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4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 | 두려움으로 폭발시킨 광기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 | 라파엘 젤리히만 | 과대망상적인 두려움으로 폭발시킨 광기

히틀러의 카리스마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자신과 독일국민을 연결한 고리, 즉 ‘근대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공통된 감정이었다.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 6쪽)

속담 중에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라는 말이 있다. 강한 상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처음엔 위축되다가 말뿐이었던 위협이나 협박이 진짜로 죽음의 문턱에 이를 정도가 되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달려든다는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강자가 약자를 부려 먹을 땐 어느 정도 사정을 봐줘야지 그렇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마구 짓밟아버리면 일부 약자는 참다못해 동료를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이미 목숨을 내놓은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자포자기인 심정이니만큼 그 분노와 폭발력은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식민지나 노예 제도를 운용할 땐 채찍뿐만 아니라 당근도 적당히 준비해둬야 반란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효용성도 극대화할 수 있다. 누적된 정도에 따라 엄청난 폭발력으로 반응할 수 있는 ‘두려움’을 자신의 카리스마로 교묘하게 이용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다름 아닌 2차 세계대전의 주범 히틀러다.

Hitler. Die Deutschen und ihr Führer by Rafael Seligmann

근대에 대한 사유가 역사적 • 지리적 요인 때문에 온전한 힘을 펼칠 수 없었던 독일은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근대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1차 세계대전 패배와 베르사유조약이 가져온 국가적 트라우마와 경제적 위기가 민족적 자의식의 약화로 이어졌고, 여기에 민주적 정당들의 연이은 실패는 독일 국민이 근대화의 대표 산물인 민주주의에 등을 돌리게 하였다.

정치적 • 외교적 • 경제적 • 사회적인 내적 및 외적 위기에서 근대적 사유의 결여는 그들이 상황을 스스로 분석하고 판단할 능력의 결여로 이어졌다. 이것은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의지 박약한 사람들이 실패의 원인을 너무나도 쉽게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듯 자신들이 겪는 고통의 모든 원인을 외부 탓으로 돌렸다. 냉철한 이성 대신 불확실한 감정에 행동을 맡겼고, 시대착오적이게도 민족주의적 신화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이때 1차 세계대전의 연락병이었던 히틀러는 독일 국민이 겪는 비참함의 유일한 원인은 유대인이라고 꼭 집어 말하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했던 대중이 듣고 싶어했던 대답을 들려줌으로써 그들을 음모론에 쉽게 빠트릴 수 있었고, 자신은 그들의 환심을 얻으면서 더불어 대중의 분노도 다스릴 수 있었다.

히틀러는 원인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해결책까지 제시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독일의 구원자로 거듭난다. 히틀러는 유대인이 독일과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믿었고, 그 믿음을 이미 음모론에 흠뻑 젖은 대중에게 자신의 뛰어난 선동과 연설 능력을 통해 쉽게 주입시킬 수 있었다. 유대인이 독일을 지배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극단으로 몰고 간 히틀러는 유대인의 지배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즉 유대인의 음모에 맞서 싸울 방어 행위로 전쟁과 홀로코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마련할 수 있었다. 유대인에 대한 두려움은 나치의 더욱 철저한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 이들은 살아남은 유대인의 복수가 두려웠던 것이다.

독일 국민이 홀로코스트를 묵인하고 히틀러가 죽는 그날까지 지지한 것은 히틀러가 자극한 ‘두려움’과 생존에 필요한 ‘빵과 일자리’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겪는 모든 불행을 탓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었고, 국가적 침체로 억압되어 있던 분노를 표출할 적법한 기회도 마련해 주었다. 더군다나 기존의 민주적인 정당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빵과 일자리’까지 주었고, 2차 세계대전 초반까지 압도적인 승리로 1차 세계대전 패배의 수모를 말끔히 씻어놓으며 민족적 자긍심까지 높여 놓았으니 독일 국민에게 히틀러는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기후전쟁(하랄트 벨처, 윤종석 옮김, 영림카디널)』은 기후재앙으로 발생한 기후난민이 서구 사회로 대거 유입될 때, 이들이 어떻게 대처할지를 다루면서 역사의 예로 홀로코스트와 르완다 학살을 제시했다. 이 둘 다 이질적인 타민족이 자신들의 안정과 안전을 해칠 거라는 ‘두려움’에 기인한 방어 수단으로 폭력을 선택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유대인 이민 문제를 다룬 1938년 에비앙 난민회의도 실패했고 현재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 문제도 해결될 기미는 없다. 저개발 국가보다 기후변화로 겪는 타격은 덜하겠지만 기후변화는 서구 사회도 빗겨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므로 더욱 나빠진 생존 조건은 서구 사회가 난민 문제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게 할 수도 있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2006)」에는 유입된 난민들을 영국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아주 잘 그려져 있는데, 이 영화를 재현하려는 듯 현재 영국은 난민 문제가 불거져 브렉시트까지 진행 중이다. 그리고 카트리나 사태에서 보았듯 재난은 문명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결국, 기후재앙으로 급격하게 불어난 기후난민이 밀어닥침으로써 자신들의 ‘빵과 일자리’에 대한 위협이 단지 말 뿐인 위협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존 문제로 직결된다면, 그렇게 ‘두려움’이 추상적이고 단어적 의미로의 선을 넘어서 실질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로 바짝 다가선다면 홀로코스트가 그랬듯, 그리고 르완다 학살이 그랬듯 서구 사회는 상황을 해결하고자 ‘폭력’을 재고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라파엘 젤리히만의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 즉 히틀러가 남긴 교훈은 현대 문명이 자랑하는 교양과 이성, 그리고 보편적 윤리와 도덕이 ‘빵과 일자리’ 앞에선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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