 말한 문화대혁명 중반 이후 농민이 일으킨 ‘아래부터의 혁명’, 즉 경제개혁의 시작을 알리는 자본주의 물결이다.

프랑크 디쾨터의 ‘인민 3부작’은 마오쩌둥 시대 인민의 잔혹사를 대변하는 데 가치를 둔 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또한, 중국 경제개혁의 원류를 농민에게서, 그것도 농민의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혁명이 아니라 기근에 대한 생생한 두려움에서 비롯한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갈망에서 찾고 있다. 그런 갈망이 중국 전역에서 잡초처럼 우후죽순 자라나면서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사회와 또 하나의 경제를 지하조직처럼 이루었다. 그것이 ‘제2의 사회’, ‘제2의 경제’ 가설이다. 이 가설이 튼튼한 토대를 쌓는다면 역사를 이끄는 원동력은 몇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인민이라는 진실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셈이다. 프랑크 디쾨터의 『문화대혁명』은 매끄러운 언변으로 역사 저술의 지루함을 덜어내 텍스트 읽기의 부담을 경감시켜 많은 독자가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인민의 대변자로 자처하고 나선 저자의 비굴하지 않을 정도로 낮고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시점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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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2019

올 것이 왔다, 무료 6테라 클라우드 서비스 ~ 6盘(6판)

출처: 6盘(6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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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G가 아니라 6T다!>

속도도 시원찮지만, 그나마 홍일점으로 작용했던 무료 용량마저 대폭 줄인 바이두 클라우드를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하던 사람들에게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나게 할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1T도 아니고, 2T도 아닌 무려 6T의 무료 공간을 제공하는 클라우드 6盘(6판)이 서비스를 개시한 것이다. 바이두 SVIP 사용자도 5T가 전부인데, 6盘(6판)은 기본 무료 제공 공간이 6T다(6판의 '6'은 6TB를 의미하는 듯).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36T라는 무시무시한 무료 저장 공간으로 저장 공간에서만큼은 지존이었던 360 클라우드 이후 이런 녀석은 처음이다. 날벼락 같은 뜻밖의 소식이지만, 날벼락만큼이나 정신을 번쩍 뜨이게 하는 희소식이다. 역시 중국의 스케일은 남다르다. 일은 벌이는 것도, 접도 것도 거침없다.

注意:功能尚未开发完成并投入使用,您应当理解: 在功能完成之前,有服务内容变更和数据丢失的风险。在目前,本网站提供的服务不应当作为您重要资料的唯一存储手段

참고 : 기능이 개발 중이며 기능이 완성되기 전에 서비스 내용이 변경되고 데이터가 손실될 위험이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현재 이 웹사이트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를 중요한 정보를 저장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바이두 공유 자료도 받아내는 강력한 6盘(6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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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친숙한 [离线下载(오프라인 다운로드)]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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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盘(6판)의 무기는 바이두 자료도 대신 받아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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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렌트는 거의 전멸이지만, 바이두만큼은 다운로드 성공!>

[오프라인 다운로드] 작업 최대한도가 100개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 6盘(6판) 서비스가 강력하게 내세우는 전략은 바로 [离线下载(오프라인 다운로드)]다. 바이두 클라우드 사용자에겐 매우 익숙한 기능이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 내가 6盘(6판)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6盘(6판)의 [오프라인 다운로드] 서비스는 바이두처럼 마그넷 링크와 토렌트, eDoneky 링크를 지원하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굳이 침을 튀기면서까지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6盘(6판)의 [오프라인 다운로드] 서비스는 6盘(6판)의 최대 경쟁자이자 6盘(6판)이 넘어야 할 산이라 할 수 있는 바이두의 자료까지 [오프라인 다운로드] 기능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즉, 바이두 공유 링크와 링크 암호만 알고 있으면 6盘(6판)의 [오프라인 다운로드] 기능으로 빠르게 받아낼 수 있다.

시험 삼아 [오프라인 다운로드] 작업에 토렌트 파일 몇 개와 바이두 공유 링크 자료를 추가해 봤는데, 토렌트 자료는 거의 전멸이었지만 바이두 공유 링크는 작업에 추가되자마자 다운로드가 진행되었으며 곧 작업이 완료되었다. 이쯤 되면 역시 속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현재 업로드/다운로드 속도는 스크린샷에서 볼 수 있듯 제한이 없다. 즉,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사용하는 인터넷 회선이 뽑아낼 수 있는 최대 속도를 고스란히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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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두에서는 꿈에서나 만날법한 거침없는 속도!>

아직은 미덥지 못하지만 기대해볼 만한 6盘(6판)

다행스럽게도 해외 사용자도 가입할 수 있지만, 휴대전화 인증을 요구한다. 나 같은 경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내 휴대전화로 가입을 완료했지만, 대충 보아하니 가상전화 번호로도 가능할 듯싶다. 다만, 인증번호가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편이라 조바심을 다스릴 필요가 있다. 가입할 때 입력한 사용자 이름으로 로그인이 안 된다면, 휴대전화 인증으로 로그인하면 되고, 로그인 후 오른쪽 위 설정으로 들어가 사용자 이름을 수정할 수 있다.

티카페 치킨N콜라님이 말씀하신 대로 01012345678 번호와 1012345678 번호 두 개로 동시 가입이 가능, 즉 지금은 한 개의 휴대전화 번호로 두 계정 생성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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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용자도 가입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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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인증 로그인>

내가 6盘(6판) 클라우드 서비스를 알게 된 것은 「6盘:免费无广告、离线预览、高速下载(6판: 무료, 무광고, 오프라인 미리보기, 고속 다운로드)」라는 글을 통해서였는데, 이 글에서도 충고하지만, 6盘(6판)은 작은 기업의 신생 서비스이기 때문에 향후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우므로 개인 정보 등의 중요한 자료를 저장하기보다는 일시적으로 사용하기 좋다. 다시 말해 그냥 막 쌓아두는 자료를 저장하고 공유하거나, 바이두 공유 링크를 다운로드하는데 사용하면 딱 맞다. 다만, 현재 공유 서비스는 10월 15일까지 중지된 상태다. 아무리 서비스 초기라지만, 바이두처럼 전용 클라이언트나 앱도 지원하지 않는 점이 조금은 미덥지 못하다. 모든 작업은 웹페이지에서만 진행된다.

무료 사용자 처지에선 6테라 공간은 덥석 물 수밖에 없는 마약 같은 미끼지만, 360 클라우드처럼 무리하다가 서비스 종료되는 비극은 절대 보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 걱정되는 점이기도 하다. 앞으로 6盘(6판)이 정상적인 궤도에 잘 올라선다면 바이두처럼 유료화에 들어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속도 제한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서비스가 종료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에서 6盘(6판)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2019/10/15: 지금 확인해보니 용량이 12G로 확 줄었다. 티카페 어느 분도 96G로 줄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새 번호로 다시 가입하니 6T다.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비록 12G로 용량이 줄었지만, 12G를 초과하여 파일 추가가 되고, 조금 있다 다시 96G로 저장 공간이 늘었다. 그리고 96G를 초과해서도 계속 파일이 저장된다. 파일 복사 작업을 반복하니 최대 저장 공간이 12T까지 증가했다. 고로 파일이 추가될수록 저장 공간도 그에 맞추어 증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편리한 시스템이다(이러면 사실상 무제한 클라우드 아닌가?). 혹은 파일에 유효 기간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직 서비스 초기라 서버도 매우 불안하고 6판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너무 없다. 조금은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좀 더 신중히 처리하지 못하고 덜렁대는 바람에 거짓 글을 늘어놓은 것 같아 죄송하고 부끄럽다. 설령 용량이 확 줄었다 하더라도 바이두 공유 링크를 받는 기능이 유지되는 한 6판은 여전히 쓸모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비록 10분이지만, 자료를 타인에게 보내는 방법은 「10분짜리 공유 링크 알아내는 아주 간단한 팁 ~ 6盘(6판)」를 참고.

<파일을 추가할수록 저장 공간도 증가한다>
<6판 다운로드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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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걸렸다, MP3 및 무손실 음원 다운로더 ~ 洛雪音乐助手(로쉐음악도우미)

출처: lx-music-desktop

요즘 누군가에게 파양 당한 LG G6를 입양한 이후로 음악이 댕긴다. 워크맨을 끼고 살았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음악을 즐겨 들어왔던 터라 양쪽 귀에 이어폰이나 헤드폰이 걸쳐져 있는 시간이 태반이고, 그래서 음질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좋은 음질로 음악을 감상하려면 그만큼 money가 충족되어야 하는지라, 음장 효과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튜닝으로 만족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G6는 나 같은 막귀도 (약간 과장하면) 놀라자빠질 뛰어난 소리를 뽑아내 주었다. 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막막한 느낌이 들었던 것을 지금껏 이어폰이 싸구려라 그런 것이려니 했는데, G6는 이렇게 천대받아왔던 이어폰이 우쭐한 기분이 들 정도로 실력 발휘할 기회를 만들었다. 귀에 꽂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디에 꽂느냐도 중요한 것임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더 좋은 이어폰이라면 더 좋은 소리를 들려줄 것이 자명하다는 점에서 나의 두둑하지 못한 주머니 신세가 한없이 아쉬울 따름이다.

좋은 소리에 귀가 트이고, 음악에 대한 욕구가 새록새록 피어나고, 그럼으로써 좀 더 높은 음질의 음원을 듣고 싶다는 욕심이 동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192k의 MP3, 혹은 160k 정도의 M4A에 만족해왔던 나의 귀가 살짝 움찔거리며 반항하기 시작했다. 시건방진 나의 귀는 탐탁지 않은 말투로 이제는 무손실이나 최소한 320k MP3가 아니면 성이 차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귀의 위협과 나의 욕심이 결탁하니 나로서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그저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거침없이 나아갈 뿐이다.

고음질 음원에 목말랐던 나에게 딱 걸린 녀석

그렇게 새로운 음원을 찾을 방법을 궁리하던 차에 딱 걸린 녀석이 바로 洛雪音乐助手 (로쉐음악도우미)다. 그러고 보니 중국 프로그래머들은 프로그램 이름에 ‘助手(조수, 도우미)’라는 이름을 잘 쓰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하는 기특한 무의식의 영향일까? 아니면, 그냥 나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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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노래는 무손실 다운로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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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인기 순위도 지원>

아무튼, 洛雪音乐助手(로쉐음악도우미)는 중국의 다섯 개의 음원 서비스와 종합 검색을 지원한다. 酷我音乐(쿠워뮤직), 酷狗音乐(쿠꺼우뮤직), QQ뮤직, 咪咕音乐(미구뮤직), 百度音乐(바이두뮤직), 그리고 끝으로 聚合搜索(종합검색)이 있다. 사용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聚合搜索(종합검색)의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聚合搜索(종합검색)에서 Copyright 정보가 QQ音乐으로 된 FLAC 파일이 다운로드 되는 것으로 보아 말 그대로 ‘종합’ 검색으로 보인다.

洛雪音乐助手(로쉐음악도우미)는 윈도우와 리눅스, 그리고 MAC 운영체제를 지원한다. 인터페이스도 복잡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원하는 음악/노래를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개중에는 무손실(FLAC) 음원 다운로드도 가능하다. 또한, 인기곡, 신곡 등의 순위 목록을 지원하는데, 인기곡 순위에는 K-pop과 pop 순위 등 중국 기준으로 해외곡 순위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과 음원 서비스 회사의 대결은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 제작자는 재미 삼아, 혹은 공명심이나 실력 발휘 삼아, 이것도 아니면 취미 삼아 만들어 배포하는지라 꾸준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즉,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업데이트는 끊기고, 한때 많은 사람에게 유익함을 제공했던 프로그램은 헌신짝보다도 못한 폐품이 되어 잊힌다. 엉기적엉기적 미루다간 바이두 클라우드처럼 때를 놓치게 된다. 洛雪音乐助手(로쉐음악도우미)처럼 한 때 유행 같은 프로그램들은 사용할 수 있을 때 실컷 사용해야 함을 명심하자.

lx-music-desktop downl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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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2019

Baidu NetDisk Third-Party Downloads Accelerator SpeedPan(ENG)

Sources: https://www.speedpan.com/

SpeedPan is a third-party program that supports Baidu NetDisk. I also do not know English, may also Chinese. so Localization only relied on machine translation (like Google Translation) services. Localization work is also immature. So I hope you understand that the translation is poor and the interface is not smooth. This article also used Machine translation. Therefore, no feedback is received on translation and localization work. Therefore, no feedback is received. Instead, you can get questions about Baidu NetDisk.

Baidu NetDisk Third Party Downloads Accelerator SpeedPan English Version
<To download a file, use the [Share and download] menu>
Baidu NetDisk Third Party Downloads Accelerator SpeedPan English Version
<Click [Download] to start the download>

Now, Baidu cloud free storage has been reduced from 2T to 305G. So, the need is much less than before. However, you need a Baidu account to receive a Baidu share link. Also, free accounts are limited in speed. SpeedPan can be used to lift the speed limit temporarily. SpeedPan can also manage cloud such as moving, copying, creating, deleting, and sharing files.

Finally, an account using SpeedPan can be a 'blacklist'. The 'blacklist' account has a limited download speed and may not be available. However, there is nothing to worry about, as the 'blacklist' account will automatically be released in a week or so. I recommend using multiple accounts (like me) in preparation for the Blacklist. For your information, download the Baidu share link using the PanDownload Web version. You can use it ten times a day and you don't need a Baidu account. And 「기업용 클라우드 홈페이지를 이용해 바이두 가입하기」 link may be helpful for signing up.

▲ Download SpeedPan English Version

(Last Update: 27 December 2019)

SpeedPan_v2.3.8.215_ENG.7z

Password: singingdalong

Creating a Baidu NetDisk Account via the ‘BAIDU AI CLOUD’ Hom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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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edPan 제작자가 만든 오프라인 다운로드 전용 서비스 ~艾比特(ibit)

출처: 艾比特(ibit)

Offline Download-Only Services ibit
<艾比特(ibit) 홈페이지>

SpeedPan 홈페이지에 [离线下载]라는 새 링크가 생겼는데, 이 링크를 클릭하면 艾比特(ibit)라는 오프라인 다운로드 전용 서비스로 연결된다. 웹페이지에서도 작업이 가능하지만, 스피드판 같은 전용 클라이언트까지 마련된 아이비트는 바이두의 그것처럼 토렌트와 마그넷 링크를 지원하는데, 무척이나 아쉽게도 유료 서비스다. 가입 절차 또한 까다로워 중국 휴대전화가 아니면 가입조차 안 된다. 그래도 운이 좋아 삽질 끝에 「온라인 SMS 확인 웹사이트를 이용하여 바이두 계정 탈취하기」에서 소개한 방법으로 계정 하나를 얻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신규 가입자에게 주어진 오프라인 다운로드 1회 사용권은 소진한 상태다. 오프라인 다운로드 사용권은 당연히 돈으로 충전해야 한다.

Offline Download-Only Services ibit
<탈취한 계정은 역시 무료 계정>
Offline Download-Only Services ibit
<아이비트의 오프라인 다운로드>

웹페이지 디자인이나 스피드판 홈페이지에 링크되어 있다는 점을 보면 아이비트는 스피드판 제작자의 또 다른 밥줄로 보인다(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고 실제론 협력 관계일 수도 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이메일 인증이 아닌 중국 휴대전화 인증으로 가입을 제한했다는 점과 설령 가입되더라도 달랑 1번의 오프라인 다운로드 서비스만 맛볼 수 있다는 점은 참으로 아니꼽다. 되지도 않는 바람이지만, 무료 사용자도 한 달에 3~5회의 사용권을 주던가, 아니면 광고 1번 시청에 사용권 1회 충전 방식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나 같은 해외 사용자는 사용할 일이 없는 서비스이기는 하지만, SpeedPan과 관련된 정보라 무시하기는 좀 그렇고 해서 예의상 몇 자 남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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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대가의 평작, 그래도 나름 읽는 묘미는 있다 ~ 푸른 묘점(마쓰모토 세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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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의 평작, 그래도 나름 읽는 묘미는 있다

Original Title: 蒼い描点 by 松本清張

노리코가 다시 물어봐도 그는 “지금은 소요 시간만 알고 있으면 돼”라며 설명하지 않았다.

버릇이 또 나왔네.

이번엔 화도 나지 않았다. 웃음이 나왔다.

“사키노 씨는 가끔 의미 있는 척 행동하는 버릇을 고치면 훨씬 좋은 사람이 될 거야.”

노리코는 그 말만 해 두었다. 역시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턱을 쓰다듬으며 다쓰오는 대꾸하지 않았다. (『푸른 묘점』, 464)

대가의 평작,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리뷰를 쓰는 올해가 2019년이니까 60년 하고도 더하기 1년이다. 마쓰모토 세이초(松本 清張)의 소설 『푸른 묘점(蒼い描点)』 이 세상에 선보인 지 말이다. 시대와 언어, 문화의 장벽을 초월하여 다양한 독자에게 다양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명품 소설 ‘고전 문학’에는 60년의 세월쯤은 대수롭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나날이 기교와 트릭이 발전하고 논리적으로도 정연해지고 과학적으로 엄밀성까지 갖추어 가는 미스터리 장르는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현대적이고 세련된 추리소설에 익숙해진 독자가 60여 년 전에 완성된 추리소설에서 요즘의 잘 만들어진 추리소설과 같은 전율이나 감흥을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런 고로 제아무리 마쓰모토 세이초라 해도 그의 모든 작품이 현대에 와서도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때때로 『푸른 묘점』처럼 그의 명성에 조금은 걸맞지 않은 작품들도 다수 존재한다.

누군가는 이런 작품들은 작가에게 홀딱 반한 마니아들이나, 혹은 작가의 대표작 몇 권에 푹 빠진 나머지 잠시 분별력을 잃은 독자가 아니라면 찾아주지 않는 낙엽처럼 빛이 바랜 쓸쓸한 작품들이라고 냉철하게 분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면 또 그게 그렇지가 않다. 마쓰모토 세이초처럼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작가의 작품이라면, 비록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 작품일지라도 읽어보면 나름의 묘미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런 주장이 작가의 명성에 혹한 한 독자의 동정적인 비평이 다분히 섞인 과장으로, 혹은 추종자들의 맹목적인 떠받듦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작들이 극찬을 받은 유명한 작품들이니만큼, 그런 대표작들이 발하는 후광이 짙게 드리운 그림자에 평작들이 애꿎게 묻혀버렸다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푸른 묘점』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감히 평작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벌써 무덤 속으로 묻어버리기에는 어딘지 아까운 소설이다. 고로 너무 많은 기대는 걸지 않고, 그렇다고 삼류소설 쳐다보듯 너무 경솔하지는 않은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마치 신인 작가를 대하듯 『푸른 묘점』을 읽는다면,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을 것이다.

단점에도 흡입력을 발하는 묘한 책

솔직히 말해 이 소설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마쓰모토 세이초의 명성 때문이다. 뭐 읽을만한 추리소설 없나 하는 생각으로 무심결에 동네 도서관의 ‘일본소설’ 쪽 책장으로 눈을 돌린다는 것이 그만 딱 『푸른 묘점』하고 마주치고 말았다. 커피숍이나 지하철, 버스 등의 공공장소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흠칫 놀라는 기색과 그 상대가 매력적인 여성이었을 때 느낄법한 당황함이 적절히 혼합된 그런 기분이었다. (도서관 출입 초창기에 읽었던 책이라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전에 『점과 선』을 인상 깊게 읽은 나로서는 우연히, 아니 운명적으로 마주친 『푸른 묘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는 시간에 쫓기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내용도 살펴보지 않고 소매치기가 두둑해 보이는 지갑을 가로채듯 서가에서 책을 낚아챘다. 사정이 그러했기에 당연히 실망도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추리소설을 포함한 모든 소설이 지향하는 허구적 이야기를 완성하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푸른 묘점』은 우연을 지나치게 남발한 나머지 일부 상황은 억지스럽게까지 보이기도 한다. 뛰어난 기교를 자랑하는 요즘의 추리소설에 비하면 빈약해 보이는 트릭과 어딘지 모르게 늘어지는 구성, 거북이처럼 느린 전개는 일부 독자에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작가의 명성에 실망하는 탄식을 자아내게 할 수도 있다. 나 역시 탄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실망감을 내비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단점들만 늘어놓으니 상당히 재미없는 소설로 보인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막상 읽어보면 또 그게 그렇지가 않다. 대가의 명성에 압도된 나머지 객관적인 비평을 내리지 못한 것일까? 아니다. 정말 그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단점은 『푸른 묘점』을 읽는 누구나 명확하게 지적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하다. 그것은 저 찬찬한 상공에 떠 있는 태양처럼 자명하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도 나를 지지한다. 그럼에도, 정말 신묘한 것이 앞서 언급한 단점들은 이 책을 읽게 되면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지만, 그런 단점들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데도 따분하기는커녕 쉽게 책 앞에서 자리를 떠나지 않게 하는 마력이 『푸른 묘점』에는 있다.

약간은 억지스럽기까지 한 추천의 글

앞서 언급한 단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엇이 나를 이 책 앞에 껌딱지처럼 붙들어 매 놓았을까? 명시한 단점들이 척력으로 작용함에도 무엇이 이것을 능가하는 인력으로 작용한 것일까? 재미있게 읽은 것은 분명히 사실인데, 막상 그 점을 밝히려고 하니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잡지사 편집자로 일하는 두 젊은 남녀 사키노 다쓰오(崎野竜夫)와 시이하라 노리코(椎原典子)의 아마추어 탐정 놀이가 신선했을까? 아니면, 수사와 탐문 차원에서 이곳저곳 여행하는 두 사람의 발자취가 추리소설에서는 보기 어려운 정취를 자아냈던 것일까? 아니면, 그물처럼 얽히고설킨 사건의 복잡한 인과관계가 흥미로웠던 것일까? 혹은, 두 주인공의 탐정 놀이에서 은연중에 싹 트는 사랑이 뭔가를 기대하게 하였던 것일까? 일본 드라마 「열쇠가 잠긴 방(鍵のかかった部屋, 2012)」에 등장하는 변호사 세리자와가 탐정에 대해 입버릇 토로하는 불만 불평처럼 추리의 진척 상황을 감추며 거들먹거리는 다쓰오 앞에서 아이처럼 투정 부리는 노리코가 귀여웠나? 그것도 아니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극 중 인물들에 매료되었던 것일까? 정답은 이 모두일 수도 있고, 전부 다 아닐 수도 있고,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성의 없고 무례한 답변이자 나의 무지함으로 북을 치고 장구를 치는 격이다. 내 말이 정 미덥지 못하다면 직접 『푸른 묘점』을 펼쳐보시라.

한편, 마쓰모토 세이초의 추리소설들이 범죄의 사회적 동기에 중심을 둠으로써 ‘사회파 미스터리’의 시발점을 제공한 업적과는 별개로 대중소설과 순문학의 경계를 허물어트린 대범한 작가였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문장력이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다. 보통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것이 문장력이지만, 텍스트를 읽는 재미를 유난히 중시하는 나에겐 『푸른 묘점』의 기대 이상의 문장력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특히 그런 감흥은 두 주인공이 사건 수사를 위해 도쿄를 떠나 지방으로 내려갈 때 두드러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처럼 독특하고 뛰어난 품격 높은 문장력이라고까지는 치켜세울 수 없지만, 그래도 텍스트를 읽는 재미를 풍기기에는 나름 괜찮은 문장이라고 내심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노리코는 다쓰오와 수사를 같이하게 되면서 다쓰오를 대하는 사무적인 태도가 조금씩 조금씩 애정 어린 관심으로 번져가면서 사랑스러운 처녀로 영글어가는데, 이런 노리코의 풋풋한 심정 변화를 담은 언행을 문장에서 직접 느껴보는 것도 나름 괜찮다. 그리고 1950년대 말임에도 대중교통이 제법 잘 갖추어진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삼은 점도 과거에 대한 어쭙잖은 향수에 젖어 든 내겐 또 하나의 흥밋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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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2019

LG G6 해상도 차이에 따른 게임 성능 변화

스마트폰 해상도를 낮추어 게임 프레임 향상

컴퓨터에서도 게임이 버벅대면 해상도를 낮추어 프레임을 올리는 것은 아주 고전적인 팁인데, 이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도 가능하다. 사실 누구나 다 아는 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고사양 모바일 게임을 별로 하지 않다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양이 딸려서 못했다가) 최근에 중고로 구매한 LG G6가 사양이 좀 받쳐주는지라 몇몇 안드로이드 고사양 게임을 돌려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프레임이 (물론 기존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이나 넥서스 7 2013보다는 월등히 뛰어났지만) 아니올시다. 그래서 조금 궁리를 해보다가 PC처럼 해상도를 줄여 프레임을 올리고, 덩달아 배터리도 조금은 절약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벤치마크에서나 실제 게임에서나 프레임 향상을 느낄 수 있었다.

Game Performance by Different Resolution of LG G6
<LG G6>

그렇다고 이런저런 벤치마크를 돌려본 것은 아니고, 늘 그래왔듯이 아주 간단하게 GFXBench에 포함된 여러 테스트 중에서 3개 게임 정도만 해상도 변경 전후를 테스트해 비교했다. 아직 G6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나도 모르게 [절전모드 > 기본모드] 상태에서 벤치마크가 진행되었다. GFXBench 벤치마크 결괏값만 놓고 보면 두 배 이상의 프레임 상승효과가 있다. 게임은 리니지2 레볼루션, 블레이드&소울 레볼루션, 달빛조각사를 조금 돌려봤는데, 확실히 해상도를 낮추었을 때가 더 부드럽게 돌아갔다.

Game Performance by Different Resolution of LG G6
<GFXBench>

안드로이드폰 해상도와 DPI 변경하기

ADB 사용법만 알면 해상도와 DPI를 변경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참고로 루팅도 필요 없다.

Game Performance by Different Resolution of LG G6
<안드로이드폰 해상도 및 DPI 변경>

* 사전 준비: PC에 스마트폰 드라이버 설치, 스마트폰의 USB 디버깅 모드 ON, PC와 스마트폰 연결.

1. adb shell

2. wm size 960x1920(원상 복구는 reset)

3. wm density 282(원상 복구는 reset)

*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네이버 블로그 링크 참조.

해상도를 줄이면 전체적으로 화면이 작아진 듯하기에 DPI도 적당히 줄여줄 필요가 있다. 이때 적절한 DPI값을 구하려면 「[루팅X]스마트폰 해상도 내 마음대로 조절하기」에 소개된 방법으로 구하면 된다. 즉 [스마트폰의 인치당 픽셀 수(ppi) / (내 스마트폰의 가로 해상도 / 바꿀 가로 해상도)] 공식을 적용하면 된다. LG G6 같은 경우는 [564(ppi) ÷ (2880÷1920) = 376(DPI)]라는 값이 나온다. 난 더 화면을 넓게 쓰고자 280을 적용했다(DPI에 따른 성능 차이는 없다). 이것은 사용자 입맛, 아니 시지각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해 주면 된다. 물론 이렇게 해상도와 DPI를 임의로 변경하면 일부 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화면에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 버그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참고하자 하지만, 아직 그런 상황과 맞닥트리지는 못했다.

Game Performance by Different Resolution of LG G6
<달빛조각사>

LG G6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나 같은 막귀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음질,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점은 2013년에 나온 넥서스 7에도 있는 무선 충전이 없다는 것!

게임 프레임 향상에 고심하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충분히 적용해 볼 수 있는 팁이란 생각이 들어 몇 자 적어보았고, 그나저나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 게임들은 죄다 자동 사냥에 특화되어 있어 손맛이 전혀 없으니 그렇게 재미있는 줄은 모르겠다. 그냥 멍하니 시간 보내기에는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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